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97)
제97화
97. 나무에서 떨어지길 바랍니다.
표범희와 염수형의 분투로 탈출한 코즐로프는 안가에 숨었다.
표범희의 말대로 한국에서 온 두 헌터가 목표물이었던 듯 이고르는 그의 탈출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쫓기는커녕 심지어 철수해버리기까지 했다.
차르 길드와 부딪히지 않으려 일찍 물러선 이유도 있었지만, 코즐로프가 연맹 소속이라는 것도 추격을 포기하게 하는 데 한몫했다.
코즐로프는 안가에 들어오자마자 연맹에 연락을 취했다. 연맹은 알렉스와 직통으로 연결해 줬다. 그에게서 돌아가는 사정을 파악한 알렉스는 강무혁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폭군이라…. 최악이라고 생각한 케이스로군요.”
-그가 어째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왔는지는 저희 현지 요원도 아직 파악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 요원이 제가 러시아로 와야 한다고 말했다고요?”
-표범희 헌터가 요청했다고 합니다.
강무혁은 표범희가 그리 말한 진의를 파악하려 했다.
‘S랭크를 상대하려면 S랭크 뿐이지. 싸우지 않더라도 전투 억제력은 언제나 유용하니까. 그런데 나를 불렀다는 건…….’
연맹에서 S랭크를 지원하면서까지 자신들을 지키지 않으리라 생각한 게 분명했다.
‘여러 가지 면을 충분히 고려했든, 본능적으로 판단했든 간에 표 팀장님의 예상은 크게 벗어나지 않을 거야. 중요하지도 않은 연맹 외부 인사 미션에 S랭크가 움직일 린 없으니까.’
코즐로프를 풀어 준 것도 같은 맥락이리라.
한국에서 온 두 헌터만 잡으면 아이언윌 길드가 당사자이지만, 코즐로프까지 잡으면 연맹의 일이 되어 버리니까.
선뜻 돕겠다고 나서지 않는 걸 보니 그 사실을 알렉스도 예상하는 듯했다.
결국, 해결을 보려면 길드 차원에서 직접 나서야 한다는 뜻이었다.
물론 연맹도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는 만큼 아예 나 몰라라 하진 않을 터였다.
‘그 부분을 약점으로 잡아야지. 사건만 잘 해결하면 이번 건은 두고두고 우려먹을 수 있을 거야.’
강무혁은 재빨리 대략적인 계획을 떠올리곤 말했다.
“러시아로 가겠습니다. 대신 연맹에서 해결해 줘야 할 일이 몇 가지 있습니다.”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돕겠습니다.
“일단 저희 길드장님이 러시아 땅을 밟을 수 있어야 합니다. 러시아 해외정보국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려놓는 바람에 비자 발급이 되질 않습니다.”
-따로 언급하시는 걸 보니 비공식 루트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러시아 정치권을 움직여 이번 일에 한해 임시 입국 절차를 밟겠습니다.
“그건 너무 오래 걸립니다. 비밀을 지키기도 어려울 테고요.”
-그럼, 어떻게 해 드릴까요?
“타국에 몰래 입국하는 방법이야 뻔하지 않습니까.”
-설마…….
“밀항해서 들어가겠습니다. 혹시 블라디보스토크 연안 경비대 매수가 가능하겠습니까? 레이더 기지 쪽에도 약을 좀 쳤으면 싶군요.”
알렉스는 강무혁의 말을 금세 이해했다. 약을 친다는 건 뇌물을 준다는 걸 의미했다.
러시아에선 예전에도 횡행했던 수법이지만, 몬스터가 날뛰는 세상이 된 후엔 아주 보편화된 협상 방식이었다. 이는 땅이 넓은 만큼 중앙 정부의 행정력이 곳곳에 닿지 않는 탓이 컸다.
그래서 러시아 정부는 지방에 한해, 각 지역 길드에게 치안을 맡기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러시아 정부가 길드 간 세력 다툼을 막으려 도시 진출을 제한한 이유 중 하나였다.
“차르 길드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어디까지 영향력을 미칠진 모르겠습니다만. 폭군의 등장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겁니다. 그쪽에서 도움의 손길이 얼마나 필요로 할지 궁금하군요. 이 부분은 연맹에서 빠르게 컨택해 주셨으면 합니다.”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강무혁이 차르 길드라는 협상 루트까지 지정해 버리자 알렉스는 한숨을 쉬며 따를 수밖에 없었다.
비상사태 때 헌터는 명확한 기준이 없을 시 먼저 움직이는 자를 따른다.
강무혁은 헌터가 아니었지만, 긴급 상황에 맞춰 대안을 먼저 제시한 것이었다.
눈치 빠른 알렉스가 이를 모를 리 없었다. 그는 러시아 사정을 잘 모르는 강무혁이 빠르게 판단을 내린 것에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출발은 언제 합니까?
“다행히 내일 오후에 블라디보스토크행 비행기가 있더군요. 저는 그 항공편으로 갈 겁니다. 길드장님은 급한 일 먼저 해결한 뒤에 내일 밤 따로 출발하도록 준비하겠습니다.”
-한국에서 러시아 쪽에 가까운 항구를 이용한다 해도 뱃길로는 거리가 상당할 겁니다. 밤을 이용해 움직이려면 아무리 서둘러도 날이 밝기 전에 블라디보스토크에 들어오기 힘들 텐데요?
“그 부분도 생각해 둔 게 있습니다. 자세한 건 일이 성사된 이후에 연락 드리죠.”
강무혁은 알렉스와 통화를 끊고 길드협력처로 연락했다.
“아이언윌 강무혁입니다. 차길주 처장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긴급입니다.”
강무혁은 항시 대기하고 있던 숙직 담당자가 차길주에게 연결하는 짧은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사안을 따지자면 직접 협력처로 가서 얘길 나눠야겠지만…….’
얼마 전 미스터 조로부터 남포천 일대에 암약하고 있는 이가조 헌터들이 있음을 전해 들었기에 신중하게 움직여야 했다.
길드 본사엔 누구보다도 감지 능력이 뛰어난 고을지를 준비시켰기에 방비가 가능했으나 길드 최정예가 모두 자릴 비운 터라 이대로 바깥에 나갔다간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다.
‘그나마 오늘 밤에 이가조를 쳐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놈들 문제를 남겨 두고 러시아로 가는 건 상당히 껄끄러우니까.’
잠시 후 수화기에서 차길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절 급하게 찾으셨다고요, 단장님? 무슨 일입니까?
“처장님, 배가 필요합니다.”
-배요?
“예. 아주 빠른 배가 필요합니다.”
* * *
강무혁이 밤새도록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때, 주세아는 시동 꺼진 차 안에서 눈을 감고 명상 중이었다.
전투를 앞두고 머릿속으로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그녀가 레이드 전에 항상 하던 일이었다.
“10분 전입니다, 길마님.”
조수석에 있던 이진주가 말하자 주세아는 서서히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눈동자는 마치 쌓인 눈에 반사된 달빛이 시리게 빛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연장 챙겨요.”
“여, 연장이요?”
조폭이 싸우러 가는 듯한 단어 선택에 이진주는 당황하며 멋쩍게 웃었다. 그 사이 운전석에 있던 노송린은 트렁크를 열었다.
“우리 길마님 화끈하시네. 오늘 마녀 솜씨 제대로 보는 겁니까?”
운전석에서 내린 노송린이 신이 난 모습을 하자 바로 뒷좌석에서 따라 내린 장득구가 눈치를 줬다.
“경거망동하지 말고. 빠져나가는 놈 없이 모두 잡는다.”
“그걸 저한테만 말하면 됩니까? 우린 겨우 네 명인데. 나머진 슬레이어 애들한테 맡겨야죠.”
노송린이 대꾸하기 무섭게 검은색 SUV 차량 다섯 대가 골목길로 들어섰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하여간 양반은 못 되는 작자들이라니까. 아참, 길마님 친정이었죠?”
“상관없어요.”
주세아는 차에서 내린 헌터들을 둘러봤다. 총인원은 열여섯. 모두 아는 얼굴이었다. 동시에 거의 교류가 없던 인물들이기도 했다. 이름까지 알고 있는 인원이라고는 고작 대여섯에 불과했다.
그 말은 즉, 원정대 바깥에서 활동하던 타격조라는 뜻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세아의 눈에 띄는 자가 있었다. 그가 다가왔다.
“마녀, 오랜만이야.”
“우리가 친했던가요? 언제부터 말을 놨죠, 하혜성 헌터?”
“뭘 그렇게 정색해? 이제 같은 식구도 아니면서.”
“예전에도 웃으면서 말한 적은 없었죠.”
“너무 기고만장한걸? 이젠 네 뒤치다꺼리나 하던 예전의 내가 아니야. 너도 예전의 네가 아니고.”
“당연하죠. 이젠 한 길드의 수장이니까. 일하러 왔으면 기본은 지켜요. 하혜성 헌터.”
하혜성 옆에서 주세아를 지켜보던 헌터가 코웃음을 쳤다.
“하? 이보세요, 주세아 길마님. 요즘 좀 잘 나간다고 슬레이어가 우습게 보이십니까? 겨우 C급 길드 마스터 주제…….”
하혜성은 손짓으로 헌터의 입을 다물게 했다. 헌터는 불만이 쌓인 표정이었지만, 그의 명령에 따랐다.
하지만 하혜성은 수하보다 주세아의 뒤에 서 있는 장득구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장득구. 말로만 들었었지, 직접 보는 건 처음인데…. 표정 한 번 살벌하군.’
조금만 더 입을 나불댔다간 슬레이어고 나발이고 베어 버리겠다는 눈빛.
하혜성은 방금 단원의 목숨을 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미안합니다, 주세아 길마님. 제가 너무 무례하게 굴었네요. 옛날 생각이 나서 반가웠나 봅니다.”
“사과는 받아들이죠. 일 얘기나 합시다.”
“그러시죠.”
주세아는 새삼 놀란 눈으로 하혜성을 흘겨봤다.
‘어쭈! 어울리지 않게 참을 줄도 알고. 조금은 성장한 건가?’
하혜성은 주세아가 슬레이어 소속일 때도 앙숙으로 통했던 사이였다. 숨 쉬는 것 자체가 서로에게 거슬렸다. 툭하면 으르렁댔었는데…. 그런 하혜성이 자중하는 모습은 낯설었다.
‘에이, 그럴 리가. 성선제한테 주의라도 들었겠지.’
슬레이어의 에이스였던 주세아에게 이빨을 드러낼 정도로 호전적인 하혜성이었으나 그가 길드에서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성선제였다.
성선제가 경고했다면 아무리 하혜성이라도 막 나가지 못하리라.
‘언제 날 잡아서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칫! 성 팀장님은 의외의 곳에서 무르다니까.’
주세아의 짐작대로 하혜성은 성선제에게 수차례 신신당부를 들은 차였다.
그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옆으로 손을 뻗었다. 조금 전 주세아를 비꼬았던 헌터가 그에게 태블릿을 쥐여 줬다.
하혜성은 태블릿을 주세아에게 내밀며 말했다.
“놈들이 숨어 있는 아파트 도면입니다. 지어진 지 오래된 곳이더군요. 오래전에 재건축 사업 확정돼서 주민들 대부분이 퇴거한 상태입니다.”
“민간인 걱정 없이 마음껏 싸울 수 있겠네요.”
주세아는 도면을 두고 각자 길드가 맡은 구역을 확인했다.
‘숫자와 수준에 딱 맞춰서 배정했네. 장난친 건 없는 것 같아.’
합리적인 공격 루트를 보니 성선제가 작성한 게 분명했다. 그를 싫어하는 건 둘째치고 전투 관련해선 신뢰할 만한 사람이니까.
하혜성이 설명을 이어 갔다.
“여기서 재밌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희한하게도 철거 기한이 한참 지났음에도 여태 철거를 안 했다는 거죠.”
“이유가 따로 있나요?”
“알아봤더니 여길 사들인 건설회사 최대 주주가 일본 기업이더군요. 거긴 또 야쿠자 놈 하나가 대표를 맡고 있는데, 일본 애들이 자주 써먹는 방법이죠. 바지사장. 한마디로 여기가 ‘길단련’ 놈들 거점이란 소리입니다. 정치권에 상당히 돈을 먹여서 사업을 따낸 듯하더군요. 아마 오랫동안 거점으로 써먹은 만큼 부비트랩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뭐 나야 걸려도 크게 상관없으니까, 그쪽이나 조심해요. 괜히 다쳐서 도와달라 하지 말고.”
“설마요. 그쪽이나 몇 명 잡지 못해 쪽팔린다고 찡찡거리지나 마시죠.”
한참 눈싸움을 하던 두 사람은 양쪽 길드원들이 작전 시간을 알려 오고서야 눈을 뗐다.
둘은 마지막 덕담을 나눴다.
“뒤로 자빠져서 코가 깨지길 빌어요, 하혜성 헌터.”
“나무에서 떨어지길 바랍니다, 주세아 길마님.”
* * *
콰아앙! 콰앙! 퍼어엉!
잇단 폭음에 류신은 눈을 번쩍 떴다. 그는 침착하게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3시 11분.
‘기습하기 딱 좋은 시간이로군. 허를 찔린 건가?’
분명 자신이 흘린 미끼 중 하나를 물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미끼를 던진 건 자신만이 아니었나 보다.
‘성선제가 너무 얌전히 물러났다고 했더니만. 쯧!’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침실 방문이 요란스럽게 열렸다.
“조장님! 슬레이어 놈들이 습격했습니다! 어서 여길 피하십시오!”
“뭘 그리 호들갑이야? 공격해 왔으면 반격하면 될 것 아닌가. 여긴 우리 앞마당이야. 진을 발동시켜서 막으면 제아무리 성선제라도 못 뚫는다.”
“성선제가 아닙니다!”
“뭐?”
“주세아입니다!”
쾅!
이번 폭음은 상당히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고함과 비명이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주세아는 슬레이어를 나갔다고 하지 않았나?”
“무슨 일인지 둘이 한 편을 먹고 공격해 왔습니다.”
“이런 배알도 없는 놈들! 죽으라고 싸울 땐 언제고 그새 붙어먹어?!”
항상 무표정을 유지했던 류신의 얼굴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주세아라면 진을 발동해 봤자 소용없다. 마법이고 이능이고 간에 먹히지 않는 년이니까.’
그냥 몸만 던져도 폭탄인 여자였다.
류신은 당장 전력을 동원해 싸우더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동귀어진하자면, 슬레이어 헌터들과 함께 지옥에 떨어질 순 있겠지만, 그래도 주세아는 막지 못한다.
같은 A+랭크를 무색하게 만드는 단단함과 강인함은 이제껏 일본길드연합이 그녀를 암살하지 못한 이유였다.
“지연전을 펼쳐라! 주요 문서들 소각하고! 모든 부비트랩을 작동시켜!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서 주세아를 막으란 말이야!”
“옛!”
수하를 내보낸 류신은 전투 장비를 착용했다.
홀로 빠져나가더라도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지금 퇴각했다간 바로 따라붙겠지. 좀 더 안쪽으로 유인해서 타격을 입히고 빠져나가야 해. 그렇지 않으면 연합회에 나가서도 얼굴을 들지 못할 거야. 이대로 내 경력을 끝장낼 순 없어.’
류신은 비장한 얼굴로 도검을 들었다.
“주세아…. 뿌득! 언제까지 그리 날뛸 수 있는지. 끝까지 지켜봐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