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17
17화
재환의 배짱 넘치는 모습에 이강철은 혀를 한 번 차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앞에 있는 놈이 만만찮다는 건 알겠다.
“기자님이 어떻게 이런 정보를 얻으셨는지 신기하네요. KG그룹과 어떤 연이 있는지도 말이죠.”
이강철의 칭찬 아래에 검은 속내를 읽은 재환은 딱 잘라냈다.
“사업 비밀이라 말씀드리긴 곤란하네요. 그보다 더 건설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떨까요.”
“흐음, 글쎄요. 다른 얘기할 게 뭐가 있죠?”
이강철이 비릿한 웃음을 짓고 삐딱하게 앉았다.
그 꼴을 보고 재환은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형이나 동생이나, 하여간 저 집안은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어.’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를 다 날름 받아먹었는데 거래할 게 뭐가 있느냐란 태도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태도지만 재환으로서는 땡큐다.
자신이 알던 대로 글러먹은 심성 그대로면 어떻게 행동할지 쉽사리 예측이 가능하다.
그래도 확인차원에서 한 번 더 떠봤다.
“한성 전자, 이강철 사장님을 흔들려면 언론 플레이가 필수라는 건 아시죠?”
“굳이 그걸 오늘의 신문을 통해서 할 필요가 있을까 싶네요. 저희 한성그룹에 친화적이면서도 더 큰 언론사가 많기도 하고요.”
단물 다 빠진 너랑 나눠 먹을 떡은 없다.
이강철의 뻔뻔한 태도에 재환은 눈을 감았다.
우울해 보이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속으로는 저 얼굴이 얼마나 갈지 기대했다.
“좋습니다. 대신 후회하지는 마세요.”
“후회요? 누가 후회한다는 거죠?”
“이강철 사장님이요.”
꾸며낸 우울한 표정을 지우고 싱긋 웃었다.
“설마 믿는 구석도 없이 사장님을 만나러 온 순진한 놈으로 보신 건 아니시죠?”
그 말에 이강철의 눈가가 날카롭게 변했다.
던져놓은 낚싯바늘을 톡톡 건드리니 확 물라고 살살 유혹의 움직임을 보였다.
“4대강 사업에서 재미 좀 보셨죠? 근데 거기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은 왜 미지급되고 있습니까? 천하의 한성이 말이죠.”
“하청업체에서 일어난 일을 왜 들먹이는지 모르겠네요?”
“왜 들먹이겠어요. 하청업체 사장이랑 나눠 먹은 돈이 짭짤해 보이니 들먹이지. 사장님이 직접 연관 없다고 해도 이거 기사로 나가면 좀 재밌을 거 같지 않아요? 파업 정도는 쉽게 일어날 거 같고, 그럼 형님이 되게 좋아하시겠다. 그렇죠?”
재환이 희미하게 웃으며 속을 긁자 이강철은 짜증이 확 일었다.
그는 재환이 이한철과 척을 졌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리고 재환의 저 정보들은 크게는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타격을 주고 형에게 이익을 선물할 게 분명하다.
미끼를 콱 물은 이강철을 보며 재환은 낚싯대를 당겼다.
“거기다 이강철 사장님이 저에게 이렇게 나오는데 제가 KG그룹에 좋은 얘기를 해줄 수 있을지 고민이네요.”
“하, 하하. 협박하는 겁니까?”
이강철이 딱딱한 웃음과 함께 되묻자 재환은 표정을 굳혔다.
“협박은 그쪽이 먼저 했죠. 상도덕도 없이, 맛있는 음식 나눠 먹자고 웃으며 다가왔는데 혼자 날름하려고 수작질이나 부리고.”
재환이 강하게 나가자 이강철이 팔걸이를 세게 움켜쥐었다.
이강철의 감정은 짜증을 지나쳐 분노로 넘어갔다.
동시에 이강철의 안에서 재환은 무시해야 될 대상에서 제거해야 될 대상이 되었다.
저 감정 변화를 재환은 회귀 전에 본 적이 있다. 저 얼굴을 마주하고 얼마 안 가서 죽었으니까.
가만두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기에 선수 쳤다.
“자갈치파에 연락하실 생각은 접어두세요. 제가 없어지면 KG그룹의 구 회장님이 많이 곤란해 하시거든요.”
일부러 자갈치파까지 거론한 덕에 이강철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자갈치파를 안다는 건 더 한 것도 안다는 말과 동음이의어다.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물었다.
“그 영감탱이가 곤란해지면 한성으로서는 땡큐 아닌가?”
“그래서 제가 죽으면 한성의 비리 자료가 전부 회장님에게 넘어가게 손 써뒀어요. 이한철 사장님이랑 이강철 사장님이 의원님들께 먹인 돈만 100억은 가뿐히 넘어가죠? 한강에 담근 사람 수도 꽤 될 거고요. 명단 작성해 놓은 거 보여 드려요?”
날 건드려서 같이 뒤지기 싫으면 잡생각 버려라.
이미 충분히 밑밥을 깔아 놨기에 허황된 말로만 들리지 않았다.
이강철은 마른세수를 몇 번 하고 고개를 숙였다.
“후우, 제가 졌습니다.”
이강철이 고개를 숙여 보이자 짜릿한 감각이 온몸을 관통했다.
회귀 전에도 이강철에게 비슷한 협박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이강철은 시종일관 오만한 눈으로 재환을 내려다볼 뿐, 사과의 말은 조금도 없었다.
오만방자한 놈이 고개를 숙이니 한 발씩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재환은 다리를 꼬며 여유롭게 말을 꺼냈다.
“승자와 패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저 좋은 파트너와 나쁜 파트너만 있을 뿐이죠. 제 생각에 저희는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은근히 체면치레를 하면서 재환은 남은 커피를 홀짝였다.
이강철이 머리를 숙인 모습을 본 건 짜릿했지만 이 감정에 젖어 있어서는 안 된다.
한성의 둘째는 필요하다면 고개를 숙일 줄 아는 놈이고, 그때 받은 치욕은 잊지 않고 언젠가는 갚는 독한 놈이다.
지금 받은 굴욕도 잊지 않고 있다가 언젠가 칼을 뽑아 재환에게 들이밀 것이다.
물론 재환은 그 전에 칼을 쥐지 못하도록 이강철의 손을 잘라버릴 예정이다.
카르텔 놈들에게 베풀 자비 따윈 없다.
음습한 얘기를 한차례 주고받은 뒤에야 본론으로 돌아왔다.
“제대로 얘기해보죠. 저희 신문사에서 단독으로 관련 소식을 보도할 겁니다. 그러면 한성 전자 쪽에서는 아니라고 부인하거나 침묵할 텐데, 아마 침묵할 확률이 높죠.”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회장님은 그런 의미에서 조용히 넘어가길 원하실 겁니다.”
“하지만 저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겁니다. 장작은 충분히 마련되어 있으니 몇 달 동안 불을 땔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찌 될까요. 노조가 들고 일어나고, 파업에 들어가고, 주가는 타격을 받겠죠.”
작게 타오른 불이 초가삼간 다 태워 먹을 거라곤 한성도 예측하지 못 할 거다.
“그러니 이렇게 하는 겁니다. 제가 기사를 내자마자 이강철 사장님이 움직이셔서 그분들 만나서 얘기 한 번 나누시고, 위로금을 전달하겠다고 선수 치십쇼.”
재환이 늘어놓은 시나리오는 제법 마음에 들었다.
들어가는 수고로움에 비해 이한철이 받을 타격은 꽤 클 것이다.
미리 상황을 파악 못한 죄, 언론의 입을 막지 못 한 죄까지 여러모로 점수가 크게 깎일 것이다.
“그럼 내가 할 건 그게 다인가요?”
“네. 간단하죠?”
이한철은 고개를 까딱했다.
아랫것들 만나는 게 뭐가 어렵겠는가. 어려운 거라면 재환이 대가로 부탁할 걸 들어주는 게 더 어려울 거다.
이한철의 눈빛을 읽은 재환이 곧바로 요구 조건을 내놨다.
“사장님이 해주실 건 형님이 저희 신문사에 세무조사 들어오는 걸 막아 주시면 됩니다. 어렵지 않죠?”
이한철의 압박을 이강철을 앞세워서 막아낸다.
자연스럽게 이한철은 재환의 뒤에 이강철이 존재한다고 인지하게 되고, 압박해 봐야 큰 타격을 못 준다고 인지하게 된다. 거기까지 상황이 흘러가면 재환이 타격받을 일은 없어진다.
오히려 고래 싸움에서 나오는 잔여물을 주워 먹으면 된다.
“세무조사만 막아달라?”
“어느 정도 융통성은 보여주실 거라 믿습니다.”
“제가 좀 완고한 타입인데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그 외의 건 안 하겠단 소릴 참 저렇게 얄밉게도 한다.
딱 여기까지가 우리의 거래다. 라고 이강철이 선을 그었지만 재환이 그 안으로 슬쩍 들어갔다.
“덤으로 조언 하나만 드리자면 애인분은 정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걔 자갈치파에 붙은 꽃뱀이에요. 나중에 탈탈 털려 먹히지 말고 미리 조심하세요.”
“…전 가정이 있는 몸입니다. 그런 농담은 불쾌하군요.”
“농담으로 여기시려면 그러세요. 일 터지면 써낼 기사가 늘어나니 신문사만 기쁘죠. 안 그래요?”
끝까지 웃는 낯으로 이강철의 속을 뒤집어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사는 오늘 중으로 나갈 겁니다.”
“빠르네요.”
“한두 마디만 더 쓰면 완성인데, 미룰 이유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나가시죠. 만나 봬야 할 분이 많을 건데 말입니다.”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재환은 자리를 떴다.
응접실의 문을 닫으니 뭐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한성이란 이름만 믿고 나대는 놈이 어쩔 거야.
회사에 도착해 재환은 미리 준비한 기사를 업로드하고 맥주를 홀짝였다.
말을 잘 맞춰놨기에 조금 기다리니 이강철의 얼굴이 담긴 기사가 올라왔다.
조선쪽을 통해 이강철이 관련 노동자들을 만나 안부를 묻는 모습이 담긴 기사다.
내용은 짧았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확실했다.
노동자들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고, 그에 대해 보상을 하겠다.
메시지가 전달되자 재환의 기사의 조회수가 자연스럽게 껑충 뛰었고, 신뢰도도 쭉 상승했다.
-이 기자 신문사 대표됐다고 안 했음? 근데 기사 쓰네?
-듣자 하니 원하는 기사 쓰려고 대표 됐다고 하던데.
-대표든 뭐든 이런 기사 쓰는 게 대단하다. 한성에게 미움받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간만에 기레기가 아닌 기자 보는 거 같네.
기사를 본 사람들의 댓글을 쭉 훑은 뒤 재환은 컴퓨터를 껐다.
폭탄도 옆 동네로 돌렸겠다, 예희 잔소리 듣기 싫어서라도 오늘은 퇴근하고 집에 가서 발 닦고 잘 예정이다.
* * * * *
한성 그룹의 혈육과 최고 직책을 지닌 이들만 드나들 수 있는 곳이 바로 이재명 회장의 서재다.
그리고 지금 그 서재에서 두 형제는 나란히 깨지고 있었다.
“생각 없는 것들.”
이재명 회장은 짧은 비난에 두 형제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 한마디로도 두 형제가 얼마나 많은 점수를 깎였는지 알 수 있다.
“이한철, 회사를 키우라고 자리에 앉혀 놨더니, 말아먹고 앉아 있어? 밑에 놈들 관리를 그따위로 밖에 못해?”
“죄송합니다, 아버지.”
“이딴 작은 신문사의 입도 못 막는 놈이 한성이라고 쯧. 너 3분기내로 이 손해 복구해!”
무리한 지시였지만 시키면 하는 수밖에 없다.
이한철이 고개 숙인 사이 이강철은 고개를 당당히 들었다.
그 꼴이 이재명의 눈에 맘에 들 리 없다.
“넌 뭘 잘했다고 고개를 빳빳이 들어?”
“그래도 저 덕분에 기업 이미지가 완전히 박살 나려던 건 막았지 않습니까.”
“어이구, 집이 통째로 불에 타들어 가는데 물 한 바가지 부어놓고 으쓱하는 꼬라지하고는. 처음부터 잘했어야지!”
이재명이 한마디 하긴 했지만 이한철에 대한 비난에 비하면 농도가 훨씬 옅었다.
그 사실을 알기에 두 형제의 희비가 크게 엇갈렸다.
“다시는 이런 일 안 터지게 관리 잘해라. 특히 이한철! 너 그따위로 계속할 거면 바이오웨어 하나 받고 빠질 각오 해!”
이재명의 잔소리가 끝나고 형제는 서재를 나왔다.
당장이라도 이강철의 멱살을 잡으려던 이한철이 이를 악물었다.
“그 따위로 나오겠단 거지?”
“아버지가 옛날에 말씀하셨던 거 기억 안 나? 가장 중요한 건 돈이야. 그 돈을 위해서면 형 찌르는 거 정도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쫄리면 나가시든가.”
비아냥대는 이강철을 보고 이한철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 기자 계속 써먹을 거냐?”
재환의 기사가 터지고 곧바로 조선에서 이강철의 기사가 올라갔다.
둘 사이에 거래가 있었다는 건 누가 봐도 명백했다.
이한철의 비난에 이강철은 재환의 말이 떠올랐다.
언제든 이한철 라인으로 갈아탈 수 있다는 말은 이한철과도 접점이 있다는 걸로 해석됐다.
그게 블러프인지 팩트인지 지금이 확인해 볼 기회다
“그놈 부려먹으면 형님 몇 번 더 쥐고 흔들 수 있을 거 같은데? 왜? 쫄려?”
그 블러프 덕에 이한철은 이강철이 재환을 부려서 자신을 괴롭혔다고 인지했다.
재환이 원하던 데로 풀린 셈이다.
“쫄리긴. 각오나 해라. 그 신문사 포함해서 널 아주 개박살 내줄 테니까.”
그렇게 형제의 우애가 깊어지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