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16
16화
방송국과 관련해서 대충 얘기를 마친 뒤 재환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한성 전자의 사장을 맡고 있는 이한철하고 만났어요.”
“이한철? 그 기생 오래비가 뭐 한다고 널 만났냐?”
“뭐겠어요. 지네 스피커나 되라고 그런 거지.”
“하여간 부정으로 돈 벌기 시작한 놈들이라 그런 치졸한 짓밖에 생각 못 하는 것들이지.”
구 회장은 그 일을 저속한 행위라 말하며 치를 떨었다.
누가 보면 자신은 그런 일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줄 알겠다.
재환은 KG가 연관된 비리 몇 개를 떠올렸다가 지웠다.
이 건들은 구 회장이 타계하고 난 뒤 KG 그룹을 야금야금 집어삼킬 때 쓰면 된다.
“그래서 가만히 한다 했냐? 내가 아는 넌 절대 그러지 않을 텐데?”
“역으로 한 방 먹여줬습니다. 제가 그 양반 뒤 구린 정보를 좀 알고 있거든요. 그랬더니 신문사를 박살 내겠다고 으르렁대던 대요?”
“새끼 배짱하고는. 한성 그룹이 널 직접 밟아 주겠다는데 쫄리지도 않던?”
“쫄릴 게 뭐 있어요. 한성 회장이 직접 말한 것도 아니고, 한성 전자의 사장밖에 안 되는 놈인데요.”
이한철을 한성 전자의 사장밖에 안 된다고 까내릴 수 있는 이가 몇 명이나 될까.
구 회장이 알기론 자신의 두 아들놈도 그렇게는 못 한다.
말만이라도 저리 할 수 있는 게 저놈의 매력이다.
‘저런 담은 먹는다고 먹어지는 게 아니지.’
재환에 대한 평가가 몇 단계 상승하는 것과는 별개로 사업가의 눈으로 재환을 다시 봤다.
배짱부리다 배 터진 놈 여럿 봐왔으니까.
“놈이 맘먹고 찍어누르려고 하면 방송국 기틀 닦기도 전에 박살 나는 건 알지? 난 돈 쌩으로 날리는 건 못 본다.”
“하이고, 영감님도 참. 제가 돈을 벌게 해드리면 벌게 해드렸지, 잃게 해드렸어요? 지금 이 얘기 꺼낸 것도 돈 벌게 해드릴라고 그러는 건데.”
재환의 말에 구 회장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재환도 비슷한 웃음을 지으며 마주 봤다.
사람 하나 엿 먹이는 데에는 도가 튼 두 사람이다.
“설명해 봐.”
“한성의 후계자 구도를 이용할 겁니다. 지금 한성 계열사가 50개가 조금 안 되죠? 자잘한 건 빼고 돈 되는 큼지막한 건 전기, 전자, 보험, 카드…. 몇 개 해서 15개 정도고요.”
“옆집 잘 된다는 소리 들으니 배가 살살 아파온다.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
“한성 이재명 회장은 두 아들한테 골고루 나눠주기보다 더 머리 좋고 영악한 놈이 다 가져가길 원해요. 그래서 사장 자리에 앉혀놓고 매출 잘 높이도록 싸움 붙이는 건 잘 아실 겁니다.”
이게 이한철이 더러운 짓을 하면서까지 매출을 올리려는 이유다.
까딱 잘못하면 동생에게 밀려 짬처리나 하게 될 테니까.
“나도 그런 방식을 생각은 해봤는데, 지들끼리 치고받고 하다가 돈 까먹을까 봐 못 하고 있다.”
구 회장의 두 아들은 KG본사의 이사 직함 달고 경영 수업만 받고 있다.
구 회장의 안전하게 가자는 판단은 당연했지만 두 아들의 불만은 쌓여간다.
조만간 구 회장의 왕좌를 뺏기 위해 손을 잡는 일이 벌어질 거란 예측이 가능했다.
재환의 입장에서는 커넥션을 쌓아둔 구 회장이 자리에 좀 더 있길 원한다.
두 아들은 자존심도 더럽게 세고 럭비공 같아서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래도 아드님들 마음 헤아려서 계열사 하나의 사장 자리 주고 굴려보게 하세요. 망하지는 않게 정보 드릴게요.”
“그리 말하니 또 솔깃하네. 근데 후계자 싸움이 우리 이익하고 무슨 상관이야?”
재환은 테이블에 올려진 과자 몇 개를 집어 들고 늘어놨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간단한 산수다.
“자, 회장님하고 제가 팔씨름을 해서 이긴 사람이 여기 10개의 과자 전부 가져간다고 칩시다. 팔씨름하실래요?”
“이 늙은이 이겨 먹으면 좋냐? 떡대도 좋은 놈이 날 못 이겨 먹어서 지랄이냐. 안 한다 이놈아.”
“그렇죠? 이럴 때, 비서실장님이 회장님 대신 팔씨름을 하는 겁니다. 그 대가는 얻게 될 과자 중 1개죠.”
여기까지 설명을 하니 구 회장은 재환의 속셈을 알아챘다.
구도에서 밀리는 놈에게 살짝 힘을 실어주고 그 대가를 얻는다.
“후계 싸움 구도에서 말리기 시작하면 저희 신문사 괴롭힐 기운이 있겠어요?”
“상황이 뒤집히겠군. 목표는 이한철이냐?”
“동생인 이강철이 지금 한성 물산의 사장으로 있죠. 대성 기업의 유통망에 밀려서 국내에서는 힘 못 펴고 있는데, 저희가 대성 기업의 유통망 날름하고 한번 만나자고 하면 배 까뒤집고 찾아올걸요. 그때 가서 돈 놓고 돈 먹기 한 번 하면 땡이네요.”
“흐음, 좋아. 괜찮은 아이디어야.”
“참고로 이강철을 백업해주면 다른 이득도 생깁니다. 전자 쪽이 압박을 받으면 당연히 스마트폰 개발의 속도도 느려질 테니까요. 일석이조죠?”
재환이 내놓은 계책에 구 회장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재환의 아이디어는 누구나 생각해 볼 법한 아이디어지만 과감하게 하자고 말하려면 확실한 정보가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 재환은 완벽한 책략가였다.
“옛날에 예언가란 놈들이 알고 보면 세상 물정에 밝고 머리 회전이 빠른 놈이었다지?”
“칭찬 감사합니다. 판은 제가 적당히 깔아 둘게요.”
“자문료라 생각해라.”
“에헤이, 지금 몇천억을 날름할 방법을 드렸는데 자문료가 고작 칭찬 한마디라뇨. 노망나셨어요?”
하여간 저 버르장머리 없는 기자 놈을 보고 있으면 얄미우면서도 즐거웠다.
“노망난 늙은이에게 맞아 죽고 싶지 않으면 그 입 조심해라.”
“몸도 안 좋은 사람에게 맞아 죽을 사람이 있긴 해요?”
재환이 무심히 던진 말에 구 회장은 딱 굳었다.
그저 장난기가 많은 놈이 던진 말치고는 뼈가 있다.
구 회장의 싸늘한 눈빛에 재환이 손가락을 배를 가리켰다.
“그거 빨리 수술 날짜나 잡으시죠. 더 늦으시면 골로 가요.”
“허, 허허. 이놈아. 그건 어디서 들었냐?”
“기업 비밀인데, 제가 구 회장님 봐서 특별히 KG 그룹 저한테 넘기면 내가 가르쳐 드릴게.”
“헛소리 말고. 어디서 들었어.”
구 회장이 목소리를 착 깔고 되물었지만 재환은 어깨만 으쓱했다.
열심히 일하던 괜한 의사 모가지가 날아가게 만들 수는 없다.
“그런 게 중요합니까. 회장님 몸 상태가 나날이 최악이 되어 간다는 게 중요하지.”
“쯧…. 그래, 네놈이니까 어떻게 들었겠지. 대신 하나만 묻자. 누구한테 말했냐? 지금까지 기사 안 난 거 보면 입 다물고 있었던 거 같은데.”
“막내분한테는 살짝 말했어요.”
구 회장은 주름이 자글한 얼굴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재환이 말한 막내가 둘째 놈을 말하는 게 아니란 걸 알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여전히 마음이 착잡하다.
언젠가는 알려야 할 사안이었지만 아직 그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요 며칠 그 녀석 눈이 이상했구먼.”
“다 회장님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분 회장님에 대한 충성심 하나는 갑이잖아요.”
“그래, 맞는 말이지. 처맞는 말.”
구 회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책상을 엎으려 했다.
재환이 빨리 눈치 채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정리하느라 고생 꽤 했을 거다.
“아유, 우리 회장님 정정하시네.”
“이 써글 놈. 두 놈한테는 말 안 한 걸 잘했다고 해야 할지. 막내한테만 말했다고 하니 썅놈의 자식이라 해야 할지.”
“언제까지고 숨길 수 있는 일은 아니었잖아요.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치료 받으세요.”
재환의 말은 타당했다.
안 그래도 의사가 더 나이 먹기 전에, 전이가 일어나기 전에 치료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장은 그도 곤란했다.
“내가 치료받는다고 자리 비우면 아들놈들이 어쩔 거 같냐? 두 아들에게 승계하는 걸 원치 않는 놈들이 가만있겠어?”
“회장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 아닙니까. 죽을 때 돈 싸들고 저승에 피크닉 갈 겁니까? 정정하게 있어야 손주들 대학 가는 거, 결혼하는 거 볼 거 아닙니까.”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이 건은 더 말하지 마라. 다른 놈들에게 말하면 우리 관계는 끝이다.”
고집불통 영감은 극단적인 수를 두는 걸로 얘기를 더 진행하길 거부했다.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는 구 회장을 보며 재환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비서실장한테 말한 거예요. 그 분이랑 같이 다니세요. 능력 좋은 분이니깐 치료받는 동안 알리바이도 잘 만들어 줄 거 아닙니까.”
“배려 고오맙다.”
“알면 좀 건강 챙기시고요. 우리 회장님이 오래 살아 계셔야 제가 한몫 거하게 뜯어낼 거 아닙니까.”
장난 반 진담 반인 말을 들으며 구 회장이 코웃음 치고 자리를 떴다.
재환은 그 뒤를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 회장에게 전달할 내용은 다 전달했으니 이제 다음 사람을 만나 볼 차례다.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은 한성 물산이다.
“어떻게 오셨죠?”
1층의 안내 데스크 직원을 보니 다짜고짜 KG그룹 본사로 쳐들어갔을 때가 생각났다.
막무가내로 돌파했던 그때와 다르게 지금은 미리 약속을 잡고 왔다.
“오늘의 신문 대표 강재환 입니다. 이강철 사장님과 약속 잡아뒀으니 확인 부탁드립니다.”
직원이 윗선과 확인하는 동안 대뜸 KG 본사에 쳐들어갔을 때가 떠올랐다.
꽤 된 일 같은데 실상은 한 달 남짓 지났을 뿐이다. 그 한 달 동안 많은 게 변했다.
“이쪽으로 오시죠.”
직원의 도움을 받아 응접실까지 이동한 재환은 이강철이 오기 전까지 수첩을 보며 시나리오를 한 번 더 점검했다.
‘이한철 성격상 신문사를 압박할 방법은 두 개. 광고주들을 이용해서 광고를 빼버려서 돈줄을 막는 게 첫 번째. 기업 차원으로 소송을 거는 게 두 번째. 돈줄은 구 회장님이 있으니 걱정할 거 없으니 소송만 막으면 된다.’
그 소송을 어떻게 막느냐.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한성 물산의 사장인 이강철입니다.”
이놈을 이용해서 막는다.
“사장님을 만나 봬서 영광입니다. 오늘의 신문 회사 대표인 강재환입니다.”
이강철은 문을 걸어 잠그고 재환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의 눈은 흥미로 가득 차 있었다.
“저한테 주신 정보가 꽤 재밌던데요.”
“마음에 드셨나 모르겠네요.”
“아주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상대의 환심을 사려면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면 된다.
재환은 삼성 물산에서 고민하는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줬다.
“다음 정부가 개성공단을 폐쇄할 계획을 짰더군요.”
“그래서 제가 말했잖습니까. 지금 시기만 넘기면 다시 살아날 거란 얘기는 희망 사항일 뿐이라고요.”
“어디서 이런 정보를 얻으신 겁니까? 저희도 꽤 거금을 들여서 알아낸 정보인데요.”
“그건 기업 비밀입니다.”
재환이 빙긋 웃자 이강철은 코웃음을 쳤다.
고급 정보를 물고 와서 한 번 만나 볼까 싶었는데 저렇게 뻔뻔한 낯짝을 들이대니 살짝 짜증이 일었다.
“좋습니다. 이 얘긴 여기까지 하죠. 그보다 궁금한 건 저와 만나고자 한 이유입니다. 직접 만나야지만 더 값진 정보를 주신다고 하셨으니 들어나 보죠.”
“아마 개성공단 건보다 더 도움이 될 정보일 겁니다. 후계자 싸움에 도움이 될 정보거든요.”
재환이 운을 띄우자 이강철이 확실히 흥미를 보였다.
재환이 건넨 정보의 진위는 둘째 치고, 형님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다는데 흥미가 안 생길 수 없었다.
“한 번 들어볼까요?”
“한성전자의 반도체 공장에서 노동자가 몇 명 사망했습니다. 그들은 건강상의 이유로 퇴직했는데 하나 같이 암에 걸렸더군요.”
“…아하.”
“한성전자에서는 자신들과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글쎄요.”
이강철은 머릿속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짜냈다.
팩트체크는 해야겠지만 저 말이 맞다면 한성 전자를 한 번 크게 흔들 수 있다.
형님인 이한철의 입지가 흔들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하나 더. 제가 KG그룹과 연이 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약을 좀 쳤습니다.”
“약이요?”
“네. 이한철 사장님이 차기 회장이 되는 게 좋을 것 같으니 뒤를 푸쉬하는 게 어떻겠냐고요.”
“흠, 믿기 힘든 얘기군요.”
“이걸 들어 보시고, 직접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
앞 얘기면 몰라도 뒤의 얘기는 신뢰가 가지 않았다.
이강철은 잠시 기다려달라고 한 뒤, 몇 가지의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전부 확인할 것 없이 몇 개만 확인해도 충분했다.
직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이강철이 얼굴을 굳히고 물었다.
“당신 뭡니까?”
재환은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웃었다.
“그냥 신문사 대표입니다. 아직은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