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10)
(이 피디, 사전 답사갈 건데 카메라 들고 오실래요?)
집에서 쉬고 있던 이재학 피디는 갑작스러운 연락에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윗선에 유연서 단독 예능을 맡을 거라고, 그것도 주성의 로열패밀리가 게스트로 나올 수 있고 아예 깜짝 공개해 버릴 생각이라 말하자 국장은 일단 다른 사람들에겐 비밀로 하고 앞으로 아무것도 하지 말라며 휴가를 보냈었다.
(사전 답사요?)
(네. 이왕 찍는 거 이런 사소한 것까지 다 찍어서 나중에 마이튜브에 올려도 좋을 거 같은데······.)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이재학은 유연서 단독 예능에 24시간 대기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가 믿을만한 스태프들과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생각지 못한 사람을 마주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JSENM 예능국 소속 감독 이재학이라고 합니다.”
“이제 회장은 아니네만. 반갑네.”
이재학은 다 큰손주들이 있음에도 아직 풍채가 좋아 보이는 유창호를 보고 짧게 감탄했다.
주성의 선대 회장도 그렇고 더 윗대 회장도 그렇고 건강과 장수 유전자가 있었는지 다들 건강하게 오래 살다 갔다는데, 유창호도 아직 정정했다. 걸음에 힘이 넘쳤는데, 지팡이도 안 짚은 상태였다.
이재학은 슬쩍 뒤로 빠져나와 유연서에게 귓속말했다.
“할아버님도 오신다는 얘기는 왜 안 하셨어요?”
“지금 확인했으니 됐네요.”
그래, 잠깐 잊고 있었다. 불여우 같은······ 이재학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편하게 할아버님이라 불러도 되겠습니까?”
“그러시게.”
어색했던 것도 잠시, 이 피디는 넉살 좋은 성격답게 유창호와 도란도란 대화를 시작했다. 호감을 사기 위해 유연서와 관련한 칭찬과 아부성 내용이 대부분이었는데, 유창호는 껄껄 웃음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우리 손자가 좀 잘나긴 했어.”
“와 할아버지. 조금만 더 일찍 깨달으시지, 그랬어요.”
그는 아직 2018년 병실에서 깼을 때 호통 소리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건 그때 네가 하도 고집을 부리니까!”
“결국 이렇게 예능도 찍으실 거면서. 네?”
두 사람의 투닥거림을 카메라에 담던 이재학은 의외인 듯 눈을 빛냈다.
‘그냥······ 우리 할아버지랑 비슷하네?’
아무래도 주성을 일군 노장이니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할 줄 알았다. 이것도 어쩌면 선입견이겠지.
시청자들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조손의 의외의 모습을 재밌게 볼 것이다. 이재학은 이 장면이 방영될 생각을 하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이고, 회장님!”
“이제 회장 아니라네. 잘 지냈어?”
“저야 늘 잘 지내고 있었죠.”
산 입구에는 조그맣게 관리인의 집이 있었다. 미리 연락을 받았는지 버선발로 튀어나온 관리인의 옆에는 갈색의 큰 개가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내 둘째 손자야.”
“안녕하세요. 어릴 때 뵙고 오랜만이네요.”
관리인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저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기억하죠. 여기서 가족들이랑 밤도 줍고 그랬는데······ 그 개는 레오 새끼인가요? 닮았네.”
“손자입니다.”
기억 동기화를 전부 마쳐서 금세 떠올릴 수 있었다. 유 회장의 저택은 고급 주택가였지만, 서울에 있어서 남들이 말하는 시골집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가끔 이곳에 와서 며칠 지냈던 기억이 있었다. 가족끼리 밤도 줍고 근처 과수원에도 갔었고, 레오라는 개가 있던 것도 어제처럼 선명했다.
“얘도 은호랑 똑같아.”
“그렇습니까? 역시······.”
그 말에 이 피디가 고개를 기웃거리는 게 보였다.
“아무튼, 오신다는 소식 듣고 제가 다 준비해 놨습니다.”
“그렇게 준비 안 해도 된다니까 그러네.”
“어떻게 그럽니까? 오랜만에 오시는데.”
그들은 다리가 불편한 관리인의 속도를 맞춰 느릿하게 걸었다. 그는 주성의 공장에서 일하던 초창기 노동자였다. 하지만 불미스러운 사고를 겪어 후천적 장애인이 된 사람이기도 했다.
“저······ 혹시 이 산의 관리인이 된 얘기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이재학의 질문에 관리인은 신나서 뒷얘기를 말했다.
막대한 배상금을 받아도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그의 소식을 들은 유창호는 마침 선산을 관리할 사람이 필요한데, 괜찮으면 해보겠냐는 제안을 했었고, 그는 자식 손주들까지 유학을 보낼 정도로 금전적으로 풍족하면서 한가로운 노후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오······ 혹시 이 얘기도 방송에 써도 될까요?”
“너무 포장하지 말게. 사람들이 욕해.”
되레 유창호가 이재학을 말렸다. 그렇게 느릿하게 산책로를 걷다 보니 저 멀리서 예스러운 붉은 색 벽돌집이 보였다. 유연서는 시야를 가리는 앞머리를 대충 뒤로 넘겼다.
“머리는 왜 그렇게 했어?”
“일찍 말씀하시네요. 곧 작품 들어가서 바꿔봤죠.”
그는 머리를 조금 기르고 컬을 넣었다. 집안이 대대로 머리도 풍성해서 펌을 넣으니 유난히 북슬북슬했다.
“저 개랑 똑같이 생겼구먼.”
유창호는 관리인이 키우는 레트리버를 가리켰다.
“에이, 쟤보단 내가 더 낫죠.”
“말 안 듣는 손자보다는 충성심 높은 개가 낫지.”
“아니, 제가 개보다 못하다는 소리세요?”
조손이 유치하게 싸우는 것을 이재학은 카메라로 담았다. 좋은 장면을 담아서 싱글벙글했다. 그렇게 유창호와 유연서의 뒤를 따라 별장 안으로 들어온 이재학과 스태프들은 입을 멍하니 벌렸다.
“아이고······ 이 사람아. 오늘은 집만 보고 간다니까. 뭐 이리 청소했어?”
“이렇게 치우는 거 저한테는 별일도 아닙니다.”
외관만 봤을 때는 연식이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더 깔끔하고 현대식이었다. 전체적으로 하얗지만, 나뭇결이 살아있는 인테리어는 목가적이면서 고급스러웠다.
유연서는 제 기억과 다른 모습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내부 인테리어를 새로 한 거죠?”
“그래. 방송에 나올 건데 새로 하는 게 보기 좋지.”
“허······.”
예능 얘기 꺼낸 게 얼마 안 됐는데 벌써 리모델링을 마쳤다니. 할아버지도 행동력 하나는 빠르다.
“와······ 인테리어 진짜 예쁘다.”
“바깥 풍경이 그림이네요.”
스태프들이 짧게 감탄하는 사이 이재학 피디는 소파에 앉아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이 소파는······ 전시실에서 앉아보고 살까 했지만 비싸서 못 샀다는 그 소파? 몇천만 원이 넘는?
‘무슨 며칠 머물다 갈 곳에 이런 걸 놔둬?’
역시 재벌이라 씀씀이가 다르네······ 이재학은 미리 양해를 구하고 스태프들에게 가구와 소품의 사진을 찍으라 지시했다.
“새로운 작품은 무슨 이야기냐?”
할아버지의 옆에 앉아 거실 큰 창밖의 풍경을 감상하던 유연서는 ‘연좌제’의 흐름을 대략 설명했다. 유창호는 그걸 듣더니 나지막하게 물었다.
“선우 때문이야?”
“대충 비슷해요.”
유창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손을 들어 손자의 등을 쓸었다. 그는 유연서의 활동에 관심 있는 만큼 박선우의 활동에도 관심이 많았다.
막내딸을 통해 연서가 와서 위로해주었다는 말에는 설마 했는데, 박선우가 올린 영상으로 확인했을 때는 묘한 감정이 들었었다.
이걸 칭찬도 안 하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유창호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잘했다.”
다 늙으셔서 그런가? 안 하던 행동도 하시네. 유연서는 괜히 멋쩍어져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 구경이나 하죠? 할아버지도 집수리하라고만 했지, 어떻게 변했는지는 모르시잖아요.”
“그래.”
조손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집안을 돌아다녔다.
“그······ 상담은 꾸준히 하고 있어?”
“네. 할머니가 소개해 준 의사가 잘하더라고요.”
사실 약물 치료도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 확실히 정하지는 못했다. 영혼 조정 때문에 몸이 이 시대에 맞춰지고 있는 지금 약물의 부작용까지 더해지는 게 부담스러웠다.
“여기가 제일 큰 방인가?”
안방의 문을 연 유연서는 걸음을 멈칫했다. 안방은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어놔서 그런지 산들바람이 들어왔는데, 그 바람 때문에 살랑거리는 흰 커튼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연서야?”
“······네?”
유창호는 손을 뻗어 손자의 어깨를 짚었다. 유연서는 화들짝 놀라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괜찮은 거야?”
“후······ 괜찮은데요. 이 방은 할아버지가 쓰실 거죠?”
깊게 숨을 내뱉은 유연서는 도망치듯 밖으로 빠져나갔다. 유창호는 그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방금 짚은 손자의 어깨가 살짝 떨렸던 것 같았다.
***
시간이 조금 흘러 드디어 ‘연좌제’의 공개 대본 리딩날이 다가왔다. 유연서가 제작 투자 그리고 주연까지 맡아서 편성부터 촬영 일정까지 조율을 완료해 다른 드라마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JSTV 상반기 기대작 ‘연좌제’ 첫 대본 리딩
유연서, 풋풋한 순경으로 변신···‘연좌제’ 대본 리딩 현장
기자들은 아직 배우가 다 도착하지 않았는데도 사진을 찍어 기사로 올렸다.
그 사건이 있고 난 뒤 유연서의 첫 작품이다. 솔직히 빠른 감이 있지만, 그래도 그에 관한 관심은 시들지 않고 쭉 이어졌다.
‘스네이크’를 이어 경찰 역할을 또 한다는 소식에는 조금 식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그 유연서의 차기작인데.
“안녕하세요.”
길게 웨이브 진 머리, 검은색 패션의 유연서가 등장했을 때는 카메라의 셔터음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그가 자리에 앉아서 배우 선배에게 눈인사를 건네고 물을 마시는 것까지 행동 하나하나 빠짐없이 사진으로 담았다.
“대본 리딩 시작하겠습니다.”
감독과 작가 그리고 출연진의 짤막한 소개 끝에 드디어 대본 리딩이 시작됐다. ‘연좌제’의 또 다른 주연이자 날카로운 이미지로 그리고 카리스마가 타고난 중년 배우 류주하가 성량 좋게 첫 대사를 읊었다.
‘역시 류주하네.’
경력이 오래된 배우답게 짧은 대사 하나만으로 분위기를 휘어잡는 힘이 있었다. 기자들은 숨죽여 리딩 현장을 담았다.
‘대사가······ 없다?’
이질감을 느낀 건 리딩이 거의 중간 정도 흘러갔을 때였다. 생각해 보니, 유연서의 대사가 전혀 없었다. 기자는 제작사가 뿌린 캐릭터 소개를 빠르게 훑었다.
류주하 · 고승혜
경기 북부 우성시 우성경찰서 광역수사대 소속
1.5세대 범죄심리분석관.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면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사건을 파헤치면서 피해자의 비난을 받아도 신경 쓰지 않는다. 범인을 빨리 잡는 게 새로 생겨날 다른 피해자를 막는 거니까.
“너, 뭔데 자꾸 내 눈에 띄니?”
그런데 사건 현장에서 자꾸 거슬리게 하는 강윤성이 신경 쓰인다. 쟤는 대체 무얼 숨기고 있는 걸까.
강윤성 · 유연서
경기 북부 우성시 우성경찰서 수사지원팀 소속
살인 사건 현장에 자주 눈에 띄는 수수께끼의 순경.
잘생긴 얼굴로 차라리 연예인이나 하지 여길 왜 왔냐는 조롱을 받지만, 꿋꿋이 자기 할 일을 다 한다.
“형사님 같은 사람 좋아하지 않아요.”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류주하에게 불만을 품지만,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녀가 끝까지 범인을 찾을 거라는 확신이 생긴다.
이게 다야? 기자는 인상을 찌푸리고는 대본을 넘기는 유연서를 바라봤다.
‘대체 무슨 역할이길래 저 유연서를 데리고 초반부를 날릴 수 있지?’
대본을 보아하니, 사건 현장에서 출입을 통제하는 역할로 살짝. 그리고 밤늦게 수사하는 류주하의 뒤에서 책상을 정리하고 있는 것으로 살짝만 등장한다.
‘눈빛과 행동으로 연기를 하고 있구나.’
가만히 앉아 대본을 넘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표정이 평소와는 달랐다. 기자는 렌즈 너머 그를 관찰하면서 눈을 가늘게 좁혔다.
‘묘하네······.’
선과 악이 공존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기자는 그 모습을 기사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