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ld After the Withdrawal of the Warrior Party RAW novel - Chapter 87
EP.87 그러니까 – 3
사람에 따라 원하는 휴식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침대에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휴식을 취하는 사람도 있고, 또 누군가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으로 휴식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기에 세실은 자신이 가진 휴식의 취향에 감사했다.
“우리가 여기서 쉬며 치유를 받는 동안 뭘 하느냐에 따라 현자의 고통이 가중되나? 예를 들면 비싼 것을 이용한 휴식을 취한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니 부담을 느끼지 말고 편하게 쉬시면 됩니다. 말씀 드렸듯 휴식과 치유에 필요한 것은 뭐든 제공해드릴 수 있습니다. 다만. 이곳에서 모두 사용하셔야겠지요.”
레이아는 진심을 담아 말했고, 세실은 피식 웃었다.
그 말을 기다렸다.
“그래? 그럼 마법서를 줄 수 있나? 난 공부를 하는 것으로 치유받으니까.”
“마법서라면…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최상급 마법서.”
공국은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마법이 발전했고, 또 귀한 마법들을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최상급 마법에 대한 개발만큼은 다른 곳과 큰 차이가 없었다.
뛰어난 재능으로 공국 내에서 구할수 있는 최상급 마법을 대부분 익힌 세실은 이 기회를 이용하기로 했다.
“현재 이곳에서 보유중인 최상급 마법서를 전부 가져와. 그리고 마력회복을 위한 물품도 전부 가져오고. 아. 거기에 음식들도 줬으면 좋겠군. 홍차는 다즐링으로 하고…”
그녀의 긴 요구에 레이아는 잠시 침묵하다가 손을 들었다. 그와 동시에 문이 열리며 몇권의 마법서와 더불어 세실이 요청한 물품들이 제공되었다.
그것들이 자리에 놓이자 세실은 바로 마법서를 살펴보았다.
이건 배운 것이다.
이건 아는 것이다.
이건 이미 익힌 것이고.
마법서에 적혀 있는 제목을 빠르게 흝어보던 세실은 지금까지 그녀가 오랫동안 찾던 마법서와 지금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마법서를 발견했다.
“이것과 이것. 두권 빼고 전부 가져가.”
“알겠습니다.”
세실이 고른 것은 환상계열의 최고급 마법인 공상구현이었다.
일종의 결계를 만들어 그 안에 자신의 환상을 구축하는 강력한 환상계열의 마법.
일정 수준 이하의 정신력을 지닌 자들은 환상을 진짜라 여기게 되어 전투 불능이 되는, 다수에게 피해를 입혀야 하는 전쟁에서 상당히 유용하게 쓰이는 강력한 마법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수천의 선.’
공상구현과 달리 한명에게 쓰이는 마법으로 악성향을 지닌 이에게 강력한 데미지를 주고 선성향을 지닌 이에게는 버프를 주는 성력과도 같은 마법이다.
악마와 같은 악성향의 적과 싸워야 할 때 이 ‘수천의 선’은 자신이 익힌 어떤 마법보다 분명 큰 도움이 될거다.
가볍게 두권의 마법서를 챙긴 세실은 고급스러운 책상에 앉은 후 마력회복용 수정구를 옆에 놓은 뒤 고개를 돌렸다.
“어이 추기…”
자신과 다르게 베로니카가 이곳에서 원하는 것 따위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벌써 방 한구석에 제단까지 마련한 채 자리를 잡고 기도를 하고 있다.
참으로 욕심없는 여자다. 아니 욕심이 많다고 봐야할까?
아까까지만해도 절규하던 그녀가 순식간에 태도를 바꾼 이유를 세실은 알수 있었다.
‘현자를 위해서겠지.’
이곳이 치유를 위해 뭐든 제공되는 곳이라면. 어쩌면 현자가 들어간 곳은 고통을 위해 뭐든 제공되는 곳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겪어본 바, 현자는 자신이 가능하다고 한 것은 반드시 수행했었다.
그런 그가 스스로 고행의 시련을 골랐다.
왜?
그가 고통받는 것을 좋아해서?
그건 아닐거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현자에게는 고행의 시련을 버텨낼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은 얼마든지 대비해도 모자란 법.
시련이 끝났을 때 그가 반죽음 상태일 가능성은 결코 배제할 수 없다.
그때를 위해서라도 성력을 최대한 준비해놔야 한다는 것을 베로니카는 눈치챈 것이다.
‘정말이지. 쉽지않네.’
세실은 자신이 고른 두권의 마법서를 보았다.
한 나라의 지배자로서 언제 전쟁을 치룰지 모르는 만큼 그때를 대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 전쟁에서 유용하게 쓰일만한.
공국에서조차 구할 수 없는 최상급 마법인 공상구현은 그 무엇보다 그녀가 우선시해 익혀야 할 것이다.
이 치유의 시련이 언제 끝날지 모르니 지금 당장 공왕으로서 그녀가 익혀야 하는 것은 공상구현이다.
최상급 마법은 아무리 자신이라고 하더라도 익히는데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른다.
거기에 현자가 말하지 않았는가.
악마는 자신과 베로니카 추기경만 있으면 잡을 수 있다고.
그러니까, 덤에 불과한 자신은 여기서 공상구현을 익히는 것이 옳다.
세실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수천의 선’을 펼쳤다.
얼마나 긴 시간이 흘렀을까. 시간의 흐름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적막한 공간에서 간신히 수천의 선을 익힌 세실은 손을 들어 마법을 발동해보았다.
성력과 닮은 은은한 빛이 그녀의 손에 맺힌다.
그 빛은 성력을 쓸 수 있는 현자나 베로니카가 만들어내는 것처럼 무척이나 순수해보였다.
세실은 힐끔, 처음 나타난 이후 지금까지 자세 한번 흐트러지지 않은 레이아를 보았다.
저 여인도 악마의 수하라면, 수천의 선이 통할 것이다.
레이아를 쓰러트린 후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을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녀가 손에 쥐고 있던 빛을 날릴까 말까 고민하고 있을 때.
“끝났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눈치채기라도 한 것일까? 레이아는 문을 열었다. 그 안에 있는 것은 일렁임.
시련의 끝을 알리는 출구였다.
-타다닥!
석상처럼 두 손을 모은 채 계속 기도만 하던 베로니카가 벌떡 일어났다. 그녀가 쏜살처럼 시련을 빠져나가자 세실은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공상구현 마법서를 지그시 응시했다.
아깝냐 아깝지 않냐 묻는다면 당연히 아깝다.
하지만.
“딱히 그런 의미는 아니지만.”
세실은 터벅터벅 시련의 출구를 향해 걷다가 레이아를 보고 말했다.
“악마에게 기다리라고 전해. 사람을 갖고 논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임을.”
그녀의 협박에 가까운 말에도 레이아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마치, 해볼테면 해보라는 듯이.
시련에서 빠져나온 베로니카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다가 굳었다.
사라져가는 고행의 시련 앞에 서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꽤나 지쳐보이는 그는 무뚝뚝한 얼굴로 꼿꼿이 선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현우야!!”
시련에서 고생을 하고 나와 저 초췌한 몰골이 되었으면 누워 있을 것이지 왜 저러고 있단 말인가.
베로니카는 다급하게 현우에게 힐을 퍼부으며 외쳤다.
“도대체… 도대체 저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자신이 편하게 쉬는 동안 현우는…
울먹거리는 그녀의 뒤로 나타난 세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어이. 현자. 가르쳐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도대체가…!”
둘의 질문에.
현자는 낀 팔짱을 풀지도 않은 채 헬쑥한 얼굴로 담담하게 대꾸했다.
“아무 일… 없었다.”
그 대답을 끝으로 현자는 정신을 잃어버렸다.
***
얼마나 정신을 잃었던 걸까.
눈을 뜨니 뒷통수에 푹신푹신한 무언가가 느껴졌고 눈 앞에는 커다란 덩어리가 있었다.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베로니카에게 무릎베게를 받고 있다는 것을.
“일어났어?”
얼굴을 간지럽히는 은색 머리칼을 치운 나는 몸을 일으켰다. 시련을 버티며 소모된 체력과 정신력은 이미 회복되어 있었다.
바닥을 보니 텅 빈 최상급 힐링포션 병과 정신안정제가 몇병이나 뒹굴고 있다.
많이도 썼네. 그냥 힐이면 될텐데. 정신력이야 주술사의 스킬인 명상으로 보충할 수 있고.
“너 진짜…!!”
“으어어…”
베로니카의 손이 내 볼을 잡고 꽉 비틀었다. 아플 정도는 아니지만 거슬릴 정도로.
그렇기에 그녀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 것 같았다.
“왜 멋대로 그렇게 고생하고 그러는데! 맘 아프게 시리!”
“이정도는 괜찮아.”
“이정도는 괜찮아? 아까 네 얼굴이 어땠는 줄 알아?”
“거의 죽기 직전이었겠지.”
게임에서도 그랬다. 고행의 시련은 들어간 자를 딱 죽기 직전까지 괴롭힌 후에 되돌려 보낸다.
결코 죽이지는 않는다. 애초에 이 시련은 불화의 시련이지 도전자를 죽이는 시련이 아니니까.
‘나는 개고생했는데 너희는 놀고 먹어서 좋겠구나!’ 라는 것을 밑바탕에 깔고 파티간의 불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 라는 얘기다.
행여나 죽이기라도 한다면 파티의 결속력이 더욱 강해질테니까.
“치료하느라 고생했네.”
“하아… 너 진짜. 들어갈 때 했던 약속 기억하니까 두고봐.”
볼을 부풀린 베로니카는 천천히 내 볼에서 손을 뗀 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아무튼 이제 이 지겨운 시련들도 끝이니 가볼까?
그 전에.
“야. 세실. 너 왜 수천의 선을 배웠냐? 공상구현이 더 좋지 않아?”
“…진짜 봤구나.”
“그쪽에서 설명 안해주든? 그래서 대답은?”
“공상구현 없어도 난 강해. 용의 저주가 풀리면 더 강해지겠지.”
“그래?”
“딱히 널 위해서 그걸 익힌 건 아니니까 신경쓰지도 말고.”
딱 잘라 냉정하게 말한 세실은 휙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내가 납득하자 세실은 뭔가 불만스럽다는 듯 날 보다가 물었다.
“그래서? 고행의 시련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이제는 말해 줄 수 있는 것 아냐?”
무슨 일이 있었느냐라.
괜히 설명해봤자 베로니카든 세실이든 기분만 나빠질게 분명하다.
별 의미도 없이 스트레스를 높일 필요가 있을까?
난 바로 답을 내렸다.
아무리 내가 고행의 시련을 택했다고 하지만 베로니카나 세실이나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텐데 그 죄책감을 굳이 더 늘려 줄 필요는 없겠지.
“자. 가자! 가자!”
“야! 대답은!”
이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한 마지막 단계가 남았다.
내 말을 듣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둘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타난 길을 보았다.
이제 저곳으로 내려가면 이번 이벤트의 보스인 악마, 에우리에와 마주할 수 있다.
“악마의 상대법은 뭐야?”
베로니카가 성물과 메이스를 꺼내들며 물었다. 전의가 대단한게 악마를 보자마자 돌격할 것처럼 보인다.
하긴, 내가 시련을 통과하는 동안 계속 성력을 모았으니 빨리 쓰고 싶기도 하겠다.
하얀 이마에 삐죽, 푸른 핏줄까지 드러낸 그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묻자 난 게임의 기억을 떠올린 후 설명했다.
1페이즈는 별 거 없으니까 그냥 싸우면 된다.
문제는 2페이즈다.
“잡다가 후반부 되면 걔가 유혹을 할거야. 정신공격인데 그것만 잘 버티면 괜찮아. 그리고 그건 내가 해결할 수 있으니까 내가 신호할 때까진 걔 신경 끌지 말고 얌전히 있어. ”
“그래? 그럼 됐고.”
“아. 그리고 세실. 내가 공격하자마자 수천의 선부터 날려.”
“알았어.”
그 외에도 몇가지 주의사항과 전법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베로니카와는 손발을 많이 맞춰봤으니 괜찮지만 세실과는 그렇지 않으니까 주의를 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복도를 지나 커다란 문 앞에 도착했다.
척 봐도 뭔가 있어보이는 것 같은 철문에는 끔찍한 괴물과 절규하는 사람들이 새겨져 있었다.
베로니카는 그 문을 보자마자 대놓고 눈살을 찌푸렸다.
“사악한 기운이 안에서 느껴져.”
“악만데 그럼 선량하겠니? 자. 그럼. 이리오너라!!”
-쾅!!
문을 발로 걷어차 열어버리자 보인 것은 은은한 빛만이 언뜻언뜩 보이는 어두컴컴한 공간이었다.
그곳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음울한 울음과 고통의 비명이 마치 성가대의 합창처럼 울려퍼지기 시작한다.
그걸 들은 베로니카는 이를 악물었다.
이게 성가라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다.
비명과 울음으로 성가를 부른다는 것, 그것이 신을 모욕하는 것임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건방지게.”
마치 돌아가라고, 도망치라고 울부짖는 듯.
요동치는 마력이 퍼져나가며 바닥에 피와 같은 끈적한 붉은 액체가 퍼져나간다.
그리고.
-철퍽!!
철퍽.철퍽.철퍽.철퍽.철퍽.철퍽.철퍽.철퍽.철퍽.철퍽.철퍽.철퍽.철퍽.철퍽.철퍽.철퍽.철퍽.철퍽.
불경한 성가와 함께 거대한 무언가가 걸어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희미한 불빛들 사이로 언듯언듯 보이는 거체.
어둠 속에 두개의 귀화가 떠오른다.
눈이다.
끔찍하고, 저주를 품은 눈.
이곳에 퍼지는 불경한 성가를 부르는 것은 그 눈의 주인인, 여섯 팔의 거대한 괴수에게 달라붙어 있는 자들이었다.
저 악마에게 희생된 자들일까?
형태를 제대로 알 수 없는 이들이 버둥거리며 울부짖고, 자신의 몸에 잡혀 있는 이들을 향해 괴수는 늑대와 닮은 얼굴을 히죽거렸다.
“…크르르…”
그 괴물이 즐겁다는 듯 웃고 거대한 입을 벌려 포효를 터트리며 개전을 알리려 했고.
그걸 그냥 내버려두지는 않았다.
-크어어…커어어어엉?!
난 월광을 건틀렛으로 변화시킨 후 어둠 속에서 나타난 거대한 괴물.
이 이벤트의 보스인 악마 에우리에에게 발경을 날려 놈의 포효를 막았다.
-콰과광!!
거구가 나뒹구는 소리와 함께 난 마법구를 허공에 던져 시야를 밝혔다.
마법구의 빛에 긴장하던 베로니카와 세실이 황당해하는 것이 보인다.
그녀들과 눈을 마주친 나는 한쪽 눈을 깜빡여 주고 어깨를 으쓱였다.
등장씬은 스킵하는게 국룰이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안녕하세요 말물말물입니다!
으아… 백신 2차 세네요.
저녁부터 어질어질하네요…
내일은 좀 괜찮아졌으면 싶구만요.
그럼 내일 봅시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