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19)
공범이 더 늘었다고 눈앞에 닥친 일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일단 임승현에게 조사를 맡겨둔 후 유연서는 ‘국새’의 촬영장에 도착했다.
“어? 일찍 오셨네요. 아직 연서 씨 촬영 멀지 않았어요?”
“네, 구경 왔어요.”
사실 그가 촬영할 장소도 여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극의 전체 흐름을 이해하려면 가능한 모든 촬영을 지켜보는 게 편했다.
잘 만들어진 세트장, 한옥의 고풍스러움과 아름다움, 그리고 바람에 나부끼는 색색의 리넨 커튼이 모니터에 담겼다. 따로 후처리를 안 해도 영상미가 느껴졌다.
잠시 카메라 조정 끝에 신예원이 연기할 이서은과 그녀의 큰아버지이자 현 황제인 이 욱의 대담 장면이 마침 시작됐다.
이서은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중정을 가로질러 갔다. 명품 정장과 굽 높은 구두, 반짝이는 액세서리보다는 신예원이 가진 분위기가 눈에 띄었다. 역시 관록 있는 배우라서 그런지 존재감이 남달랐다.
“안에 계시지?”
“잠시만요, 황녀님.”
만류하는 상궁의 말을 무시하고 문을 벌컥 연 이서은은 난을 관리하는 이 욱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삼촌.”
“성질은 여전하구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겠다고 했는데······.”
“제가 한 거 아니에요.”
그녀는 난의 옆에 놓여있는 오늘 자 신문을 흘끔 바라보고서는 말했다. 신문에는 (황녀 이서은 갑질 논란···떨어진 지지율. 대한 제국 황실, 이대로 괜찮은가?) (현 황제 적통 논란, 국새는 가짜? 음모론 확산) 이라는 문구가 나란히 1면에 실려 있었다.
“안다. 이 강, 그 녀석이 한 짓이겠지.”
“그런데 갑자기 혼담이요?”
황실에서는 곧바로 갑질 논란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이미 대중들은 사고 친 황녀를 신나게 물어뜯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는 조용히 지나가는 게 현명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갑자기 혼담이라니? 사고 친 황녀를 적당히 팔아 치우는 것과 다를 것 없지 않은가.
“저 출가시키고 강이한테 양위하시려고요?”
“양위라니, 끔찍한 소리 하지 말아라. 그놈은 나라를 말아먹을 놈이야.”
“그러면 왜······!”
이 강, 현 황제의 어화둥둥 외동아들. 그의 사고를 수습하느라 전국민적 비호감 이미지만 쌓인 이서은은 모든 게 답답했다. 무슨 생각인지 도통 모를 제 큰아버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서은아.”
등만 보이고 있던 이 욱이 뒤를 돌아 이서은을 바라봤다. 근엄한 분위기, 하지만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를 달고 있었다.
“천오 그룹이면 좋은 혼처 아니니. 우리랑 사업적 제휴도 맺을 수 있고.”
“그래봤자 둘째잖아요. 제 형이 싼 똥이나 치우는.”
천오 그룹의 둘째가 서자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악의 없는 이서은의 대답에 이 욱의 볼 근육이 미세하게 꿈틀거린다. 하지만 찰나였다. 다시 사람 좋은 미소를 단 그가 작게 웃었다.
“그건 너랑 닮았구나.”
“지금 저 놀리시는 거예요?”
“아니, 너에게는 항상 미안하지.”
의미심장하게 웃은 이 욱은 제 조카의 근처로 다가갔다.
“둘째라서 더 좋은 거 아니냐. 부마로 들이면 되는 거고······.”
“······.”
“한 번 만나보기나 해. 이미지도 좋아서 네 떨어진 지지율을 올릴 수도 있지 않겠니.”
이 욱이 이서은의 어깨를 토닥였다. 이서은은 어깨에 올려진 손을 힐끔 바라봤다. 요즘 들어 이 욱의 손길이 섬뜩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나저나, 요즘도 뭐 생각나는 건 없고?”
“······갈게요.”
게다가 이상한 소리까지. 눈살을 찌푸린 이서은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숨죽이고 있던 상궁들이 문을 닫았다.
“쯧, 저런 드센 애가 뭐가 좋다고 먼저 혼담을 넣은 거야?”
뭐, 그래서 나야 좋지만. 이 욱은 혀를 쯧쯧 차더니, 다시 난에 묻은 먼지를 소중하게 닦아냈다.
밖에 나와 정원을 가로질러 가던 이서은의 뒤에 한 여성이 붙었다. 광대뼈가 한껏 솟아있는 그녀가 기쁨이 고조된 목소리로 속삭였다.
“전하, 진짜 그 성현우랑 혼담 오갔어요?”
“최 상궁, 너 심각하게 좋아한다?”
“당연하죠. 그 성현우잖아요. 모르세요?”
“몰라.”
최 상궁은 ‘국새’의 감초 역할로 이서은의 비서이자 친구로 등장한다.
“국민남편감이잖아요. 잘 생겼지, 행실 올바르지. 안 좋은 구설수도 없지. 요즘 웬만한 연예인보다 인기 많아요.”
“······그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이렇게 설명해 주거나 두 주인공의 연애질을 몰래 지켜보면서 좋아하는 역할이었다. 이서은은 최 상궁의 설명을 듣고 꽤 솔깃해한다.
“그래서, 그냥 거절하실 거예요?”
“만나는······ 봐야지.”
마침 광화문 광장의 전광판에서는 이서은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그것을 본 이서은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컷! 좋습니다! 아, 역시 예원 씨!”
‘국새’의 감독, 구도현은 신예원을 향해 쌍 따봉을 날리고 있었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신예원은 모니터 앞에 서 있는 유연서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벌써 왔어?”
“네. 그냥 흐름 파악하려고요.”
“네가 이러니 연기가 빨리 느는구나.”
신예원은 웃으면서 유연서의 옆에 섰다. 신예원이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있어도 유연서가 머리 한 통은 더 컸다. 나란히 서는 것만으로도 덩치 차에서 오는 케미스트리가 있었는데, 비하인드를 찍는 카메라는 이를 놓치지 않고 그들을 연신 찍어댔다.
“빨리 이동합시다!”
오늘 궁에 있을 촬영을 모두 마친 촬영팀과 두 배우는 근방에 있는 카페로 이동했다. 벌써 촬영이 알려졌는지 사람이 꽤 많이 모여 있었다.
“헉, 유연서다.”
“미친, 대박.”
밴에서 내린 유연서가 빠르게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뒤늦게 구경꾼의 비명이 들렸다.
카페 안에는 단역 배우들이 테이블에 앉고 있었다. 아마 이 짤막한 장면을 위해 아침 일찍부터 미리 와 대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부터 나는 성현우다.’
유연서는 반쯤 뒤로 넘긴 머리를 다시 점검하면서도 대본에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성현우는 형의 그림자로 지내왔다. 형이 친 사고를 수습하면서 장남 노릇을 했지만, 항상 영광은 형이 가져갔다.
당연했다. 그는 사생아였으니까. 속으로는 이 차별에 부당함을 느끼고 형의 자리를 뺏을 거라는 어두움을 품고 있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능글거림이라는 가면으로 포장했다.
조용히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살던 그가 처음으로 소망하는 게 생겼다. 바로 이서은.
“성현우 씨?”
어느새 성현우가 되어 자리에 앉은 유연서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목소리에 작게 미소 지었다. 그리움과 기쁨이 섞여 있어서 저절로 속사정이 궁금한 미소였다.
카메라가 그를 비추지 않고 있어도, 그는 성현우 자체가 되어 연기를 해야 했다. 이를 지켜보던 스태프들이 숨죽여 유연서를 바라봤다.
“이서은이에요.”
“성현우입니다. 황녀 전하.”
성현우가 반갑게 웃었다. 그 웃음이 기분 나쁘다고 생각한 이서은은 주위를 살짝 둘러봤다. 둘이 만나기에는 너무 사람이 많다. 심지어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다.
“꼭 여기였어야 했나요?”
이서은이 언짢은 목소리로 말하면, 성현우가 능글맞게 ‘네, 여기였어야 합니다.’라고 대답해야 했는데······ 유연서가 조용했다.
“컷! 연서 씨?”
보다 못한 감독이 촬영을 중단했다. 신예원도 놀라서 손을 뻗어 검지로 테이블을 톡톡 두들겼다.
“연서야, 왜 그래?”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 유연서가 고개를 푹 숙였다. 뭔가가 후드득 떨어졌다. 다행히 손으로 막아서 옷에 묻지는 않았다. 맞은편에 앉은 신예원이 어? 얘 코피 난다. 라고 소리치는 게 들렸다.
“잠시만요. 매니저입니다.”
이태겸이 카메라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손수건을 내밀었다. 임승현이 없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이태겸이 속삭였다.
“야, 괜찮아? 화장실 갈까?”
안 그래도 나 없을 때 도련님 잘 부탁한다는 임승현의 특명을 받은 이태겸은 유연서를 이끌고 화장실로 갔다.
“갑자기 이 타이밍에 코피가 나네.”
“아까 웃음 좋지 않았어요? 그거 찍을까요?”
“좋네, 카메라 더 있어?”
감독과 스태프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다시 촬영을 정비했다. 코피는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나올 수 있으니까. 그 누구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야, 촬영 접자고 할까?”
하지만 실상을 알고 있는 이태겸은 세면대에 떨어지는 피를 보고 조심스레 말했다. 양이 꽤 많았다.
“됐어.”
간신히 피가 멎은 유연서가 고개를 들고 인상을 찌푸렸다.
‘아 진짜······.’
느낌 좋았는데, 신예은의 위에 보이는 형체 때문에 몰입이 확 깨질 수밖에 없었다. 왜 나한테만 이래야 하는지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기억 속 본체가 그렇게 히스테리를 부린 게 아니다.
‘개인적인 일은 잠시 넣어 둬야 해.’
아직 촬영은 한참 남았다. 이렇게 끝내 버리면 코피 하나 난 것 때문에 촬영을 접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는 눈을 감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연서 씨, 지금은 괜찮아요?”
“멎었어요. 죄송합니다.”
다시 메이크업을 수정하고 자리에 앉았다. 몰입이 깨졌지만, 그의 장점은 온오프가 빠르다는 점이었다. 심호흡한 유연서가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네, 여기였어야 합니다.”
능글맞게 말한 성현우가 팔짱을 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오랜만에 만난 이서은을 감회가 새로운 눈으로 쳐다보기만 했고, 이서은은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부담스럽게 쳐다봐? 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말을 하기 싫어서 입을 꽉 다물었다.
“그런데 황녀 전하.”
“뭐죠?”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아요?”
이서은이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뒤로 뺐다.
“와 진짜, 그거 너무 옛날 방식 아니에요?”
“아······ 안 통하네.”
두 손을 들어 항복 의사를 표시한 성현우가 나른하게 말했다. 정작 이서은은 뭐야, 행실 올바르다면서 왜 이렇게 재수 없게 굴어? 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나와의 혼담이 그렇게 싫습니까?”
“네, 별로 할 마음이 없는데요.”
“싫어도 하게 될걸요?”
“뭐라고요?”
성현우가 근처를 슬쩍 쳐다봤다.
“내가 약속장소를 왜 여기로 했을 거 같아요?”
번화가에 자리 잡은 2층 카페, 그들을 알아보고는 찰칵거리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 당장 내일 신문 1면에는 (이서은, 천오 그룹 3세와 열애) (황녀 이서은X재벌 3세 성현우, 세기의 결혼?) 따위의 기사가 넘쳐날 것이다.
이서은이 경악한 표정으로 그에게 쏘아붙인다.
“허! 성현우 씨, 알려진 거랑 너무 다른 거 아니에요?”
“저한테 그렇게 관심 많았어요?”
“아니거든요.”
더는 말할 가치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서은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성현우가 사뭇 진지한 음성으로 말했다.
“제가 제안 하나 하죠. 다시 앉아 주시겠어요?”
“······.”
“제발.”
결국 이서은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 다시 앉았다.
“우리 황녀님은 황위를 잇기 위해 내가 필요하죠. 잘 생기고, 이미지 좋아서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일등 신랑감.”
성현우는 검지를 휘휘 젓다가 자신을 가리켰다. 그 행동마저 가벼워 보여서 이서은은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말했다.
“그거 본인 입으로 말하는 거 안 쪽팔려요?”
“그리고 나도 당신의 힘이 필요하고요.”
“······왜요?”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관계는 싫었다. 하지만 성현우도 자신이 필요하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갑자기 태도가 진지하게 바뀌는 성현우를 보고 이서은도 비협조적인 자세를 풀고 그의 눈을 응시한다.
“이제는 형의 그림자로 살기 싫거든. 그러기 위해서는 황실이 필요하고.”
“그래서요?”
“우리 계약합시다.”
성현우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달고 이서은을 쳐다본다. 이서은은 이게 정말 사실인가 의심하면서도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서로 말없이 쳐다보기만 해도 오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서로 지지 않으려는 기 싸움 같으면서도 케미 장인으로 유명한 두 배우가 붙으니 저절로 말랑말랑해진다.
“컷! 오케이!”
이 장면을 카메라에 오래 담은 감독이 크게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