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859)
노형진의 적절한 법률적 조언은 아주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다.
해당 소속사가 지원을 해 줄 능력이 안 될 거라 생각한 소속 연예인들이 너도나도 계약 해지 소송을 시작한 것.
“나갈 수는 있지. 하지만 가지고는 못 나가지.”
노형진은 피식 웃으면서 서류를 덮었다.
“거의 다 소송을 선택했네. 어떻게 안 거야?”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성 상납에 자발적으로 나선 인간들이, 설마 사장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불이익을 참고 소송을 안 할까?”
“그건 그러네.”
분명히 그들은 자신들이 성 상납을 함으로써 얻을 이익과 그로 인한 동료들의 상대적 불이익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득을 위해 상납을 선택한 것이 그들이다.
“그러니까 이건 당연한 결과인 거야.”
“하지만 이기면 결국 재기하잖아.”
“이기면 그렇지.”
“응?”
“툭 까고 말해서, 이건 승자 없는 싸움이야.”
“어째서?”
“이긴다고 한들, 어디로 갈 건데?”
“아…….”
그들의 행동에 대해 알고 있는 협회 소속의 엔터테인먼트사들?
그들이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과연 받아들일까?
물론 여기에 가입하지 않은 일부 대형 소속사들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그런 소속사에서 관심을 가질 만큼 메이저 연예인일까?
“절대 아니지. 아마 그런 곳에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을 거야.”
결과적으로 그들은 계약 해지 소송을 할 수는 있고 또 이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후에는 어떤 곳도 가지 못한다.
“물론 개인적으로 활동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그들이 바로 자리를 잡고 치고 들어갈 수 있는 급은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말이야, 소송 중인 연예인은 방송 출연이 불가능하거든.”
방송뿐만 아니라 라디오, 영화, 심지어 연극까지, 그 책임이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무엇도 할 수가 없다.
“이 바닥은 흐름이 빠르지.”
진짜 어지간한 재능과 노력이 아니면 자리를 잡기 힘들다.
그런 것도 힘들어서 몸 로비를 했던 자들이, 과연 3~4년 후에 소송이 끝난 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은 제로라고 봐도 무방하다.
“결국 그들은 양쪽 다 망할 수밖에 없는 거야.”
“그러면 그 불륜의 증거는?”
“그건 내가 써먹으면 협박이 되거든.”
그렇다고 섣불리 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리고 이건 또 다른 목적이 있지.”
“다른 목적?”
“그래, 내게 불륜의 증거가 있어. PD들이나 방송계에서 힘이 있는 자들이, 과연 어떻게 할까?”
“아…….”
이쪽 눈치를 본다.
당연히 섣불리 성 상납을 요구하지는 못할 것이다.
오히려 혹시나 함정이 아닐까 해서 오는 성 상납도 거절할 가능성이 높다.
“또 그런 놈이 있다면 그걸 터트리면 그만이지.”
노형진은 느긋하게 의자에 기대어 누웠다.
그의 계획대로, 누구도 성 상납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또 경계할 테니까.
“뭐, 이상적인 건 아니지만 말이지.”
가장 이상적인 것은 서로가 존중해서 안 하는 거지만, 인간이 그런 존재라면 애초에 변호사라는 직업 자체가 필요 없을 것이다.
“목적을 이루었으면 된 거지, 뭐. 후후후.”
“쯧쯧.”
손채림은 자기들끼리 박 터지게 싸우고 있을 연기자와 소속사를 생각하면서 혀를 끌끌 차는 것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자업자득이라고, 자업자득. 후후후.”
악마의 편집
“덕분에 조용해졌습니다.”
박상규는 즐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슬슬 눈치 보던 사람들이 이제 찍소리도 못 합니다. 저쪽은 뭐, 사실상 와해되었고요.”
“그렇다고 해서 갑질하면 안 됩니다.”
“그럴 리가요. 저도 이 바닥을 압니다, 하하하. 사실 제가 대룡에 들어가기 전에 이 바닥에서 매니저로 좀 굴렀거든요.”
“어? 그래요? 어쩐지 다른 사람들은 한 달이 멀다 하고 도망가던데 잘 버티신다 했습니다.”
“이쪽이 한량이나 뻥카 치는 애들이 좀 많습니다. 사업가적 마인드로 접근하면 사실 대부분 사기나 마찬가지죠. 그걸 적당히 감안해서 들어야 하는데 그걸 몰라서 그랬던 겁니다, 하하.”
“뭐, 잘 안다고 하시니 제가 걱정은 하지 않겠습니다만, 그래도 정말 갑질은 하시면 안 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대룡이 커도 결국은 협동조합의 조합원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성 상납을 하던 기업들이 한꺼번에 날아가자 협회는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불만을 이야기할 통로는 분명히 존재했고, 박상규는 그곳을 통해 불만을 이야기한다고 불이익을 주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일단은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괜찮으시다면 이번 일의 근본적인 문제를 좀 해결하고 싶은데요. 자꾸 일을 맡기는 건 죄송합니다만…….”
“제가 고문 변호사니까 당연한 겁니다.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라니요? 무슨 일이 더 있었던 겁니까?”
“네.”
“근본적인 이유는 PD들 아니었습니까? 애초에 그들이 요구하니까 벌어진 일이었겠지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자발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있습니다. 그들의 영향력에 의한 문제가 있거든요.”
“영향력이라……. 단순히 그들이 자신들이 가진 힘으로 협박한 게 아니란 말씀이십니까?”
성 상납을 요구하는 PD들과 방송국 사람들.
그리고 뜨고 싶은 마음에 그걸 자발적으로 하는 일부 연예인들.
그들이 이번 문제를 만든 것 아니었던가?
그런데 노형진이 들은 말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네.”
박상규는 이야기가 좀 길어질 거라는 듯 자세를 바꿨다.
노형진도 맞은편 소파에서 자세를 바로 했다.
“뭐 다른 이야기가 또 있나 봐요?”
손채림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많은 젊은 여자들이 그렇듯이 그녀도 이런 연예계 쪽에 관심이 많으니까.
“자발적 성 상납을 한 애들이 나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안 그러면 살 수 없는 구조도 문제죠. 대놓고 협박은 안 합니다만, 그에 준한다고 해야 할까요.”
“안 그러면 살 수 없다?”
“네. 요즘 방송국에서 안 좋은 버릇을 들여 놔서요. 아주 악질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안 좋은 버릇?”
“혹시 레일이라는 가수 아십니까?”
손채림이 바로 끼어들어 알은척을 했다.
“아, 알아요. 그 사람 인성 개떡 같다고 하던데요?”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건 그녀가 노형진보다 더 잘 알았다.
얼마 전 모 프로그램에 나온 레일이라는 무명 가수는, 실력은 좋은데 인성이 너무 안 좋았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찍혀서 연예계에서 사실상 퇴출당했다.
“아무리 랭킹전 프로그램이라고 하지만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는 거죠. 좀 떴다고 너무 기고만장하더라고요.”
손채림은 새삼 그때의 일이 기억나는 듯 눈을 찌푸렸다.
물론 노형진은…….
“그런 일이 있었어?”
전혀 몰랐고 말이다.
“아, 말도 마. 입이 얼마나 거친데. 아주 그냥 입에 욕을 붙이고 살더라. 폭행 시비도 일어났었어.”
“폭행 시비?”
“그 프로그램이 랭킹전을 하는데, 어느 정도 순위가 되면 합숙을 하거든.”
그런데 그곳에서 다른 동료 가수를 밀치면서 분란을 일으킨 것.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방송답게 그걸 그대로 방송했고, 레일은 사실상 방송계에서 퇴출되었다.
“음, 그런데 그 사람이 왜요? 그 사람이 재기하려고 성 상납을 먼저 시작한 건가요?”
박상규의 표정이 씁쓸하게 변했다.
“아니요. 도리어 반대입니다. 상납을 거부해서 그 꼴을 당한 거죠.”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손채림은 깜짝 놀랐다.
상납을 거부해서 그 꼴을 당하다니?
“레일, 남자 아니었어요? 그런데 성 상납을 요구했어요? 설마 PD가 게이?”
“아, 남자였어?”
“남자입니다. 그리고 요구한 건 성 상납이 아니라 돈이었습니다.”
“아…….”
남자한테 성 상납은 받을 수 없으니 결국 돈을 요구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상납을 안 했다라…….
그 이후에 벌어진 일을, 박상규는 천천히 이야기했다.
“악마의 편집이라고 아십니까?”
“악마의 편집?”
“네, 방송계 용어입니다. 뭐, 요즘은 대부분 아십니다만. 편집을 할 때 특정 상대에게 불리하게 하는 겁니다. 뭐, 자극적인 소재가 들어가야 시청률이 나온다는 방송국의 말도 맞기는 하지만, 사실 악마의 편집의 대상은 둘 중 하나죠. 첫째, 원래 그걸 당할 수밖에 없을 만큼 진짜로 성격 안 좋은 사람이든가…….”
“둘째는 보나 마나 자기 요구를 안 들어줘서 찍힌 사람이겠군요.”
“네.”
“헐, 그런 게 있다고?”
“대부분 단어만 알지 그 내면은 모르니까요.”
그냥 자극적으로 편집을 하니까.
오로지 시청률만 나올 수 있다면 뭐든 하니까.
“실제로 그런 악마의 편집으로 자살한 일반인 출연자도 있었고, 뜨는 연예인이 그런 악마의 편집으로 묻혀 버리기도 했지요.”
“으음…….”
“편집의 권한은 PD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거죠. 안 좋게 보이면 단순히 연예인으로서만 끝장나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매장되어 버리니까요.”
어떤 식으로든 출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악마의 편집이 되어 버리면 흥행은커녕 도리어 한국에서 매장되어 버리니까…….
“그 당시에도 레일이 잘못한 건 없습니다.”
“어떻게 아세요?”
“그 당시 프로그램 출연자 중에 우리 대룡 출신도 있었거든요.”
“아…….”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 가관이더군요.”
레일은 사실 작은 소속사 출신이었다.
워낙 작아서 소속된 사람도 레일 하나고, 레일 빼고는 연습생 세 명이 전부라고 한다.
당연히 레일은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했고…….
“원래 레일이 집이 좀 가난합니다.”
가난한 집에서 자란 데다가 공부도 그리 잘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거기에다 연습생으로 있었던 기간도 무척이나 짧았고.
“하지만 길거리 캐스팅으로 올 만큼 실력 하나는 확실하지요. 저도 탐이 나더군요.”
“그런데요? 그거랑 악마의 편집이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일단 레일이 공부를 좀 못합니다. 그래서…… 음…… 좀 안 좋은 학교를 나왔습니다. 소위 ‘똥통’이라고 하죠.”
“아…….”
학교에 급을 매기는 것이 안 좋기는 하지만, 그래도 급이 있긴 하다.
그리고 급이 안 좋은 학교에는 질이 안 좋은 애들도 좀 많다.
그래서…….
“입이 좀 거칠겠군요.”
“네, 그게 문제죠.”
그런 곳에 다니다 보면 입에서 나오는 말의 3분의 1은 욕일 정도로, 제대로 된 말하기 훈련이 안 된다.
말을 하는 방식도 결국은 배우는 거다.
사회생활을 할 때 말을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관건이니까.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은 그냥 생긴 말이 아니다.
오죽하면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는 말도 있겠는가?
“소속사에서도 그걸 고치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던 모양이더군요.”
“십수 년을 그렇게 살았는데 쉽게 고쳐질 리 없지요.”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해가 간다.
“그런데 여전히 핵심은 말 안 하셨습니다. 어째서 악마의 편집의 희생양이 된 겁니까?”
“첫 번째는 PD에게 인사를 안 한 게 문제였죠.”
“인사? 설마 고개 뻣뻣하게 든 건 아닐 테고. 아까 말씀하신 돈이군요.”
소속사가 작다고 했으니 PD에게 소위 인사라고 하는 뇌물을 주지도 못했을 것이다.
“네, 애초에 출연하게 된 것 자체가 협회에서 실력을 보고 추천한 거라서요.”
“흠…….”
돈이 없어서 찍혀 있는 상황.
그리고…….
“그 프로그램에 우승 후보가 있었습니다. 사실 우승 후보라고 해 봐야 뭐, 비트박스라는 대형 소속사에서 박아 넣은 애니까 확정이라고 봐야겠지만요.”
“일종의 내정인 셈이군요.”
“네, 요즘은 프로그램에 그런 소속사에서도 투자를 하거든요.”
해당 소속사는 적지 않은 돈을 투자했고, 그 대신 그 가수의 우승을 보장받았다.
사실 속임수나 마찬가지이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쪽이랑 충돌이 있었나 봅니다.”
“충돌?”
“네.”
한쪽은 가난하고 제대로 지원도 못 받는 가수.
다른 한쪽은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내정받을 정도로 빵빵하게 지원을 받는 가수.
“그 아이가 대놓고 욕을 했다고 하더군요.”
“어머, 어머? 그 당시 우승자라고 하면 도리 아니에요, 장도리?”
“아시네요.”
“알죠. 젠틀한 이미지로 얼마나 인기가 많은데요. 오죽하면 도리를 지킨다고 해서 닉이 도리잖아요. 그리고 성이 장씨라서 장도리. 팬클럽도 있잖아요, 장도령이라고.”
“맞습니다. 잘 아시네요.”
“흠…….”
노형진은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어차피 이런 프로그램은 악마의 편집을 해서 누구 하나 상병신을 만들어야 이슈를 타고 시청률이 오른다.
그런데 주요 투자자가 넣은 우승 후보와 트러블이 있는, 힘없는 소속사의 가수.
‘거기에다가 입도 좀 거친 편이고.’
실력도 없지 않다.
그래서 상당히 버티면서 시청률도 끌어 주고, 소위 말하는 어그로 대상이 되어 줄 수 있다.
그러면…….
“그래서 악마의 편집 대상이 된 거군요.”
“네. 이해가 빠르시네요.”
박상규는 안타깝게 말했다.
“물론 장도리가 못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레일보다는 한 수 아래죠. 랩을 하는데…… 뭐랄까…… 영혼이 없달까?”
“랩? 아, 랩 프로그램이었습니까?”
“네? 아, 네.”
“아하.”
그런 프로그램이라면 레일의 거친 모습 또한 악마의 편집의 대상이면서 또한 볼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준결승까지는 갔는데 결국 4위로 끝났죠.”
문제는 이미지가 개떡이 되어서 아무 곳에서도 안 불러 준다는 것.
“랩이라…….”
“장도리는, 래퍼로서는 글쎄요?”
어깨를 으쓱하는 박상규.
“잘 못하나 보군요.”
“랩이라는 게 음악으로 시작된 이유를 아신다면 제가 왜 래퍼로서 실력이 없다고 하는 건지도 아실 겁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랩이라는 것은 사회에 대한 저항 의식에서 시작된 음악이다.
물론 나름의 규칙이 있고 방식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하류 문화에서 시작된, 강렬한 비트를 기반으로 해서 현실에 대한 독설을 날리는 것이 랩이다.
현실에 대한 분노와 사회에 대한 분노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자괴감.
그런 것이 뒤섞이면서 분출되는, 다른 음악에서 볼 수 없는 감정의 폭풍이 랩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장도리는 그 현실에 대한 감정이 없지요. 하긴, 애초에 보이 그룹에 속한 래퍼로서 키워 온 아이인지라 그런 건 무리일지도 모르겠네요.”
금이야 옥이야 큰 회사에서 연습을 시키면서 데뷔한 장도리가, 사회의 밑바닥에서 쓴맛이란 쓴맛은 다 봐 가면서 성장한 레일의 강렬한 감정을 따라잡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다.
“하긴, 그 애는 밋밋하기는 하더라. 실력은 레일이 짱이었지. 인성이 뭐 같아서 탈락했지만.”
“흠…….”
노형진은 대충 상황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싸웠다고 해서 레일이 마냥 착한 건 아닐 텐데요? 물론 싸운 이유는 모르지만. 법에서도 쌍방이라는 게 있습니다.”
“레일이 싸운 건…… 그게…… 후우…….”
한숨을 푹 쉬는 박상규.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장도리가 먼저 레일을 욕했습니다. 사실 단순히 욕한 정도가 아니죠.”
“뭐라고 했는데요?”
“더러운 창녀의 자식이라고 했답니다.”
“허.”
“어머! 그게 확실해요? 말도 안 돼!”
“확실합니다.”
주변에 함께 방송이 출연한 다른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심지어 스태프들도 있었다.
그런데 합숙소에서 본 첫날, 그런 욕을 하다니.
“그게…… 문제가 되는 게…….”
“뭐가 문제가 된다는 겁니까?”
“그게 거짓말은 아니거든요.”
손채림도 노형진도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말은 레일의 어머니가 진짜로 화류계 여성이라는 소리가 아닌가?
“레일은 아버지가 없습니다. 일찍 돌아가셨지요.”
“으음…….”
그런 상황에서 배운 게 없는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을 테니, 울며 겨자 먹기로 술집으로 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래서 레일이 컸을 테고.
“아무래도 좋은 감정은 아니겠지요.”
자기 때문에 어머니가 망가졌다는 자신에 대한 혐오.
그런 일을 하는 어머니에 대한 혐오.
그리고 자신들을 이렇게 밀어붙이는 세상에 대한 혐오.
“웃기지만, 소속사 사장이 그러더군요. 마치 레일이라는 래퍼를 만들어 내기 위해 세상이 괴롭힌 것처럼, 삶의 모든 것이 최악이라고.”
“후우.”
그런 삶을 살아왔다면 아마 랩이 추구하는, 세상에 대한 저항이나 분노가 안 생길 수가 없었으리라.
“우연치고는…… 참…….”
손채림이 왠지 씁쓸하게 말하자 노형진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우연이라고 생각해?”
“응? 뭐, 설마 우연이 아니라고?”
“아닐걸.”
한국은 패륜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예민한 국가다.
아무리 톱 배우라고 해도 패륜을 하면 그 순간 생매장이다.
“너 같으면 아무리 마음에 안 드는 상대라도 부모보고 창녀라고 하겠어? 그것도 사람 있는 데서? 보자마자?”
“아니, 못 하지.”
“그래, 못 해. 알기 전에는.”
“잠깐…… 그 말은?”
“그래, 알고 있었다는 거지.”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단순히 프로그램에서 만나서 랩으로 배틀을 하는 대상이라면 모르지만, 상대방에 대해 뒷조사를 한다?
이건 아주 심각한 문제다.
“아니, 그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어. 지피지기 백전불태라는 말은 어지간하면 다 아니까.”
더군다나 장도리는 대형 소속사인 비트박스 소속이다.
레일의 실력이 그렇게 뛰어나다면 비트박스는 그에 대해 경계를 했을 것이다.
자신들의 가수인 장도리를 위협할 수 있는 상대니까.
그러니 조사를 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걸 입 밖으로 꺼낸 거지. 그것도 사람 많은 곳에서 말이야.”
까딱 잘못하면 자기가 인성 논란에 휘말려 날아갈 수도 있는 말이다.
“아무리 철이 없다고 해도 그렇게 생각이 없지는 않을 테고. 아마 그 애에게 한 말이라기보다는, 주변에 들으라고 한 거겠지. 안 그렇습니까?”
박상규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럴 겁니다. 실력에서 밀리니까 다른 걸로 묻어 버려야 했으니까요.”
실력은 누가 봐도 레일이 위다.
이 상황에서 장도리가 우승하면 말이 나온다.
그걸 막기 위해서는, 레일이 점수가 떨어져도 이해가 될 만한 다른 것이 필요하다.
가령 인성 논란 같은 거 말이다.
그리고 마치 우연처럼 장도리가 한 말에 레일은 발끈해서 덤볐고, 그게 방송을 탔다.
모든 원인은 삭제된 채로.
“아니, 다른 사람들은 그걸 그냥 놔둬?”
“연예계라고 해서 정치 싸움이 없는 건 아니야.”
대놓고 그런 말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장도리는 살았고, 레일은 죽었다.
그걸 보면서 다른 출연자들이 뭐라고 생각했을까?
매니저나 소속사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잽싸게 장도리 측에 줄을 섰을 것이다.
“레일은 그럼 혼자서 싸운 거야?”
“그런 거겠지.”
“어머, 어머. 진짜…… 너무하다. 난 그것도 모르고.”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드는 손채림이었다.
그녀 자신도 그 싸가지없는 행동을 보면서 나쁜 놈이라고 얼마나 욕했던가?
“웃기네.”
“응? 뭐가?”
“아니, 그 장도리라는 이름 말이야. 도리를 다해서 장도리라니. 그런데 래퍼라면서? 이미지가 너무 안 맞잖아.”
“어, 그런가?”
“랩이 뭔데?”
사회에 대한 반항을 기반으로 하는 음악이 랩이다.
그런데 도리를 다해서 닉이 도리라니.
진짜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보통 랩 하는 사람들은 자기 닉에도 의미를 담으려고 하거든. 최소한 자기가 좋아하는 이름을 쓰지. 그런데 설마 애정 대상이 장도리는 아닐 테고.”
장도리는 작은 망치의 일종이다.
당연히 그걸 좋아할 리는 없을 테니, 위에서 지어 준 이름일 것이다.
즉, 거기서부터 래퍼로서는 실격이라는 소리다.
“그러면 레일은?”
“기차 레일은 수천 톤의 기차에 매일같이 깔리면서도 강하게 버티죠. 말 그대로 강철이니까요. 그런 강인함을 가지고 일어나고 싶다고, 레일이 직접 지은 이름이랍니다.”
박상규가 나름 설명을 해 주었다.
“결국 나쁜 놈은 따로 있는데 엉뚱한 사람이 피해자가 된 거군요.”
“네. 그런데 아까도 말했지만 그 요구 조건이 돈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이번 일은 돈이었지만, 여성 랭킹전의 경우 성 상납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만일 출연자가 하기 힘들 경우 연습생이라도 데려오라면서 말이다.
“망할 PD 놈들.”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
“이제는 그런 짓 못 하겠지?”
과거의 성 접대가 아니라, 말 그대로 불륜으로 몰고 가서 사회적으로 매장시켜 버리니까.
“그래. 그건 어떻게 해결됐다고 볼 수도 있지만,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정말 문제이기는 하다.”
레일의 소속사에서 돈을 못 주니까 찍어 낸 것이니까.
그리고 성 접대가 힘들어지면 도리어 돈을 더 많이 요구할 수도 있다.
그 돈으로 화류계에 가야 할 테니까.
“와, 진짜…….”
“물론 그런 PD들은 일부입니다. 요즘은 시대가 바뀌었으니까요.”
“압니다, 일부인 거. 문제는 그 일부를 잘라 낼 방법이 없다는 거죠.”
“네, 그게 문제죠.”
한국은 내부 고발에 대해 상당히 예민하다.
정상적인 사람이 그런 PD를 고발한다고 해도 잘려 나가는 것은 도리어 고발자다.
그러니 정상적인 PD들도 그냥 상종 안 하는 정도로 끝내지, 그를 쫓아내지는 못한다.
“더군다나 상부는 오래된 사람들이거든요.”
“끄응.”
과거에 성 접대와 뇌물이 공공연하게 존재하던 시절에 활동하던 사람들.
그들이 승진해서 상급자가 되자 성 접대와 돈을 주는 소속사를 찾을 수밖에 없고, 그런 걸 제공하는 PD를 예뻐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정작 승진해야 하는 사람은 못 하고 엉뚱한 PD만 승진하는 악순환.
“하여간 요즘 방송국에서 그 악마의 편집에 아주 제대로 맛을 들였습니다.”
시청률 나오지, 인기 끌지, 거기에다 이슈도 탈 수 있고,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수도 할 수 있다.
거기에다 지극히 합법적이며 또한 자기 권한이다.
“악마의 편집, 악마의 편집 하는 소리는 들었지만.”
손채림은 더럽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별생각 없이 그냥 재미있다고 본 프로그램의 내면이 너무나 추했다.
“생각해 보면 이거 웃긴 건데.”
“뭐가?”
“명예훼손과 허위 사실 유포라는 죄목이 생긴 이유가 뭔데?”
“아, 그러네.”
그런 법률이 생긴 것은 헛소문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피해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의외로 그런 짓을 하는 놈들이 많아서, 지금까지도 고소가 많이 이루어지는 사건이고 말이다.
“악마의 편집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방송에서 대놓고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거야.”
“으음…….”
“그걸 시청률이라는 핑계로 포장하는 거고.”
“네, 그게 문제입니다.”
박상규는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더군다나 이쪽은 철저하게 약자입니다. 애초에 방송에 출연할 때 동의서를 써 주지 않으면 출연 자체가 불가능하죠.”
실제로도 편집의 방향에 대해 터치하지 않는다는 조항에 동의하지 않으면 방송 출연은 불가능하다.
물론 유명하거나 힘이 있는 소속사의 가수나 연예인이라면 상관없는 조항이겠지만.
“소속사가 작거나 무명이라면 심각하겠네요.”
“맞습니다.”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회에 매달려야 하는데, 그에 사인을 하지 않으면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그러니 그저 악마의 편집을 피하기를 기도하면서 사인을 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방송국에서는 시청률을 이야기하지만…….”
“웃기는 소리죠. 애초에 이게 말이나 되나 싶네요.”
국민들의 일말의 호기심이라도 자극하기 위해 한 사람의 인생 자체를 박살 내는 것이 바로 악마의 편집이다.
과연 그게 정상적인 행동일까?
윤리적으로 사람들의 재미를 위해 한 사람을 죽도록 몰아가는 게?
“콜로세움이네.”
손채림의 그 말 한마디가 모든 것을 대변했다.
콜로세움.
검투사들은 귀족들의 유흥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고 또 죽어 나갔다.
“콜로세움이라……. 맞습니다. 촌철살인이네요. 현대판 콜로세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음…….”
“그리고 저도 이 세계를 알지만, 그런 식으로 악마의 편집 하는 프로그램들 중 좋은 꼴 본 프로그램이 없습니다.”
“인간은 피로도를 느끼니까요.”
처음에는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끊임없이 한 명을 깎아내리는 방송을 보면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더러움을 피하고자 하게 된다.
결국 그 끝은 점점 더 자극적인 소재와 더 자극적인 편집으로 다가가고, 인간은 피하고자 하기에 결국 채널을 돌려 버린다.
“정작 길게 가는 프로그램들은 악마의 편집이 없지요.”
순수한 재미 그 자체를 추구하니까.
“악마의 편집을 한다는 것 자체가 PD로서 재능이 없다는 걸 증명하는 셈입니다.”
박상규의 말에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옷도 진짜 유명한 브랜드는 심플하다.
가장 기본에 충실하며 그 기본에서 멋을 창조한다.
신흥 브랜드나 별 볼 일 없는 브랜드가 순간적인 화려함을 추구하는 것과는 반대로 말이다.
“그걸 해결해 달라는 말씀이시군요?”
“네, 어찌 되었건 동의서를 써 준 이상 우리 쪽이 항의할 수는 없거든요. 그런데 이런 일이 여기서 끝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흠…….”
노형진은 턱을 문질렀다.
“내가 실수한 건가?”
“실수?”
“그래, 내가 엔터테인먼트조합을 만들 때, 어느 정도의 뇌물은 모른 척했거든.”
한꺼번에 청소하는 게 힘들 걸 알기에 협회를 만들 때 모른 척했다.
협회에 속해 있다고 불이익이 오면 다들 나갈 테니까.
“그랬더니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네.”
성 접대를 받지 못하니 아마도 금액을 터무니없이 올린 것이 분명했다.
이제 자발적 성 접대도 막아 놨으니 그 금액은 더 올라갈 테고.
“지금 그럼 레일이라는 가수는 뭐 하고 있습니까?”
“일단은 소속사에서 케어 해 주고 있습니다.”
“한번 만나 봐야겠군요. 정식으로 의뢰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라도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