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ld After the Withdrawal of the Warrior Party RAW novel - Chapter 72
EP.72 내가 틀렸다는 것을 – 1
***
“마법을 배워 보는 건 어때?”
기사라 하여 마법을 쓰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특별한 장비를 이용하여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기사라 불리는 이들이 분명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오로지 긍지 높은 기사를 꿈꾸고 있는 이들에게 마법기사는 사도나 다름없었다.
모름지기 기사라 하면 마법 같은 것이 아닌 검과 방패에 모든 것을 맡기며 자신의 육체를 극한까지 단련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만큼 현자의 조언은 레벤티아의 속을 긁는 발언이 아닐 수 없었다.
“…넌 지금 나에게 기사의 길을 버리라고 말하는 건가?”
“그건 아니야. 그냥 효율을 얘기하는거지.”
“마법기사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물론. 마법을 쓰기 위한 매개체인 마법검, 그리고 마법에 적응력이 높은 갑옷과 관련된 훈련이지.”
마법에 적응력이 높은 갑옷이라는 말에 레벤티아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진지해보이는 현우를 지그시 보던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나에게 그 파렴치한 갑옷을 입히고 싶은 건가? 넌 그렇게 내, 내 소, 속살을 보고… 싶은 건가??”
“아니. 날 뭘로 보고. 그런 건 관심없어.”
“…..”
“여러 면에서 봐도 비키니 갑옷의 효율은 다른 갑옷보다 훨씬 낫다고. 거기에 마법까지 익힌다면 더욱 그렇지. 저번에 메나리우스를 잡을 때 기억 안나?”
메나리우스.
마왕의 부하 중 하나로 강력한 물리 방어력을 지녔던 적이다.
그때 물리공격 위주인 자신의 공격은 거의 효과가 없었던 것을 떠올린 레벤티아는 이를 악물었다.
현자의 지적은 언제나 자신의 가슴을 찌르는 칼날처럼 아프다.
그리고 언제나 말한다.
너는 틀렸다고.
“그건 소수의 경우에 불과해. 나는 지금 걷고 있는 길로도 충분해.”
“흠…”
“그리고 파티에서 마법은 네가 쓸 수 있으니 된 것 아닌가? 클레어의 차원계열 마법도 있고.”
“차원계열 마법은 사용처가 한정되어 있는데다가 포탈을 제외하면 효율이 나쁘잖아. 내가 없는 곳에서는 어떻게 하려고?”
이 세계의 던전은 최대 인원이 3명인 곳이 많다. 외부에서 싸우는 것이라면 지원이 가능하지만 그런 곳이 아닌 이상에야 마법은 오로지 클레어만이 담당해야 했었다.
하지만 클레어가 쓸 수 있는 차원계열 마법도 위력은 좋지만 마력소모율이 상당한 만큼 몇번 쓸 수 없다. 그러니 나중을 위해서라도 그 구멍을 메꿔 줄 수 있는 사람은 분명 필요했다.
“그리고 넌 마법 적성도 있잖아.”
현우가 에반젤린이 아닌 자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도 알고 있었다. 얼마 전에 들렀던 도시의 마법사 길드에서 마법사가 한 말 때문이었다. 마법기사로서의 적성이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그 이후로 현자는 계속해서 마법기사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렇기에 레벤티아는 오히려 반발심이 피어올랐다.
이제 곧 기사의 궁극기를 익힐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마법기사가 되어 마법을 익히게 된다면?
그만큼 궁극기를 익히는 것이 늦어질 것이다.
예전에 현자가 말했었다. 자신은 모든 직업의 스킬을 쓸 수 있지만 그들의 궁극기만큼은 쓸 수 없다는 것을.
그렇기에 현자를 질투하며 그보다 더 낫기를 바라는 레벤티아에게 지금 당장 급한 것은 궁극기를 빨리 익히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보다 낫다는 증명이 될 수 있을테니까.
“마기를 가진 적 중에는 물리공격이 통하지 않는 놈도 있어.”
“그래도 싫어.”
“흠… 그럼 궁극기를 익힌 이후에는 어때? 내가 도와줄테니까.”
흠칫. 레벤티아는 현자의 말에 가슴이 덜컹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설마 자신의 속내를 알고 있는 것인가?
레벤티아는 입 안이 바짝 말라가는 것을 느꼈다.
자신 스스로가 현자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고, 그를 질투하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버석버석한 모래라도 입 안에 있는 모양이다. 바짝 마른 입 안을 간신히 적신 그녀는 갈라지는 목소리를 숨기며 힘겹게 말했다.
“싫어.”
나를 틀리지 않았어.
그렇게 레벤티아는 도망치듯 현자에게서 멀어졌고 홀로 수련장에 들어가 검을 휘둘렀다.
언제나 옳은 현자의 길이 자신에게는 틀리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클레어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현우가 루실과 세실만 데리고 전투에 참가한 이유가 뭔지 그녀는 알 것 같았다.
“전격마법 아무거나! 화염계열 초급 두번!”
“라이트닝 볼트! 파이어 애로우!! 파이어 볼!!”
“세실!! 대지마법으로 주변 막아!”
“어? 어어! 어스 바인드!”
권갑을 착용한 현자의 몸놀림은 숙련된 몽크와 비교해서 전혀 밀리지 않았다. 사제의 스킬인 빛의 축복이라도 쓴 것인지 현자의 권갑은 은은한 성력을 담고 있었다.
그렇기에 검은 기운에 감싸져 있는 브론즈는 아까 전 자신들과 싸울 때와 비교해서 확실하게 타격을 입고 있었다.
“윽!!”
마법, 그리고 성력.
마법과 물리력만으로 잡으려 할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흡!!”
-쿠웅!!
머리를 노리는 공격을 피한 현자가 크게 발을 내딛었다. 몽크의 고급 스킬인 진각은 주변을 잠식하고 있는 죽음의 기운을 한순간에 사라지게 만들기 충분할 정도로 청명하고 강했다.
“오아!!”
이어지는 것은 일격.
내딛은 발은 무겁고 내뻗는 주먹은 가볍게.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물과 같이.
뛰어난 몽크들이 자주 쓰는 강력한 일격인 붕권을 그대로 묘사한 듯한 자세다.
내밀어진 주먹은 브론즈 영주의 가슴 부분에 꽂혔고, 그 일격만으로 브론즈 영주의 검은 기운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흐, 흐흐흐… 아직이다… 아직이…”
검은 연기가 되어 사그라들며 검은 기둥으로 빨려들어가면서 브론즈 영주는 현우를 조롱했다.
부족해보인다.
충분히 브론즈 영주를 압도하고 있지만, 마지막 타격을 입힐 손이 부족해보인다.
나가야 할까? 하지만 현우가 세실과 루실만을 전투에 참여시킨 이유는 자신들이 공격에 마력을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클레어가 안타까움에 한숨을 내쉬는 것이 보인다.
차원마법은 지금 당장 쓸 수 없겠지. 아까 전 너무 많이 써서 마력이 부족할 테니까.
자꾸만 과거에 현우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레벤티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역시.
네가 옳았다.
레벤티아는 품에서 한자루 단검을 꺼냈고, 그것을 본 클레어는 화들짝 놀랐다.
“그건…”
기존에 그녀가 사용하는 중병기가 아닌, 은색 계통에 붉은색 보석이 박혀 있는 단검.
기사가 사용하기에는 너무나도 화려해보이는 그 검은 클레어도 익히 알고 있는 검이었다.
“…마법검?! 설마 레벤티아! 너….”
“…언제나 후회했었어.”
레벤티아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천천히 검을 양 손으로 잡았다.
“이것으로 사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레벤티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언제나 진지한 기사였고, 기사의 길을 걷겠다고 말했던 레벤티아가 마법검을 들었다는 것은 클레어를 놀라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애써 웃은 레벤티아는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우우웅!!
주변을 환하게 물들이는 빛에 클레어는 살짝 눈을 감았다 떴고, 그곳에서 볼 수 있었다.
피부를 노출하며 싸울 바에는 차라리 죽겠다고 할 정도로 노출을 극도로 싫어하는 레벤티아다.
그런 그녀가.
마법기사의 장비인 비키니 갑옷을 입은 채 마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각오를 한 것 같지만 부끄러운 것은 여전한 듯 싶다. 레벤티아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는 것을 클레어는 멍하니 바라보았고, 레벤티아는 침을 꿀꺽 삼킨 후 검을 쥐었다.
-우우우우웅…!!
짧은 단검에 마력이 담긴다. 순식간에 양손검 수준으로 커진 마법검을 꽉 쥔 레벤티아는 클레어에게 애써 웃어보였다.
“난 괜찮아. 난…”
그래. 잘못된 길을 고집하며 현우에게 상처를 준 자신이다.
그런 자신에게 이정도 수치는.
아무것도 아니다.
레벤티아는 이를 악물고 현자를 향해 뛰어나갔다.
***
마왕과 싸울 때 용사의 검으로 공격하지 않으면 마왕을 쓰러트릴 수 없는 것처럼, 이 게임의 보스전에는 클리어하기 위한 조건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무지성으로 공격만해서 끝나는 경우를 막기 위한 개발사의 정말 쓰잘데기 없는 배려 탓이었다.
물론 고인물들은 좋다고 난리쳤지만 이게 현실이 되니 진짜 귀찮기 짝이 없는 공략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브론즈 역시 그런 쓰잘데기 없는 배려가 들어간 보스였다. 2페이즈에 들어가면 브론즈가 검은 기둥에 흡수되며 마왕의 힘을 이용하는데, 마왕이 용사의 검에만 타격을 입는 것처럼 브론즈 역시 마법 공격에만 타격을 입게 된다.
심지어 검은 기둥이 내뱉는 브론즈를 쓰러트려봤자 계속 부활하기만 할 뿐.
진짜 공격은 저 기둥을 쳐야 한다.
하지만 브론즈가 나왔을 때는 기둥은 피해무효화가 걸려버리기까지 하니, 무조건 마법사를 두명 정도는 포함시켜야 안정적으로 싸울 수 있었다.
마법사 없이, 인챈트가 안되고 깡공만 높은 무기 들고 왔으면 집에 가라는 쓸데없는 기믹이 담겨 있는 것이다.
참 더러운 기믹이다.
“공격! 공격!”
브론즈가 기둥으로 들어가자 난 후방지원을 하는 두 마법사에게 외쳤다. 그리고 월광을 지팡이로 바꾼 후 나도 마법을 사용했고.
세명의 마법에 두들겨 맞던 검은 기둥이 크게 요동치며 또다시 브론즈를 내뱉자 난 마력회복포션을 들이마신 후 마력분배를 사용했다.
계속된 마법으로 마력이 부족해진 세실과 루실에게 마력이 채워지기 시작하자 브론즈는 상처입은 야수처럼 포효성을 터트렸다.
“어디이이일!!”
내가 아닌 둘을 공격하려는 듯, 브론즈는 허공으로 높게 뛰어올랐지만.
어딜 도망가?!
-콰아아앙!!
뛰어오른 놈의 다리를 잡은 나는 그대로 바닥에 내리 꽂았다. 흙먼지와 함께 바닥을 나뒹군 브론즈가 벌떡 일어나 양 손을 펼친다. 그와 동시에 검은 기운이 일렁이며 둘을 노렸고.
-우우우웅!!
그 검은 기운이 연청색 보호막에 의해 막혀버렸다.
어라? 난 안썼는데?
“…헐.”
이번에는 나도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마법을 쓴 것이 누군지 알았기 때문에.
“…너 꼴이 그게 뭐냐?”
“……”
새빨개진 얼굴로, 한 손에는 마력검을 쥐고, 다른 팔에는 라운드 실드를 착용하고 있는.
크롭티 정도의 상의와 핫팬츠 수준의 짧은 갑옷의 여기사.
근육질의 새하얀 몸이 잔뜩 달아올라 수치심으로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다는 것이 눈에 띄게 보이는 레벤티아였다.
브론즈 역시도 나처럼 황당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레벤티아가 저런 갑옷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그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잠시 그녀를 응시하던 브론즈는 어이없다는 듯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크, 크하하하!! 레벤티아! 기사의 길을 걷겠다던 네년이 그런 파렴치한 복장을 해?! 하하하! 그래! 그거다! 힘을 위해서라면 그런 것 따위는…”
“…아니야.”
레벤티아는 마력검을 꽉 쥐었다. 그리고 한걸음 나서며 내 옆에 선 후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증명하고 싶었을 뿐이야.”
“증명?”
힐끔, 레벤티아는 나를 본 후 다시 시선을 돌렸다.
-우웅. 우웅. 우웅.
검에 담긴 마법들이 발동하기 시작한다. 대부분 지원마법.
공격을 서포트하기 위한 레이저와 얼음구슬 같은 것들이 주변에 떠오르자 브론즈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약점이 마법공격임을 알고 있기에.
그런 그를 향해 레벤티아는 검을 겨눴다.
“…현자가 항상 옳았다는 것을. 그리고…”
-철컥.
검을 당겨 양손으로 쥔 그녀는 빠르게 튀어나가며 말했다.
“…나는 결국 틀렸다는 것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헤엄치는새님 후원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저는덕꾸입니다님 후원 진짜진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말물말물입니다!
으아… 휴일이 끝났네요ㅠ
그래도 다음주 월요일도 쉴 수 있으니까… 어케든 한주 잘 버텨봅시다!
그럼 내일 만나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