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342)
하지만 젊은 사람이 아닌 할머니다 보니 자꾸 잊게 되고, 계속 실수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말이 통하지 않는 커다란 덩치의 서양인이 와서 뭐라고 하니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고.
그런데 보안 요원은 보안 요원대로 말이 통하지 않으니 돌아 버릴 지경이라 표정이 좋을 수 없었던 것.
“대사관에는 연락해 봤습니까?”
결국 이 상황에서 가장 도움이 되고 믿을 만한 것은 대사관뿐이다.
그러나 순간 보안 요원의 입가에 떠오르는 명백한 비웃음을 보면서 노형진은 창피함에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질 수밖에 없었다.
* * *
“와, 완전 개새끼 아니야?”
손채림의 분노에 찬 목소리를 들으면서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천하의 썅놈 새끼네.”
할머니에게 점심을 대접한 두 사람은 수소문 끝에 찾은 한세영이라는 공항 직원을 통해 이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었다.
한세영은 독일에 배치된 한국 국적기의 승무원으로, 일부 관광객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한국어를 할 줄 알아 급할 때마다 할머니로부터 도움을 요청받아 할머니와 많이 친한 사이였다.
“저도 도와 드리고 싶지만 어떻게 방법이 없어요.”
“그렇겠지요.”
“한국으로 보내 드릴까 했는데, 그랬다가는 도리어 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니까.”
“끄응…….”
“차라리 여기는 불편하더라도 생존은 하실 수 있으니까…….”
왠지 자책감이 드는 목소리로 한세영이 말하자 노형진은 그런 그녀를 다독거렸다.
“아닙니다. 충분히 하실 만큼 했습니다. 그리고 틀린 말도 아니구요.”
박말례라고 이름이 알려진 할머니는 공항에 버려진 것이었다.
한세영이 애써 기록을 찾아보니, 입국 기록은 아들 내외와 할머니 전부 있는 반면 출국 기록은 아들 내외만 있었다고 한다.
“공항에 버리고 갔다고 하더라고요. 혹시나 도움을 청할까 봐 아예 여권도 같이 훔쳐서 도망간 것 같아요.”
“개자식들.”
노형진은 절로 욕이 나오는 행태에 이를 박박 갈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어떻게 그런 일이라…….”
노형진은 한숨을 푹 쉬었다.
“아마…… 생각보다 많을걸.”
“뭐?”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는 손채림.
“그거 말이야, 생각보다 많아. 부모님을 버리는 행위 말이야.”
“고려장?”
“애초에 고려장이라는 것 자체가 일본이 만들어 낸, 존재한 적도 없는 일이야.”
노형진은 눈을 찌푸렸다.
“일본이 한국인을 매도하고 무식하게 표현하기 위해 없는 사건을 만들어 낸 거야. 그게 고려장이지.”
고려 시대에는 부모를 버리기는커녕 제대로 봉양하지 못하면 처벌까지 하도록 되어 있었다.
시대가 지나면서 사람들이 진실을 알게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고려장이라는 기분 나쁜 언어는 아직까지 살아 있었다.
“그러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고려장이 아니라 우바스떼야마라고 해야 하지.”
“우바스떼야마? 그건 또 뭔데?”
“실제로 인정된, 일본에서 부모를 버리는 행위.”
“뭐? 잠깐만, 그렇다는 건…….”
“자기들이 저지르던 죄를 한국에 뒤집어씌운 거지.”
노형진은 비웃음을 날리면서 말했다.
“진짜야?”
“그래. 우바스떼야마(うばすてやま), 실제로 일본어에 존재하는 단어야. 정확한 뜻은 노인을 데려다 두는 곳이라나 뭐라나? 요즘은 퇴직 직전에 가 있는 자리쯤으로 표현되는 모양이던데.”
“헐.”
인터넷을 찾아본 손채림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데 진짜로 이런 사람이 많다고?”
한세영은 씁쓸하게 말했다.
“한…… 이백 명쯤 될 거예요.”
“뭐라고요? 이백 명요?”
“네. 제가 본 것만 수십 명이 넘으니까요.”
“미친…….”
한국에 버리면 어떻게 해서든 찾아올 수도 있고 또 도움을 청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해외에 버리면 찾아가기도 힘들고 도움을 청하기도 막막하다.
“한국으로 못 들어가?”
“여권이 없잖아.”
애초에 공항에 도착했을 때 슬쩍 여권을 빼앗고 따로 귀국해 버리면 비행기도 못 탄다.
“한국 대사관은?”
“오전에 공항 직원이 비웃는 거 못 봤냐? 안 봐도 뻔하지.”
“끄응…… 그럴 거면 왜 있는 거야?”
“파티 하면서 폼이나 잡으려고 있는 거지, 뭐.”
오죽하면 새론의 지점이 점점 확장되고 있겠는가?
해외에서 대사관이 도움을 안 주니까 새론의 지점에 의뢰를 맡기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작년에 필리핀 사건 모르냐?”
“끄응…… 기억난다. 그때 한창 시끄러웠지?”
“그래.”
필리핀에서 한국인 여성이 누명을 뒤집어쓰고 체포당했는데, 대사관에 신고하자 대사관은 자기네 소관이 아니라면 새론 지점의 전화번호를 주었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하지만 그들은 당당하게 그 짓거리를 하고 있다.
“그 새끼들은 아예 일할 생각이 없어.”
노형진이 분노하자 한세영은 씁슬한 표정이 되었다.
항공사 직원으로서 세계 각국을 다녔으니 당연히 대사관의 그런 꼴을 한두 번 본 게 아닐 테니까.
“맞아요. 대부분의 한국 대사관은 그런 식인 게 현실이지요.”
“아니, 그래도 한국에 돌아갈 정도의 여비는 주잖아요?”
“그래, 여비야 주지.”
“그러면 되는 거 아냐?”
“문제는 신원을 확인해야 한다는 거야.”
“무슨 말이야?”
“버리는 인간들이 그걸 모르겠어?”
“어?”
“생각해 봐. 돈이 없어서 버리는 거라면 한국에 버리지, 외국에 버리겠어?”
“아…….”
그 말은 돈이 있으니까 외국에 버린다는 뜻이니, 그렇다면 어느 정도 학식과 사회적 지휘가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더 높다.
“거기에다 문제는 더 있지.”
“어떤 거?”
“과연 공항에만 버릴까?”
“…….”
손채림은 아차 했다.
외국에까지 와서 버리려는 사람들이, 과연 공항에만 버릴까?
“차라리 공항에 버리는 건 양반이에요.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는 거죠.”
아니나 다를까, 한세영은 한숨을 폭 쉬면서 입을 열었다.
“공항은 어딜 가나 보안 1순위인 곳이고, 대부분의 공항은 노숙하는 사람들에게 숙식을 제공해요. 굶겨 죽일 수는 없으니까.”
“그러면?”
“하지만 바깥은 아니라는 거지.”
도움을 요청할 한국인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해도, 그쪽에서 도와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차라리 여기에 있으면 항공사에서 딱하게 여겨서 돌아가는 티켓이라도 주지.”
하지만 바깥에 버려지면 그마저도 불가능하다.
“아마 공항 바깥에 버리는 사람들이 이곳에 두고 가는 사람보다 훨씬 많을 거예요.”
“미친놈들…….”
한세영의 말에 손채림은 절로 욕이 나왔다.
“그나마 여기는 나은 거야.”
독일은 치안이 확실한 유럽이다. 한국과 거리가 더 멀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치안이 좋지 않은 곳에 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어?”
브라질이나 필리핀 일부 지역, 또는 멕시코같이 치안이 좋지 않은 곳에 버린다면 살아남는 것도 기적에 가까울 것이다.
“설마 그런 목적이겠어?”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그 또한 손채림의 말처럼 설마 죽겠느냐는 생각으로 버릴 거라 믿고 싶었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은 상상 이상이다.
“너, 노인 병원 사건 기록 봤잖아. 한두 명이디?”
“…….”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돈이 있는 집안 놈들이었어. 그놈들이 방법이 사라졌다고 ‘아, 이제는 양심적으로 부모님을 잘 봉양하면서 살아야겠다.’라고 하겠어?”
“…….”
천성계 노인 병원 사건.
천성계 노인 병원은 노인을 천천히 의학적으로 죽여 주는 일종의 살인 공장이었다.
의사가 사망진단서를 끊어 주면 따로 조사받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노려서, 해당 병원에서는 노인들을 천천히 말려 죽였다.
과다한 투약과 최악의 복지로 말이다.
원래 노인 병원이라는 곳이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들어가는 곳이다 보니 경찰도, 검찰도, 주변에서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수백 명이 그곳에서 살해당했고, 입원한 사람의 다른 손녀가 이상하다는 의심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적지 않은 돈을 받으면서 계속해서 살인했을 것이다.
‘그건 확실하지.’
나라가 뒤집힐 만한 사건이었는데, 회귀 전에는 알려진 게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끝까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
‘회귀 전에는 얼마나 죽었을까? 1만? 2만?’
수십 년을 그 짓거리를 했으니 엄청난 수의 살인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런 노인 병원에 맡기는 돈이 적지 않았어. 하지만 우리한테 발각되면서 이제 노인 병원에서는 그런 짓을 못 하게 되었지. 그러면 그들은 무슨 방법을 쓸까?”
“큭…….”
나라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방법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설사 돌아간다고 해도 그 끝은 비참 그 자체야.”
한세영이 박말례를 돌려보내지 않으려고 한 이유가 있다.
이런 경우 어찌어찌 돌아간다고 해도 대부분, 아니 100% 어딘지 모르는 노인 병원에 감금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여기는 최소한 돌아다닐 자유라도 있지만 거기는 그런 자유조차 없다.
“그게 무슨 소리야?”
“사람들이 생각하는 요양 병원과 다른 곳이 많다는 거지. 물론 천성계처럼 죽여 주는 곳도 있었지만, 어떻게 보면 그보다 더 잔인한 곳도 있어.”
노형진은 지인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모 정신병원과 요양 병원이 같이 있었는데, 그 요양 병원은 정신병원과 다를 바가 없다는 이야기.
환자들이 움직이면 관리가 힘들다고 노인들을 천으로 침대에 묶어 두는 건 기본이었고, 똥오줌 많이 싼다고 먹고 마시는 것을 최소한으로 주었으며, 제대로 목욕시키지 않아 건물 전체에 똥 냄새와 지린내가 배어 있을 정도였다.
문제는 그곳에 있는 노인들은 가족들이 거의 찾아오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애초에 그런 곳에 둘 정도면 가족들이 버린 셈이다.
“죽이지 않는다면서?”
“그러니까 더 잔인한 거지. 죽이지 않으니까.”
죽이는 대신에 가두어 두는 것이다.
“하지만 치매 같은 걸로 그런 것일 수도 있잖아?”
“그랬으면 차라리 이해라도 해 주지.”
병간호 3년에 효자 효녀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치매로 사람이 아프면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치매로 인해 집안에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것도 숱하게 봤으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는 멀쩡한 노인들을 가두어 두는 곳이야.”
“헐, 미친…….”
“한국에는 의외로 그런 곳이 많아.”
그리고 정부에서는 그런 곳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어찌 되었건 중요한 건, 그들이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정부에서는 방치할 거고 가족이라는 인간들 역시 그냥 두지는 않을 거라는 거야.”
손채림은 약간은 당혹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자신들이 모르는 곳에서 그런 더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래 그래.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막장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야.”
노형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드라마는 인간의 상상이 만들어 낸 막장일 뿐이지만 현실은 언제나 그걸 뛰어넘는다.
“상상 그 이상이라는 문구가 참 잘 맞아떨어진다니까.”
씁쓸하게 말하는 노형진.
“그러면 박말례 할머니는 못 돌아가는 거야?”
“못 돌아가지는 않지. 가족들에게 돌아가지 못할 뿐.”
“설마?”
“손해배상과 부양비를 법적으로 따져서 받아 내야지.”
슬픈 일이지만 이런 경우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
소송해서 부양비를 받아 내는 것.
돌아간다고 해서 저들이 받아 주지는 않을 테니까.
“한국으로 갈 수는 있지만 가족에게는 돌아가지 못한다라…….”
“현실이라는 게 그래.”
어깨를 으쓱하는 노형진.
한세영은 그걸 알고 있는지 한숨을 푹 쉬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