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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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주
나중에 탈주한다고 해도 ‘가상 현실’에서 맡은 배역에 소홀히 하겠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박현정에게 배웠던 것을 아낌없이 써먹어야지.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거 같은데.’
그가 맡은 ‘가상 현실’의 주연, 신류원이라는 인물은 철두철미한 엘리트로 어떻게 보면 ‘백호함’의 김우진 중사와 비슷했다.
그래도 똑같이 연기할 수는 없어서 나름 며칠간 분석했던 대본을 펼쳤다. 대본이 그의 글씨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누가 표절 작가 아니랄까 봐 대본도 성의가 없었다.
‘사실 신류원보다 윤하늘이 맡은 배역이 더 끌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다 끝난 뒤 정다희의 ‘드리밍’에 들어가지는 않을 거다. 그는 곧 복학해야 해서 JSENM과 연결해주고 빠질 생각이다. 그래도 데뷔작인데, 표절 해결해주는 대신 배역 내놓으라고 깡패짓할 수는 없지 않은가.
“연서 씨,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가상 현실’의 스태프들은 대본을 들고 현장에 나와 있는 유연서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싸가지는 없어도 성실한 편이라 지각하는 일은 없었지만, 현장에 와도 자신의 밴에 콕 틀어박혀 녹화할 때만 나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기까지.
“사람이 됐네······?”
이렇게 중얼거리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제작진이 카메라의 위치와 앵글을 잡고 있을 때, 유연서는 열심히 촬영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극을 위한 몰입에 집중했다.
이태겸은 어차피 엎어버릴 드라마에 열심히 하는 유연서를 보고 괜히 힘을 뺀다고 생각했다.
“뭐 그렇게 열심히 하냐. 그냥 대충 하지.”
“그럴 수는 없지.”
나는 여기서 연기를 잘해야 하거든.
그는 대본 리딩 현장에서 사람들의 경악에 가득 찬 반응을 잊지 못했다. 그날 리딩 현장 기사로만 수십 개가 올라올 정도였다. 그가 국어책 읽기만 안 해도 이 정도 반응인데, 드라마가 방영되면 더 폭발적일 것이다.
‘가상 현실’이 잘 되어야 나중에 공론화가 되었을 때 더 많은 관심을 얻을 수 있다. 유연서는 전력을 기울일 생각이었다.
“야, 가자. 리허설 들어갈 건가 보다.”
이태겸의 말에 유연서는 대본을 접고 감독에게로 향했다.
***
-어?
-유연서 연기 대박늘었다
-와 미친ㅋㅋㅋㅋ
-가상현실 잼?
└아직 초반이라 모름ㅇㅇ
└근데 유연서 연기 엄청늘었다
‘가상 현실’ 시청률 7.3% 첫방 부터 통했다···수목극 전체 1위
‘가상 현실’ 유연서의 화려한 연기 변신···최고 시청률 9.4% 달성
‘가상 현실’의 반응은 생각보다 폭발적이었다. ‘허리 케인’에서의 짤막한 등장으로는 달라진 연기를 검증하기 힘들었는데, 유연서가 드디어 발연기를 안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다른 드라마를 보던 사람들도 채널을 돌려 확인할 정도였다.
(지금 올리죠.)
“네, 도련님.”
임승현은 통화를 끊고 맞은편에 앉은 정다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올리시죠.”
“네.”
정다희는 짧게 심호흡을 하고 올리기 버튼을 눌렀다.
그는 우리 픽쳐스의 김상준과 통화한 이후 임승현의 권유를 받아 작가 지망생 카페에 표절 의혹 글을 올렸다. 당연히 그 카페에서만 소소하게 불탔다.
예전부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뒤늦게 재조명된 설정으로 가면 더 좋았기 때문에 미리 밑밥을 깔아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올리는 글은 인터넷 교무실이라고 유명한 커뮤니티에 올린다.
“······근데 이게 먹힐까요?”
“당연히 안 먹히죠, 지금은.”
하지만 이게 나중에 크게 돌아올 거다. 임승현이 불안해하는 정다희를 안심시켰다.
-헐
-자료봐 ㅁㅊ 엄청갖다썼네
-가상현실 지금 연출도 일드 표절했다고 말나오지않음?
-황미정이 황미정했네
-야 이젠 지망생 글도 도둑질하냐ㅋㅋ
-진작에 절필해야 할 작가 3대장 황미정 박지혜 김옥선
예상대로 정다희의 호소 글은 소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기사로도 나왔지만, 제작사의 요청에 따라 있던 기사도 하나둘 내려가기 시작했다.
“컷! 네, 좋습니다.”
정다희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든 말든 ‘가상 현실’은 촬영을 멈추지 않았다.
“연서 씨, 연기 진짜 잘하는데?”
“뭐 먹고 이렇게 잘하게 됐어요?”
유연서의 연기 변신으로 ‘가상 현실’에 대한 화제성도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그래서 촬영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모니터를 끝낸 유연서는 자신의 이름이 박힌 의자에 앉았다.
“근데, 표절 의혹글 뜬 거 봤어요?”
그의 말에 근처에 있던 몇몇 스태프들이 작게 말했다.
“네, 봤죠. 황 작가님은 항상 그런 일에 연루되시더라.”
“그래 봤자 식겠죠 뭐.”
늘 그랬듯. 근처에 있던 우리 픽쳐스 소속 직원도 한마디 거들었다.
“드라마가 잘 될 조짐이 보이니 질투해서 올린 거로 생각합니다.”
“그래요?”
유연서가 눈을 가늘게 좁혔다. 정다희의 글을 신경 쓰는 척이라도 했으면 위약금을 3배에서 2배로 낮출 의향도 있었는데, 아쉽게 됐다.
“작가님은 글 쓰시느라 바쁘시죠?”
“그렇죠.”
“아쉽네······ 뵙고 싶었는데.”
듣기로는 자의식이 높은데다가 굉장히 예민한 성격이라고 하던데, 지금쯤 뭘 하고 있으려나? 유연서는 대본으로 자신의 웃는 얼굴을 가렸다.
황미정은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으며 핸드폰 화면을 꾹꾹 눌렀다.
“아! 진짜!”
이번이 여덟 번째 시도였다. 황미정은 계속되는 통화연결음에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았다.
(여보세요.)
“정다희 씨! 나 황미정이에요.”
(네, 무슨 일이시죠?)
정다희는 침착하게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그 평온한 말투는 황미정의 불편한 심기를 돋궜다.
“지금 이게 무슨 짓이죠?”
(뭐가요?)
“판에 뜬 글! 어떻게 된 거냐고!”
(아, 그거요? 저도 억울함은 풀어야 하지 않겠어요?)
여유를 찾은 정다희는 전처럼 초조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임승현의 도움으로 법무법인과도 계약한 상태였다.
얼굴이 새빨개진 황미정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사과했으면 됐지! 억울해서 미칠 것 같았다.
“내가 표절 사실인정하고 사과하면 끝내겠다면서!”
(제가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 용서한다고 했나요?)
“내가 사과했잖아! 그럼 된 거 아니야?!”
결국, 정다희는 헛웃음을 지었다.
(작가님, 착각하시는 게 있는데요. 작가님이 사과했다고 다 끝난 거 아니에요.)
“뭐?”
(용서는 피해자의 권리죠. 그 사과를 받는 것도 안 받는 것도 제 자유고요. 왜 본인이 잘못해놓고 사과했으니 됐지?로 무마하려 하세요.)
정다희가 이를 악물고 조목조목 따졌다.
자신의 작품이 도둑맞았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제작사에서 연락 올 때까지 기다렸을 때 심정은 지금의 황미정보다 더 심했다.
상대는 유명 작가에 유명 제작사를 등에 업었고, 자신은 일개 지망생이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뭘 하려 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 무력함과 절망감에 빠져 어디 소리칠 데도 없었다.
(저는 끝까지 갑니다. 그런 줄 아세요.)
“그래! 어디 해 봐! 이런다고 세상 사람들이 알아줄 것 같니?”
(네 그럴게요.)
“그래 봤자 너는 일개 지망생이야, 알아? 내가 너 영영 이 바닥 못 밟게 할 테니까 그런 줄 알아!”
(네네 제발 그러시고요. 화이팅.)
뚝 꺼진 통화에 황미정이 크게 비명을 질렀다.
***
4회 초반부 촬영을 앞두고 있을 때, 유연서는 더 화기애애해진 촬영장을 지켜봤다.
“지금 인터넷 난리 나지 않았냐?”
“인터넷에서만 난리잖아.”
유연서가 허공에 오른손을 뻗자 이태겸이 익숙하게 손에 커피를 쥐여주었다.
유연서는 이슈메이커인 만큼 ‘까’들도 많다. 유연서의 드라마가 잘 되는 것이 불편한 그들은 정다희의 글을 열심히 퍼 나르며 잊을 때마다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래서 가상현실 표절이야? 아니야?
-가상현실 표절논란 어떻게 됐냐? 아직도 고굽척중임?
-솔직히 표절논란 나도 여기서만 불타지 조용히 넘어가잖아
-뒤에서 합의보고 있을듯ㅋㅋ
-유연서는 아무것도 안함?
신인의 희망이니 뭐니 언플 오지게 때리더니 논란 나니까 잠잠하네ㅋㅋ
└표절작가가 잘못한거지 그걸 왜 배우가 나서?
└└2222
└근데 유연서정도면 해결보고도 남았을듯
└아니 배우가 그걸 왜 나서냐고 표절드인거 알고 들어간 것도 아니고
‘알고 들어간 거 맞는데.’
판을 키워야 사람들이 일의 심각성을 알 거 아니냐. 유연서는 핸드폰을 집어넣고 대본에 집중했다.
‘가상 현실’의 시청률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유연서의 존재 하나만으로 보던 사람들이 점점 빠져들고 있었는데, 황미정이 베낀 원작의 소재가 독특하고 재밌어서 그랬다.
“근데 요즘 대본이 늦네요?”
이러다가 쪽대본 되겠어. 유연서의 가시 돋친 말에 우리 픽쳐스 관계자가 찔려서 멋쩍게 웃었다.
정다희와의 통화가 꽤 충격적이었는지, 황미정의 대본 집필 속도는 현저히 느려졌다. 인터넷에 논란 뜨는 거야 안 보면 되는 거지만, 일개 지망생한테 농락당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꽤 상했나 보다.
옆을 지나가던 윤하늘이 대놓고 비웃었다.
“대본이 좀 늦어질 수도 있지······ 창작하시는 분들의 고충을 잘 모르시나 보네요.”
“그래요?”
“연기력이 받쳐주면 쪽대본이어도 연기는 어렵지 않잖아요?”
그 말인즉슨, 나는 아직 연기력이 달린다? 유연서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정치질 끝에 자신의 분량을 확보한 윤하늘은 아직 불만스러운 게 많았다. 예상치 못한 유연서의 연기 변신으로 자신에게 이목이 쏠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얘는 왜 이렇게 긁어대냐. 이것도 본체의 업보인가.’
유연서는 대본을 내려놓고 윤하늘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근처에 있던 스태프들이 눈치를 봤다.
“윤하늘 씨는 아직도 제가 별로인가 보네요?”
궁금하다. 본체가 뭐라고 했길래 윤하늘이 이렇게 적개심을 드러내는지.
정말 궁금해서 한 말이었는데, 주변 사람들은 다르게 받아들였는지 슬금슬금 유연서와 윤하늘의 근처로 모였다.
‘베타, 자동 행동 모드.’
“별로라니요,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먼저 거리를 둔 건 연서 씨잖아요.”
유연서가 말려들자 윤하늘이 씨익 웃었다. 하지만 그 웃는 표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래요? 난 설마 전에 했던 말을 담아두시나 했지. 천박한 걸 천박하다고 말하지 뭐라 말하겠어요?”
아 더는 안 해도 되겠네. 유연서가 유연서 했구나. 그는 황급히 자동 행동 모드를 해제했다.
빨갛게 익어가는 윤하늘의 얼굴을 유연서가 팔자 눈썹을 만들며 쳐다봤다. 정말 미안합니다······. 본체가 철이 없어서.
하지만 윤하늘은 그 표정도 농락하는 것 같아서 더 화가 났다.
“자자, 왜들 그러실까. 우리 이제 리허설 합시다!”
“연서 씨. 한동안 안 그래놓고 오늘 왜 그러세요.”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스태프들이 황급히 나서서 중재했다.
‘아니, 나는 진짜 사과하려고 했는데.’
유연서는 화난 얼굴로 뒤돌아서는 윤하늘을 보고 쩝, 입맛을 다셨다.
“컷! 좋습니다!”
감독의 컷 사인이 들리자마자 윤하늘이 인상을 찌푸리며 유연서에게 멀리 떨어졌다. 사과할 타이밍을 놓친 유연서는 아쉬운 얼굴로 돌아섰다.
“아이고······ 너 요즘 얌전하다가 왜 그러냐.”
“나도 반성하고 있어.”
“전혀 안 그런 표정인데.”
유연서에게 롱 패딩을 걸쳐 준 이태겸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연서는 핸드폰을 들었다.
“아직 오늘 촬영 많이 남았지?”
“어.”
-솔직히 표절 이거 판단하는 거 너무 개인적인 판단 아님?
└너 표절드 빠니?
└가상현실은 빼박 표절 맞는데
-아니 오나주나 지청춘도 그렇고 조금만 비슷하면 다 표절이라고 모는 것도 맞잖아?
└투명하네ㅋㅋ
└이런 애들이 표절드 보는구나
-그냥 이렇게 고굽척하다가 지나갈듯
-지망생만 불쌍하게 됐다
이제 쐐기를 박아야겠다.
“······각이야?”
유연서의 표정을 본 이태겸이 슬금슬금 물러났다.
“가자.”
고개를 끄덕인 유연서는 마치 가벼운 산책하러 나가듯 촬영장을 유유히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