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ower of Babel and the Only Begotten Son RAW novel - Chapter 464
00464 도룡궐刀龍闕 =========================
아이오닐은 회의실에 걸려진 거대한 지도를 보고 있었다.
처음 최종층에 올라왔을 때는 인류제국의 본성이 위치하던 이전 지역과 그 근처의 일부만이 존재하던 지도는 어느새 이전 후의 본청이 위치한 지역과 최종층 대부분이 표기되어 있었다.
아직 표기되지 않은 곳은 4방위에 존재하는 4개체의 악마공작들의 영토와 서편에 존재하는 거대한 강을 따라 나가서 존재하는 도룡궐刀龍闕뿐.
넓어진 지도를 보고 있자면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어느덧 여기까지 왔구나.
어떻게 여기까지 왔구나.
긴 시간이었다.
정말로.
“그러고보면 지도地圖도 아니군.”
표기 된 것들에는 단순히 땅 위의 지점만이 아니라, 지저세계의 나라와, 심해의 굴, 저 천공의 성과 같은 지역이 그려져있었다.
구름위의 황폐화 된 대륙이나 바다 밑의 멸망한 제국은 땅 위에서는 찾을 수 없는 곳들이니까.
“우주까지 나가지 않은게 다행이군.”
피식 웃으며 재미없는 농담이라 자평했다.
말이 우주까지 나가지 않았지, 왜곡된 공간이 너무 많다 보니 이미 우주에서 성간단위 규모의 전쟁은 여러번 겪었다.
정말, 징하게도 싸웠다.
인류의 전쟁사를 다시 쓰고도 모자르긴 커녕, 자신의 전쟁사가 인류의 전쟁사 그 자체다.
오만한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전쟁사에 비하면 그 전의 인류의 전쟁사는 인트로 축에도 못 낄 정도다.
“정말이지, 좋지 않은 의미로 출세했구나. 그렇지 않나?”
의자에 몸을 파묻으며 묻자, 그의 뒷편에서 공간이 일렁이더니 미스틱 도어의 총수, 오그 배리어스가 나타났다.
“늙었군.”
“내가?”
“감상이 잦아졌어.”
그의 말에 잠깐 멍한 표정을 짓던 아이오닐은 그만 실소했다.
“큭, 큭큭. 그런가.”
생각해보니 그렇긴 했다.
녹림에서 황제로서 자신의 운명을 정한 뒤 녹색의 왕을 잡고, 운성이 말할 적을 상대할 때가 될 때 까지 바벨의 최종층을 전 지역을 원정하며 또 시간을 보냈다.
운명을 정하고, 길을 정한다는 것은 흔들림이 없다는 것이지만 그 외의 모든 가능성을 접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것에 후회가 있냐면, 아주 조금은 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하지 못 했던 것, 하고 싶었던 것.
하지만 인생은 하고 싶은 것만으로 살 수 없고, 그렇기에 포기해야 했던 것은 언제나 무언가를 이룬 순간에도 아련하게 남아온다.
인간은 이렇게도 미완의 동물이다.
신이 었다면 포기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들이, 인간이기에 포기해야만 했던 그 순간들이 언제나 눈에 밟혀온다.
어쩌면 늘어난 감상은 그에 대한 애도.
버려야만 했던 것들이 미련이 되어 다가올 때, 그것을 다시 주워담을 수 없고 돌아가서 다시 손을 내밀어줄 수 없기에 그저 그 자리에서 머물러 고개만을 돌려 숙여 표현하는 애도다.
“죽을 때가 된 것일까.”
“그런가. 우리도 많이 늙기는 했군.”
겉모습이 이렇지, 그 속은 많이도 늙었다.
종족의 수명이란게 단순히 육신의 노화가 아닌 그 종족이 버틸 수 있는 정신의 한계라는 말이 왠지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그들도 대단하긴 했군.”
“그들?”
“우리가 싸워온 이들. 멸망한 세계에서 남겨진 이들.”
“아아…”
긴긴 시간, 타락하고, 그 타락에 번뇌하는 자신의 친구를 보아온 거인 라-파르테.
배신자의 오명을 덮어쓰고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천년의 세월을 버텨온 마그로 에델라제.
수 없이 많은 동료들의 원혼을 등에 진 채, 그들만의 구원을 위해 홀로 저주받은 해역에서 존재해온 망량백 나만.
스스로 모든 것을 져버린 녹색의 왕 같은 존재도 있었으나, 개인으로서는 도저히 버티기 힘든 시간을 오롯이 소중한 이들을 위해 홀로 버텨온 이들도 있었다.
마그로 에델라제 역시 단순히 천년이라고 할 뿐, 그 안에서 왜곡된 시간까지 합친다면 얼마나 긴 시간일지는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나마 인류제국은 멸망한 세계라지만 수 만명이 넘는 동포들이 함께 있어 서로가 의지가 되어주지만, 그런 것 하나 없는 이들은 홀로 고독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버텨왔다.
“글로 표현하자면, 정말 못 할 짓인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였지.”
그들의 모험은 세계의 끝에서 끝을 오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바다보다 더 깊은 땅 속에서 해저를 지나 숲을 누비고 광야를 건너 용암을 헤치며 빙하를 뚫고 나가 하늘을 까지 닿은 산을 오르고 올라 구름 속을 헤쳐나가 천공에서의 결전을 치뤘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전생이 있고, 내생이 있다면 3대 손은 거슬러 올라가도 충분할 만큼 싸웠지.”
“큭큭, 3대손이 뭐겠나. 온 전생을 다 합쳐도 충분할 만큼 싸웠어.”
“지겹군.”
“지겨웠지.”
다시 하라면 할 수 있을까?
“누가 만약에 더 잘 해보라고 과거로 돌려보낸다면, 처음부터 다시 할 수 있을까?”
그 말에 얘기를 꺼낸 오그 배리어스도, 아이오닐도 잠깐 생각에 빠졌다.
그러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서로를 마주보며 웃었다.
“큭큭, 무리다. 무리.”
“맞아. 다시는 못 할 짓이야.”
싸울만큼 싸웠고, 지치긴 예전에 지쳤다.
지금 그들을 이자리에 서 있게 하는 것은 글쎄, 무엇일까?
그게 무엇이 되었든 간에 도저히 다시 싸우라면 다시는 못하겠다.
그들이 싸워온 시간은 그 정도다.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을 때 그 허무함을 버틸 수 있을까?
그런게 되는 이가 있다면 그건 정말 공허로 가득 찬 존재일 테고, 과연 그걸 인간이라 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그래, 그런 자야말로…”
똑똑똑.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오닐은 문 밖에서 들려오는 서조의 장 블랙 위도우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네, 들어오세요.”
그가 답하자 문이 열리고 평소처럼 작전 수행시 입는 복장인 검은 가죽으로 된 라이더 복과 비슷한 것을 입은 그녀가 들어왔다.
간단하게 목례하는 그녀와 마주 고개를 끄덕인 아이오닐이 자리를 권했다.
그 곳에 앉은 그녀는 어느새 사라진 오그 배리어스 없이 홀로 서 있는 아이오닐과 마주했다.
“그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그렇습니까.”
“때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때가 되었다라…”
고개를 돌려 지도를 바라보았다.
이제 지도라고 부르기도 애매해진 그 물건.
그 곳이 빽빽히 채워졌으니, 어쩌면 때가 됬으리라 생각하기도 했다.
“마지막 준비를 하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되었죠?”
마지막 준비를 하라고 전해주었지만, 결국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정보기관이다.
아이오닐의 물음에 그녀는 웃으며 답했다.
“저희는 항상 만전입니다.”
“좋군요.”
준비 시간이라면 꽤 오래주어졌다.
솔직히, 질릴 정도로 주어졌다.
재활병단이라 불리던 어벤져스와 멜티드 바운더리 역시 궤도에 올라서서 어엿이 한 축이 되었다.
사상자로 인해 빈 자리를 조직 개편을 통해 채우고 그들과의 연계 훈련도 반복하여 기량자체도 높혔다.
“그도 왔나요?”
“지금은 없습니다. 그도 볼 일이 있다며 돌아갔습니다.”
“바쁘게 사는군요.”
“이런 세상에서는 누구도 여유로울 수 없나보더군요.”
그녀의 말에 아이오닐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세상이구나, 하며 이해했다.
***
“준비는 다 됐나?”
“당연하지, 아재요.”
에덴의 일행이 한 자리에 모였다.
마실나가듯이 여유롭게 묻는 운성의 말에 흥분된다는 듯이 태식이 전의를 불태웠다.
“너무 오랜만의 출격인 것 같아서 좀이 쑤시더란 말이요.”
태식의 말에 운성은 피식 웃었다.
무슨 옛날 이야기나 나올법한 놈이다, 라고.
기사도를 논하던 중세의 기사나, 무사도를 논하던 사무라이들이나 했을 법한 말이다.
아니, 실제로는 그 시대의 기사들도 저렇게 열정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느 시대라서가 아니라, 그냥 저 녀석이 저런 녀석이라 가능한 일.
‘로맨티스트 녀셕.’
딱 2명이다.
만병장 스타이너와, 태식 저 녀석.
세계가 뭐라하든 현실이 뭐라하든, 자기 할 말만 하고, 자기가 맞다하는 것만 밀고가는 녀석.
흔히들 말하는 ‘어린 놈’이다.
누군가는 민폐라고 매도하기도 한다.
아직도 급식이나 먹던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해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지 못한다고.
하지만 그게 어린걸까?
그저, 그들을 욕하는 이들이 사회라는 틀에 찌그러져서 굴복한게 아닐까?
그들이 못한 것을 한 행위에 대한 질투가 아닐가?
스스로가 한 일에 책임질 수 만 있다면.
사회의 규범이라고 거짓으로 포장된 제약에 저항해도 되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에게는 소설의 주인공들만이 하는 것을 읽고 대리만족으로만 넘기는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실제로 실천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그 누군가가 바로 태식과 스타이너였다.
“걱정마라.”
그 동안 전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류제국의 누구보다도 열렬히 싸워왔었다.
다만 ‘진짜’가 아니었을 뿐.
그러니,
“이제 진짜를 만나러간다.”
========== 작품 후기 ==========
가즈아ㅏㅏ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