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83
#283화
프랑스 공화국(La République Française)
1870년 보불 전쟁에서 패배하고 세워진 나라.
대혁명 이후 세 차례의 입헌 군주정, 두 번의 공화정, 두 번의 제정. 총 일곱 개의 정치 체제를 겪고 생겨난 공화정 체제는 왕정을 폐기했고 헌법을 유일신성시하는 국가였다.
물론 초기 공화국은 양원제 공화파 지도 체제를 겪었고 이후 정교 분리, 도매 파업과 노조결성의 자유라는 격동도 겪었다.
이후로 벨 에포크 시대, 대전쟁, 전간기, 세계 대전을 겪으며 지금의 공화정 체제에 안착하게 되었다.
대통령 임기 7년, 최대 세 번의 연임을 허용하며 1인 야당도 허용하나 주로 오를레앙 당이 좌석의 8할을 넘게 먹어버린 상황.
소수당마저도 지역 특유의 역사적 이념으로 오를레앙 당과 분파를 달리할 뿐 사실상 오를레앙 당의 입법 권력은 절대적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공화정의 체제 변화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결과론적으로만 보자면 프랑스는 극단적인 권력 집중적인 형태로 발전하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프랑스를 여기까지 도래하게 만들었는가?
입법 권력을 먹어버린 유일여당?
두 번의 세계 대전?
비대해진 대육군과 군부의 정치 개입?
많은 요소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여기까지 왔겠으나, 다를랑은 이제 와 딱 한 가지로 결론 지을 수 있었다.
기존의 공화정 체제 때문에 한 당이. 일개 개인이 권력을 독점하게 되었다고.
여기에 설명을 덧붙이자면 새로운 사상의 부재. 즉, 기존의 공화정 체제를 그대로 유지한 채 지도자만 바뀌며 국가가 성장하니 자연스레 국민들은 변화된 요소에 집중하며 권력을 몰아주게 된 것이다.
만약 독일이나 이탈리아처럼 사상을 무기로 국민들을 현혹했다면 설령 독재자여도 그 사상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제약을 받았겠으나, 이 나라엔 그딴 건 없다.
그냥 모헬 대통령의 말이 곧 진리고 법이고 정답이다.
적어도 프랑스인들은 그리 생각했다.
왜냐면 전에도 똑같은 공화정의 프랑스였는데 현실은 시궁창이었으니까. 정치인들은 서로 헐뜯고 비난하며 어떻게든 권력을 갈라먹기 바빴으나 작금의 프랑스 정치는 아주 평화로우니까.
서로 싸우지 않는다.
서로 갈라서지 않는다.
분열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래봤자 권력은 의회에 없으니까. 그들은 국가의 한 도구에 불과하니까.
독일 위에 프랑스가 있듯, 장관 위에 원수가 있고.
국민 위에 대통령 베르게르 모헬이 존재한다.
“그래서 네 결론은 국가 개혁을 강행해야 한다. 그 과정은 대통령이 실무에서 조금씩 떨어지고 그 자리를 총리가 채우면서?”
“가스파르군이 권력을 잡을 때 의원들은 대권 경쟁이 아닌 총리 경쟁을 해야 할 겁니다. 어차피 오를레앙 당은 차후 나누실 생각이지 않으십니까?”
“그렇지. 오를레앙 당도 지금처럼 출마하는 대로 뽑힐 수 없을 거야.”
오를레앙 당이 이래저래 흡수하다시피 성장했으니 허락이 떨어지면 나눠지는 것은 순식간이겠지.
어차피 그들의 기반은 역사나 이념이 아닌 순전히 나, 그리고 내 주변인들이니까.
“이것이 제가 생각한 최선입니다.”
“군이 군으로만 남고, 정부가 정부로 남으며. 그 누구도 이 나라를 망치지 않는 유일한 길이라.”
“하루아침에 각하께서 내려오고, 오를레앙 당을 해체하고, 문민통제를 철저히 한다? 이런 막대한 공백은 하루아침에 채워질 수 없습니다.”
“가스파르의 뜻이 중요하겠군. 그 아이 입장에서는 자신의 권력이 천천히 축소될 테니.”
“그런 기조를 각하께서 만드시고 내려오셔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힘들 겁니다. 아니, 불가능합니다.”
그간 오랫동안 프랑스 국가의 미래를 예측하고 설계하려 한 다를랑은 끝없이 올라가는 원수의 인기에 지금 시대에 본래 공화정으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황제도 귀족과 의회라는 제약이 있었거늘 지금 프랑스는 그것조차 없다.’
그나마 모헬 원수님이 영원한 권력 따위에 관심이 없어 다행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종신 통치는 물론이요 후대까지 모헬의 시대가 펼쳐졌으리라.
그만큼, 지금 프랑스에서 모헬이란 이름값은 막대하다.
“좋네. 나쁘지 않아. 체제 변화에 사람들도 익숙해지고 가스파르의 시대도 길지 않겠군.”
“…정말 이대로 괜찮으신 겁니까? 보통 사람이라면 가문의 후대까지 이어질 체제를 좋아할 텐데 말입니다.”
“다를랑, 난 가스파르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네. 난 그 아이가 성인이 되면 은퇴시켜줄 생각이었거든. 군에는 얼씬도 못 하게 하고 적당히 돈 좀 챙겨서 미국으로 보낼까 싶었지.”
“…예?”
“그땐 나도 어렸지. 어쩌면 내가 그렇게 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여하튼, 이 모헬이란 가문의 수준은 내가 잘 알아. 아주 평범한 범인의 유전자가 흐르지.”
모헬은 자신의 예상과 다른 반응에 벙쪄있는 다를랑을 보며 피식 웃었다.
“왜, 내가 평범하다니 웃긴가?”
“솔직히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각하께서 하신 것중에 틀린 것이 없다는 게 신기합니다.”
“때론 그런 생각을 하네. 이 나라에 필요한 것은 과격함이 아니었을까. 그 과격함이 나라는 인간을 통해 표출된 것이고.”
확실히. 프랑스는 그간 보통 국가들이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을 통해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잘했네. 곧 사임한다는 드라로크 의원에게는 내게 말해두지. 함께 틀을 만들어보게.”
“각하, 마지막으로 여쭙겠습니다. 정말 괜찮으십니까?”
다를랑 본인의 손으로 이것이 해답이라며 가져온 주제에 그는 내심 모헬의 시대가 조금 더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커 보였다.
“빨리빨리 해야 내가 쉴 거 아닌가? 언제까지 여기서 일하라고? 이미 7년을 더 하게 생겼는데 뭘 더 해. 빨리 다 때려치우고 나도 쉬어야지.”
“예? 아뇨. 이거 시행은 21년 뒤입니다. 가스파르 군이 충분히 성장하고 난 뒤여야 하니까요.”
“…야.”
“왜 그러십니까?”
“다시 만들어와.”
설마 이번이 마지막 임기고 아들에게 떠넘긴 뒤 쉴 생각이셨던 것인가.
종이를 움켜쥐어 꾸기며 모헬은 떨리는 분노를 표출했다.
“무조건 이번 임기가 마지막이 될 수 있도록. 다시 만들어오게. 아니면 자네도 군축의 도가니에 넣어버릴 테니까.”
두 원수께서 연명부를 바닥에 펼쳐놓고 탭댄스를 추며 발자국 찍힌 이름은 그대로 전역시켜버린다는 소문이 도는 현 군축.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를랑은 재빨리 엉망이된 서류를 챙겨서 방을 나갔다.
***
기어코 저 얼굴들을 이 나이 먹고도 또 보게 되는구나.
저 인간들이 나보고 진짜 군정통치는 파리에서 이뤄지고 있다느니 프랑스 민주화 정신 다 뒈졌다니 욕하지만 사실 자기들도 다를 바 없지 않나.
연합국을 대표하는 삼국.
임기 반년 정도 남은 처칠과 또 한 번 워싱턴의 신성한 의지를 뉴욕 뒷골목 쓰레기통에 처박고 선거에 승리한 FDR까지.
‘아니, 자기들이 나랑 다를 게 뭐야?’
지금도 그렇지만 저 ‘난 너와 달리 민주주의를 존중한다!’ 시선은 참으로 역겹다. 나도 이번에 선거를 통해 이겼는데 누가 보면 내가 나치처럼 집단 세뇌라도 한 줄 알겠어.
“영국과 프랑스. 두 나라의 교류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들었습니다. 참으로 좋은 일이지요.”
“누가 북아프리카를 아주 비싸게 팔아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오.”
“수십 년간 투입된 자본이 한두 푼도 아닌데 그걸 그냥 공짜로 넘겨줍니까? 그것까지 무료로 달라는 건 도둑놈 심보지요.”
“허허, 난 베어링 은행에 있는 왕실 자금까지 털어야 할 줄 몰랐지!”
“무상이전을 외치시다니. 참, 오늘따라 영국의 사상이 의심되려 그러네.”
역시나 오늘도 볼살에 저장된 불평불만부터 쏟아내는 갈리폴리 경. 맥아더의 천박함이 그리워지지만 이 자리에 있는 FDR만으로도 처칠은 통제가 가능하다고 본다.
“자자, 그만들 하시고. 오늘 모인 이유는 들으셨겠지만 전쟁이 끝남에 따라 저희들 또한 변해야 함을 체감했기 때문입니다.”
휠체어에 앉은 루스벨트는 일어나지 않아도 능숙하게 분위기를 주도했다.
“평화를 세상에 가져온 만큼, 그 평화를 지켜야 하는 것 또한 저희에게 남겨진 책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연합국은 전쟁 방지와 평화 지속을 위해 국제 기구로 발돋움하여야 합니다.”
이미 정해진 사안을 되짚고 나서 루스벨트는 본론을 꺼냈다.
“저희의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보십니까?”
“분리.”
“정확합니다. 아프키라, 아시아, 아메리카, 유럽까지. 하나같이 홀로 동 떨어질 가능성이 남겨져 있습니다.”
아시아를 제외하면 서로 지역마다 강자가 정해졌고 자신의 구역에서는 특정 국가가 절대적 힘을 발휘한다.
그것이 군사적인 부분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경제적으로 그리될 것이다.
이는 우리가 의도한 바도 충분하나, 뒤늦게 보니 서로 블록 경제로 떨어져 나갈 위험성도 부정할 수가 없다.
“이번에 설립될 국제 기구는 적극적으로 평화를 보장하고 안정적인 국제 질서를 위해 설립하는 것입니다.”
“질서를 만든다는 것은, 돈과 힘. 즉, 분담금과 군대가 필요하다는 것인데….”
“새로운 조직의 힘을 만든다는 것이지.”
“새로운 힘에 집중하시기보다는 마땅히 필요한 의무를 진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대화가 오가며 문득 드는 생각은 미국은 저 루스벨트로 인해 많이 변했다는 점이다.
‘누가 알았겠냐고. 야생의 먼로가 국제 분리불안을 앓을 줄.’
처칠은 ‘만들긴 해야하는데 그 정도로 크게 만들어야 하나?’라는 입장이라면 미국은 ‘어떻게든 키워! 그냥 막 키워! 아무도 날뛸 수 없게!’라는 식이다.
그리고 그 저격의 대상은 참으로 웃기게도.
“모헬 대통령께선 어찌 보시오?”
“괜찮지 않습니까? 식민지 해방과 전쟁 방지도 국제 기구에서 어느 정도 막아줄 것입니다.”
나다.
저들은 향후 10년, 20년을 바라보며 본인들에게도 족쇄가 되지만 프랑스 또한 이 족쇄에 얽매이길 바라기에 적극적으로 나온다.
그리고 난 그 이상.
‘진짜 나쁘지 않은데?’
더 먼 미래를 보고 있다. 프랑스의 거품이 싹 다 빠지는 더 먼 미래를.
과거에 쌓아온 재물도, 순수 경제 규모도, 인구도, 국력도, 땅덩이도 부족한 프랑스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해군력이 부족한데… 우리 해외 영역이 보존된다고요?
아무 국가나 회원국으로 참여시키면 그 나라에 투자한 것 회수는 무조건 가능한 상품?
헤에? 심지어 전후 재건 보조와 내전 방지 기능까지?
모든 이점에는 단점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지만. 받아먹다가 이가 다 썩나 못 먹어서 나중에 부드득거리다 이 다 박살나나 똑같다.
“만약 저희 주요 국가들 사이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는 어떻게 합니까. 예를 들면 수에즈 분쟁이라든가.”
“그 경우도 내 한번 생각해왔지. 수에즈 운하의 소유를 이집트 국가로 하되, 연합국에서 대여하는 것이네.”
“그런 식으로 모든 것을 국제 기구에 떠넘길 순 없지 않습니까?”
여전히 내키지 않는 듯 난 등을 기댄 채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국제 기구 창설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자칫 이 기구의 제약으로 인해 저희가 돌아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드는군요.”
“외람된 질문일지 모르나, 프랑스는 소련과의 전쟁을 상정하십니까?”
먼저 대놓고 말을 꺼낸 것은 역시나 루스벨트였다.
“지키기 위한 전쟁이라면, 예. 하겠습니다. 허나 침략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반전. 평화. 최후의 전쟁. 전부 모헬 원수께서 꺼내신 말들 아닙니까.”
“겁쟁이가 되겠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만?”
잠시 주위를 둘러보는 척하던 루스벨트는, 이젠 숨기지 않고 말을 거침없이 뱉었다.
“저희는 특정 국가의 정상 유무를 지정할 수 있습니다. 무력이 아니어도 국제 외교의 힘과 제재만으로 기어오르는 국가를 처단할 수 있지요. 이런 미래를 고작 소련과의 분쟁에 깨지게 두실 겁니까?”
“하나, 전 제가 원하는 바를 관철 시킬 힘이 있습니다. 둘, 소련은 언젠가 무너집니다. 자멸하든, 내 손에 무너지든.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 제 질문은 저희끼리의 분쟁이었습니다. 국제 기구가 무너진다면 그것은 절대 소련과의 전쟁이 아닌 내부에서부터입니다.”
여기 우리 셋. 여기에 체급 하나만으로 끼워줄 만한 국가는 중화민국 정도.
“소련이 무너지는 미래는 정해져 있다? 그 과정에서 저희끼리의 분쟁이 예상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현 반공 포위망은 프랑스가 만들었고 프랑스를 중심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소련과 프랑스의 전쟁 위험성을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진정 제가 소련과 전쟁할 위험성을 없애고 싶으시다면, 좋습니다.”
국제 기구라면 응당 그럴법한 일을 해야 하지 않겠나.
“반공 포위망의 주도권을 국제 기구에 넘기겠습니다.”
이거 넘겨 받을래, 말래.
내가 해봐서 아는데 국력 소모 장난 아니거든. 그래서 어느 날 빡치면 그냥 전쟁하고 싶을 정도로.
“물론 저희 프랑스는 국제 기구와 별개로 소련을 막을 것입니다.”
설령 안 받아도 난 계속 간다고 말하며, 선택지를 넘겼다.
알아서 계산기 잘 두드려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