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374)
제374화
#374. 최후엔 곱게 죽지 마라.
구자천의 몰골은 겉으로만 보면 모진 고문을 받다 더는 견디지 못해 입을 연 것처럼 보였다.
신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으나 구자천에게 쓰인 고문은 헌터들 입장에서도 견디기 힘든 방식이었다.
몸이 완전히 망가져 헌터 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아니 조금만 더 견뎠다간 일상생활마저 어려워질지도 모를 강도였으니 쉽게 입을 열었다는 강무혁의 의심은 어폐가 있었다.
성선제가 이어 말했다.
“거점 세 군데를 불었습니다.”
“어딥니까?”
“강원도 고성, 전라북도 군산 그리고 평양.”
“셋 다 아닙니다.”
위치를 들은 강무혁은 단호하게 말했다.
성선제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셋 다 서울에서 꽤 멀죠?”
“미라주가 다른 나라에서 저질렀던 테러 대부분은 수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수도만큼 테러의 퍼포먼스를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곳이 없으니까요. 특히 한국은 모든 기능이 수도권에 밀집되어 있죠. 여기서 먼 곳을 거점으로 삼는 건 완전히 패퇴해 도망쳤을 때일 겁니다.”
“미라주의 지부를 박살 냈으니 몸을 사리지 않을까요?”
“일루전이 건재합니다. 헌터는 언제든 채워 넣을 수 있지만, S랭크는 그렇지 않죠.”
“확실히 S랭크가 무사하다면, 세력 재건은 순식간일 테니…. 그래도 혹시 모르니 확인하는 중입니다. 뭔가 다른 증거를 잡을 수도 있으니까요.”
“저라도 성 팀장님처럼 판단하고 움직였을 겁니다.”
강무혁은 유리창 건너편에서 동태눈을 하고 있는 구자천을 노려봤다.
‘토마스 헌터의 보고대로라면, 미라주 소속 빌런들은 광신도처럼 군다고 했어. 일루전이 신의 사도라는 식으로 말이야. 이게 단순히 사이비 종교 같은 것일까, 아니면 일루전에게 뭔가 다른 게 있는 것일까?’
강무혁은 자신이 만났던 미지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했다. 미라주의 잔당들이 했던 말을 보고받는 순간 그는 토마스와 마찬가지로 그 존재들을 떠올렸다.
북포천과 LA.
단 두 번의 조우였으나 그들의 존재감은 뇌리에 깊이 각인돼 잊히지 않을 정도였다.
강무혁이 감정 기복이 거의 없는 강한 멘탈의 소유자였기에 망정이지, 심지가 약한 이였으면 이계의 존재를 만난 순간 공포에 잡아먹혔으리라.
실제로도 그 존재들을 만난 헌터들은 까무룩 정신을 잃었었다.
강림의 당사자인 토마스와 강한 멘탈을 패시브로 지닌 주세아만이 견뎌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미지의 존재라기보단 이계의 존재라 불리는 게 더 어울리겠군.’
강무혁은 존재들의 정의를 다시 세운 뒤 말했다.
“전 세계의 길드와 관계 기관들에게 추적당하면서도 미라주가 지난 십수 년 동안 무너지지 않았던 것은 단순히 점조직이라서가 아닙니다. 그 구성원들의 충성심이 한몫했기 때문이죠.”
“박재준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듯한데요?”
“엄밀히 따지자면, 박재준은 미라주라기보다 황룡 길드에 가깝습니다. 조악한 비유입니다만, 구자천이 미라주의 순혈이라면 박재준은 혼혈 같은 거죠. 일루전에게 직접 명령을 받는 위치가 아닙니다.”
“듣고 보니 그렇네요. 일루전에게 감화됐으면 사기 치던 예전 못된 습관을 함부로 드러내진 않았을 테니까요.”
현재 성선제는 강무혁과 미라주에 대한 대부분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 평소엔 서로 마지막 한 끗을 숨기기 마련이었으나 이번 경우는 달랐다.
협력하지 않고선 일루전의 꼬리를 잡을 수 없다는 데 강무혁과 공감했다.
실제로 둘이 협력하자 싸우지 않고도 일루전이 운신할 폭이 좁아지고 있었다.
강무혁은 자신이 내린 결론을 말했다.
“구자천은 정보를 풀더라도 일루전이 대처할 시간을 번 뒤에 풀 겁니다.”
“뻔한 함정이 되겠군요.”
“함정의 깊이가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죠.”
“뻔한 만큼 뻔하지 않게 보일 수작이 필요하겠군요.”
“미라주가 조만간 움직일 겁니다. 단지 어떤 식으로 수작을 부릴지 가늠이 안 될 뿐이죠.”
“그럼, 각 지역 티어 길드들과 공동 전선을 구축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성선제의 제안은 강무혁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이었다. 미라주에 대한 정보를 일부 풀겠다고 의미였다.
“피해를 최대한 줄이려면 그 방법뿐이겠군요.”
“어디까지 정보를 풀까요?”
“성 팀장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티어 길드와 가장 많이 부대낀 분 아니십니까?”
강무혁은 정보를 공개할 분량을 정하는 역할을 성선제에게 떠넘겼다. 그가 티어 길드에 대해 아는 건 평소 수집한 데이터와 지난 동북 방어전에서 통합 공격대를 운영할 때 만났던 헌터들을 통한 게 전부였다.
반면에 성선제는 게이트에서, 데스크에서, 그 밖에도 갖가지 장외전에서 티어 길드들과 반목 혹은 협력을 지속해왔다.
티어 길드들의 습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성선제는 턱을 문지르며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길드가 적극적으로 대처하면서도 몸을 사릴 수 있는 부분까지? 과정은 제외하고 결과만. 이 정도가 좋겠습니다.”
“일루전의 존재도 얘기해야겠군요. 중국 루트는 제외하고. 일루전은 저희 길드장님이 막을 수 있겠지만, 황룡 길드 건은 마경에 진출하는 시점이니 숨기는 게 나을 겁니다. 괜한 충돌은 방지해야죠.”
“미라주에 대한 정보 출처와 추적 과정을 묻는 이들이 있을 겁니다.”
성선제가 추가 디테일을 채울 부분에 대해 물었다. 강무혁은 미리 생각해 둔 듯 명쾌하게 답했다.
“미라주와 엮였던 시점은 저희 길드의 백형규 헌터가 살해된 때를 계기로 삼죠. 주세아 길드장님이 직접 나섰다는 걸 강조하고요. 제법 스토리가 나올 겁니다.”
“원활하게 얘길 돌리려면 길드협력처와 헌터수사청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그쪽은 제가 맡겠습니다. 헌터수사청은 장득구 헌터가 선을 대도록 하겠습니다.”
“거기까지 처리해주신다면, 미리 짜둔 시나리오가 몇 개 있으니 이쪽에서 잘 버무려보도록 하죠.”
이후 몇 가지 세부 사항을 더 조율하고 두 사람은 각자 맡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 바로 움직였다.
강무혁은 신문실을 나서며 다시 한번 구자천을 돌아봤다. 마음 같아선 현정건을 투입해 괴롭히고 싶었다.
현정건은 암살자 출신인 만큼 현장에서 정보를 얻어야 할 때가 많았다. 현장에서의 정보는 단순 수집보다 강제로 토해내게 만들어야 할 경우가 많았다. 암살자에게 고문은 필수 기술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정건을 투입했다간 구자천은 망가질 게 뻔했다. 현정건은 적당히라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구자천은 아직 이용할 가치가 있었다. 죽이더라도 최대한 천천히 죽여야 했다.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외침이 배부르다 못해 배 터지는 소리로 취급되는 업계가 바로 헌터계였기에 강무혁은 양심에 거리낌이 없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따위가 아니었다. 이는 생존과 연관돼 있었다. 신이 아닌 이상 시간을 벌 수 없으니 쓸데없이 낭비해선 안 됐다. 단 1분, 1초가 천추의 한이 될 수도 있기에.
시간에 쫓겨 소중한 누군가를 잃고, 돌아갈 자리가 파괴되는 건 지긋지긋했다.
‘속죄하지 마라. 죽음으로 갚지 마라. 살아있는 동안 네가 뱉을 수 있는 모든 걸 토해내라. 최후엔 곱게 죽지 마라.’
그게 게이트로 장난치는 테러리스트에게 어울리는 취급이었다.
강무혁은 복도로 나오자마자 눈을 질끈 감았다.
가슴에 쌓인 분노와 살의를 가라앉혔다.
게이트를 멸절하는 게 인생 목표로 삼은 자신이기에 게이트로 테러를 일으키는 자들에 대해 이가 갈렸다.
무심했던 심장이 뜨겁게 타오르는 건 인간의 적을 상대할 때뿐이었다.
“단장님이 피를 묻히려고 하면 제가 할 일이 없습니다. 진정하시죠.”
강무혁의 살의를 느낀 현정건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강무혁은 서서히 눈을 떴다.
조금 전까지 일렁이다 못해 넘쳐흐르던 부정적인 감정은 어느덧 자취를 감추고, 항상 그러하듯 냉정한 눈동자가 현정건을 바라봤다.
“조정했습니다. 갑시다.”
로봇과 같은 딱딱한 대답에 현정건이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단장님은 갈수록 재밌는 사람이 되어가는군요. 이번엔 어떤 솜씨를 보여줄지 기대 하겠습니다.”
* * *
시간이 흘러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왔다.
성선제는 구자천의 입에서 나온 정보들을 토대로 확인 작업에 들어가 있었다.
처음 밝혔던 세 군데의 거점이 다섯 군데로, 그리고 다시 아홉 군데로 늘었다.
거짓 정보를 뱉었다며 다그칠 수도 없는 게 그 모든 장소에서 전부 미라주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아홉 군데 모두 일루전은 없었다. 고작해야 심부름꾼 몇 명이 전부였다.
한국 내 미라주의 주력은 모조리 날아갔으나 일루전의 존재가 미라주 자체였기에 큰 의미가 없다고 봐야 했다.
성선제는 구자천을 더욱 몰아치는 동시에 지금까지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일루전을 추적하는데 골몰하고 있었다.
한편 강무혁은 상당히 난감한 상황에 빠져있었다.
“다 알고 왔습니다. C004.”
“C004는 뭡니까?”
“커맨더 암호명입니다. 아직 콜사인을 정하지 않으셔서 임의로 붙인 번호입니다.”
강무혁은 눈앞에 있는 세계헌터연맹의 파견 헌터를 요목조목 뜯어봤다.
‘이름이 레이븐이라 했지? 아일라 씨가 한국에 왔을 때 함께 있었던. 역시 지난번에 헤드라인 건으로 신세진 게 이렇게 되돌아오는군.’
알렉스 윌킨슨이 아일라의 오른팔이라면, 레이븐은 왼팔쯤 되는 인물이었다.
그녀의 대내외적인 활동을 알렉스가 대부분 처리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레이븐은 무력이나 비밀 임무에 동원되는 게 아닌가 짐작했다.
“일단 암호명이니 콜사인이니 하는 건 둘째치고, 뭘 알고 왔다는 건지부터 정리합시다.”
“미라주가 한국에 들어왔다는 것 말입니다.”
“아, 그거 말입니까?”
강무혁의 대꾸에 레이븐은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뭐? ‘그거 말입니까?’라고? 반응이 왜 이래?’
미라주는 연맹에서도 주시하는 세력이었다. 세계 평화를 해치는 그들의 활동은 연맹 차원에서도 몇 번인가 제어하려 시도한 적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로 끝났지만, 여전히 그 뒤를 쫓는데 상당한 자원을 쏟아붓고 있었다.
그런데 강무혁은 연맹에서도 신경 쓰는 테러리스트 집단을 상대하면서 크게 우려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커맨더라는 자리가 강무혁을 저렇게 만든 건지, 원래 저런 사람이라서 커맨더가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강무혁이 헌터가 아닌 일반인이라는 것.
일반인이 커맨더가 됐으니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깝다고 봐야 했다.
아일라를 부려먹는 강무혁에게 레이븐은 그리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나 인정할 건 인정했다.
‘이런 인간을 상대로 머리 굴려봤자 제자리야. 그냥 대놓고 직접 묻는 게 낫다.’
강무혁 이전에 머리가 비상한 세 번째 커맨더를 겪어본 적이 있기에 내린 결론이었다.
레이븐이 물었다.
“혹시 일루전이 한국에 들어와 있습니까?”
“왜요? 도와주시게요?”
“그게 확실하다면.”
강무혁은 레이븐의 속내를 읽어냈다.
‘한국은 좁은 땅이다. 그리고 반도 국가지. 위로는 마경이 있어서 땅을 통해 타국과의 교류가 거의 없다시피 해. 그만큼 일루전이 활개 치면 큰 타격을 받을 테지만, 반대로 일루전 역시 교통로를 막으면 도망칠 곳 없는 나라라는 뜻이야. 연맹은 여기가 일루전을 잡기 최적의 장소라고 여기는 것인가?’
곤란했다. 연맹이 한국에서 일루전을 잡겠다고 나섰다간 자칫 큰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강무혁은 레이븐을 어떻게 요리해야 할지 궁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