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61)
“저······ 실장님.”
“어?”
미팅에 갔다가 잠시 소속사로 돌아온 박 실장은 곧바로 다음 미팅을 위해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다. 잠시 눈치를 보던 이태겸이 그의 옆에 섰다.
“드라마 공지용으로 카페도 쓰나요?”
“카페를 쓴다고? 그거 옛날 방식인데. 요즘 어플 쓰잖아, 밴드 같은 거.”
“그렇죠? 이런 방식은 처음 봐서.”
“왜, ‘스네이크’는 카페를 써?”
이태겸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 실장은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제 턱을 올려놓았다.
“아······ 거기 조연출이 엄동필이라고 했나? 옛날 사람이긴 하지.”
드라마 제작 단계에서 스태프들 소통용으로 인터넷 커뮤니티의 도움을 받는다. 단체 대화방은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힘드니 커뮤니티 게시판을 이용하는 건데, 여기서 촬영 장소에 관한 공지나 쪽대본도 뜬다.
매니저들도 가입했다. 일일이 연락하는 거보다 게시판에 글 하나 쓰는 게 효율적이라서 그랬다.
“어떻게 아세요? 실장님이 아는 분이세요?”
“엄 감독 복귀한다는 소문은 돌았거든.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했더니······.”
감독? 이태겸은 핸드폰의 화면을 켜 엄동필을 검색했다. 본인 이름을 내건 작품이 꽤 있다. 이런 사람이 신인 감독의 조연출로 들어간다고?
“필모가 꽤 있네요?”
“그래 봤자 지금은 영······ 소싯적에 애매하게 떴다가 이런저런 사건 때문에 완전히 추락했다고 봐야지.”
“그렇구나······ 근데 왜 연출 안 잡고 조연출로 들어왔을까요?”
“뭐, 그런 사람들이 가끔 조연출로 들어가는 경우는 있어. 촬감이나 현장도 잘 알 테니까.”
연출로 들어가기에는 아직 부족하니, 짬 좀 찬 퇴물 감독이 입에 풀칠하기 위해 경력을 살린 거라 이 말이다.
“근데 그 이런저런 사건이 뭔데요?”
“자기 좀 떴다고 거들먹거리는 거 있잖아. 평판이 좀 좋진 않았지. 그 뒤로 찍는 족족 말아먹었고.”
“아아······ 혹시 문제 생기진 않겠죠?”
“유연서, 걔한테? 처발랐으면 처발랐겠지, 발리진 않을걸? 눈치는 또 귀신이잖아.”
“그래서 하는 말이에요.”
박 실장은 그때야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엄동필 성격에 유연서에게 재수 없게 굴진 않겠고, 걔 배경 보고 옆에서 귀찮게 하겠지. 그럼 유연서, 걔가 과연 가만히 있을까? 잠시 생각한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걔도 예전 같지는 않잖아.”
“요즘 약간 낌새가 보여서요.”
“그, 그래? 그래도 적정선은 지키겠지. 나는 신인이라는 그 감독이 더 걱정되는데······ 촬영장 제대로 굴러가려나?”
이태겸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소문이 별로 좋지 않은 조연출과 경력은 좀 있지만, 드라마 자체가 처음인 신인. 조합이 좋진 않다. 뭐가 됐든 우리한테 피해만 안 오면 좋겠는데.
“연서 걔가 어련히 잘하겠지.”
“그렇겠죠.”
“와······ 나 방금 소름 돋았다.”
유연서가 현장에서 잘할 거라고 당연한 듯 말하다니. 박 실장은 양손으로 제 팔뚝을 쓸어내렸다. 이태겸이 영혼 없이 웃었다.
“실장님도 너무 무리하시진 마세요.”
“나도 그러고 싶은데······ 회의록은 정리하고 가야지. 그러고 보니 너도 짬 좀 찼다? 곧 실장 달 수 있겠는데?”
“제가 뭐가 짬이 차요, 아직 부족한데. 그럼 걔 로드는 누가 뛰게요.”
“아, 그렇지.”
제 자리로 돌아온 이태겸이 모니터에 뜬 ‘스네이크’의 스태프 커뮤니티를 바라봤다.
‘무슨 비공개도 안 해놓냐.’
이상한 사람이 가입하면 어쩌려고.
***
유연서는 시간 날 때마다 정현식과 만나 일상 속에서도 캐릭터 자체가 되어 보려고 노력했다.
극 중 한유준은 특수 부대였던 경력을 살려 제 몸을 아끼지 않는다. 게다가 복잡해 보이는 가정사까지 추가되어서 그런지 캐릭터 시놉시스를 본 팬 중에는 피땀 눈물 기대해도 되냐는 반응도 있었다.
게다가 마침 천하액션스쿨의 감독 중 한 명이 ‘스네이크’의 액션 감독을 맡았다. 그는 머리가 복잡할 때마다 액션 스쿨을 찾아 드라마 속 동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척 끼어들어 자문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스네이크’의 공개 대본 리딩이 다가왔다. 초대받은 기자들이 하나둘 카메라를 들고 리딩 현장으로 모였다.
“사활을 걸었다더니 기자들 엄청나게 초대했네.”
“잘 될 거 같아?”
“모르죠. 파업 여파 때문에 급하게 땜빵 용으로 넣은 거 아니에요?”
“그 유연서가 선택한 작품이니 땜빵 용은 아니지.”
“에이, 어떻게 사람이 계속 잘 되겠어요.”
“어? 저 사람······ 너 먼저 안에 들어가 있어 봐.”
누군가를 알아본 선배 기자는 후배를 먼저 안으로 보냈다. 그는 마치 방금 온 듯 두리번거리다가 한 사람에게 다가갔다.
“혹시, 엄동필 감독님 아니세요?”
“아······ 김 기자?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저야 잘 지냈죠. 근데, 감독님이 ‘스네이크’ 연출 잡나요? 아닌데······ 이름 보니 여자던데.”
김 기자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있었었는데, 언뜻 조롱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 도발을 읽은 엄동필의 볼 근육이 씰룩거렸다.
“조연출로 들어가지. 그 왜 그런 거 있잖아······ 감독이 신인이면 베테랑이 도와주는 거.”
“아아, 그래서 오셨구나. 힘드시겠어요, 신인 가르치려면.”
“그렇지. 나 잠시 화장실 좀.”
“네네.”
도망치듯 멀어지는 엄동필의 뒷모습을 김 기자가 비웃었다.
‘그렇게 으스대더니 신인 뒤치다꺼리나 한다고? 엄동필도 퇴물 다 됐네.’
그가 신입 시절에 엄동필 감독에게 하도 데인 게 많아서 굳이 찾아와 속을 긁은 것이다.
‘저 새끼가 날 무시하네.’
그리고 엄동필도 이를 빠드득 갈았다. 그는 사실 ‘스네이크’의 감독을 맡고 싶었는데, 신인에게 밀려서 자존심이 아주 많이 상했었다. 그런데 하필 여기서 아는 사람을 만나다니.
‘안 되겠어, 이거 끝나고 나도 연출 잡아야지.’
마침 주연 배우가 유연서다. 대형 컨텐츠 회사의 오너가 될 사람. 촬영 기간 동안 잘 보이면, 그 회사에 꽂아줄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 공중파는 한물갔지. 대세는 OTT야.’
벌써 유연서가 JS 엔터에 꽂아주는 상상을 하면서, 다시금 날아올라 스타 연출가가 될 꿈에 부풀었다.
화장실에 가던 척하던 엄동필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이슬기 감독을 보며 인상을 팍 찌푸렸다.
“감독, 이제 오면 어떡해?”
“······죄송합니다.”
사실 제법 일찍 온 거였지만, 이슬기 감독은 별말 하지 않았다. 반박하면 지금 내 말에 토 다는 거냐, 어린애가 버릇이 없다고 뭐라고 할 게 분명했다.
바로 뒤에서 따라오고 있던 김대성 작가가 눈치 없는 척 되물었다.
“네? 저희 일찍 온 거 아니에요?”
“······일단 들어가시죠.”
엄동필은 김대성에게는 뭐라 하지 못했다. 이슬기는 만만했고, 김대성은 유연서와 친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서였다.
앞장서 안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작가와 감독은 표정을 있는 대로 구겼다.
“제가 현장에 좀 나갈까요?”
“아뇨, 괜찮아요. 작가님은 대본 쓰셔야죠.”
이슬기는 의연하게 대답했다. 드라마 쪽에서는 신인이지만, 전직 경력은 화려했다. 회사 일을 하면서 저런 인간 군상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래도 신경 써 줬다는 게 고마워서 작게 감사 인사를 했다.
“뭐냐.”
“뭐가?”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그 상황을 멀리서 지켜본 사람이 있었다. 꽤 멀리 있었지만, 집중을 잘하면 들을 수 있었다. 텀블러를 건네주던 이태겸이 화들짝 놀랐지만, 대충 무시하고 리딩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기자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사진을 찍었다. 유연서는 옆에 앉은 배우에게 간단히 인사하고 맞은편의 정현식을 빤히 쳐다봤다. 정현식도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작품에 대해 자주 만났으니 서로를 바라보는 것으로 몰입하려는 것이었다.
[포토] ‘스네이크’ 대본 리딩 현장···시작부터 두 주연의 신경전‘스네이크’ 대본 리딩···유연서, 강렬한 눈빛
그리고 그 모습은 사진으로 담겼다.
“네, ‘스네이크’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조연출을 맡은 엄동필입니다. 우선 연출을 맡아주실 이슬기 감독님.”
“안녕하세요, 이슬기입니다.”
입구에서 마찰이 있던 것 치고는 덤덤하게 제작진을 소개했다. 그래도 공과 사는 제대로 구분하는 성격이라 다행인가······ 이어서 작가인 김대성의 소개가 끝나고, 배우의 순서가 다가왔다.
“네, ‘한유준’역을 맡아주실 우리 유연서 배우님.”
우리? 유연서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들었다.
“리딩 시작하겠습니다.”
짧은 소개가 끝나고, 리딩에 참여한 사람들이 대본을 넘겼다. 조연출인 엄동필이 내래이션을 하고, 배우들이 대사를 친다. 손진호의 첫 등장 장면, 이어서 한유준과 만난다.
“너, 뭐가 들리냐?”
미리 만나 캐릭터 자체가 되어 연습했던 그 대사, 손진호가 속마음으로 고함을 치고 한유준은 대본에 나온 지문대로 아닌 척 버티다가 결국 무너진다.
유연서가 손으로 귀를 막고 인상을 찌푸린다. 진짜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 듯한 몸짓이었다. 대본을 보지 않고도 어떤 상황인지 유추 가능했다.
“······면접은 통과다. 내일부터 우리 팀으로 출근해.”
손진호는 눈빛만으로 한유준을 압도하고 있었고, 한유준도 딱딱하고 경직되어 보였지만 지지는 않았다.
“그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쓰는 법을 전혀 모르는군.”
“크윽······!”
다음 날부터 손진호의 팀으로 출근한 한유준은 능력 사용법에 대해 특훈을 받는다.
“똑바로, 집중해.”
“이게 정말 효과가 있습니까?”
참다못한 한유준이 소리를 친다. 아직 손진호가 능력을 가졌었다는 것을 모르는 한유준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억압하려고 드는 손진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아들 같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하면 범인 못 잡아.”
배우들은 각자 나름대로 캐릭터 해석을 하고 온다. 리딩은 그걸 하나로 합치는 과정이었다. 가끔 표현이 이상할 때면 중간중간 작가나 감독이 거기서는 다르게 해 보겠냐고 권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연서와 정현식은 딱히 건들 게 없었다.
“네, 다음 장면······.”
두 주연이 리딩에서도 열연하니, 다른 배우들도 점점 달아올라서 의욕적으로 대사를 쳤다. 물을 마실 시간도 없었는지 갈라진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것으로 ‘스네이크’ 대본 리딩을 마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대본 리딩은 예상보다 빠르게 끝낼 수 있었다.
“어떨 거 같아요?”
“아직 초반부라 잘 모르겠는데, 연기는 벌써 장난 아니다.”
“그렇죠?”
기자들이 하나둘 리딩장을 빠져나오고, 배우들과 짤막하게 인사한 유연서는 작가와 감독에게 다가갔다.
“작가님, 어떤 거 같아요?”
“완벽해요.”
“감독님은요?”
김대성은 온갖 미사여구를 덧붙이고 싶었지만, 가만히 엄지를 치켜올렸다. 하지만, 이슬기가 말을 하기도 전에 엄동필이 끼어들었다.
“크······ 진짜 좋아요. 뭐 말씀드릴 게 없네요.”
“저는 감독님께 말씀드린 건데요.”
네가 감독이야? 눈도 깜빡이지 않고 엄동필을 응시하자, 그가 주춤거렸다. 그 모습에 통쾌해진 이슬기 감독은 웃음을 참으려 작게 헛기침을 했다.
“네, 저도 캐릭터 해석 너무 좋았어요.”
“그럼 됐네요. 촬영 때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