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ld After the Withdrawal of the Warrior Party RAW novel - Chapter 106
EP.106 약혼 – 1
새로운 강의 정령을 루실이 다루게 되었다.
다룬다는 표현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강의 정령을 이용해 완벽하게 치수를 할 수 있게 된다면 다룬다는 말 외에는 따로 묘사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괜찮은건가?”
“루실이 강의 정령과 교감하게 되는거? 괜찮아. 뭐… 시간이 흐르면 전의 정령과 비슷하게 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건 먼 미래의 이야기니까. 당장은 크게 신경 안써도 될거다.
난 걱정하는 발틴의 어깨를 툭툭 쳐주고 고개를 돌렸다.
정령 쪽 일은 이제 끝났으니 남은 건…
“으… 으으… 사, 살려… 살려주십시오…”
희생양을 바쳐서 자신의 힘을 기르려 했던 주술사를 조질 차례다.
벌레처럼 바닥을 꿈틀거리며 애원하던 사스딘은 나와 눈이 마주치기가 무섭게 경기를 일으켰다.
“히, 히이익! 악마!! 악마다!! 저, 정령을 소멸시키다니!!”
그 까짓거 소멸시킬 수도 있지.
하지만 사스딘은 완전히 겁에 질린 채 나에게서 멀어지려 애쓰며 다급하게 외쳤다.
“공주니임… 공주님…!! 옛부터 자연을 거스르고 핍박하려던 자는 아주 위험한 자였습니다…!! 저런 자를 곁에 두시면 안됩니다! 분명…! 분명 공주님에게 악영향을…”
“…사스딘 제사장.”
자신이 살 길이 루실 뿐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사스딘은 다급하게 기어가 루실에게 애원했다.
정말 눈물없이는 들을 수 없는 애원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난 살짝 눈물을 훔치는 퍼포먼스, 스킬 ‘악어의 눈물’을 선보였지만, 내 근처에 있던 상인들은 오히려 열받았는지 몽둥이를 꽉 잡았다.
“공주니임… 제가 왕가를 위해서 한 일이 얼마나 많은… 그, 그리고 저와 친한 귀족들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제바알…”
천천히. 루실은 내게 시선을 돌렸다.
“왜?”
“스승님. 스승님도 귀족들과 친하시죠?”
“그런 편이지?”
메인 스토리 뿐만 아니라 사이드 퀘스트 같은 것을 할 때 귀족들과 연관되는 경우도 분명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내 친구라 할 만한 사람도 분명히 있다.
“대귀족인 레이시 트랄만 후작이랑 친구고 로이터 가스오더 백작의 아들의 정신병을 내가 치료했고…”
그 외에 다른 몇몇 귀족의 영지 내에 발생한 문제들을 해결한 적이나 마물들의 공격을 막아 준 적이 있는만큼 친하다고 할 수는 있을거다.
물론 날 거슬려하는 귀족이 없다고는 못하니 이번 일로 날 꺼려하는 귀족이 공격하려고 하겠지만. 그래도 막아 줄 사람은 있겠지.
못 막아도 상관없고.
“그렇다네요.”
“그, 그…”
“그리고.”
루실은 지팡이를 양 손으로 잡고 웃었다.
꽤나.
싸늘하게.
“제 스승님을 모욕한 죄. 용서할 수 없어요.”
-퍽!!
“꾸에에엑!!”
나이스 샷.
허리 쓰는게 제법인데?!
제대로 된 마법사는 마력 다 떨어졌다고 손가락만 빨지 않는다.
다들 기본적인 장법(杖法). 그러니까 지팡이를 이용한 타격술 정도는 익히고, 당연하겠지만 난 루실에게 장법도 가르쳤다.
내게 배운 장법대로 지팡이를 휘둘러 사스딘을 쓰러트린 루실은 더없이 냉정하게 으르렁거렸다.
“지금까지 당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죄값을 받게 할 겁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으… 아으으…”
루실의 살벌한 말투 때문일까? 아니면 지팡이에 제대로 맞았기 때문일까.
어쩌면 강의 정령이 소멸하며 입은 타격 때문일지도 모르지.
결국 사스딘은 거품을 물고 기절해버렸고 난 그를 패죽이기 위해 다가가는 상인들에게 손을 들었다.
“건드리지마.”
“하지만 현자님! 저 망할 주술사가 지금까지 제사장이랍시고 거들먹거리던…”
“거기에 인신공양까지 하려고 했다면 즉결처형해도 되는 것 아닙니까?!”
“물론 그렇긴 한데 말야.”
난 쓰러져 있는 사스딘을 염동력으로 들어올렸다.
“최후의 희생양이란 자신이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원래 국가는 공개처형을 원하기 마련이니, 왕국을 위한 희생양이 되게 해주자고.
사스딘에 대한 처분은 금방 이루어졌다.
왕성으로 그를 잡아가고 정보부와 백합기사단에서 빠른 고문을 시작했다.
이후 사스딘이 지금까지 저지른 일에 대한 악행이 꽤나 드러났다.
강의 정령과 교감에 성공한 이후로부터 그는 강의 정령에게 힘을 받기 위해 몇년에 한번씩 처녀들을 바쳤다.
이게 왜 걸리지 않았나 싶었는데 이유가 있더라.
사스딘이 강의 정령의 반려. 정확하게는 희생양으로 써먹었던 처녀들은 대부분이 피난민, 그 중에서도 아무것도 없는 약자들 뿐이었으니까.
은밀하게 그들을 납치하거나, 혹은 적은 금액을 주고 인신매매범들에게서 그들을 사와 정령에게 바친다.
이후 정령에게 힘을 받아 강한 주술력을 손에 넣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 몰래 강의 정령과 교감하여 제사장이 되고자 하는 제자들을 죽이기도 했다.
물론 그 외에도 자잘한 죄들이 많았다. 용병들을 고용해서 상인들을 압박해 돈을 많이 뜯어낸다거나, 축제때 벌어들인 수입의 일부를 가져간다거나.
축제 참가를 원하는 상단 중에 자기 마음에 안드는 상단은 멋대로 참가 못하게 한다거나 등등.
“…본인의 불찰이다.”
사스딘이 저지른 죄가 생각 이상으로 많자 여왕은 꽤나 풀이 죽었다.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며 보고서를 읽던 여왕은 얼굴을 쓸어만지더니 묵직한 한숨을 쉬었다.
“마왕 때문에 왕국이 혼란스러웠다고 하나… 수도에서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 줄이야. 이 일은 전적으로 여왕인 내 잘못이오.”
“…폐하의 잘못이 아닙니다. 이를 알아내지 못한 정보부와 재상인 제 잘못입니다…”
“소장이 전장에만 머무르며 수도에 신경을 쓰지 못한 탓입니다! 죽여주십시오! 폐하!!”
여왕.
재상이자 궁정마법사인 루켈.전장에 나가 있던 레오덴 장군과 그 외에도 몇몇 대신들이 이번 일 때문에 꽤나 속 쓰려하고 있었다.
“…현자에게 또 빚을 지고 말았군.”
“신경쓰지 마시죠.”
그래. 이번 일은 여왕이 딱히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사스딘이 작정하고 숨긴데다가 그에게 뇌물 받은 몇몇 귀족이나 대신이 잘못된 보고서를 올려 여왕의 눈까지 가리고 있었는데 뭐라고 하겠나.
물론 여왕 정도 되는 사람이 그런 것도 파악 못해 무능하다는 평가가 좀 나오긴 하겠지만 다른 일은 잘 했하니까 넘어가도록 하자.
특히 날 방해하지 않는게 매우 마음에 들어.
“이 일을 세간에 알려 일벌백계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경고해야겠소.”
여왕은 꽤나 진지했다. 관리 책임을 따진다면 자기에게도 타격이 있을텐데 그걸 알리겠다니.
양심은 있네.
“그리고 사스딘에게서 압류한 재산과 왕가의 재산을 합쳐 피해자의 유가족에게 보상을 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제사를 지내려 한다.”
“그렇군요.”
“그래서 말인데. 현자. 그들을 달래는 제사를 지내 줄 수 있겠소? 그리고 루실을 도와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는 관직을…”
“아. 그건 안할 겁니다.”
울적해하면서 은근슬쩍 내게 기대하는 여왕에게 난 딱 잘라 선을 그었다.
회의가 끝나고 며칠 후. 왕국 수도의 광장에 처형장이 마련되었다.
그 처형장에 오르게 된 것은 사스딘과 그 부하들. 이 일을 알면서도 그를 옹호하고 뇌물을 받아먹던 대신과 귀족 몇명이었다.
당연하겠지만 저들 뿐만아니라 귀족들 중에도 죄가 약한 이들은 강등이나 벌금 같은 처벌을 받기도 했다.
물론 뇌물 좀 받았다고 처벌받게된 귀족들과 그들의 동조자들의 반발을 하지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쩔건가.
왕국 내에서 가장 높은 귀족인 레이시 트랄만 후작과 귀족 중에서도 꽤 강한 세력을 지닌 로이터 가스오더 백작이 대놓고 나와 왕가를 옹호했는데.
역시 세상은 인맥이 최고다.
“죽여라!! 죽여라!!”
“매달아서 불태워버려!!’
“사지를 찢어서 개먹이로 줘버려라!!”
“죽여어어!! 저 미친 늙은이!! 죽여버려어엇!!”
신 났네.
광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썩은 토마토나 계란, 돌 따위를 가져와 처형대로 올라가는 이들에게 던지기 시작한다.
그것 때문에 분노한 몇몇이 으르렁거리기는 했지만 어쩔 것인가.
이미 처형 준비는 끝났는걸.
“죽여라!! 죽여라!!”
피를 원하는 사람들이 외치고 있다.
그들의 흥분을 더욱 높여주기 위한 오늘의 시작 이벤트.
사스딘의 거열형, 즉 사지를 찢어죽이는 형벌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으아아악!!”
발악하는 사스딘의 양 팔과 양 다리에 사슬이 묶인다. 그 줄이 처형을 위한 소에 걸리자 환호성이 더 강해진다.
개중에는 사스딘을 처벌해 준 여왕과 이번 일을 해결한 나와 루실을 찬양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건 뭐 루켈이 보낸 바람잡이 일테니 신경쓰지 말자.
“끄아아아아아악!!”
“죽여라!! 죽여라!!”
더 볼 필요 없겠군.
사스딘의 비명소리가 강해질 수록 사람들의 환호성 역시 강해진다.
그것들을 들으며 난 후드를 뒤집어 쓰고 웃었다.
누구든지 내 업적작을 방해하면 좆되는거야.
“어이! 현자님! 뭐 저런 걸 보고 있어? 괜찮은 의뢰 받아놨어! 같이 가자고!”
모험가 길드에 갔던 발틴이 활기차게 외치며 다가왔다.
그래.
중요한 건 저딴 놈들 처형당하는 것 따위가 아니지.
“뭔데?”
“토스디노 농장 쪽 마물 처치. 그거 끝나면 목장에서 양고기 파티 한다는데. 할거지?”
양키우는 목장?
그럼 잘하면 거기서 양치기 의뢰도 할 수 있겠군.
“그야 당연히.”
하나라도 더 많은 의뢰를 해결해야 한다.
***
회의실에 모인 것은 왕국의 중진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첫번째는 당연히 여왕.
그리고 다음은 그녀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궁정마법사 루켈.
그리고 다음은 왕성의 수비대장이며 왕국 기사단인 백합기사단의 단장인 이시나 단장이었다.
원래라면 레오덴 장군도 참가해야 하지만 전장을 오래 비워 둘 수 없는 그는 사스딘의 처형이 결정된 날 떠났다.
그 외에 몇몇 왕국 중진 대신들이 모인 회의장에서 여왕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이 쉽게 해결되어 다행이군.”
“그렇지요.”
정말 말 그대로 천만 다행이었다.
만약 현자가 사스딘과 관련된 일을 해결해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축제를 열기 위해 산제물을, 그것도 이번에는 귀족을 정령에게 바쳤다는 사실은 언젠가 알려지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하여 왕국은 많은 나라들 뿐만 아니라 왕국의 귀족들에게도 크게 지탄받을 것이 분명했다.
“역병 사건 이후 만들어진 종족협의체에서 왕국이 앞설 수 있었지만…”
자기 나라도 단속 못하는 주제에 무슨 종족연맹에서 앞서나갈 수 있느냐 말하면 할 말이 없다.
그래도 이정도면 다행이다.
이미 희생양이 된 이들이 있기에 타격을 입긴 하겠지만 어쨌든 왕국의 힘만으로 사스딘을 비롯한 왕국의 암덩어리를 잘라낼 수 있었으니까.
타격은 있을지언정 종족연맹에서의 위치가 크게 밀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현자에게 몇번을 감사해도 모자라겠군. 루켈. 현자가 이번 일의 대가로 따로 바라는 것이 있던가?”
“없습니다.”
신기한 남자다. 이만큼 왕국을 위해 일을 해놓고서 이렇게 욕심도 없다니.
“그런데 지금 그는 뭘 하고 있나? 원래 이런 회의에는 잘 참가하더니…”
“음…”
루켈은 잠시 신음하다가 떨떠름하게 답했다.
“토스디노 목장에서… 양을 좀 치고 오겠다고 했습니다.”
“…뭐?”
토스디노 목장은 수도에 인접한 목장으로 양모와 양고기를 얻을 수 있는 대형 목장이다.
양모를 쓸 일이 많으나 제대로 된 양치기는 구하기 힘들다.
그런만큼 목장에서는 힘 좋고 능력있는 모험가들에게 양치기 의뢰를 맡기곤 한다.
물론 D랭크정도의 수준 높은 의뢰는 아니라 모험가들이 기피하는 의뢰 중 하나였다.
그런 사소한 일을 왕국을 구하고, 정령을 소멸시킬 정도로 강한 현자가 하고 있다니.
“하.”
현자를 생각하면 정말 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다.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회의실에 있는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봤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끄응… 아무튼 현자가 더 오랫동안 왕국에 남게…”
그때였다.
회의실의 문이 벌컥 열리자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또각. 또각.
부츠의 굽이 대리석 바닥을 두들기며 흰색 제복바지에 감싸진 늘씬한 다리를 보여준다.
탄탄한 허벅지 위에 자리잡은 풍만한 골반. 그 골반에 어울리지 않는 잘록한 허리.
고급스러운 백색 제복으로 감싸고 있지만 전혀 감출 수 없는 도드라진 흉부.
어깨에 살짝 닿는 수준의 검은색 보브컷의 미녀가 들어와 한쪽 무릎을 꿇자 여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왕폐하를 뵙습니다.”
정중하지만 차가운 목소리.
마치 얼음과 같은 젊은 미녀의 무뚝뚝한 표정을 응시하던 여왕은 한숨을 쉬었다.
“어서 오시게. 레이시 트랄만 후작. 이번 일은 감사를 표하지.”
레이시 트랄만.
몇해 전 쟁쟁한 가주 후보들인 오빠들을 제치고 트랄만 후작가의 가주가 된, 세간에서 ‘철혈’이라 불리는 여인.
뛰어난 자질을 지녀 젊은 귀족들을 이끌고, 마치 춤추는 듯한 뛰어난 검술로 ‘검희’라는 이명을 지녀 대륙의 수많은 검사들에게도 존경받는 그녀는 인사할 때와 같이 지극히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현자를 도운 일에 대해서는 딱히 부담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는 제 친우이며, 비지니스 파트너이기도 하니까요.”
“그렇군. 그런데 아직 가문의 장악이 끝나지 않아 외출하는 것이 쉽지 않아 왕가의 지시에도 영지에서 나오지 않더니. 무슨 일로 찾아오셨는가?”
살짝 날이 선 여왕의 질문에 레이시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제 친우인 현자와 표면적으로나마 약혼을 하려 합니다. 부디 왕가에서 허락해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그 말에 여왕은 또다시 눈살을 찌푸리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커다란 산 하나를 넘었더니 또다시 커다란 산이 나타나버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열시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