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ampire went to Murim RAW novel - chapter (17)
17화
“괜찮습니다. 미처 옷차림에 신경을 쓰지 못한 본인의 잘못도 없지 않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여인은 부드러운 자태로 야현을 객잔 안으로 안내했다.
야현은 뒷짐을 지며 객잔 안을 살폈다.
객잔 안을 꾸미고 있는 그림이나 소품들이 꽤 화려했다. 모르긴 몰라도 아무거나 하나 집어가 팔아도 적지 않은 돈을 만질 것 같았다.
“인사 올립니다. 오(五) 총화(總花) 초영이라고 합니다.”
“총화라…… 총관 같은 직입니까?”
야현의 물음에 화영은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야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며칠 머물까 합니다.”
“몇 층으로 모실까요? 사 층부터 육 층까지 있사옵니다.”
“당연히 층이 높아질수록 비싸겠지요?”
야현의 물음에 초영은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은 층이 높은 것도 좋지만 조용한 곳이 더 좋습니다. 별채가 있을 듯한데…….”
별채라는 말에 초영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북경에서 비싸기로 따지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천상객잔이었다. 그렇다 보니 천상객잔의 별채는 거부가 아닌 이상에야 어지간한 부자들도 부담스러워하는 곳이었다.
여력이 되는 거부들이나 고관대작들은 북경에 큰 저택이나 장원을 소유하고 있어 실상 별채가 사용되는 날은 일 년 통틀어도 손에 꼽힐 정도였다.
“가격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정도 여력은 있으니.”
야현이 초영에게 전갑을 던졌다.
“죄, 죄송합니다.”
행색이 비루하지는 않지만 평범한 옷을 입고 있었기에 내심 조금은 야현을 낮춰 봤던 초영이었다. 하지만 그런 내색을 하면 안 되는 것이 불문율이라면 불문율.
초영은 급히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사과할 일도 아닙니다. 격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온 본인에게도 잘못이 없다 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별채 이용료는 하루에 금 오십 냥이며, 식사만 제공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며칠 묵을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계산은 알아서 하세요.”
초영은 전갑을 열어 바로 확인하지 않고 조용히 소매 속에 넣었다.
“일단 술 한잔하고 싶군요.”
“조용한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조용한 곳보다는 야경이 좋은 곳으로 부탁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소녀를 따라오시와요.”
야현은 초영을 따라 삼 층으로 올라가며 깨끗한 견의 몇 벌과 별채의 창문을 가려 줄 것 등 소소한 몇 가지를 지시했다.
가격이 비싸서일까, 아니면 그저 때를 잘 맞춰서일까. 북적북적하던 일이 층과 달리 삼 층에는 썰렁할 정도로 손님이 없었다.
야현은 마치 벽에 구멍이라도 낸 것처럼 커다란 창 앞에 위치한 탁자로 향해 앉았다.
“술은 어떤 걸로 올릴까요?”
“적당한 걸로 알아서 주시면 됩니다.”
“기녀도 부를까요?”
그 물음에 야현은 초영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보였다.
“그대는 어떻습니까?”
초영은 뺨을 붉히며 새침하게 눈을 흘겼다. 다분히 일로 익숙해진 몸짓이겠지만 눈빛을 보니 아예 싫은 눈치도 아니었다.
“소녀라도 괜찮나요?”
“대답은 이미 했습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시와요.”
초영은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야현은 자연스레 탁 트인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이 워낙 크니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
그에 맞춰 하나둘씩 불을 밝히는 형형색색의 초롱들.
고즈넉하거나 웅장한 자연 풍광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초저녁 풍경이었다. 특히 명의 수도이니 그 풍경이 주는 느낌이야 오죽하겠는가.
그건 마치 돈이 아깝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오기를 잘했군.’
천하다면 천했던 과거 신분.
그리고 그때는 몰랐던 중원의 아름다움.
‘이거였어.’
악착같이 살아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랐다.
그럼에도 가슴 한구석에 허전함이 있었다. 오랜 시간 그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태어나 한 번도 오시하지 못한 고향, 바로 그 고향에서 세상을 오연하게 내려보지 못해서였다.
흡족한 미소.
기분 좋은 미소.
광오한 미소.
야현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들이었다.
“무엇이 그리 기분이 좋으신가요?”
풍경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초영이 쟁반에 술 한 병과 잔을 가지고 올라왔다.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본 객잔의 자랑 중 하나입니다.”
초영은 옆에 앉으며 백자에 담긴 술병을 탁자에 올렸다.
“서봉주(西鳳酒)이와요. 마음에 드시나요?”
야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초영은 술병 마개를 따고 술잔을 채웠다.
사실 야현은 서봉주를 잘 모른다.
하지만 술은 잘 안다.
향긋한 백주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초영이 따라준 서봉주를 한 모금 마셔 보니 목 넘김이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이 순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술이었다.
“마음에 듭니다.”
초영은 그 말에 미소를 지으며 다시 야현의 술잔을 채웠다. 그리고 야현도 초영의 술잔을 채웠다.
특별한 대화 없이 야현은 술잔을 기울이며 어느새 어두워진 야경을 감상했다.
초영은 노련하게도, 그런 야현에게 말을 걸지 않고 조용히 옆자리를 지키며 빈 술잔을 채울 뿐이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흘러 안주 세 접시가 탁자 위에 차려졌다.
“안주도 드시와요.”
초영이 안주를 집어 야현의 입으로 가져갔다.
“저는 안주를 먹지 않습니다.”
“……그럼 왜?”
“술상에 술만 놓여 있다면 그것 또한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야현의 대답에 초영은 입을 가리고 웃음을 보였다.
“대인 말이 맞네요. 앞으로는 구색만 갖출 정도로 준비하겠습니다.”
“드시고 싶은 것이 있으면 드셔도 됩니다.”
“어머!”
초영은 얼굴을 붉히며 야현의 어깨를 툭 쳤다.
“다음에도 소녀와 대작해 주시는 건가요?”
“그대만 싫지 않다면…….”
야현이 술잔을 들자 초영도 부끄러워하며 술잔을 들었다.
소소한 대화가 무르익어 갈 때쯤이었다.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는 아니지만 고즈넉한 분위기를 깨는 대화 소리가 삼 층으로 올라왔다. 그 소리의 주인들은 스물 안팎으로 보이는 선남선녀들이었다.
남자가 다섯, 여인이 셋이었다. 모두가 화려한 견의무복을 입고 있었다. 그렇기에 누가 봐도 무림 세가의 자제들임을 알 수 있었다.
야현은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저들로 인해 고즈넉함이 더해진 술 한잔의 여유가 깨진 탓이었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저들을 탓할 수는 없는 법.
그들이 나타나자 초영이 눈으로 실례하겠다는 뜻을 표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를 따라 야현의 시선도 삼 층으로 올라온 오남삼녀로 옮겨 갔다.
『하북팽가와 모용세가, 황보세가, 진주언가의 직계들이오.』
독고결의 전음.
북경으로 오면서 틈이 날 때마다 독고결을 통해 무림 전반에 대한 주요 사항들을 들을 수 있었다.
『하북팽가 소가주 팽무강과 이공자 팽무량, 막내 금지옥엽 팽화련.』
단단한 체구의 사내와 갓 소년티를 벗은 청년, 그리고 막 봉우리가 피는 방년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정도 무림의 구심점인 정도맹에는 양대 기둥이라고 불리는 강력한 두 파벌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소림사를 필두로 한 오파일방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남궁세가를 필두로 한 오대세가였다.
하북팽가는 오대세가에는 포함되지 않은 세가였다.
하지만 그 힘은 결코 오대세가에 뒤지지 않는다.
그런 하북팽가가 오대세가에 포함되지 않은 이유는 단순히 힘이 약해서가 아니었다. 하북팽가는 지역적 특성상 무림에서의 활동보다 군부에 투신하는 제자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하북팽가는 무림과 군부 양쪽에 발을 걸치고 있는 특이한 세가인 것이다.
또한, 정치적 영향력까지 고려한다면 오히려 오대세가에서도 때에 따라서는 한 수 양보를 해야 할 정도로 막강한 군부 실세 가문이기도 했다.
『팽무강 옆에 선 단창을 가진 이는 진주언가의 소가주 언가휘, 그리고 그 옆에 자색 경장을 입은 이는 차녀 언일미요.』
진주언가는 백 년의 역사를 갓 넘긴 신생 무가였다.
치열한 노력 끝에 산서성 내에서는 철옹성과도 같은 견고한 패주 자리에 올랐지만, 그것이 한계였다. 다른 오대세가처럼 무림 전반으로의 영향력을 확대할 만큼 무림은 녹록지 않았다.
그래서 진주언가가 찾은 길은 바로 하북팽가의 행보를 뒤따르는 것이었다.
십 년 전부터 진주언가에서도 적극적으로 군부에 제자들을 투신시켜 서서히 그 몸집을 키워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하북팽가와의 친분에 대단히 신경 쓰고 있었다.
『오대세가의 황보세가와 모용세가이며, 소가주 황보혁, 소가주 모용휘, 장녀 모용란이오.』
그 뒤로 칠 척에 육박하는 거구의 황보혁과 비롯해 호리호리한 체형의 모용휘, 이목구비가 선명한 미인형의 모용란을 바라보았다.
젊은 후기지수의 모습에 호기심이 든 것도 잠시, 야현은 다시 야경으로 시선을 돌렸다.
확실히 수하가 있는 것이 지금처럼 여러모로 편했다.
특히 독고결이 살수이다 보니 무림 전반에 대한 정세가 밝았다. 그의 보고를 받노라면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팽 소가주님, 오랜만에 들르셨습니다. 이공자와 팽 소저까지 오셨군요.”
“오랜만이네, 초 총화.”
묵직한 목소리의 주인은 팽무강이었다.
“호호, 그러게 말입니다. 소녀는 팽 소가주님의 얼굴을 잊어버리는 줄 알았사와요.”
“초 총화 눈에 나는 안 보이는가?”
또 다른 목소리.
날카롭고 얇아 얼핏 신경질적으로 들리는 목소리의 주인은 진주언가의 소가주 언가휘였다.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보고 싶었사옵니다, 언 소가주님.”
“알고 보니 풍류공자는 팽 형이 아니라 언 형이었구려.”
황보혁이 화통한 성품이 드러나는 호쾌한 농을 건네자,
“호호호호!”
“하하하하!”
그들을 비롯해 팽무량과 팽화련, 언일미, 모용란이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음?”
그 웃음 뒤에 야현의 신경을 자극하는 묘한 침음이 들려왔다. 침음을 흘린 이는 언가휘였다.
“삼 층 명당자리에 선객이 있는 줄 몰랐군.”
아쉬워하는 목소리.
“죄송합니다, 언 소가주님. 미리 언질이라도 하였으면 자리를 마련해 두었을 것인데…….”
초영이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 내로라하는 명문 무가의 자제들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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