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ower of Babel and the Only Begotten Son RAW novel - Chapter 383
00383 망량군도 =========================
모든 것이 끝났다.
주변에 자욱하던 망량의 안개도 사라지고, 회백색의 재로 이루어졌던 군도들도 사라졌다.
인류제국이 타고온 함선들도 붕괴되어 무너질 때, 아이오닐을 비롯해 유령선단의 원한들을 받아들여 이겨낸 이들이 그 소유권을 얻어 다른 이들을 태우며 망량군도를 빠져나왔다.
“이번 소득은 정말이지 신기하군.”
레이븐은 휘파람을 불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처럼 낡은 유령선.
하지만 외부의 어떤 공격에도 파손되지 않는 특성이 존재한다.
이 배를 부수려면 오로지 안쪽으로 들어와야만 가능하다.
따라서 어떤 곳을 가더라도 부숴지지 않고 파손되지 않으며 부식되지 않는다.
제 아무리 하늘을 날아다니는게 우습지도 않은 일이라지만 강한 출력을 내기위해 발디딜곳이 존재하는게 분명 도움이 되고 이런 저런 물자들을 수송할 수단이 되어준다는 것은 확실히 이롭다.
“이대로 바로 다음대륙으로 넘어간다는거지.”
거기다 더해 뒤에서 날아오는 인류제국의 본성을 보며 레이븐은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지내던 본거지를 떠나며 행하는 이주에 이런 저런 감정을 느꼈다.
“아깝나?”
“글쎄.”
아이오닐이 그것을 느끼며 물어보자 레이븐은 스스로도 잘 모르겟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사람 마음이란게 어지간히 종잡을데 없어야지.”
쉽게 알 수 있을 감정이라면 좋을테지만 그렇지 못한게 사람 마음이다.
“정확히 정착할 지점은 또 찾와봐야겠지?”
“그것도 고역이겠지. 주변을 정화하고 안정화시키는데도 제법 손이 갈테니.”
망량군도에 들어가기전 내륙에 스텔스 기능을 활성화시켜 숨겨두었다가 다시 따라오게 한 저 본성에는 후방거점에 배치된 전투불가판정을 받은 이들이 많이 있다.
대체적으로 육체의 문제기보단 정신적 문제로 인해 그렇게 된 이들.
그들에게 안전을 주기 위해선 새로운 땅을 찾고 그 땅에 존재하는 유독한 환경을 정화하고, 주변에서 몰려들 토착세력등을 정리해야 할 터 였다.
“옛날에 그 민족대이동을 했던 고대인들의 느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두렵고 떨리며 시원섭섭하고 형언할 수 없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전부 다 살고자 하는 행위기에 선악을 따지는 것은 우습다.
그렇기에 그저 흘러가는 주변을 보며 레이븐은 입에 문 시가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뿜어냈다.
이렇게 또 시간이 흐르면 또 자신들을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그 생각과 함께, 얼마 지나지 않아 관측팀에서 육지를 발견했다는 소리가 들려오고 모두는 새로운 땅을 찾아 정착을 준비했다.***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 대지가 가지고 있던 유해한 성분을 정화하고 성을 착륙시켰다.
새롭게 흘러드는 성분들은 본성이 가진 생명최적화장치가 알아서 처리해 줄테니 그 다음은 몰려드는 토착세력들의 침략을 막아내는 것이다.
한 놈 막아내면 또 한 놈 달려들고, 그러다 보면 여러놈들이서 달려온다.
원래 살던 저들집에 낯선 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떡하니 살림살이를 차렸을 때, 새로온 이웃이라고 떡 돌리기 보단 화살비를 퍼부을 세상이니 그들은 또 질릴정도로 찾아왔고, 인류제국의 이들 역시 저마다의 총칼을 들고 맞이해주었다.
초기에는 끊임없이 몰려드니 그저 막기만 했으나 그래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안정화가 되었다 싶으니 원정을 떠나며 조금씩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좀 안정이 되어간다고 여겨졌을 때, 다시 인류제국의 본성으로 찾아왔다.
“거 대체 어디서 나타나는 건지.”
그런 그를 맞이하며 레이븐은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바다를 건너왔어도 저자는 신출귀몰하기 그지 없다.
물밑에서 떠다니는 온갖 추론이 머리속을 채웠다.
미래에서 돌아온 생존자, 멸망한 이계 최후의 전사, 바벨의 배신자.
하지만 그 무엇도 딱히 입밖으로 꺼내묻지는 않았고 당장의 방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운성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주변이 제법 안정화 된 것 같군.”
“그렇지. 다들 노력했으니까.”
멸망한 세계라도 사람은 살아간다.
모두가 끝을 맞이하기 전까지 끝은 아니기에, 그들은 저마다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이들이 모여 만든 인류제국이다.
세상이 망했을 때, 다 함께 좆되보자 하던 이들을 이겨내고 풍전등화와 같던 인류애를 기치로 뭉쳐 만들어낸 제국이다.
조금은, 자랑스럽기도 하다는게 레이븐의 본심이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운성은 그저 웃었고, 그에 레이븐은 다시 물었다.
“그래서 왜 왔냐니까.”
“이제 슬슬 때가 된 것 같거든.”
“뭘?”
“네가 지구에서 있던 시절엔 항상 내륙을 살았었지?”
“그렇지 뭐.”
무법지대에 가깝던 국경선 지역의 보안관을 역임했었으니까.
바다쪽으로 갈 일은 없었다.
“그럼 ‘땅멀미’에 대한 존재도 모르겠군.”
“땅멀미?”
“배에 장기간 타고 있을때는 모르지만, 육지에 내려섰을 때 부터 시작하는 멀미다. 땅에 서 있는데도 계속 바다에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지.”
“흠, 그럼 뭐 모를 만도 하지.”
멀미란게 교통수단 등에서 발생하는 흔들림에 몸의 평형감각이 적응하지 못하여 발생하는 증상이고, 정확히는 시각과 여타 감각의 괴리 때문이다. 시각 정보는 별로 바뀌는 게 없는데, 평형감각 차원에서는 자꾸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오기 때문에 이를 종합해야 하는 두뇌에서 오류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렇기에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는 입장에서는 멀미가 덜한데, 바벨에 오르고 배를 타야하는 영역에 들어서기 전에 이미 레이븐은 꽤 도드라진 성장을 했고 육체의 능력이 폭등했었으니 멀미를 느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게 왜? 우리가 군도에서 오래 있었다고 단체로 땅멀미라도 할까봐? 그럴려면 한참 늦었지 않나.”
이 곳에 정착하고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으니까, 멀미를 하자면 늦은 일이다.
그에 운성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희가 타고온 유령선단, 그것들을 얻은 경위는 들었겠지?”
“대충은. 한 척당 최소로 잡아도 수백만번의 원혼들의 일생과 죽음을 느끼고 이겨냈다고 들었는데.”
“그래, 어찌보면 일종의 PTSD가 올 시간이 됬지.”
“PTSD? 그건 더 늦었잖아.”
수십년 동안 싸워온 인류다.
이제와서 전쟁의 후유증을 느낀다면 재미없는 농담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운성은 그저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한 사람이 고작해야 느껴온 시간은 100년도 되지 않지. 그러나 그들이 받아들인 원혼의 수가 수백만일 때, 한 명당 최소 100년으로 잡아도 1억년의 시간이다.”
“…1억..?”
그 압도적인 단위에 그제야 레이븐의 표정이 변한다.
“전쟁 중일 때야 괜찮겠지. 당장 눈 앞에서 날으드는 것부터가 죽음이요, 숨쉴때마다 느껴지는 것이 망자의 호흡이니까. 하지만 전장에서 벗어나는 순간은 어떨까?”
망량군도를 붕괴시키고 바다를 건너와 이 곳으로 올 때에도 긴장해야 했고, 이 곳에 정착하고 나서도 지금까지는 계속해서 몰려드는 위협과 맞서 싸워야 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안정화 된 지금이라면?
“당시에 그 많은 원혼을 받아들인 자들은 대부분이 한 부대의 수장급 인물들이었지. 그 정도는 되야 그 원혼들을 받아들이고 이겨낼 수 있었을테니까. 그리고 지금 그 후폭풍을 견뎌내야 할 이들도 그 수장급 되는 인물들이지.”
부대의 수장급인 이들이 한꺼번에 그 후폭풍을 받아내야 된다.
그것은 자동으로 수뇌부의 공백이 되버린다는 뜻이다.
이제 좀 확실히 토착세력들로부터의 침략이 줄어들었다고 모두가 느끼는 시간, 짧지만 어느정도의 휴식을 취해 역으로 정벌활동을 시작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추세이다.
지금이라면 분명 운성이 말한 그 후폭풍을 받아들일 시간이다.
운성은 그 말만을 남기고, 자기가 할 일은 이제 없다는 듯이 떠나갔다.
레이븐은 그를 잡지 못했다.
당장에 그 보다 심각한 일이 있었으니까.
남들이 수백만을 받아들일 때, 홀로 수억의 원혼을 받아들인 이가 있다.
그 존재는 바로 인류제국의 수장 아이오닐.
수 억의 원혼이 한 명당 100년 씩 만 잡아도 수 백억의 시간이다.
“수 백억? 그 정도면 지구의 시간 보다도 길군.”
이야기를 전해들은 아이오닐은 그 턱없는 시간의 단위에 그저 피식 웃었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이거 웃을 때가 아니거든. 그 남자, 적어도 쓸데없는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잖아.”
“그래, 아주 골치아프게 됬다는 것은 이해했다.”
바벨은 주제파악이 아주 중요한 곳이다.
스스로를 과소평가했다가는 전장에서 제 역량을 다 발휘하지 못해 죽고, 스스로를 과대평가했다가는 전장에서 감당치 못할 적에 덤볐다가 죽는다.
그렇기에 아이오닐은 스스로의 가치를 잘 알았다.
자신은 최후의 인류들이 뭉친 인류제국의 헤드.
자신의 공백이 무엇을 의미할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게 어떤 반동으로 올 지 모른다는 것도 말이야.”
PTSD의 반동은 어떤 반응으로 다가올 지 모른다.
누군가는 자살 충동을, 누구는 무기력증을, 누구는 폭력성을 뛴다.
“일단 유령선단의 소유권을 얻은 이들 주변에 최대한 사람붙여둬.”
그렇기에 일단 할 수 있는 대비를 해둔다.
하지만 역시나 불안하다.
운성이 직접 와서 남긴 경고가 결코 가볍지는 않을테니까.
그렇게, 그들의 밤은 시작됬다.
========== 작품 후기 ==========
뒷풀이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