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75)
할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미국으로 떠난 유연서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쓸데없이 눈에 띄네.”
그는 자신을 둘러싸는 경호원들 너머로 핸드폰을 들고 구경하는 사람들을 마주쳤다. 과연 저 사람들은 나를 알아보고 사진을 찍는 걸까······.
“안녕하세요. 도련님.”
그는 미리 대기하고 있던 한 여성의 앞에 섰다. 굽 높은 구두를 신어도 한 뼘 아래였다.
“계시는 동안 도련님의 편의를 봐 드릴 이나윤이라고 합니다.”
“보좌할 사람은 이미 있는데요.”
“회장님이 현지 사정을 아는 사람이 있어야 안심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나윤은 그러면서 유연서의 뒤에 서있는 임승현을 흘끔 바라봤다. 유연서는 그 시선에서 여러 가지를 읽었다.
하긴, 모시는 사람이 응급실만 두 번째인데 입지가 불안할 만하지. 손자까지 비행기 태워 보낼 정도면 밑에 붙인 사람쯤이야 언제든 바꿀 수 있다.
그는 이 몸에서 처음 눈을 떴을 때가 생각났다.
‘이래서 내가 그렇게 반항했던 건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쉽게 넘어가진 않을 거다. 이미 임승현은 범인 찾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맘대로 바꿔 버린다? 있을 수 없지.
“할아버지가 시켰습니까? 나 감시하라고?”
“······아닙니다.”
아니긴 뭘 아냐. 맞네. 유연서는 못 말린다는 듯 웃었다. 어차피 영화제까지는 시간이 있으니 그 기간만 참는 거다.
그가 발걸음을 옮기자, 뒤따르던 사람들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사방을 쳐다보며 그를 경호했다.
“일단 알겠습니다.”
“호텔로 모실까요?”
“아뇨, 바로 병원으로 가죠.”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아무렇지 않다는 인증은 빨리 받을수록 좋다.
그들을 태운 차가 미국의 대형 병원에 도착했다. 유연서는 기다림 없이 바로 VIP 병동으로 향했다. 아마 그의 진료를 봐주는 대가로 얼마의 기부금을 준 게 분명했다.
“*진료를 시작하기 전에 조건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도 이대로 당할 순 없지. 여기서 발을 묶이는 건 사양이다. 그는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여유롭게 발을 꼬고 의사들을 바라봤다.
“*한 달 동안 제 병의 원인이나 정확한 병명을 알아내지 못한다면, 저는 아무 문제 없는 거로 알고 퇴원하겠습니다.”
“도련님.”
이나윤이 당황해서 그를 불렀지만, 유연서는 굽히지 않았다.
“할아버지한테 이건 나도 양보 못 한다고 전하세요.”
이윽고 그는 의사에게 활짝 웃었다.
“*대신 알아내신다면 제 돈도 병원에 기부하도록 하죠.”
그러자 의료진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유연서의 진료를 우선으로 봐주는 대가로 유 회장은 막대한 기부금을 일시금으로 줬다.
게다가 손자인 유연서도 한국의 유명한 배우이자 미디어 재벌이라고 들었다. 분명 막대한 기부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좋습니다.”
그만큼 현지 의료진들은 자신 있었다. 한국과는 달리 최신식 기계도 있고, 저명한 교수가 많았다.
“*그러면 진료를 시작하겠습니다. 증상이 어떻게 되시나요?”
유연서는 대답하기 전 뒤에 서있는 사람들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자 주춤거리던 사람들은 임승현의 손짓을 받고 복도로 나갔다.
“*증상이라······ 일단 피를 토합니다.”
“*네?”
의사는 지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건가 싶은 얼굴로 유연서를 바라봤다. 뒤에 서 있던 다른 의사도 마찬가지였다.
“*피를 토한다고요?”
“*네, 무슨 문제라도?”
유연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어깨를 으쓱했다. 의사는 당황을 숨기고 병력 청취를 계속했다.
“*그냥 피를 토하기만 했습니까? 다른 증상은요?”
“*내장이 찢어질 것 같긴 했죠. 오한 때문에 몸이 벌벌 떨리긴 했고.”
“*어······ 얼마나 자주요? 평소 다른 증상은 어떻게 되시죠?”
“*가끔 두통 때문에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긴 합니다. 코피를 쏟는 건 일상이고······.”
맨 처음 말했던 증상이 너무 강력해서 그런가 다른 증상은 상대적으로 가벼워 보인다. 하지만 피를 토한다는 건 심각한 문제였다. 막대한 기부금까지 줬는데 거짓일 리는 없겠고······ 의사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눈빛 교환을 했다.
“*······일단 정밀 검사를 진행해보도록 하죠.”
“*그러세요.”
그래봤자 아마 안 나올 테지만. 유연서는 꼰 다리를 리듬 타듯 흔들었다.
“*결과 어떻게 됐어?”
“*깨끗합니다. 약간 빈혈이 있는 거 빼고요.”
그 뒤로 의사들의 유연서 병명 찾기는 계속됐다. 각종 첨단 장비를 이용한 검사를 진행했지만, 수확은 없었다.
“*사진상으로 문제점은 안 보입니다.”
“*······다른 검사도 해보지.”
유연서는 성실하게 검사에 임했다. 어차피 못 찾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쉬십시오.”
“네, 수고했어요.”
중동의 왕실이나 굴지의 대기업 총수가 머문다는 VIP 병실은 호화로워서 생활하는 데 문제는 없었다. 유연서가 침대에 몸을 던졌다. 병원에 온 지도 1주가 넘었는데, 검사받는 것도 꽤 지치는 일이었다.
“아, 잠깐만. 그쪽에서는 연락 왔습니까?”
“박경원을 데리고 지시하신 곳에 감금해놨다고 합니다.”
꽤 빠른데? 유연서가 고개만 들고 임승현을 쳐다봤다.
“박정호 씨의 의견이었습니다. 차라리 빨리 잡아서 행방불명으로 만들어버리자는 의견이었습니다.”
‘머리’ 쪽에서 이변을 느끼기 전에 미리 확보해두자는 생각이군, 유연서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일단 백 형사님이 공범에 대해 심문을······ 도련님?”
“콜록······.”
“의사 부르겠습니다.”
유연서의 입가에 붉은 것이 흘러나오자, 임승현이 다급히 버튼을 눌렀다. 곧바로 의료진들이 들이닥쳤다.
‘세상에, 진짜였잖아?’
‘대체 뭐가 원인이지?’
‘아까까지만 해도 문제없었는데······.’
일주일 동안 아무리 찾아보려고 해도 깨끗한 결과에 유연서가 거짓을 말한 게 아닐까 생각했던 의료진은 속으로 적잖이 당황했다.
“아 씨······.”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유연서가 손을 휘저었다. 손이 덜덜 떨리고 있어서 임승현이 표정을 굳혔다.
그가 이희서의 환영과 환청을 들어도 제법 아무렇지 않았던 것은 혼의 영향이 컸다. 그런데 영혼 조정으로 그 근간을 흔드니 다시금 여파가 세게 다가왔다.
공포감과 자책감이 몸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아, 지긋지긋하네······.’
아른거리는 그 형제가 꼴 보기 싫어서 유연서는 눈을 감았다. 그렇게 2주가 훌쩍 지났다.
***
-나 미국에서 사는데 유연서 봤어
미술관 가서 그림 감상하더라
└와 경호원 ㄷㄷ
└미친 옷개잘입어ㅠㅠㅠ
└잘지내는거 같아서 다행이다ㅠㅠ
└근데 진짜 연예인은 연예인이다 분위기 대박
유연서, 환자복을 입어도 꽃미모···SNS서 근황 밝혀
유연서, 美 관광지서 쏟아지는 목격담 ‘건강 이상 설, 사실 무근?’
└아픈거 맞아?
└요즘 잠잠해서 잊었는데 유연서도 관종끼 어마어마함ㅋ
└응원했는데 저러는거보니까 별거아닌가봐ㅋㅋㅋ
└가서 관광할 수도 있지 윗댓 뭐냐
└└그러게 아프면 맨날 침대에 누워있어야 하냐
미국에 있는 동안 유연서는 일부러 SNS를 통해 꾸준히 생존 신고를 했다. 사실 의도한 것이었다. 예전처럼 관종짓하면 그를 둘러싼 동정 여론이 벗겨질 것이다.
이를 모니터로 지켜보고 있던 한 대표는 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아이고,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한 대표······ 정말 이러기야?)
“제가 뭘요?”
그는 상대방이 왜 전화했는지 이유를 알면서도 모른척했다. 수화기 너머로 콧김을 뿜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드라마 홍보 활동 적극적으로 한다길래 드라마 종영하고 스페셜도 잡아놓고 연말까지 다 잡아놨는데······.)
“아니 애가 아프다는데 제가 무슨 수로 말려요? 저는 아티스트 보호에 최선의 일을 한 건데요?”
(아프다는 소리를 누가 믿어? 지금 하는 거 보면 멀쩡해 보이더구먼.)
“하······ 형님. 섭섭합니다. ‘스네이크’ 잘 돼서 형님도 재미 보셨잖아요.”
그리고 그걸 왜 나한테 따져? 하지만 생각한 대로 내뱉을 순 없어서 입꼬리를 억지로 올렸다.
“제가 형님한테만 말씀드리는 건데······.”
그리고 사무실 안에 자신밖에 없으면서도 누가 들을세라 속삭였다.
“사실 유 회장님이 지시한 일이에요.”
(그, 그래? 주성의 그 유 회장?)
“걔 전에 아이돌 했을 때도 압박 있었잖아요. 이번에도 그런 거 같더라고. 근데 타고난 관종 성격 못 버리지.”
(아니 유 회장이면······. 어쩔 수 없지.)
사람이 아프다는데 좀 믿지, 광고 수익 때문에 사실 여부를 묻는 게 껄끄러웠지만, 그래도 방송국과의 관계는 좋아야 한다. 유 회장을 들먹이니 방송사 사장은 군말 없이 전화를 끊었다.
“······잘 지내고 있나 보네.”
한 대표는 방금 올라온 유연서의 SNS 게시물을 터치했다. 볼티모어의 관광지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걸어가는 모습이었는데, 사진을 누가 찍었는지 진짜 그림같이 나왔다. 그리고 야구장을 방문해 야구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까지.
“아이고, 정기자!”
(대표님. 유연서 걔 진짜 아픈 거 맞아요? 뭐 글이 하루에 다섯 개 이상은 올라와?)
“걔가 아프다면 아픈 거겠지······.”
한 대표는 말끝을 길게 늘어뜨려 마치 사연이 있는 척했다. 정 기자는 거기에서 특종을 포착했다.
(아하, 또 예전처럼? 어쩐지 요새 조용하더라니.)
“그렇지. 걔가 이러는 거 한두 번이냐? 내가 수습하느라 진 빠지지.”
(고생하시네요. 그럼 기사는 예전처럼 올리면 되는 건가요?)
“너무 때리지 말고, 살살 해.”
통화를 끊은 한 대표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유연서가 바란 대로 판은 깔아줬다. 요즘 이미지 너무 좋아졌다고 하락시켜달라는 요구는 처음 받아본다.
‘근데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사실 안 하려고 했다. 소속사가 나서서 이미지를 하락시킨다? 이건 악질 소속사나 하는 방식이었다. 당연히 대표로서도 소속 배우가 이미지가 좋기를 바랐고.
[부탁해요, 한 대표.]하지만 두 번째로 듣는 유연서의 진지한 부탁이었다. 한 대표는 그걸 무시할 수 없었다.
‘근데 왜 자기가 나서서 이러는 걸까.’
한 대표는 유연서가 입원했을 당시 기사를 천천히 읽어내렸다. 그중 눈에 띄는 건 역시 한진석 기자의 정신적 트라우마 가설 기사였다. 하도 커뮤니티가 불타길래 그도 한 번 읽어본 기사였다.
‘설마 치부를 들키기 싫어서?’
그러고 보니 걔가 갑자기 이희서 씨에 대해 조사를 부탁한 적이 있었지······ 설마? 에이, 그럴 리가. 한 대표는 노트북의 화면을 닫았다.
‘어차피 이 바닥은 손바닥 뒤집듯 확확 바뀌니까······.’
나중에 어떻게든 다시 회복시킬 생각이나 하자.
***
“그래······ 그랬단 말이지······.”
박정호에게서 형제가 이희서의 사망 사건을 파헤치고 있었고, 실마리를 잡았다는 사실을 듣게 된 박금주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애가 말해도 된다고 했다고요?”
“네, 도와주셨는데 이 정도는 아셔야 하지 않겠냐고 하셨습니다.”
그녀가 한숨을 토해냈다. 그렇게 밀어낸 사람은 자신이었다. 평생 원망해도 달게 받겠다고 다짐했건만, 먼저 다가와 주는 건 늘 손자였다.
“그래서, 진척이 있나요?”
“범인 중 한 명은 사망했고, 한 명은 확보 중입니다. 제가 가서 확인해볼 생각입니다.”
박금주는 잠시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내가 미국에 볼일이 있던가?”
“마침 자선 행사에 초청받으셨습니다. 최 부회장님과 도련님도요.”
“좋아요. 일정 잡아요.”
박정호가 사무실을 나가고, 홀로 남은 박금주가 창밖을 바라봤다.
손자들이 했던 생각을 왜 자신은 못 했을까. 아마 그때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때 마음을 단단히 잡았으면 손자들이 고생하는 게 아니라 그녀가 직접 범인을 잡았을지도 모른다.
‘더 늦지는 말아야지······.’
그게 누구든, 이제는 숨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