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244)
제244화
#244. 요즘 남미 쪽 물이 좋다더라고.
“그래서 강무혁과 동행했다?”
파월이 되묻자 토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강무혁 일행과 따로 떨어져 있었다. 이타카 길드 내에서 길마를 만날 자격도 없었지만, 상황을 파악해보려는 파월이 따로 부른 탓이었다.
“예. 지금까지 말한 대로 벌떼에 죽을 뻔한 절 장득구 헌터가 구해줬습니다. 생명의 은인이 저희 길드를 좀 소개해달라고 하니 거절할 수가 있어야죠.”
“C랭크 헌터가 무슨 발언권이 있다고? 영향력 하나 없는 말단인데.”
“당연히 없죠. 그런데 발언권을 얻는 건 제 역할이 아니라서요. 저야 길잡이 노릇만 하는 겁니다. 강무혁 단장 일행을 데려와 줄 순 있지만, 길마님 만나게 하는 건 길마님의 결정이니까. 설마 길마께서 만난다고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토마스의 말은 앞뒤 틀린 데가 하나 없었다. 실제로도 그는 강무혁의 요청을 위에 전달한 것에 불과했다. 이 만남을 결정한 건 길마인 돌로레스였다.
‘분명 의심스러운 정황은 없는데. 그게 더 마음에 걸린단 말이지. 이놈 속을 읽을 수 없는 거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니 그렇다 치더라도 강무혁이 길마를 만나겠다고 요청한 것은 자꾸 술수에 넘어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 마치 길마의 성향을 알고 이때를 노린 것처럼.’
돌로레스에 대한 신상 정보가 넘어갔다면, 역시 토마스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다.
하지만 파월 자신이 언급했다시피 토마스는 이타카 길드에서도 말단 중의 말단이었다.
강력한 마법을 익히고 있긴 했으나 랭크가 전부인 세계에서 C랭크는 간신히 낙제만 면한 수준이라 길드의 요직과는 무관했다. 자연스레 길마와의 직접적인 접점이 없었다.
사람도 자주 얼굴을 맞대야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 텐데, 교류가 없으니 길마에 대해 넘길 정보는 소문 같은 단편적인 정보밖엔 없을 터였다.
‘입단 초기를 제외하곤 길마와 직접 만난 적이 없는 녀석이 길마의 성향이 신상 정보를 꿰차고 있을 리가 없어. 그냥 우연일까? 아니면 강무혁 그자의 수완이 좋은 걸까?’
파월은 저도 모르게 토마스를 용의 선상에서 제외했다. 이는 그의 무능력이나 실수라기보단 토마스를 얕잡아 보는 마음 때문이었다.
깊은 생각에 잠긴 부길마를 보면서 토마스는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길드 내에서 C랭크는 헌터 취급도 하지 않아. 최소 B는 되어야 대우해주기 시작하지. 그나마 유망주라면 부길마도 관심을 가지겠지만, 나같이 만년 C랭크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이야. 내가 연관되었다기보단 강무혁 단장에게 초점을 맞출 거야.’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혼란이 시작될 터였다. 강무혁은 토마스에게서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돌로레스의 성향을 판단해 대처할 터였다. 반면에 상대는 이쪽에 대해 전혀 몰랐다.
토마스가 보기에 이 차이는 상당히 컸다.
‘설마 내가 당신들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겠지? 나 역시 병이 아니었다면, 나 같은 놈이 있을 줄 몰랐을 테니까. 강무혁 단장 같은 사람이 이런 걸 알고 있으면, 어떻게 될지 가늠이 안되는군.’
마나중독증이란 병이 그랬다.
사람의 감정, 행동, 말투 등에서 상황을 저절로 파악해낼 수 있었다. 숨기려 해도 알아버렸다.
같은 병증이라도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마나중독증 환자들은 병의 반대급부로 오감을 넘어선 육감의 소유자들이었다.
너무 심한 경우엔 정보와 감각을 조절하지 못해 정신병에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쓸 수 있어도 함부로 쓰지 못하는 양날의 검인 능력이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넌 일단, 본사 내에서 대기하고 있도록. 물어볼 일이 있으면 부를 테니까.”
* * *
강무혁은 눈앞에 있는 여자에 대해 정의했던 토마스의 한마디를 떠올렸다.
‘낫띵버거(nothingburger).’
이타카 길드의 마스터 돌로레스 스캇을 가리키는 별명이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버거 빵 안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모습에 비유하는 표현인데, 한국말로는 ‘속 빈 강정’ 정도로 해석이 가능했다.
‘물론 그 뜻 그대로 쓰이지는 않는다지?’
돌로레스를 평할 때 낫띵버거는 말 그대로 속에 아무것도 없는 사람을 뜻했다.
피도 눈물도 감정도 없는 사람.
인간이 가져야 할 것들을 버린 그녀는 LA에서 가장 비정한 헌터라 불렸다.
지금의 이타카 길드 역시 원래 자신의 것이 아닌 길드를 그녀의 별명대로 아수라장을 거쳐 차지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어지간한 중견 길드 하나 새로 세울 정도의 헌터가 죽어 나갔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물론 그 악명이 먹히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강무혁은 딴청을 피우며 천장을 올려다보는 고을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뭘?”
“지금 주머니 속 손장난. 그게 뭐냐고?”
“아, 이거? 녹음을 좀…….”
다음 순간 돌로레스가 강무혁을 째려봤다.
“유치하군. 내 신경 바깥에 있는 부하를 시켜서 우리 대화를 녹음이라도 하려고 했던 건가? 무슨 얘길 듣고 싶길래 이런 짓을 벌이는 거지?”
강무혁은 고을지와 눈을 맞췄다. 그녀는 그의 시선을 회피했다.
나지막이 한숨을 내쉰 강무혁이 입을 열었다.
“이타카의 스카(scar, 흉터) 스캇. 낫띵버거. 별명이 죄다 좋지 않은 쪽이더군. 당신을 어떻게 믿고 대화하나? 당연히 증거를 남겨야지.”
“나한테 수작 부리고 지금 목숨 붙어 있는 놈이 없어. 그걸 알고 이러는 건가?”
“에이, 무슨. 멀쩡히 살아있더만.”
“누가?!”
“O,C.의 제임스 울벗.”
“그 썅놈의 새끼를 내 앞에서 말하다니. 용기가 가상하네.”
“그쪽도 당신보고 욕하긴 하더라. 썅년이라고.”
“너 진짜 죽고 싶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돌로레스의 주먹이 강무혁의 면상에 꽂혔다. 아니, 꽂히기 직전에 막혔다.
장득구의 손바닥이 그녀의 주먹을 가로막고 있었다.
파르르 떨리는 손을 맞대고 있는 두 사람이 서로를 노려봤다.
일촉즉발.
다음 호흡을 내뱉는 순간이 전투의 시작을 알릴 때였다.
“이번 사태가 끝나면, 울벗이 이타카를 칠 거야. 얘길 마저 듣고 싶으면, 자리에 앉아.”
조금 전 머리통이 날아갈 뻔했지만, 강무혁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말했다.
평소라면 자신의 공격이 막힌 데 대한 자존심 때문이라도 절대 물러서지 않았을 돌로레스였지만, 강무혁이 입에 담은 사안이 너무나 중요한 정보라 마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었다.
그녀는 숨을 씨근덕거리면서도 뻗은 주먹을 접었다.
“재밌는 소릴 하네. 계속해봐.”
상대가 한발 물러서자 장득구도 기세를 죽였다.
상황이 정리되자 강무혁이 말했다.
“LA의 두 대형 길드가 방어전에 돌입했다는 건 알고 있나?”
“그게 O.C 떨거지와 무슨 상관이야?”
“알고 있는 것 같군.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겠어. 그렇다면 헌터수사국 지부에 알렉산더 해밀턴이 와 있는 건? 그것도 알고 있나?”
“해밀턴? 백악관의 그 해밀턴?”
“그래.”
돌로레스는 놀라움을 숨기려 애썼다.
북미 헌터 정책의 최고 책임자가 뜬금없이 LA에 와 있다니.
해밀턴은 숨만 쉬어도 뭔가 속셈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야 할 스파이 출신으로 헌터계에도 좋지 않은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 그가 아무 이유 없이 LA에 왔을 리 없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거짓말하는 건 아니야. 알아보려면 알아보고. 그때까지 기다려주지.”
“그렇다 치고. 그자가 왜 여기 왔지?”
“말했잖아. 헌터수사국에 있다고.”
“그게 왜?”
“그걸 몰라서 지금 나한테 되묻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떠보려는 거야? 수사국 애들이 뭘 하는 애들이겠어? 나쁜 헌터들 잡는 게 직업인 애들인데.”
“그 말은, 지금 해밀턴이 우릴 노린다는 건가?”
“나쁜 헌터인 건 인정한다는 거네?”
“말장난하지 말고.”
“해밀턴이 아무 패도 없이 움직였을까? O.C.가 부추겼으니까 LA에 왔겠지.”
돌로레스는 가슴이 꽉 틀어막혔다.
헌터계에 한해서 해밀턴의 행동은 곧 백악관의 결정이었다.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확인해보고 싶어도 육식말벌에 의해 모든 통신망이 끊긴 상황에서 빠르게 정보를 얻을 방법이 없었다.
아는 게 없으니 이 눈앞의 남자에게 휘둘릴 수밖에.
“자, 백악관이 움직였어. O.C.도. 건파우더와 콜 마이 네임이라고 빠질까? 눈엣가시 같은 애들 치워버릴 찬스인데?”
“걔들이 바보인 줄 알아? 아무런 이유 없이 우릴 친다고? 그놈들도 아주 많은 피를 볼 작정이 아니라면, 함부로 들이치지 못할걸?”
“진짜 아무런 이유가 없을까? 요즘 그쪽 사업이 많이 바쁘다던데. 아니야?”
여기서 다시 한번 돌로레스는 말문이 막혔다.
‘이놈이 어디까지 알고 온 거지? 버터 사업을 눈치챈 건가? 혹시 O.C. 놈들이 냄새를 맡았나?’
강무혁은 더는 말하지 않고 그녀를 노골적으로 쳐다봤다. 그는 울벗이 알려준 몇 가지 정보를 떠올렸다.
‘이타카 놈들 구린 구석이야 차고 넘치지. 꼬리를 밟히지 않아서 그렇지. 최근에 우리 부관이 가져온 케이스 중에 버터라는 헌터용 마약 사건이 있는데. 그것도 이놈들 짓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어.’
증거 없이 심증만 있다는 것이었다.
강무혁에겐 이 사건이 이타카의 짓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죄 많은 놈은 제 발이 저리기 마련이거든. 자기 상황이 우세할 땐 멀쩡하다가도 불리하게 되면 비 오는 날 노인처럼 여기저기 안 쑤시는 데가 없게 되지.’
돌로레스는 강무혁의 말이 거짓인지 참인지 판단하지 못했다. 다만 자칫 말실수라도 할까 싶어 입을 꾹 다무는 게 당장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강무혁은 그녀에게 깊이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백악관이 나섰어. 해밀턴은 동부 길드하고도 친하지. 함부로 건드리기 힘든 거물이라는 뜻이야. 그런 그가 O.C와 연결돼서 LA 헌터범죄국에 왔고, 건파우더와 콜 마이 네임도 섭외했어. 남은 건 이타카를 치는 일뿐이지.”
“흥! 이제야 네놈이 헛소리를 지껄인다는 걸 알겠군. 이봐, 건파우더와 콜 마이 네임 놈들은 내가 잘 알아. 그놈들이 날 친다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육식말벌 방어전을 치른다고? 그렇게 희생적인 놈들이 아니야. 날 치려는 것도 정의감이 아니라 이타카가 사라지면 먹을 파이 때문이지.”
“어. 그쪽 말이 맞아. 방어전 치를 놈들이 아니지. 그런데 치르고 있잖아? 왜 그렇게 됐을까? 확실한 이득이 있어서? 그럼, 그 이득을 누가 줬으려나?”
“…….”
“이 모든 일이 다 육식말벌님 덕분이지. 그 덕에 나만 노났거든.”
“뭔 헛소리야?”
“내 소문은 들었지? 라이더 울프 장사하러 왔다고.”
“그게 뭐?!”
“동부에서 드래곤 홀스 건으로 우릴 방해했거든. 그런데 마침 말벌 떼가 도시를 공격했네? 중간 선거가 얼마 안 남았어. 해밀턴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현 정권의 몬스터 방어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할 테니까. 이는 곧 집권당의 표심으로 직결되겠지. 그래서 해밀턴은 이 사건을 해결하려고 날 끌어들였어. 동부의 방해를 막아주기로 했지. 대신 난 건파우더와 콜 마이 네임과 접촉해 라이더 울프를 넘기는 조건으로 방어전에 나서도록 주선했고. 그런데 두 길드만으로는 부족해. LA 동쪽을 해결해야 하니까. 이제 남은 건 그쪽 이타카뿐이라는 거지. 그게 내가 당신을 만나려는 이유야.”
“나보고 방어전을 치르라?”
강무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돌로레스는 이를 악물었다가 풀며 말했다.
“대가는?”
“O.C.의 공격을 무마시켜주지. 해밀턴이 보증할 거야. 대신 사업은 접어. 별로 좋지도 않은 사업이잖아? 그러면 모두 없던 일로 하고 웃으면서 헤어질 수 있을 거야. 해피 엔딩이지.”
돌로레스는 강무혁의 제안에 깜빡 속아 넘어갔다.
‘역시 버터가 우리 사업이란 걸 알고 있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확신하듯 말할 순 없으리라.
그렇다고 해서 저 조건을 마냥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이봐, 너무 과한 요구야. 누구 사업을 접으라 마라야?”
“그럼, 정부와 싸우든가. 오랜만에 TV 좀 볼 만하겠네. 뉴스에 마피아 길드로 낙인 찍히는 꼬락서니가. LA가 망가지면, 너흰 욕받이가 될 거야. 당신은 모든 책임을 떠안고 수배되겠지. 요즘 남미 쪽 물이 좋다더라고. 온갖 범죄자들이 다 모인다던데. 그쪽 비행기 알아봐 줄까? 특별히 일등석으로 끊어주지.”
“Fuck!”
돌로레스가 내리친 주먹에 테이블이 쪼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