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36)
“으으…….”
설마 필적 감정까지 했을 거라 생각하지 못한 왕만수는 심각하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한국에서는 이런 걸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지.’
대한민국 법원은 법을 일종의 언어유희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나마 형사 쪽은 좀 덜하지만 민사 쪽은 이런 과학적 증거를 거의 제출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변호사들이 이런 과학적인 증거 수집법을 모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상황.
“피고 측, 할 말 있습니까?”
판사는 무심한 눈으로 왕만수를 바라보았다. 왕만수는 이를 빠드득 갈다가 노형진을 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증거의 분석을 위해…… 기일을 다시 잡을 것을 요청합니다.”
광신의 결과 (1)
“끝내주네, 진짜.”
“종이라니.”
거의 완벽한 공격이었다. 모든 과학적 증거들을 다 동원했다. 그 결과, 상대방은 제대로 된 반박도 못하고 재판일의 변경을 시도해야 했다.
“종이가 다르다는 건 어떻게 안 거야? 그게 그거인 것 같은데.”
“뭐, 우연하게 안 거죠. 가령 복사지만 해도 각 회사마다 그 두께가 다르잖아요.”
“음…… 그거야 그렇지.”
어떤 회사는 좀 두껍고 어떤 회사는 좀 얇다. 어떤 회사는 광이 나고 어떤 회사는 무광이다.
“기본적으로 전 세계 표준 공정을 사용한다고 하지만 각 지역에 따라서 똑같이 만들 수는 없거든요. 가령 한국에서 사용하는 초코파이 포장지를 중국에서 사용하지 않듯이요.”
“어, 그래?”
“네, 중국은 땅이 넓고 배송 거리가 길기 때문에 한국식 포장은 쉽게 손상되어서 중국식 포장이 따로 개발되었어요. 이렇듯 전 세계 인간이 비슷한 상품을 사용한다고 하지만 똑같지는 않아요. 심지어 다른 국가에서 물건을 만들던 장비를 가져가 같은 공정으로 제조하려 하더라도 그 국가 환경에 맞게 성분비를 조절해서 써요.”
“그렇군.”
한국에서는 아직은 불가능하지만 미국에서는 지역별로 흙의 상태를 조사하여 증거로 삼는다. 그만큼 각 지역별 차이는 무척이나 큰 것이다.
“그 녀석들도 나름 머리를 쓰기는 했어요. 재생지라니.”
재생지, 또는 갱지는 질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즉, 누가 봐도 아프리카에서 온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얗고 깨끗한 종이에 편지를 쓰면 의심할 수 있겠지만 누가 갱지를 의심하겠는가?
“하지만 거기까지인 거죠.”
성분 조사를 통해서 생산 국가를 알아낼 거라 생각하지는 못한 것이다.
“이제 어떻게 될까?”
“무난하게 승리하겠지요.”
“그렇겠지?”
만민구원파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선을 끊기 위해 발악하고 있었다. 테러에 동참했던 극단론자들은 교회 내부의 극단주의자들이라 자신들도 통제할 수 없었다고 발뺌한 것이다.
그러면서 모금 업무를 하던 사람들은 자신들과 함께 일하기는 했지만 모금액의 사용에 대해서는 전혀 관여한 바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나저나 돈을 받을 수는 있겠어요?”
“그건 무리겠지.”
만구파는 대부분의 자산을 아프리카에 있는 땅과 초호화 건물을 사는 데에 사용했다. 그걸 압류할 수는 있겠지만 팔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프리카가 그리 잘사는 나라는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은 저들의 행동을 막았다는 데에 의의를 둬야겠지요.”
“그렇겠지.”
일단 저들에게 들어가는 대부분의 자본금은 어느 정도 통제되다 못해 거의 씨가 마른다고 해야 할 수준이다. 민사사건은 언론에 나간 게 아니지만 테러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에 대한 모든 지원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부자들의 정신세계란…….”
송정한은 솔직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오로지 자존심을 위해서 자신들이 입은 피해보다 더 큰 피해를 입을 각오를 하다니.
“부자니까요.”
“그건 그렇지.”
솔직히 1인당 50만 원 정도의 피해는 이태원 상인회에 그다지 큰 피해가 아니다. 2년에 걸친 액수니까.
그러나 이번에 들어간 돈은 훨씬 짧은 시간 동안 발생한 손해라 그 의미가 다르다.
“그래도 다행이잖아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다는 게.”
“그건 그렇지.”
만일 이들이 나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100% 만구파는 계속 사기를 쳤을 것이다.
‘그리고 미래의 그 사건이 벌어졌겠지.’
그렇게 된다면 해외에서도 수천 명이 죽었을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수백 명이 죽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상황에서조차 그들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광신의 상태로 들어간 사람들은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성직자라는 놈들 역시 결국 그들을 착취해서 살아남는다.
‘쩝…….’
이기고 싶어도 절대 이길 수 없는 것이 바로 광신자들이다.
“일단 이 건에서 이기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으니까 다음 문제에 대해 고민해 보죠.”
사방에 증거가 넘치니 저쪽에는 이쪽에서 제출한 과학적인 증거들을 뒤집을 능력이 없다. 전국적으로 반만구파 정서가 가득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그러다 보니 만구파와 선이 닿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어 도리어 만구키드들이 만구파와의 연을 끊어 버리고 있는 실정이다.
따르릉.
그 순간 울리는 전화기 소리. 노형진은 무심결에 번호를 확인하고는 그걸 받았다.
“아, 이선화 사모님.”
“노 변호사님, 큰일 났어요.”
“큰일이라니요?”
지금 큰일이라고 할 만한 건 없다. 자신들을 공격할 만한 광신도들은 모조리 감옥에 가 있고 재판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큰일이라니?
“우리한테 그 단체를 소개시켜 준 사람이 있다고 했잖아요?”
“네.”
“그 사람한테서 문자가 왔는데…….”
“협박인가요?”
“그게 아니라 살려 달라고 왔어요.”
“살려 달라니요?”
노형진은 순간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이 되었다.
“모르겠어요. 그걸 받고 전화했는데 연락이 안 돼요.”
“음…….”
노형진은 그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살려 달라? 선처해 달라는 것도, 소송을 취하해 달라는 것도 아닌 살려 달라?
‘뜬금없잖아?’
설마 그런 사건을 일으켰다고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부정할 수 없다는 게 슬프네.’
사이비 종교인들이 자신들에게서 벗어나려고 하거나 자신들에게 큰 피해를 입힌 사람들을 서슴없이 죽이는 경우가 꽤 있다. 따라서 이태원 상인회를 끼어들게 한 사람에게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면서 죽이려 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그분이 사는 곳이 어디죠?”
“서울시 ○○구 ○○동요.”
“제가 한번 가 보겠습니다.”
일단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가 보는 것이 좋을 듯했다.
“경찰에 신고는 하셨나요?”
“하긴 했는데 고작 그걸로 출동할 수는 없다고…….”
‘하여간 경찰들이란.’
노형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상식적으로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장문의 연락을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단문이라고 장난이라고 판단하고 가지 않는다는 건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러니까 한국이 이 꼴이지.’
미국에서는 신고가 들어오면 무조건 출동한다. 전화가 아주 짧게 걸려왔다가 끊어지는 상황이라 해도 말이다.
만약 출동하지 않을 경우에는 확인 전화를 한다. 대신 장난 전화인 경우 그에 맞게 아주 큰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하지만 한국은 그게 아니다. 장난 전화를 한 사람에게는 찍소리도 못 하면서 정작 급한 사람이 제대로 신고하지 못하면 그를 탓한다.
“일단 제가 가서 확인해 보죠.”
“부탁드려요.”
아무리 그래도 여자가 가는 건 위험하기에 자신에게 전화했다는 걸 알고 있는 노형진은 바로 가겠노라고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 변호사님, 같이 가시죠.”
“무슨 일인데요?”
“이번 사건의 주요 증인 중 한 명이 살려 달라는 문자를 남기고 실종되었답니다.”
“증인요?”
“네.”
그 말에 송정한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깜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설마 증인이 실종되는 사태가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 측 증인이야?”
“아직은요. 설득 중이었지만요.”
“그런데 왜 사라진 거야?”
“몰라요. 하지만 살려 달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답니다.”
“큰일이군.”
“가스총 챙기세요.”
“네.”
아무래도 위험한 상황인 듯하여 노형진은 가스총을 챙기고 이선화에게 받은 주소로 바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가 본 것은 현관문이 열린 집의 모습이었다.
“열렸는데요?”
“음…….”
노형진은 안쪽으로 고개를 내밀어서 살펴보았다.
“실례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공간.
“집은 빈 것 같습니다.”
“이상하군요. 무 변호사님 같으면 문을 열어 놓고 집을 비우겠습니까?”
“그럴 리가요.”
서울에 도둑이 얼마나 많은데 말이다.
“이 근처에 잠깐 나간 거 아닐까요?”
그런 거라면 확실히 가능성이 있다. 바로 앞에 가게가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노형진이 보기에는 아니었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신발을 벗는 공간을 보니 신발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고 그 너머에는 누군가가 신발을 신고 들어간 흔적이 있었다.
“아는 사람들이 온 모양이네요. 그래서 문을 열어 줬는데 그들이 강제로 끌고 간 모양입니다.”
“그게 보입니까?”
무태식은 신기하다는 듯 노형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기본적인 현장 지식만 있으면 그걸 추론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변호사들한테도 현장학습을 시켜야 하나.’
현장에서는 단추 하나가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다.
“문을 보면 강제로 연 흔적이 없습니다. 즉, 누군가가 강제로 열었다는 건 아니죠. 그렇다는 건 아는 사람일 거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안쪽으로 보세요. 집 안은 전체적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주인이 깔끔한 타입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입구의 신발만 헝클어져 있죠? 이건 누군가 발로 차고 들어갔다 나왔다는 겁니다. 이 신발 자국을 보면 더욱 그렇지요.”
신발을 신고 들어갔다는 것 자체가 우호적인 행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사라진 증인은 저항하는 것도 포기하고 끌려간 듯합니다.”
“그건 어떻게 아세요?”
“입구 주변에 기물들이 많습니다. 우산도 있고 꽃병도 있고…… 구둣주걱도 있고요. 만일 저항하려고 했다면 잡고 휘두를 수 있는 게 있다는 뜻이죠.”
그렇지만 그런 물건들은 제자리에 있었다. 그러니 그녀는 저항조차 못 하고 끌려갔다는 것이다.
“‘혹시?’ 하는 마음에 저항을 포기하고 끌려간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끌고 가려고 하면 저항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것도 없다는 건 그래도 대화는 해 볼 여지가 있는 아는 사람이라는 것.
“헤, 노 변호사님, 전에 형사였습니까?”
“아뇨. 그냥 현장 경험을 많이 하면 알게 됩니다.”
“현장 경험?”
“그런 게 있습니다. 하하하.”
노형진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집 안을 살펴봤다.
여기저기 있는 종교적인 물건들. 그녀도 상당히 광신도에 속하는 타입인 듯했다.
‘하긴…… 그러니까 모집책 같은 것을 담당할 수 있었겠지.’
그리고 그런 점들을 감안하면 남은 것은 단 하나뿐이다.
“만구파에서 왔다 갔군요.”
“으음…….”
“지금 상황에서 딱 맞는 건 그들밖에 없으니까요.”
“흠…….”
무태식이 봐도 그럴 가능성이 높기는 했다. 문제는 왜 만구파에서 그를 데리고 갔느냐는 것.
“만구파에서 보복하려는 걸까요?”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단순히 그걸 위해 사람을 끌고 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보복당할 걸 알았다면 그렇게 쉽게 끌려갈 리가 없다.
‘그러고 보니…… 그 시간이…….’
살려 달라는 문자가 온 시간. 그건 분명 생각보다 늦은 시간이다.
“아마도 여기에서 끌려간 후에 그곳에서 문자를 보낸 모양입니다. 핸드폰을 감춰 둔 모양이군요.”
“그건 또 어떻게 아셨습니까?”
“바닥에 있는 흔적을 보고요. 사흘 전에 비가 오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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