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282
#282화
올해로 18살이 된 세자르 페루자.
그의 아버지는 대전쟁 참전용사로 불의 십자단에서 한때 수당을 받았고, 지금은 직업소개소에서 목수 일을 배워 가정을 부양하는 가장이었다.
비록 전쟁터에서 손가락 두 개를 잃으셨지만 뛰어난 목수로 20여 년째 일하고 계신 아버지는 명백히 노동자 계급이었다.
중등 교육이 의무이지 않던 시대라 가방끈이 길지도, 세상에 대한 관심이 많지도 않으셨지만 어려서부터 늘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 있었다.
“내 다른 건 몰라도, 하나는 알지. 원수님들 말은 틀린 적이 없어. 그게 전쟁터에서든 인생에서든 말이야.”
수많은 죽을 고비에서 살아남은 것을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높은 장군들의 공으로 돌리셨다.
인생의 모토처럼 달고 다니시는 말들은 하나같이 대전쟁 영웅들이 기자들 앞에서 했던 말들이었다.
전쟁에서 살아돌아온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자랑거리셨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 달리 세자르는 고등 교육까지 받은 신세대였다.
그렇다고 세자르가 다른 이념에 심취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극단주의자들은 다 허구야. 맨날 적을 만들고 권력을 잡으려고만 하지.”
16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온 베르게르 모헬 원수는 어떠한가?
이미 14년간 정권을 잡은 정부로 독재자의 길을 걷고 있는가?
만약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리 말해도 부정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두 번째 대전쟁은 일어났다. 그리고 압도적으로 이겼다.
그럼 모헬 원수는 전쟁을 통해 자신의 정권을 연장하는. 그러니까 배후에서 전쟁을 조종하는 인간인가?
“허! 말도 안 되지! 모헬 원수는 야전에서 연합군을 직접 통솔하셨다고!”
선거 활동조차 아시아에서 프랑스를 위해 봉사하느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설령 아버지가 아니어도. 학교에서 배우는 프랑스의 위대한 역사를 몰랐더라도.
모헬 원수에게 다음 7년을 맡기는 것은 절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저 패배한 무솔리니처럼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비는 것도 아니며 국가를 말아먹고 자살한 히틀러처럼 무능력하지도 않다.
첫 투표. 세자르 인생의 첫 번째 정치적 선택.
비단 세자르뿐만 아니라 대전쟁을 겪은 부모 밑에서 자라고 전간기를 살아간 프랑스 청년이라면 그들의 손이 누구로 향할지는 뻔했다.
주민들의 이름표가 적힌 거대한 책 앞에 다가가 세자르는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18세, 세자르 페루자입니다.”
“어디 보자, 주소가 비슈몽 거리가 맞나?”
“예.”
이름 옆에 체크가 되자 세자르는 양옆에 사방이 막힌 칸막이에 들어갔다.
여러 후보들이 있지만 세자르는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이름도 모르겠네. 업적도 없다는 소리지.’
이룬 것 하나 없이 자신을 뽑아달라니. 저 후보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최소 프랑스 대통령이 되려면 세계대전 두 번 정도는 이겨야 하는 거 아니야?”
칸막이를 나와 두 번 접은 용지를 상자에 넣고 나온 세자르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마치 본인이 프랑스의 미래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 것 같았다.
비록 오랜 세월을 살지 않았지만.
세자르는 그의 인생에 다른 사람을 뽑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 되었다.
다음 날 저녁.
라디오로 16대 대통령이 발표되었다.
92.9%
베르게르 모헬의 세 번째 임기의 시작이었다.
***
의전, 행사, 연설, 의전, 선거, 의전, 의전…
아시아에서 일하다 와서 조금 쉴 수 있나 했더니 돌아와서도 내 몸과 시간은 내 것이 아니었다.
기존의 체제를 무시하는 권력을 쥔 인간을 독재자라고 봤을 때, 내가 독재자의 길을 걸은 것은 8년 전 나치가 막 급부상하던 시절과 비슷하다.
그때 난 내가 충분히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권력을 쥐었고 더는 올라갈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3번째 임기가 시작된 지금, 그 생각이 깨졌다.
“원수여 프랑스를 보호하소서? 달라디에, 이게 뭐지?”
“새로운 국가로 채택된-”
“기각. 그 옆에 건 뭐야.”
“전쟁 박물관 설립에 관한 내용입니다.”
“좋네.”
“핵심은 원수님들의 업적을 기리는 내용으로 각 박물관을 다 둘러보면 무지한 관광객이라도 프랑스 대육군에 고취될 수밖에 없는 내용-”
“자네 임기 끝나간다고 막 나가나?”
일부 전통 우파들. 그러니까 뿌리가 깊고 오래되었던 단체들이 날 신격화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은 잘 안다.
그래봤자 극단주의 금지법안에 따라 나치처럼 그 사상을 남에게 강요하진 않았으니 방치하다시피 무관심했었고.
허나 아시아 전장까지 마무리 짓고 돌아온 프랑스는, 어딘가 조금 이상했다.
“쿨럭, 저거 뭐야!”
“초상화 아닙니까?”
“그게 왜 홀 정중앙에 걸려 있냐고!”
분명 어디선가 많이 본 느낌.
“딱히 이상하지도 않습니다만. 어차피 각 가정마다 원수님들 초상화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텐데….”
“회수해! 전부 다 회수해!”
“이 자유의 나라에서 강제로요? 집안을 수색해서 개인 물품을 강탈하라고요?”
“…….”
어느 가문이 한 국가를 독재하던 시절의 냄새가 풀풀 나는 파리.
‘…부작용? 내가 이딴 짓 안 일어나게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이제와서 부작용이라고?’
자유의 나라 프랑스가. 윗대가리가 자기 마음에 조금 안 들면 바로 단두대 세우고 밧줄 걸 준비하는 레볼루숑의 나라가.
그 어떤 종교와 사상도 통째로 삼키지 못했던 이 나라가 마치 단체로 홀린 듯 이상증세를 보인다.
“…늦기 전에 갈아엎어야겠네.”
만약 이대로 7년을 더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 자아가 제거된 대육군처럼 되지 않을까.
심각성을 이제라도 인지했으니 더 늦기 전에 하나씩 해결하면 될 일.
그러나 내 눈앞에 놓인 문제들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다를랑, 정리하자면. 파시즘이 남미로 간 게 맞다? 그리고 우리가 그걸 허용했고?”
“그렇습니다.”
“미국과의 외교와 유럽 내 균형 따위 무시하는 그런 일을, 여기 육군 대장께서 직접 말이지?”
“자, 잠깐! 모헬 원수 각하! 내 말 좀 들어보시오!”
“더 들을 것도 없네.”
“후배님! 설명할 기회라도 줘! 다 이유가 있다니깐!”
남미 파시즘은 골수 반미라는 것을 잘 아는 양반이 그런 짓을 했으면 변명할 여지도 없건만.
“우리 대육군의 유일 대장 모리스 가믈랭님. 왜 자꾸 이딴 짓을 벌이신 걸까? 내가 분명 말하지 않았나? 그냥 가만히. 숨만 쉬고 통제만 하고 있으라고.”
“잘 알지. 내 그걸 모르겠나! 다만 이게 나치가 저 먼 곳까지 도망치다 보니 문제가 이상해졌단 말이네!”
“차라리 미군한테 연락하고 함께 움직이든가. 아니면 직접 우리 손으로 해결하는 그림이라도 그리든가. 남의 손에, 그것도 무솔리니한테 맡겨서 남미 국가들을 자극합니까? 지금 저기 애들이 뭐라고 떠드는지 알아요?”
“…대충 예상은 가네.”
뭐라더라. 프랑스가 남미의 뒷배가 되어줄 테니 미국은 절대 남미로 못 쳐들어온다던가.
나라면 미국이 바로 아래 멕시코를 김치 찢어먹듯 반으로 쫙 갈라서 삼킨 꼴을 보고 입 닥치고 있었을 텐데.
선택장애 가믈랭 대장이 무슨 특별한 것을 노리고 저런 일을 벌였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더는 꾸짖어봐야 관계만 상하니 일단 돌려보내고 머리를 조금 식히려 할 때.
“왜 자꾸만 이딴 일이 늘어가는 거냐.”
“저, 각하?”
“어, 파요레 국장인가. 무슨 일이야?”
발 소리마저 조심스럽게 들어온 국장은 문을 닫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곤 갑자기.
철퍼덕.
“각하! 살려주십시오!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냥 상황을 방관하였을 뿐, 그 어떤 것도 주도하지 않았습니다!”
“어, 어. 그거 아냐.”
“설령 제가 한 주제넘은 짓도 전부 제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여기 준비해온 서류를 보시고 부디 제 무고함을 알아주십사-”
“그거 아니라고. 분명 아무 문제도 아닐 거야. 아니, 그래야만 할 거야 국장.”
바로 앞에서 눈 질끈 감으며 말하는 파요레보다 더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집어든 나는 능숙하게 종이를 넘기며 내용을 파악했다.
눈에 들어오는 익숙한 단어들과 이름들.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조합까지.
“파요레 국장.”
“예.”
“자네가 줄타기를 할 리는 없고, 가스파르가 주도해서 벌인 건가?”
“…그렇습니다.”
그렇지. 그게 아니라면 말이 안 되지.
아무리 내가 직접 숙청을 한 적 은 없다지만 군부 출신 정권이 그리 유화적인 분위기는 아니거든. 특히 불의 십자단이랑 같이 일해봤으니 알만한 인간이 이런 일을 방관하거나 주도했을 리가 없다.
“그래서 결론은?”
“독일인이라는 점은 차후 독일과의 관계에 매우 유리하게 작용될 것입니다. 이 점을 이용하여 천천히 포장하는 작업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도 대중들에게 공개되지 전, 최대한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툭. 툭. 툭.
절로 두드려지는 책상. 가스파르가 자체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움직이려 했다는 점은 내 피를 닮은 것 같아 좋으나, 그 내용이 문제다.
많고 많은 선택지 중에 하필 독일인이라니.
‘유켄트 출신이야 묻어버리면 그만이지. 오히려 독일인을 용서한다는 접근으로 가도 되니.’
차기 국가지도자의 행보로는 매우 부적합하지만….
“샤를로트가 나보다 먼저 알고 있었군?”
“그렇습니다.”
“몇 달 전의 일인데도 난 이제 알았고.”
“…예.”
“내 아들이 자기 아비를 지나치게 순한 사람으로 알고 있나 봐.”
그렇다고 기를 쓰고 반대할 만큼 가스파르의 뜻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이건 조금 자세히 들어볼 필요가 있겠어.”
설마 아무 생각 없이 판단이 흐려져 저런 짓을 했을 거라 믿지 않는다.
무려 이 모헬의 아들인데 말이다.
“재건위원회가 지금 베를린에 있지?”
“그렇습니다.”
“나중에 한번 가보도록 하지.”
한 아이의 아비로는 난 절대 반하지 않으나 프랑스를 사랑하는 한 독재자로서는 내 아들의 선택에 참으로 많은 의문이 든다.
‘나부터 이러는데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겠어.’
부디 내가 갔을 때 가스파르가 답을 준비해놓길 바랄 뿐이었다.
***
어느 국가보다 먼저 전쟁이 끝났으나 정작 전후 조약은 3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44년 말에 체결된 독일과 프랑스.
독일의 체제가 공화국으로 정해지고 그전까지는 프랑스의 군정 통치가 시행되는 것은 당연했다.
다만 이곳 독일의 군정의 분위기는 일본과는 차원이 달랐다.
한때 나치 척결에 독일인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프랑스의 군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급변하였다.
이는 오랫동안 타지를 떠돌다 돌아온 군인들이 누구보다 확연히 느끼는 바였다.
“…많이 변했습니다.”
“우리가 바꾼 거지.”
아시아에서 차근차근 병력을 빼기 시작한 독일국방군. 타 대륙에서 독일의 이름을 드높이고 복귀한 장군들.
만슈타인은 떠날 때 폐허였던 베를린이 어느새 새로 지어진 건물과 활기로 가득 찬 모습에 절로 안심했다.
본인 스스로도 수많은 의문이 들었으나 결국 옳았다는 것이 눈앞에 보이니 처음으로 마음을 놓은 것이다.
“롬멜, 우리가 해냈네.”
“정말 약속을 지켰군요.”
프랑스는 정말 단 한 푼의 배상금도 요구하지 않았다. 전처럼 군대 자체를 없애버리지도 않았으며 대부분의 주권을 차근차근 넘기겠다는 약속 또한 지켜질 것 같다.
운용하던 수용소 대부분을 폐쇄했고 나치 조사의 과정에 독일인들도 참여시켰으며 영토 배상 또한 역사적으로 모호한 부분이 있던 알자스-로렌 인근 지역으로 만족했다.
물론 그조차 독일에겐 뼈아픈 부분이었으나.
“결국 독일은 다시 일어날 것이네. 전보다 훨씬 빨리.”
“그럴 것 같습니다.”
팔짱을 끼고 바라본 베를린은 곳곳에 패전의 흔적이 남아 있을지언정 희망이 골목마다 흘렀다.
국가 자체의 영향력은 몰라도 최소한 국민들 개개인의 삶은 전보다 나아지고 있다.
패권은 다시 쳐다도 못 보겠지만 전보다 행복해질 수 있다.
민족주의와 확장 기조가 다시 생길 순 없겠지만 여전히 국민들은 자신의 한 표를 선사할 수 있으리라.
“우린 옳았네.”
대육군의 하수인 취급받던 독일국방군.
연합군이 피하는 죽을 자리를 찾아다니며 기약 없는 약속에 모든 것을 걸었던 군대.
고향으로 돌아온 그들은 모든 고생이 씻겨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프랑스 아래의 독일이 아닌 프랑스와 함께하는 독일.
폴란드 프랑스 사이에 끼어 영원토록 고통받는 대신 유럽의 중심지가 된 독일.
이것이 독일의 미래다.
“이대로라면 프랑스의 군정이 그리 길지 않을 것 같네.”
“길어봐야 2년입니다.”
“난 곧 사임할 것이야.”
군대의 주권 또한 회복한 독일국방군에서 최고계급으로 추대받을 예정이던 만슈타인은 오랫동안 해왔던 고민을 토로했다.
“대선 후보로 나가십니까?”
“끝까지 지켜봐야지. 저 프랑스가 과연 약속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던 롬멜은 만슈타인에겐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누군가는 그를 향해 배신자다, 프랑스의 하수인이다 욕할지 모르나 지금 베를린이 보여준다.
프랑스는 절대 독일을 식민지로 대하지 않는다.
새로운 파트너. 그게 독일의 위치다.
그리고 그 자격을 만든 군은 계속 감시하고 관계를 발전시킬 의무가 있었다.
어느덧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죄악시되던 시선에서 자유로웠다.
그 역할은 저 소련과 일본이 다 가져가버렸으니까.
독일은 연합국의 일원이자 프랑스의 동맹국이다.
“역시 배후는 빨갱이와 잽스였다니까.”
“…?”
논리가 조금 부족할지언정 만슈타인은 그냥 그렇게 믿기로 작정했다.
아니, 곧 모든 독일인들이 그리 믿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