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515)
제515화
#515. 동참하게 되어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노송린은 순간 구장겸에게서 강무혁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분위기나 행동거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강무혁은 되지도 않는 조크에 집착하는 걸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얼음 같은 사람이었다. 성격이 차갑다는 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때론 그 태도가 과해서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처럼 비추기도 했으나 최소한 노송린이 아는 선에선 길드 수뇌부가 풍기는 고유의 비정함을 느낄 수 없었다.
반면에 구장겸은 얼굴에 미소를 장착해 사교적인 표정을 지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태도도 부드러웠고 말투도 친근했다.
헌터의 몸을 가지고 있었으나 서글서글한 눈매와 빗지 않은 더벅머리는 학자의 모습에 가까워 경계심을 누그러트렸다.
노송린이 강무혁을 따라다니며 옮은 의심병이 아니었다면, 아마 크게 상관하지 않았을 만큼 상태의 자세는 무방비했다.
‘전혀 다른 사람임에도 착각하게 만드는 건 저 눈 때문인가?’
구장겸의 눈동자는 열의로 가득했다. 본인이 제 입으로 사람 살리는 일을 한다고 소개할 정도로 무해한 눈빛이었다.
방법은 다르지만, 강무혁과 같은 목적을 가진 헌터.
몬스터를 잡지 않아도 충분히 세상을 위해 싸울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어쩐지 강무혁을 보는 듯했다.
‘아니지. 단정 짓지 말자. 조금이라도 수상하면 계속 수상해 하는 게 나아.’
노송린이 여전히 의심하는 눈초리를 풀지 않았지만, 구장겸은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 박철이를 쳐다봤다.
“불편했겠구나. 그 왼팔, 잘린 부위를 좀 봐도 되겠니?”
“아? 예, 예!”
박철이는 자신의 대부가 의사를 경계하는 듯하자 긴장하다가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러다가 뒤늦게 노송린의 눈치를 살폈다.
“네 팔 보여주는데 왜 날 봐? 의사 선생한테 보여야 치료할 것 아니냐.”
박철이는 아이 특유의 눈치로 분위기를 파악하곤 웃옷을 벗었다. 셔츠를 입고 있었기에 소매만 걷어 확인하기엔 불편했다.
구장겸은 이젠 완전히 아물어 매끈해진 절단 부위를 살피며 책상 위 종이에 무언가를 메모했다.
“이제 됐다. 옷 입어도 된단다.”
박철이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있는 동안 노송린이 기대에 차서 은근히 물었다.
“어때요, 의사 양반? 팔 붙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정확히 표현하자면, 붙이는 게 아니라 기르는 겁니다. 뭐, 붙이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그건 권장하지 않습니다.”
“둘이 무슨 차인데?”
구장겸은 바로 대답하려다가 멈칫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말을 고르는 기색이었다.
이내 설명 방법을 선택했는지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노송린 헌터도 헌터시니까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보통 팔이나 다리가 잘리면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긴 출혈이 심하지 않으면 일단 조직을 살려두기 위해 기본 처치만 하고 그대로 잘린 팔 주워서 병원 가지. 헌터의 신경 조직은 마나가 흐르기 때문에 24시간 이내로만 붙이면 회복하니까. 문제는 재활 때문에 감각 찾으려면 한참 고생한다는 거고.”
“맞습니다. 출혈이 심하면 지혈 포션 등을 사용하지만, 기본적으로 후속 치료에 방해되는 포션은 사용을 자제합니다. 24시간도 교범에 나와 있는 골든타임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48시간까지도 가능하죠. 만약 신경이 죽었다고 해도 특수 치료를 받으면 되살릴 수 있습니다. 그만큼 현장 복귀는 늦어지겠지만요.”
노송린은 다 아는 소릴 듣고 있자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된다는 거야, 안 된다는 거야? 솔직히 난 아직도 의심 중이거든.”
“제가요? 이거 제 얼굴이 꽤 험하긴 해도 업계 표준은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하하하. 이거 아직 의사 얼굴 되려면 한참 멀었나 봅니다.”
“누가 당신 얼굴이 문제래? 이 녀석 팔을 고칠 수 있단 게 의심스럽다는 말이지.”
“어떤 부분이 말입니까?”
“이 녀석은 상당히 오래전에 사고를 당했거든. 각성하긴 했지만, 무랭크야. 아직 어려서 본격적으로 훈련을 받고 있진 않으니까. 헌터는 랭크가 낮을수록 마나 친화력도 낮지. 그만큼 죽은 신경을 살릴 가능성도 낮단 소리야. 그런데 이걸 어떻게 살린다는 거지?”
“바로 그 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마련한 자리입니다. 치료 전에 여러 가지 알릴 사항이 있으니까요.”
구장겸은 책상에 붙어 있는 모니터 암을 움직여 화면이 노송린 쪽으로 향하도록 조정했다.
모니터엔 이미지가 한 장 떠 있었다. 4분할로 된 사진이었는데, 어떤 시술 과정을 순서대로 보이고 있었다.
과정마다 적힌 의학적인 설명들에 대해선 눈길이 가지 않았다. 대신 팔이 없던 헌터가 마지막 장면에서 새로운 팔을 얻어 기뻐하는 모습에 시선이 고정됐다.
“이거 지금 팔이 자라난 건가? 감쪽같이 만든 의수가 아니고?”
“게이트 자원으로 만든 의수는 아무래도 진짜 손만 못하죠. 그래서 점점 사장되어 가는 기술이고요.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신체 부위를 재생하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 사진은 그 시술 과정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사진이고요. 의료 현장에 적용된 건 얼마 되지 않아서 잘 모르실 겁니다. 아직 상용화된 게 아니거든요.”
“파, 팔이 자란다니…. 어떻게?”
“헌터의 세포를 특수 처리해서 씨앗을 심듯 잘린 부위에 시술하는 방식입니다. 완전히 제 모습을 찾을 때까지 시일이 좀 걸리긴 하지만, 후유증이 거의 없이 잘린 팔다리를 복구할 수 있습니다.”
노송린은 자신도 모르는 새 엄청나게 발전한 의학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가 아는 헌터 중에도 사지가 멀쩡하지 않은 자가 수두룩했다. 먼 기억을 불러올 필요도 없었다. 당장 우중도에만 가도 죄수들끼리 싸우다가 뜯겨나가는 사례가 적지 않으니까.
우중도 때는 아니지만, 노송린도 과거 손목이 잘린 적이 있었다. 다행히 빠르게 병원으로 후송돼 접합 수술을 받아 병신이 되는 일만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게이트에 들어간 헌터는 그처럼 빠르게 치료받을 수 없었다. 바로 후퇴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몰라도 몬스터에게 포위되거나 어딘가에 갇히는 등 시일을 지체할 사건이 발생하기로도 하면 잘린 사지를 포기해야만 했다.
“이거면 불구가 돼서 은퇴한 헌터들이 다시 복귀할 수도 있겠군.”
노송린이 작게 중얼거린 혼잣말을 들은 구장겸이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덧붙였다.
“팔다리가 없는 것보단 나은 일이지만, 이 시술에 부작용이 없는 건 아닙니다.”
“아깐 후유증이 없다며?”
“그건 몸이 거부해서 생명에 위협이 되거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일이 없다는 소립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이건 게이트에서 얻은 것을 이용해 개발한 것이니까요. 거기서 얻은 것치곤 안전하다는 뜻이죠.”
포션도 게이트 안의 것을 연구해 만든 것이었다. 지금은 헌팅에서 여벌 목숨이라고 불리지만, 처음엔 독약이 따로 없을 정도로 위험했다.
그 밖에도 현재는 당연하게 이용하는 다양한 장비들이 도입 초창기엔 수많은 후유증과 부작용을 유발해 헌터의 목숨을 위협했었다.
즉, 게이트 자원에서 연구해 뽑아낸 이 신기술이 목숨에 지장이 없다는 건 대단한 성과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부작용이 뭔데요?”
“별것 아닙니다. 마나 흐름이 불안정해서 랭크가 떨어집니다.”
“뭐, 팔다리 다시 생겨나면 랭크 하나쯤 떨어지는 거야, 감수할 만하지.”
“하나가 떨어지는 건 운이 좋을 때고, 운이 없으면 서너 개 이상도 떨어집니다.”
“별것 아닌 게 아닌데?”
노송린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헌터에게 랭크는 신분증이자 무기였다. 어떤 때는 명예이기도 했고, 부의 원천이기도 했으며 목숨 이상의 것이 되기도 했다.
그런 랭크가 하나도 아니고 서너 개 혹은 그 이상 떨어진다는 건 오랜 세월 쌓아온 헌터의 경력을 부정하는 것과 같았다.
“잠깐만. 이거 팔이 생겨도 문제네? 없던 팔이 생겼으니까 감각을 찾으려면 분명 재활도 해야 할 것 아니야. 그냥 팔 잘린 거 붙여도 몇 개월 공치는데, 상추 키우듯 자란 팔은 재활도 더 오래 걸리지 않나?”
“일상생활은 문제없지만, 아무래도 헌팅에 나서려면 시일이 제법 걸릴 겁니다.”
“그렇게 되면 떨어진 랭크 플러스 재활까지. 너무 리스크가 크잖아? 원수진 놈이라도 있으면 숨어 살아야 하겠군.”
“그렇죠. 하지만 여기 박철이 군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문제죠.”
노송린은 무슨 소린가 싶어 박철이를 보다가 문득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래. 얜 무랭크지?”
일반인들은 흔히 제일 낮은 랭크를 ‘F’로 알고 있었다. F랭크 헌터가 커리큘럼 과정을 성실히 밟으면 보통 E랭크가 되어 졸업하기 마련이었다.
D랭크까지는 저랭크라 불리며 프리랜서들 사이에서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지만, C랭크쯤 되면 그래도 밥값은 하는 헌터 대우는 받았다.
물론 A-랭크 이상의 헌터들에겐 그 이하는 모두 저랭크 카테고리에 묶였지만.
일각에선 B랭크쯤 되면 중랭크라고 불러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업계 판단은 고랭크 헌터들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실제로 중견 길드 이상에선 헌터 랭크를 고랭크와 저랭크 두 가지로 분류하고 있었다.
당연히 이는 업계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이지, 공식적으론 세세하게 관리했다.
그런 공식적인 분류엔 ‘무랭크’라는 것도 있었다.
이제 막 각성한 새내기들.
훈련 하나 받지 않은 초보들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보통 너무 어린 나이에 각성해 훈련할 신체가 갖춰지지 않았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을 경우에 훈련이 보류되어 헌터라고 부를 수 없는 각성자들을 일컬었다.
“떨어질 랭크가 없다는 거로군.”
“맞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요.”
노송린은 박철이의 나이를 떠올렸다.
‘이 녀석 아직 초딩이었지? 몇 학년이더라?’
그러다가 문득 박철이의 정확한 나이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바로 물어보고 싶었지만, 어쩐지 미안해서 입을 열 순 없었다.
‘아무튼, 초3이라고 치고. 재활하고 기본 체력을 기르는 기간을 제외해도 시간은 충분하다.’
어린 나이에 각성했기에 중3 때는 되어서야 미성년 헌터 커리큘럼 과정을 밟을 수 있을 터였다.
그때까진 무랭크 혹은 재능이 있어도 E랭크를 벗어날 수 없었다.
즉, 구장겸이 말했던 부작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이건 정말 천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랭크인 것도 그렇지만, 이 의료 신기술이 적용되는 시기가 훨씬 더 늦어졌더라면, 박철이 군은 여러 가지로 힘들었겠지요.”
노송린은 구장겸이 말한 ‘여러 가지’가 뜻하는 바를 알고 있었다.
고랭크 헌터 중 외팔이 검사가 있다며 위로했으나 팔이 하나 없는 헌터가 훈련을 받아 온전히 한 명의 헌터로 인정받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건 편견이나 사회의 불편한 시선 따위의 문제가 아니었다.
헌팅은 자기 목숨뿐만 아니라 파티원들의 목숨도 책임져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등을 지켜줘야 할 동료가 팔이 하나 없다면 헌터들은 어떤 생각을 하겠나?
저랭크 헌터 파티라면 더더욱 불안감을 느낄 게 분명했다.
노송린은 겉으론 내색하지 않았으나 그동안 박철이의 미래가 어찌 될지 난감하기만 했다.
그 고민이 해결될 희망을 보니 새삼 이 시술을 받을 기회를 준 강무혁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솔직히 큰 행운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본격적인 상용화가 된 기술이 아니기 때문에 보호자 분에게 시술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는 문제가 있긴 합니다.”
“팔이 생긴다는 데 그 정도야 뭐…….”
“사실 이 시술은 아무한테나 해주는 게 아닙니다. 신기술 적용은 저희 연구진이 아무리 자신한다고 해도 쉽게 도입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으니까요. 게다가 박철이 군은 어리기까지 하니 더욱 망설였죠.”
“그러데 왜 해주는 겁니까?”
“아이언윌의 강무혁 단장님 때문이죠. 그동안 단장님이 얼마나 귀찮게 구시던지, 시술 안정성에 대해서 외국 의료 연구소와 비교하며 확인하시더군요. 저희가 외국과 조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지 않았다면, 이번 건은 무산됐을 겁니다.”
노송린은 또 한 번 놀랐다. 강무혁이 박철이를 치료해주기 위해 신경 써줬다는 것에 감동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많은 길드 일을 처리하면서 언제 또 이걸 알아봤는지 감탄스러웠다.
과연 인간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일벌레라 할 수 있었다.
‘어쩌면 단장님이 헌터인지도 모르지. 일하지 않으면 죽는 특성이라든가.’
농담처럼 생각했으나 정말 강무혁의 업무 처리 능력은 인간의 것이라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구장겸이 파일 하나를 꺼내 펼쳤다.
“여기 동의서. 사인하시면 바로 몇 가지 검사를 진행할 겁니다. 시술은 검사 결과 나온 후 따로 일정 잡을 거고요.”
노송린이 단숨에 사인을 마치자 구장겸은 검사를 위해 연구 스태프를 불러 안내하도록 했다.
진료실에 홀로 남아 시술 동의서를 확인하던 그는 수화기를 들고 어디론가 전화했다.
“예, 단장님. 방금 사인 받았습니다. 고마우시다니요? 저희야말로 고맙죠. 아이 한 명 치료해주고 세계헌터연맹 의료기술연구소와 함께 일할 기회를 주셨다는 것 자체가 참 말도 안 되는 일인데요.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궁금하지만, 따로 묻지 않겠습니다. 단장님 노하우시니까. 이거 그래도 단장님 외삼촌한테는 고맙다고 술 한 잔 사야겠는데요? 윤일도 그 녀석이 졸업 후에 갑자기 연락하길래 무슨 청탁인가 싶었는데, 설마 단장님 외삼촌일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덕분에 이런 기회를 다 주시고. 세상에 괜히 혈연, 지연, 학연이 있는 게 아니죠. 하하하, 아닙니다. 무리라니요. 그 연구 자료가 원래 밖으로 빼돌리면 안 되긴 하는데. 그래도 태성 회장님 따님 길드니까. 핑계 대기 좋죠. 아니요. 회장님 딸이라서가 아니라 S랭크잖습니까. 안 주면 때린다고 협박했다고 하면 누가 저더러 뭐라 하겠습니까? 아무튼, 강무혁 단장님의 ‘헌터 재활 계획’에 동참하게 되어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제가 그토록 원했던 일이었는데.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