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d-rate journalist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33
33화
영호와 재환은 사무실에서 나와 가까운 카페로 향했다.
임시로 만들어 둔 사무실이라 회의실이 따로 없었다.
수입이 안정되면 사람을 충당해서 더 큰 사무실로 이전해야겠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고 있으니 영호가 얘기를 털어놨다.
“며칠 전에 D 포털 사이트에서 제안이 왔어요.”
“제안이요?”
“네, 저희 소프트에 관심이 많으니 대표님하고 한 번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요.”
재환은 품 안의 노트를 한 번 만져봤다.
온갖 미래의 정보가 담겨있는 이 노트를 보지 않아도 D사가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알고 있다.
‘인수 얘기를 하려나.’
초기의 D 포털 사이트는 카페를 중심으로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지만 점차 N 포털 사이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점유율이 떨어졌다. N포털 사이트의 독점 체제가 시작되려던 찰나, 까톡을 인수하고 다시 옛 영광을 조금씩 찾아갔다.
그 미래를 알기에 재환은 깔끔하게 선을 그었다.
“무시해요.”
“네? 그래도 D 포털 사이트인데요?”
영호는 지금 직장에 만족은 하지만, 대기업에 일련의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대기업에 일하면서 받는 주위의 시선과 자부심은 지금으로선 느끼기 힘드니까.
그런 영호의 마음을 알지만 재환의 태도는 변함없었다.
“N 포털 사이트도 아니고 D 포털 사이트잖아요. 영광도 옛말이지 다 스러져가는 곳인데, 저희가 거기랑 나눌 이야기가 있을까요?”
내가 다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 얹겠다는데 곱게 보일 리 없다.
재환의 말에 영호는 그럴싸한 답을 내보려했지만 궁색한 변명거리만 생각날 뿐이다.
아직 어리기만 한 영호를 보고 재환은 빙긋 웃었다.
“원한다면 저희 회사에서 일하면서 이직 준비하세요. 한 일 년이면 경력직으로 이직 가능하겠죠?”
사장이 이직 준비를 하라고 한다. 이게 권고사직과 다른 게 뭐지?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 영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1년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으면 이럴까.
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영호는 결국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경솔했어요.”
“아뇨. 괜찮아요.”
재환은 손을 한 번 내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행동에 영호는 괜히 똥줄이 탔는데 그 행동이 재환으로서는 귀엽게 보였다.
“남의 떡은 항상 커 보이는 법이죠. 특히 상대는 대기업이니, 그 마음 이해해요. 근데 조금만 기다려 봐요.”
커피를 쪽 빨고 포부를 살짝 밝혔다.
“일 년 뒤에 D사를 먹는 건 저희일 거거든요.”
재환이 그려놓은 큰 그림의 스케치도 보지 못한 영호는 저 말이 그저 어린 사업가의 희망찬 포부처럼 들렸다.
영호가 재환에 대해 재평가하는 만큼, 재환 역시 영호에 대한 평가를 적당히 조절했다.
처음 대학에서 일을 맡길 땐 일머리도 좋고, 손익 계산이 꽤 빠르다 생각했는데 아직 어리다.
‘괜히 일을 그르칠 수 있으니 안전장치를 몇 겹으로 만들어 둬야겠네.’
IT 쪽에서 한결과 같이 전적으로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으련만.
그게 너무 큰 바람이란 걸 재환은 알고 있다.
집으로 천천히 차를 몰고 가는 중에 오랜만에 구 회장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이 늙은이가 또 웬일일까.
최근 KG의 홍보팀에서 보내온 자료를 머릿속에서 쭉 훑고 전화를 받았다.
“어, 구 회장님 아직 살아계셨어요?”
“이 염병할 놈아. 내가 아파도 너보단 늦게 죽을 거다.”
실실 웃으면서 안부를 물으니 구 회장도 그에 걸맞게 화답했다.
가벼운 농을 주고받다가 신호에 맞춰 액셀을 밟았다
“요즘 통 얼굴을 안 비추셔서 조용히 몇몇 사람들만 불러서 장례식 치른 줄 알았죠.”
“나 물어뜯겨 죽으라고 하이에나 풀어놓은 놈이 할 말이냐?”
“상호 동의하에 한 걸로 그러지 맙시다. 애초에 구 회장님이 원해서 한 거잖아요. 내가 양념을 좀 더 치긴 했지만.”
“기사에서 고기 맛은 안 나고 양념 맛 밖에 안 나드만, 이 써글 것아.”
“덕분에 이 참에 조용히 치료 잘 받고 계신 거 아닙니까. 몸은 좀 어때요.”
“저승사자 옷깃도 안 보인다, 이놈아.”
그 말에 재환은 피식 웃었다.
하긴 유서진 비서실장이 눈에 불을 켜고 있을 텐데 치료를 못 받고 있으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다. 안부 인사는 이쯤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뭔 일이에요. 연락을 다 주시고.”
“고얀 놈. 지 할 말만 하지.”
구 회장은 괜히 궁시렁거리다가 폭탄을 던졌다.
“뉴스 하나만 띄워라.”
“예? 무슨 뉴스요.”
“자세한 정보는 메일로 보냈다. 팩트 체크는 끝냈으니까 네 이름 걸어서 기사 쓰고, 내일 첫 뉴스로 띄워.”
구 회장의 말이 의아했다.
지금까지 구 회장과는 재환은 정보와 지혜를 주고 그 대가를 받는 식의 관계를 유지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구 회장이 재환의 이름을 걸고 기사를 써 달라 요구했다.
못 할 건 없다.
구 회장과 쌓아놓은 관계도 있고, 구 회장이 맨입으로 부탁하진 않을 테니까.
하지만 후폭풍을 감당하는 건 온전히 재환의 몫이다.
특히 지금은 재환이 쌓아놓은 금자탑을 부숴버리려고 혈안이 된 이들이 득실거린다.
그들에게 약점을 보일 수 있기에 확실하게 보장된 내용이어야 한다.
재환이 침묵하고 있으니 구 회장이 대가에 대한 답을 내놨다.
“뉴스 시청률 0.1%당 천 만. 어떠냐.”
못해도 시청률이 8%는 나올거라 보고 있으니 기사 하나 쓰고 8억을 낼름 챙기는 거다.
너무나 달콤해서 재환은 경계했다.
8억짜리 기사라.
재환은 바로 차를 갓길에 대고 업무용 스마트폰을 꺼냈다.
유서진 비서실장이 보낸 메일을 열어서 내용을 빠르게 확인했다.
자세한 건 다시 봐야 알겠지만 대략 보고도 돌아가는 상황을 유추할 수는 있었다.
“대성이 왜 튀어 나와요? 다 먹어치워서 소화 중 아니에요?”
“벌써 확인했냐? 하긴 스마트폰이 있으니.”
“할배, 대답이나 해봐요.”
대성 기업은 사장이 잡혀 들어가고 후계자 싸움이 일어났었다.
거기에 KG가 셋째를 꼭두각시로 이용해서 첫째와 둘째를 야금야금 밀어내는 데 성공.
대성 기업이 KG 유통으로 이름 바꾼 게 지난 달의 일이다.
재환도 그제야 구 회장이 미루고 있던 보상을 줬기에 모를 수가 없다.
그런데 이제 와서 트러블이 생긴다는 건 KG 내부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말이다.
“자세한 건 말하기 싫다.”
“이 영감이 진짜. 뭘 알아야 기사를 쓸 거 아닙니까.”
“거기 써진 대로 쓰면 되잖아! 대성의 직원들이 KG의 정보를 빼돌려 중국으로 넘겼다. 산업 스파이 짓을 했으니 그걸 처벌할 예정이다!”
구라다.
대성 기업이 KG 유통으로 바뀌면서 기존의 직원 대부분이 물갈이 당했다.
대외적으로는 사칙이 변경되면서 적응하지 못해 자발적으로 퇴사했다고는 하지만 어느 정도의 압력이 있었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다.
셋째야 적당한 지위를 보장받고 살아남았지만, 처음부터 KG의 대리급으로 있던 사람이다.
얼굴 몇 번 팔고 정해진 대본 외는 걸로 임원진 말단으로 올라갔는데 굳이 판을 엎을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첫째입니까, 둘째입니까.”
“……그런 거 아니다.”
“뭘 아니에요. 보아하니 패악질 했구만.”
면전에 대고 당신 아들내미가 양아치요 하니 구 회장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한성의 두 놈보다야 낫지만 구 씨네 두 아들내미도 만만찮은 양아치다.
그 동안 억눌러 있던 양아치 본성이 사장 직함 달고 터져나왔다는 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그래도 머리가 좀 컸으니 자중할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없나 보다.
“내가 이래서 두 놈들에게 자리를 안 주려고 한 거다.”
“그래서 아들내미 커버치려고 이러십니까.”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다.”
구 회장의 말을 듣고 대충 상황을 파악한 재환은 자료를 한 번 더 검토했다.
그리고 이거 먹으면 배탈난다는 걸 확신했다.
“안됩니다. 이건.”
“야! 기사 쓰는 게 어렵냐!”
“어렵죠. 진실성 있는 기사 싣는 건 특히나 더 어렵고요.”
진실성과 투명성은 재환의 무기다.
강력하지만 때가 타기 쉽기에 상황을 잘 봐가면서 휘둘러야 한다.
아마 구 회장도 그 점을 노리고 재환의 이름을 걸고 기사를 쓰라 한 것이다.
재환의 이름이 걸리면 진실이 보장된다고 사람들은 어느 정도 믿게 되었으니까.
“후에 갑질이란 게 들어나면 아시죠? KG나 저나 이득 볼 게 없습니다.”
“안 걸리면 되잖아.”
“그 안 걸리면 되잖아, 했던 것들. 저한테 다 걸렸잖아요.”
자본은 구 회장이 많지만 치명적인 정보를 재환이 들고 있다.
둘은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닌 대등한 관계이기에 구 회장은 더 강하게 나서지 못했다.
“차라리 이렇게 하죠. 구 회장님을 봐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입을 다물겠습니다. 다른 곳에서 소문 안나게 조심 하시면 조용히 묻어가는 겁니다.”
이건 재환이 제안 할 수 있는 마지노 선이다.
이것조차 재환은 어느 정도 리스크를 감수한 내용이다.
후에 알려지면 알면서도 모른 척 한 거 아니냔 소리가 나올 수 있으니까.
구 회장도 그 점을 인지했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지.”
“건강도 안 좋으신데 스트레스 너무 받지 마시고요. 쉬시죠.”
구 회장과의 전화를 끊고 재환은 손가락으로 운전대를 톡톡 두드렸다.
두 아들의 입김이 전생보다 커져서일까 구 회장이 너무나도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정에 약하긴 해도 휘둘리는 사람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몸이 약해지니 정신도 약해지는 걸까.
“슬 구 회장과의 관계는 정리해야겠네.”
지금은 여기서 그쳤지만 첫째 구준열과 둘째 구준표의 갑질이 거세질 거다.
자연스럽게 구 회장은 그에 휘둘릴 거고, 갑질을 감추기 위해 재환에게 더 기대게 될 공산이 크다.
보통이라면 여기서 이익만 쏙 빼먹고 나중에 입 싹 닦겠지만 재환은 과감히 자르기로 결정했다.
아까도 그렇지만 모른 척하는 것조차 리스크다.
기자다운 기자라는 이미지를 무기로 쓰는 재환에게 저 리스크는 상당히 치명적이다.
“준비를 좀 빠르게 해놔서 다행이네.”
재환은 곧바로 한결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선배 뭐해?”
“뭐하긴 이제 퇴근하고 집 가는 중이지.”
“잘 됐네. 내가 신문사 앞으로 갈 테니 술 한 잔 하자.”
“집에나 들어가셔.”
재환의 속내가 빤히 보였기에 한결은 한마디를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이에 굴하지 않고 재환은 한 번 더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에 내가 술 살게.”
“아, 싫다고! 너 또 일 얘기 할 거 뻔히 아는데, 내가 왜 자처해서 범의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냐. 차단하기 전에 연락하지 마라.”
“어허, 감히 대표의 전화를 차단하겠다고?”
짐짓 위엄있는 척을 하며 으름장을 놓자 한결의 깊은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갑질이야. 갑질. 너 내가 꼭 신고한다. 대문짝하게 기사 써넣을 거야. 정직한 기자의 이면! 제목도 좋다.”
“그 기사 발행을 내가 한다는 거 잊지마. 내가 거하게 쏠 테니까. 기다려.”
“하, 이직 마렵다.”
한결은 연신 투덜댔지만 결국 자신의 위치를 일러줬다.
차를 끌고 한결을 태우고 술집으로 가는 동안 한결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근데 한강 가자더니 왜 룸으로 왔냐.”
“다른 사람이 들으면 곤란한 내용이라.”
그런 내용은 대표실에서 얘기하면 좋은데, 일부러 룸을 찾은 이유가 있다.
적당한 방에 들어간 뒤 재환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KG 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