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ampire went to Murim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목욕을 마치고 전라 차림으로 욕간에서 나온 제갈지소의 앞에 야현이 나타났다. 제갈지소는 재빨리 몸을 가리려 했지만, 마땅히 가릴 것이 없었기에 당황한 표정을 드러내며 몸을 움츠렸다.
야현은 제갈지소의 몸을 아래로 훑으며 의자에 앉았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갈지소는 가볍게 몸을 가리고 다시 나왔다.
“어쩐 일이세요?”
“물어볼 것이 있어서.”
제갈지소가 자리에 앉자 야현이 바로 본론을 꺼냈다.
“곤륜과 화산의 영약에 대해 말해 봐.”
“영약?”
제갈지소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래.”
“일단 곤륜에는 소양단(少陽丹)과 태양단(太陽丹)이 있어요. 그리고 화산에는 자소단(紫疎丹)이 있어요.”
“수준은?”
“태양단은 소림의 대환단(大環丹)이나 무당의 태청단(太淸丹)과 비슷하다는 평을 받고 있어요. 조제된 영약 중에서는 수위를 다퉈요. 자소단은 태양단과 소양단 중간쯤으로 평가되고 있어요.”
“태양단과 자소단이라.”
야현은 턱을 쓰다듬으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설마…….”
제갈지소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 설마가 맞을 거야.”
야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서 허공을 찢고 사라졌다.
휘이이잉!
메마른 바람이 휘몰아치는 곤륜산 정상.
야현은 정상 아래로 보이는 수십 채의 전각을 내려다보았다.
곤륜파.
수십 채의 전각 중에 유달리 야현의 눈에 띄는 세 채의 전각이 있었으니 태청, 옥청, 상청으로 이뤄진 삼청전이었다.
야현은 그늘에 앉아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밤이 되고 곤륜파 전경 곳곳에 횃불이 켜졌다.
자정이 넘어가자 곤륜파 내 순찰을 도는 이들 외의 인적이 사라졌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삼청전의 불도 꺼졌다.
“가 볼까?”
야현은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곤륜파 장문인이 기거하는 상청 지붕 위에 야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자.”
야현의 동공이 붉게 확장되었다.
권능, 투시.
야현은 지붕 위를 소리 없이 걸으며 상청전 안으로 살폈다. 그러던 중 야현의 입꼬리 한쪽이 슬쩍 말려 올라갔다.
장문인이 잠든 침상 아래로 이어진 계단을 발견한 것이다.
비고(秘庫)다.
깊지 않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두꺼운 철문이 나오고, 그 철문 아래 제법 큰 공간이 보였다. 공간 안에는 수십 권의 서책과 몇 자루의 병기, 그리고 소소해 보이는 몇 가지 물품들이 보였다.
야현은 허공을 찢어 곤륜파 비고로 내려갔다.
비고에 모습을 드러낸 야현은 자그만 선반 앞으로 향했다.
제법 큰 목함을 열자 금박으로 싼 환 알이 들어 있었다.
“흠.”
목함에 벤 청아한 향에 야현은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끄응.”
야현은 순간 앓는 소리를 삼켜야 했다.
무엇이 태양단이고, 어느 것이 소양단인지 구별할 수 없어서였다.
고민도 잠시.
히죽.
야현은 웃었다.
뭘 고민하랴.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 했다.
다 가져가면 되는 것을.
야현은 목함 안에 있는 스무 알이 조금 못 되어 보이는 환들을 아공간에 넣었다. 그리고 바로 허공을 찢고 화산으로 향했다.
“하아―.”
제갈지소는 멍하니 서류를 내려다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잠시 후 뺨에 발그레 홍조가 피었다.
톡톡!
탁자를 두들기는 소리에.
“학!”
제갈지소는 놀라 헛바람을 들이마시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뭘 그리 생각하기에 본인이 온 것도 모르나?”
“아닙니다.”
제갈지소는 정색을 하며 쌀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탁!
야현은 아공간에서 하나의 목함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뭐가 소양단이고 뭐가 태양단이지? 이런.”
야현은 목함을 열었다가 눈가를 찡그렸다.
생각 없이 한곳에 자소단까지 담아 버린 것이다.
그리고 금박 포장까지 비슷비슷해 뭐가 뭔지 구별하기 모호하게 뒤섞여 버렸다.
그에 반해.
“헙!”
제갈지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잠시 환을 내려다보다 야현을 올려다보았다.
청아한 향이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것으로 보아 영약, 영단이 맞았다.
“왜?”
“서, 설마.”
제갈지소의 물음에 야현이 웃음을 지었다.
“맞아. 다 가져왔어.”
“하지만 어떻게…….”
이런 영약이 일반 창고에 보관될 리 없다.
장문인의 손에 철두철미하게 관리되는 비고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을 것이다.
“일족의 권능. 잠시 잊은 모양인데, 본인이 왕이야.”
“투시, 이동.”
“빙고.”
야현이 한쪽 눈을 감으며 말했다.
* * *
석실 중앙.
후우우우―
가부좌를 튼 야현의 몸 주위로 회색빛 운무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정명한 기운을 가졌음에도 야현의 사기와 만나 회색으로 변한 것이었다.
회색빛 운무가 야현의 코를 통해 스며들기 시작했다.
서서히 스며들던 운무가 갑자기 폭풍처럼 야현의 몸을 휘감았다.
“큭!”
야현이 고통에 찬 신음과 함께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러자 회색 운무는 마치 아귀처럼 야현의 몸을 우악스럽게 파고들었다.
“끄으!”
고통을 참기 위해 이를 악다문 야현의 얼굴은 야차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강압적으로 몸과 코로 파고든 운무 때문에 야현의 얼굴과 몸의 혈관들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푸학!”
결국 운무, 집성된 기의 힘을 이기지 못한 야현이 피를 토하며 뒤로 쓰러졌다.
“꺼억! 꺼억!”
야현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주화입마였다.
과다한 영약 섭취로 급작스럽게 늘어난 내력을 몸이 이겨내지 못한 탓이다.
쩌적! 쩌저적!
결국 몸이 버텨내지 못하고 피부가 갈라지며 온몸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렸다.
“크흐으으!”
야현은 송곳니를 드러내고 짐승의 울음을 토해내며 몸을 틀었다.
“크하악!”
야현의 울음이 터지자.
끼익!
폐관 수련실 석문이 열리고 흉측한 검상을 가진 사내가 안으로 던져졌다.
“크르르르!”
야현은 완전히 붉게 변한 눈으로 사내를 쳐다보았다.
“히익! 사,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사내는 붉게 변한 몸에 핏줄까지 불룩불룩하는 야현의 흉악스러움에 단숨에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래서인지 손가락에 피가 나도록 석문을 긁으며 살려 달라 울부짖었다.
퍽!
그러는 사이 야현은 폭발적인 힘으로 사내를 벽으로 밀어 버렸다. 그러고는 짐승이 먹이를 먹는 것처럼 사내의 몸에 송곳니를 박고 피를 빨았다.
사내의 피를 흡수하기 시작하자 날뛰던 혈관들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찢어진 혈도가 피의 힘으로 복구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내 부풀어 올랐던 핏줄이 가라앉고 붉어진 피부가 뱀파이어 특유의 창백한 색으로 돌아왔다.
야현은 그 자리에서 다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여전히 몸에서 야생마처럼 날뛰는 내력을 다스렸다.
다시 회색빛 운무가 야현의 몸에서 빠져나왔다가 다시 코를 통해 스며들기를 몇 차례.
번쩍!
운기를 마친 야현이 눈을 뜨자 회색빛 안광이 폭사되었다.
“하하하!”
야현은 웃음을 터트리며 석실 구석으로 다가가 목함을 열었다.
서른 알 남짓하던 영단이 다섯 알만 남아 있었다.
야현은 그 자리에서 영단 다섯 알을 까 입에 넣었다.
순식간에 액체로 변한 영단이 목으로 넘어갔다.
“큭!”
야현은 눈가를 슬쩍 찡그리며 다시 바닥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 내력을 끌어올려 현문정종심법의 구결에 따라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야현은 석실 중앙에 야월을 들고 서 있었다.
휘익!
느리게 허공을 잘랐다.
느리지만 무겁다.
중검.
그리고 장엄하다.
쿠아아악!
무겁고 장엄한 검에 야현 특유의 성정이 담겼다.
패도(覇道).
패검(覇劍).
슥― 스슥
야현의 야월을 휘두르며 발을 내디뎠다.
검은 무거운데 걸음걸이는 가볍다.
바람 한 줄기에 몸을 실은 듯 움직임이 자유로웠다.
야현의 움직임은 마치 곤륜의 운룡대구식처럼 보였다.
아니다.
운룡대구식처럼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달랐다.
가볍고 자유로운 움직임 속에 신속(迅速)이 담겼다. 향기조차 남기지 않는다는 화산의 암향표(暗香飄)의 묘리와도 비슷했다. 그런데 이것 또한 화산의 암향표와는 달랐다.
운룡대구식도 아니요 암향표도 아니다.
운룡대구식과 암향표를 아는 이가 봤다면 두 보법보다 뭐라고 할까, 좀 더 원초적인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야현의 내딛는 걸음.
보(步).
그건 전진의 보, 천산행(天山行)이었다.
그런데 자유로움 속에서 표출되던 신속이 어느 순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신속(迅速)이 신속(神速)이 되어 암울함과 음산함이 담긴 것이다.
자유로움에 귀기가 섞이고, 표홀함이 음산함을 띠었다.
팟! 파바밧!
빠르게 석실을 누비던 야현의 모습이 마치 불이 들어왔다가 꺼졌다를 반복하는 것처럼 사라지고 나타나기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권능, 어둠의 이동이었다.
사방을 어지럽게 움직이던 야현이 석실 중앙에 다시 서며 검무를 이어갔다.
고오― 후우웅!
달라진 점이 있다면 매끈한 야월의 검신에 탁한 회색 강기가 담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검기였다.
야월의 검이 마치 번개를 담은 구름이 따라다니는 듯 울음을 토해내며 공기를 갈라 갔다.
검기는 검사(劍絲)로, 검사는 검강으로.
무형의 강기가 서서히 유형으로 바뀌어 갔다.
쾅!
검강을 담은 야월이 석실의 벽면을 쳤다.
묵직한 파음과 함께 석벽에 깊은 상처가 만들어졌다. 그 일격이 시작이었다.
한없이 느리던 야월이 한순간이지만 한쪽 석면을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닌가.
시퍼런 회색 강기가 단숨에 벽면을 뒤덮었다.
콰과과과과과광!
석실이 뒤흔들릴 정도로 큰 폭음과 함께 천장에서 돌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그렇게 석벽 한 쪽에 빼곡한 상처를 남긴 야현의 움직임이 멈췄다.
야현은 마주 선 석벽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붉은 동공을 가진 눈에서 짙은 회색 안광이 터졌다.
쿠오오오오!
야현을 중심으로 무형의 기운이 회오리처럼 일었다.
스윽!
야현이 야월을 세우며 보폭을 넓혔다.
히죽.
송곳니를 드러낸 음산한 웃음.
동시에 거센 바람 앞에라도 선 것처럼 야현의 옷자락이 찢어질 듯 거세게 펄럭거렸다.
회색빛 검강의 색이 점점 검게 짙어졌다.
야현의 마지막 한 수.
전진이 무림을 호령할 수 있었던 무결, 선천공(先天功).
선천공은 자연의 기운을 한순간 흡수해 가진 내력과 융화시켜 일순간 폭발적으로 내력을 극대화시키는 내공심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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