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24
24화 약점 노출
구범준.
기억하기로 그는 신주현과 같은 모임에서 알게 된 동생이었다.
그런데 그를 로비에 이용했다니…….
현호가 기억하는 ‘현호’는 철이 없기는 하나, 나쁜 녀석은 결코 아니었다.
그렇기에 신주현의 이야기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형, 내 사무실에 들어가서 얘기해.”
자신이 알지 못하던 무언가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현호의 제안에 신주현은 경계의 눈빛을 보였다.
“무슨 얘기?”
“내 얼굴 한 대 친 거로 끝낼 거야? 그걸 구범준이 원해?”
“범준이는 수치심에 몇 달 동안 그림을 못 그리고 있어. 근데 이제 와서 무슨 변명을 하고 싶은 거야?”
“형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거야?”
“…….”
신주현의 표정과 목소리에 담긴 감정은 타인의 일에 대한 분노를 담았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짙었다. 제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두 사람은 결국 남남에 불과했다.
신주현이 이렇게까지 직접 찾아와 나선 데에는 그 자신과도 연관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한 듯 보였다.
분노로만 가득 들어차 있던 그의 눈빛이 천천히 죄책감으로 물들어 갔다.
“난 그저 선의였어. 그 녀석 실력을 내가 잘 아니까. 그래서 소개시켜 줬던 건데…….”
현호는 그제야 전후사정을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구범준은 신주현의 소개로 ‘현호’와 알게 되었고, 로비에 휘말린 것이다.
신주현은 자신이 소개했던 일로 인해서 문제가 발생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고.
“우리나라 최고의 미술관인 송우미술관에서 그런 일을 한다는 거, 상상도 못 했어.”
송우미술관?
현호는 불쑥 튀어나온 말에 흠칫 놀랐다.
신주현은 조금 전 큰형의 그림 로비에 구범준이 이용당했다고 했다.
그런데 큰형뿐만 아니라 송우미술관도 관련되었다고?
“형, 솔직히 내가 모르는 일이라서 당황스러워.”
“…….”
“여기서 계속할 얘기는 아니니 들어가서 자세히 얘기해.”
자세한 얘기를 하자는 진심이 전달되었는지, 현호를 응시하던 신주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송우문화재단 이사장실.
응접실 소파에 마주 앉은 현호, 최명준, 그리고 신주현.
“작년에 너희 재단에서 미술인 프로모션 지원 프로그램을 한다길래, 범준이에게 신청하라고 했어.”
신주현이 먼저 얘기를 시작했다.
“실력 있는 놈이라 재단 프로그램에서 밀어주면 크게 성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프로그램에 선발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네게 부탁했던 거고. 너도 범준이 그림 좋아하니 그놈 실력 알잖아.”
“그래.”
“네 덕분인지 범준이가 프로그램에 선발됐어. 물론, 범준이한테는 얘기하지 않았지.”
“그런데 도대체 무슨 문제가 생긴 거야?”
“프로그램은 미술관에서 주관했는데, 선발된 사람들의 작품을 갤러리나 컬렉터들에게 연결해 주는 거였어.”
“…….”
“그런데 범준이가 작품을 그려서 미술관에 가져가면 연결해 주기 어렵다고 다시 그려오라고 했다고 해. 자꾸 그런 일이 반복되다가 하루는 미술관장이 범준이를 따로 불렀어.”
거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현호는 한 가지를 확신할 수 있었다. 윤소은 미술관장이 큰형의 그림 로비에 관련되었다는 것을.
“범준이가 실력은 있는 것 같은데 갤러리 큐레이터나 컬렉터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은 없는 거 같다고, 연습 삼아 유진우 작가님의 ‘노을’을 그려보라고 했어. 그리고 그 그림이…… 로비에 이용된 거고.”
고(故) 유진우 작가는 수많은 걸작을 남긴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유작으로 남긴 그림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고가를 자랑했다.
현호는 그 화가의 이름이 언급되자, 올해 초에 있었던 한 가지 사건을 떠올릴 수 있었다.
큰형 엄현식이 국세청장에게 유진우 작가의 작품을 뇌물로 건넸다는 의혹이 제기된 사건이었다.
‘그러면 그때 엄현식이 증거로 제출했던 건…….’
당시 의혹은 금세 사라지게 되었다.
엄현식이 뇌물로 건넸다고 의혹이 제기된 그림을 자신이 소유하고 있음을 증거로 내세우며, 국세청장에게 양도했던 사실이 없음을 증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작품은 구범준이 그린 모작이었을 것이다. 진품은 제기된 의혹대로 국세청장에게 뇌물로 건넸던 것이고 말이다.
‘구범준은 진실을 알아차렸겠지. 자기 그림을 못 알아볼 리는 없었을 테니.’
하지만 진실을 밝힐 수는 없었을 터였다. 공범으로 몰려 자신까지 처벌을 받을 것이 두려웠을 테니까.
“……현호 너, 정말 몰랐던 거 맞아?”
“몰랐어. 그리고 미안해.”
“어?”
“그림 로비 사건이 있었을 때 내가 미국에 있어서 사정을 잘 몰랐어.”
“…….”
“범준이한테 전해줘. 내가 그 그림 찾아서 없애고 모작을 시킨 미술관장은 미술계에서 퇴출되도록 만들 거라고.”
“정말이야?”
“약속해.”
이 약속을 듣자 신주현은 안심이 되는지 굳어 있던 표정이 한결 편안하게 풀어졌다.
그가 돌아간 후, 현호는 민동재 사무장을 호출해 미술인 프로모션 지원프로그램에 관해 설명을 들었다.
“미술관이 계획서를 재단에 보내면 검토해서 승인하는데, 지금껏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었던 적은 없습니다.”
문제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일어난 문제를 몰랐으리라. 윤소은이 모두 은폐했을 테니.
“올해는 어떻게 됩니까?”
“이사장님이 졸업 후 귀국하시기 전에 승인이 난 상태입니다. 현재까지 신청자가 꽤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거…….”
민동재 사무장이 현호에게 초대장을 건넸다.
“이게 뭡니까?”
“이번 송우미술관에서 기획전을 합니다. 이사장님께서 꼭 참석하셨으면 한다고 미술관장님이 보낸 겁니다.”
송우 보배 기획전.
신인 작가들을 위해 진행되는 기획전이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미술관에서 전시를 할 수 있다는 건 신인으로서는 엄청난 기회였다. 그에 당연히 그 기회를 잡고자 하는 사람들은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이번 기획전의 주인공으로 뽑힌 사람은 이경진이라는 화가였다.
“이경진 작가에 대해 아십니까, 사무장님?”
“제가 미술 쪽은 잘 몰라서…… 피카소, 이중섭 작가 정도만 알 뿐입니다. 하하.”
그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웃었다.
“알겠습니다. 나가 보세요.”
“예.”
민동재가 나가자 현호는 최명준에게 지시했다.
“최 비서, 윤소은 미술관장이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 자세히 조사해 보세요.”
“예, 이사장님.”
현호가 윤소은에 대해 아는 것은 그녀가 송우미술관장이라는 사실과 큰형과 불륜관계라는 것뿐이었다.
송우그룹의 고위 임원에 대해선 대부분 파악하고 있는 그였지만, 윤소은에 대해선 딱히 관심이 없었다.
전생의 그에게는 딱히 어떠한 영향력도 미치지 못할 인물이라고 판단한 탓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게 되었다.
송우미술관은 송우문화재단 소속 기관이다.
자신이 문화재단을 맡고 있을 때 송우미술관에서 문제가 터진다면, 그 책임 소지가 자신에게까지 넘어올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싹을 자를 필요가 있었다.
최명준이 현호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을 때였다.
디링!
[엄상현 회장님이 찾아오셨습니다.]
M&H 인베스트먼트 나해철 대표가 보낸 문자였다.
현호는 문자의 내용을 확인하곤 피식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단 늦으셨네.’
늦고 빠르고의 차이가 있을 뿐, 현호는 엄상현이 M&H 인베스트먼트가 엄상철에게 돈을 빌려주었단 사실을 알아낼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오히려 못 알아내면 곤란하지.’
다행히 엄상현은 M&H 인베스트먼트의 존재를 파악하고 찾아왔다.
전부 현호의 계획대로였다.
* * *
M&H 인베스트먼트 사장실.
나해철 대표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엄상현 회장 곁으로 다가갔다.
“회장님께서 이런 누추한 곳에 어쩐 일이십니까?”
“나를 아는가?”
“직접 뵌 적은 없지만, TV에서 워낙 많이 봐서 알고 있습니다.”
“당황하지 않는 걸 보니 내가 올 줄 알고 있었구만.”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누추하지만 자리에 앉으시겠습니까?”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의 엄상현이 응접실 소파로 가서 앉았다.
그 맞은편에 나해철 대표가 자리하자 엄상현 회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짐작하고 있다고 하니 긴 설명은 하지 않겠네. 동생에게서 주식을 받았지?”
“예, 받았습니다.”
“그거 내게 팔게.”
“한발 늦으셨습니다.”
“뭐라고?”
“이미 사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팔기로 했습니다.”
“뭐?”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 엄상현이 화들짝 놀랐다.
“혹시, 사겠다는 이가 성국그룹 쪽인가?”
가장 먼저 머릿속을 스친 사람은 성국그룹 회장, 안명기였다.
‘15년 전 아버지가 내 말만 들었어도…….’
지금의 재계 1위는 송우그룹이 되었으리라.
그 당시 엄상현은 반도체 기업을 인수하길 원했다.
하지만 엄주길 회장은 반대했다. 그 기업을 인수할 만큼 그룹의 자금이 여유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와 달리 반도체 사업에 계속 투자했던 성국그룹은 재계 1위를 차지했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그러나 엄상현은 단순히 재계 1위가 되지 못해 성국그룹을 싫어하는 게 아니었다.
‘안명기에게 뺏길 수 없어.’
성국그룹의 회장 안명기.
안명기와 엄상현은 무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학창 시절을 함께한 질긴 인연이었다.
다만 엄상현은 항상 수재 소리를 들어왔던 반면, 안명기는 항상 문제아 취급을 받아 왔다.
그런데 정작 지금 위에 있는 것은 안명기였다.
자존심이 강한 엄상현으로서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다.
‘하긴, 그 정보력에 모를 리가 없지.’
성국그룹의 정보력이면 자신과 동생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안명기라면 충분히 자신의 먹잇감을 뺏으려 할 인간이었다.
“죄송합니다. 거래 조건은 비밀로 하기로 했기에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얼마를 받기로 했건 상관없이 두 배로 쳐서 주겠네.”
다 잡은 고기를 성국그룹에 뺏길 수 없었다.
“위약금만도 세 배입니다.”
“그걸 내가 갚고 두 배 쳐서 주겠다는 거네.”
“죄송합니다. 우리 투자사 소유주가 직접 지시하신 일이라 제 임의대로 파기할 수 없습니다.”
“자네 주인을 만나서 이야기해 주게.”
“죄송합니다. 지금 한국에 안 계십니다.”
“…….”
엄상현은 끓어오르는 화를 누르느라 인상을 찌푸렸다.
실소유주가 정말로 한국에 없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해철 대표는 자신과 거래할 생각이 없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해철이라고 했지, 이름이?”
“예, 회장님.”
“종놈 주제에.”
“예?”
예상치 못한 발언에 나해철이 깜짝 놀라 엄상현을 바라보자, 그의 눈빛은 냉기가 느껴질 정도로 차갑게 변해 있었다.
“종놈이면 종놈 할 일만 해.”
“회, 회장님.”
“자네 주인한테 가서 전해. 오래 기다리지 않을 거라고. 기회 놓치고 후회할 일 만들지 말라고.”
엄상현은 말을 마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사무실을 나갔다.
그의 서슬 퍼런 경고에 나해철 대표는 오싹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 * *
송우문화재단 이사장실.
현호는 나해철 대표에게 온 전화를 받았다.
[이사장님께 미리 이야기를 들었는데도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현호는 아버지가 어떻게 나올지 그에게 얘기해 주었다. 그럼에도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런데 엄상현 회장님이 위약금도 물고 두 배로 쳐서 주겠다고 할지 어떻게 아셨습니까?]
“자식이니까요.”
이렇게 말은 했으나 현호는 알고 있다.
대한민국 재계 5위 송우그룹의 회장.
남들은 감히 올려다보지도 못할 만큼 높은 위치에 올라선 엄상현이었으나, 그는 마음 한편에 콤플렉스를 품고 살아왔다.
바로 성국그룹 안명기 회장.
엄상현은 자신이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면, 그러한 일을 벌일 수 있는 건 그뿐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한 사고방식은 전생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었다.
그에 손해까지 감수하면서 흥정을 하려 한 엄상현.
그런데 어쩌나.
흥정은 되지 않고 내게 약점만 노출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