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ampire went to Murim RAW novel - chapter (235)
235화
“혹여나 골치 아픈 신하가 있으면 말하게.”
야현이 손가락으로 목을 슬쩍 그으며 말을 이어 갔다.
“본인이 조용히 치워주지.”
“하하하하하하하!”
그 말에 주치는 대소를 터트렸다.
“고마운가?”
야현의 물음에.
“고맙지. 고마워.”
주치는 미소로 대답했다.
“선물이 있네.”
“……?”
“소림사와 무당파.”
“소림사와 무당파?”
“무림문파로서의 소림사와 무당파는 이제 없네. 사찰과 도관만이 존재할 뿐이지.”
“그 말은.”
“그대의 짐작이 맞아. 무림문파로서는 멸문이지만 종교로서는 맥을 남겨두었지. 그대가 어루만져 주게나. 그리하면 그대의 치세를 도울 좋은 손발이 되어줄 터이니.”
“허어―.”
주치는 너무 놀란 나머지 헛바람을 내뱉었다.
“정말 큰 선물이로군.”
“그래서 말이야.”
“……?”
“앞으로 어찌하면 좋겠나?”
“무얼 말인가?”
“무림.”
야현이 다부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에 주치의 표정도 바뀌었다.
“무림이라.”
“다시 한 번 묻겠네. 무림 말살을 원하는가?”
“흠.”
주치는 팔짱을 끼며 눈을 감았다.
고민이 깊은 만큼 그 시간도 길었다.
야현은 느긋하게 술잔을 기울이며 주치가 생각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해주시게.”
야현은 눈을 뜨는 주치를 직시했다.
“역시 그대의 웅심은 장대하군.”
“짐의 땅에 또 다른 나라를 원하지 않을 뿐이야.”
주치의 단호한 목소리에 야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건넸다. 그의 잔을 채운 후 야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려고?”
“가야지. 해야 할 일이 많으니.”
야현은 손을 가볍게 저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동시에 주치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눈동자에 슬픔이 담겼다.
주치는 술잔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한참이나 내려다보았다.
“슬퍼 마라.”
주치는 술잔에 비친 자신에게 그리 말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자리는 고독한 법이다. 홀로 걷는 법이다. 그러니 슬퍼 마라. 그대는 천자다. 이 땅에서 유일하게 고귀하다.”
주치는 단숨에 술잔을 털어 넣었다.
* * *
붉은 벽, 황금 기와.
자금성 이름 모를 전각 지붕에 야현이 서 있었다.
그는 한참이나 하늘에 떠 있는 달과 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주치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치, 그대는 여전히 본인의 친우인가?”
조용히 물었다.
* * *
5층 고루거각, 고급 주루 최상층에 야현이 앉아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야현은 술잔을 들며 창문 너머로 보이는 자금성 금색 기와를 쳐다보았다.
“흠.”
야현은 무거운 침음을 술에 섞어 마셨다.
탁.
술잔을 내렸지만 야현은 자금성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치.”
야현은 주치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의 이름을 조용히 삼켰다.
자신과 마주한 주치의 말과 행동이 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기분 탓이라면 기분 탓이라고 치부해도 무방할 정도로 아주 미세한 변화였다. 마침 주치의 기분도 좋아 보이지 않았으니 그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말면 그만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주치가 보인 눈빛.
그리고 자신의 땅에 또 다른 나라를 원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말.
그 둘 안에 담긴 절대자의 욕망을 읽을 수 있었다.
‘친우여, 그 욕망에 본인마저 버리려는가?’
파삭!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는 바람에 쥐고 있던 술잔이 부서졌다.
‘지금이라도.’
야현의 눈동자에 붉은빛이 일렁거리다가 꺼지기를 수회.
그 시각,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주치를 바라보는 한 마리 모기의 눈에서도 붉은빛이 만들어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니다. 아니야.”
야현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눈에서 피어나는 붉은 기운을 지웠다.
“믿어야지.”
믿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야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술잔을 잡으려 했다.
“이런.”
술잔은 이미 자신의 손에 부서진 지 오래.
야현은 고개를 돌려 깨끗한 복장을 한 점소이를 부르려 했다.
탁.
그런 야현 옆에 한 여인이 앉으며 술잔을 내밀었다.
“무슨 고민이 그리도 깊으신가요?”
스물 중반쯤 되어 보였다.
야현은 그녀의 화장과 옷을 살폈다.
“기녀는 아니랍니다.”
양손으로 턱을 괴며 눈웃음을 그렸다. 양팔이 모이며 자연스레 가슴이 도드라졌다.
제법 가슴이 파인 옷이라 상당히 선정적으로 느껴졌다.
“그리 보이오.”
그녀의 행동과 말이 상당히 농염하지만 천박하지는 않았다.
“일행은?”
야현은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혼자예요.”
끈적거리는 시선에 야현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들어 그녀가 가져온 술잔을 비롯해 2개의 술잔을 채웠다.
“아름다운 숙녀를 위하여.”
야현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잔을 들었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 * *
쪼르르.
묵직한 기운을 가진 사내가 고심에 찬 얼굴을 하고 있는 진무사 팽일로의 잔을 채워주었다.
팽일로는 술잔이 만들어낸 파음에 고심에서 깨어나 함께 자리하고 있는 이들을 쳐다보았다.
술잔을 따른 가문의 충신이자 배다른 동생, 팽일도와 군에서 가장 신뢰하는 수하이자 금파랑, 그리고 장남이자 소가주인 팽무강, 이렇게 셋이었다.
탁자 위에 놓인 초의 길이가 제법 짧아져 있었다.
생각보다 상념이 길어졌던 모양이었다.
“한 잔 들자꾸나.”
팽일로가 잔을 비우자 그제야 팽일도와 금파랑, 팽무강이 각자의 잔을 비웠다.
팽일로는 조용히 품에서 손바닥보다 작은 금패를 하나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게 무엇입…….”
“……!”
“……!”
금패를 눈으로 살피던 셋의 눈이 부릅떠졌다.
단순히 금으로 만들어진 패라서 놀란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금패는 황제가 내리는 것으로 황제를 대리하여 일정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어패이기 때문이었다.
장수에게 내릴 권한이 무엇이겠는가?
바로 군권이리라.
자연스레 셋의 시선이 금패에 적인 ‘친군지휘사(親軍指揮使)’라는 글자로 향했다.
“내일 폐하께서 의란사(儀鸞司)를 폐(廢)하고 친군지휘사를 새로이 창설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 수장 자리에 내가 오를 것이고.”
“…….”
“…….”
모두들 궁금할 법도 할 텐데도 그들은 차분히 팽일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과 달리 그들의 눈빛은 강렬하게 바뀌고 있었다.
“친군지휘사는 지금까지의 체계와는 다르다. 난잡한 직위는 물론 문신들의 참관직도 사라질 것이다. 황제 폐하를 상하고 나에게서부터 일통된 수직의 명령 체계로만 이뤄질 것이다.”
쿵!
상상 이상의 충격을 주는 말이었다.
전군 통일된 명령 체계에 수직적 조직, 그리고 그 조직의 수장, 더불어 황제를 대리하는 군권까지.
말이야 쉽지, 이 땅의 모든 병력, 쥐어 짜내면 100만 대군을 동원할 수 있는 막대한 힘을 얻은 것이었다.
실질적으로 그는 현 조정의 막강한 실세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실세 중 일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실세 중 일인이 아닌, 승상도 눈치를 봐야 할 정도로 천하의 권력을 손에 쥔 것이었다.
“더욱 강한 군을 만들라는 어명이 내려질 것이다.”
누가 봐도 당연한 명령.
그리고 그러한 어명을 팽일로가 굳이 말할 이유는 없었다.
그 말인즉슨 숨은 어명이 있다는 뜻이었다.
“폐하께서는…….”
팽일로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강렬한 안광에 함께 자리하고 있던 셋도 긴장감을 내비치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무림을 지우시기를 바란다.”
“흡!”
“……!”
“흠!”
경악, 혹은 침묵으로 각자 놀람을 표현했다.
“소자가 알기에는 현재 야 공이 폐하의 뜻에 따라 무림을 재편하고 있는 것으로 아옵니다.”
팽무강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그러하다.”
“그런데…….”
“그러하지도 않다.”
“네?”
“야 공의 제안을 폐하께서 받아들이셨고, 그 제안은 무림 말살이다. 그리고 소림사와 무당파가 멸문하였다.”
더 이상 놀랄 일도 없다 여겼지만 이어진 말은 그들의 눈을 다시 부릅뜨게 하게 충분했다.
“그리고 순차적으로 오파일방에 이어 오대세가, 군소문파들을 지울 것이야.”
숨겨진 무언가가 있다.
“무림에 엄청난 혼란이 일어났겠군요.”
비록 무림에 한 발 걸치고 있다지만 하북팽가는 무림의 세가가 아닌 군벌의 무가였다.
어느 정도 무림에 귀를 열어놓고 있지만, 지금은 황실에 집중할 수밖에 없던 터라 무림에 대한 소식에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수일 내로 곤륜파와 아미파마저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지겠지.”
무림이 어떻게 되든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야 공이 오파일방과 오대세가를 지울 때, 우리는 개방과 쓸 만한 군소문파를 본가와 군으로 흡수한다.”
이제부터가 본론이었다.
“적당한 때에 야 공을 죽이고, 야회를 멸한다. 이후 무림의 잔존을 우리 손으로 완벽히 말살할 것이고, 이어 본가는 천 년의 제후 무가의 대망을 이룰 것이다.”
팽일로는 금패를 움켜쥐며 뜨거운 눈빛을 발산했다.
* * *
“소녀가 따라드릴게요.”
자작하는 야현의 손을 모용란이 가볍게 밀어내며 술병을 들어 야현의 잔을 채웠다.
야현은 조용히 술잔을 비웠다.
“이 밤이 지나면 오파가 완전히 지워지겠군.”
“그래도 도관과 사찰로서 명맥은 유지될 거예요.”
모용란이 빈 술잔을 채우며 말했다.
“그렇지.”
야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잔을 들었다.
“무엇이 그리도 가가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시나요?”
“훗.”
야현은 짧은 웃음을 토해냈다.
“친우 때문이신가요?”
모용란의 말에 야현은 술잔을 가져가다 말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렇군요.”
모용란은 야현의 눈빛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잔을 빼앗아 술을 마셨다.
“부모가 자식을 잡아먹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게 바로 권력입니다. 하물며 친우 따위야. 더욱이 그 권력이 가리키는 자리가 천하의 주인일진대.”
“모르지 않아.”
“그런데 뭘 고민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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