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1929)
“어?”
노형진은 아침 일찍 사무실을 출근하다가 대기석에 앉아 있는 여자를 발견하고는 멈춰 섰다.
“왜 그래?”
“아니, 저 여자.”
“응?”
“저 여자, 그 여자 아니야?”
“그 여자라니? 네가 아는 여자야?”
“아니…… 그건 아닌데. 그 며칠 전에 여자가 도망갔다던 그 사건 기억나?”
“아, 기억나. 네가 말해 줬잖아. 한 명은 안 맡기고 그냥 갔다고.”
“그래, 그랬지. 아, 그렇구나. 넌 사진을 못 봤겠네.”
화를 내고 나가면서 서류를 가지고 갔으니, 손채림에게 넘어갈 때 그녀는 못 봤을 것이다.
“그때 그 서류에 있던 여자 같은데.”
“뭐? 잘못 본 거 아냐?”
“아니야. 맞아. 분명히 그 여자야.”
금발의 서구적인 모습의 여성이기는 하다.
아무리 외모가 낯설다고 하지만 고작 일주일 전에 본 모습을 잊어버릴 노형진이 아니다.
“아니, 여기엔 왜 온 거야?”
“잡혀 왔나?”
“그럴 리가.”
노형진은 결국 그 사건을 수임하지 않았다.
물론 수임한다고 하면 해결해 줄 수는 있겠지만, 남자의 요구 조건이 너무 터무니없었기 때문이다.
잡아 오든가, 아니면 공짜로 다른 여자를 해 주든가라니.
“어쩌지?”
“음…… 이거 참……. 이건 처음 있는 일이네.”
가해자와 피해자가 똑같은 변호사 사무실에 일을 맡기러 오다니.
“일단 대화를 좀 해 보자.”
노형진은 그녀에게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아니스 씨?”
“아니스, 맞아요.”
그녀는 자신을 부르자 어눌한 한국어로 말했다.
아마도 자기 순번이 와서 부른 거라고 착각을 한 모양이었다.
“저기, 혹시 진문식이라는 사람 아십니까?”
아니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리고 다급하게 가방을 챙겨서 바깥으로 나가려 했다.
손채림은 그런 그녀가 나가는 걸 만류하기 위해 입구를 막았다.
그러자 아니스는 거의 우는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보내 주세요. 잘못했어요. 보내 주세요.”
“진문식 씨는 여기 없습니다. 진정하세요.”
“보내 주세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어…… 진정, 진정하시고.”
애석하게도 그녀는 러시아어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고, 한국어는 아주 어눌했다.
직원 중에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사람도 없었고.
“갈래요. 보내 주세요. 보내 줘요.”
벗어나려고 하는 그 찰나, 손채림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미리 깔아 둔 번역 어플에 말을 써서 그녀에게 내민 것이다.
진문식은 여기 없습니다. 저희랑 관계도 없고요. 저희랑 계약하자고 했지만 저희가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스 씨가 온 걸 보니 의뢰하러 오신 것 같은데, 저희가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습니다.
어플에 적혀 있는 내용을 보고 나서야 진정을 한 아니스.
노형진은 그걸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손채림은 잽싸게 몇 마디 이야기를 더 주고받았다.
그러고 나서 노형진을 보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단 이야기해 보기로 했어.”
“그래, 다행이네.”
“그런데 비슷한 사건인데 정반대에서 일하게 생겼네.”
“그렇게 되네.”
노형진은 왠지 기분이 묘해서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 * *
아니스와 대화하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녀가 한국말을 하지 못하다 보니 정작 딱딱 필요한 이야기만 통역기로 전해 줬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손채림과 대화하는 게 편할 듯해서 그 둘이 대화하게 두고 방에서 나온 노형진은, 몇 시간 뒤에 정리된 보고서를 보고 혀를 끌끌 찼다.
“진문식 그놈이 미친놈이네.”
“그런 것 같아. 아니,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대하지?”
“그 녀석은 사람을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니잖아.”
돈이 있으니까 그냥 자기 섹스 파트너를 사 온 거라고 생각한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이건 너무하지.”
도대체 뭘 먹었는지, 하루라도 관계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그것까진 이해한다 쳐도, 관계를 맺으면서 상당히 변태적인 플레이를 선호했다고 한다.
자기 말을 안 들으면 다시 러시아로 쫓아 보낸다고 겁을 주고 말이다.
“거기에다 생활비도 거의 안 줬어.”
집 안에서 먹고 마시고 하는 딱 그 정도만 비치해 두고, 현금이나 카드도 일절 주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 한국어가 어설퍼서 취업이 불가능한 그녀 입장에서는 돈을 벌 수가 없었다.
“결국 식성과 맞지 않는 식사를 강요받았고. 그나마도 진문식이 집에 있을 때만이라니.”
가장 웃긴 건, 그녀가 살찌는 것을 막는다는 이유로 냉장고에 자물쇠를 달아 두고 자기와 함께 먹을 때만 문을 열어 줬다는 거다.
“이건 누가 봐도 인신매매한 거나 마찬가지인데.”
사람을 사람으로 대했다면 이런 취급은 할 수가 없다.
즉, 진문식은 아니스를 사람이라기보다는 자기 성욕을 해결하는 대상으로 삼았다는 뜻이다.
“아무래도 러시아 사람들은 한국 법에 무지하니까.”
아는 사람이 없으니 이혼소송을 하기도 힘들다.
이혼소송을 한다고 해도, 그럴 돈도 없고 말이다.
“그런데 종찬수는 정반대네.”
응 휘웬이라 불리는 아내에게 최선을 다했다.
한국어 교재도 사다 주고, 종찬수 본인도 베트남어 학원에 다니고, 한국 음식이 입맛에 안 맞을까 봐 자주 베트남 음식을 사다 줘서 집 안에 베트남 음식 재료가 가득했다.
“그런데 응 휘엔은 전 재산을 들고 튀었지.”
“사진까지 하나도 안 남겼다잖아.”
집 안에 있던 사진은 모조리 태워 버렸다.
그리고 실종 전에는 몰래 종찬수의 핸드폰도 훔쳤다.
사진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주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것도 무척이나 싫어했다고 한다.
그래도 시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사진이 있어서 얼굴을 알 수 있었지만.
“수사를 피하고 싶은 거지. 사진이 있으면 특정하기 편하잖아.”
“그러면 애초에 작심하고 왔다는 거야?”
“그래.”
“끄응…… 국제결혼이 이런 경우가 많아?”
“없다고는 말 못 하지. 한국인끼리 결혼하는데도 사기 결혼이 그렇게 많은데, 국제결혼에서 사기 결혼이 없겠냐?”
노형진은 혀를 끌끌 차면서 서류를 덮었다.
“비슷한데 정반대의 사건이네. 동시에 진행할 거야?”
“그러지, 뭐.”
변호사 노릇을 하다 보면 한꺼번에 여러 개의 사건을 처리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사건이 스물네 시간 계속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사실 대부분의 재판은 마냥 기다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으니까.
“어느 쪽부터?”
“일단 응 휘엔 쪽을 캐 보려고.”
아니스야 안전한 곳으로 대피한 상태이고 단순 이혼소송을 해야 하는 상황이니, 급한 것은 응 휘엔이었다.
돈을 들고 도망가면 답이 없으니까.
“문제는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는 거잖아. 소개해 준 녀석들도 모른다고 하고.”
“안다고 하더라도 모른 척하겠지.”
응 휘엔은 사기를 치고 도망갔다.
이런 경우 남자를 소개해 주는 건 다름 아닌 기업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연락처가 없다면 사기도 치지 못한다.
“그러니 응 휘엔에 대한 수배를 해야지.”
“사진으로 될까?”
손채림은 고개를 갸웃했다.
응 휘엔이라는 이름 자체도 사실 확실하지 않다.
가짜 신분으로 결혼했을 가능성이 높으니, 응 휘엔이라는 이름도 가명일 가능성이 높다.
“경찰에다 신고를 한다고 해도 추적은 힘들 거야.”
“그렇겠지. 이미 꽁꽁 숨겨 둔 상황일 테니. 그러니 우리는 다른 쪽을 노려야지.”
“다른 쪽?”
“그래. 베트남에서 일하러 온 사람들.”
“어?”
“말이 안 통하는 상황에서, 사람은 결국 비슷한 행동을 하게 되거든.”
각 나라마다 무슨 무슨 타운이 생기는 것은, 그 나라만의 문화를 향유하는 곳을 원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말이 능숙해진다고 해도 그 자신의 뿌리부터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외국에 차이나타운이나 코리아타운 같은 게 생기는 것이다.
“베트남인들이 자주 모이는 곳이 분명히 존재하지.”
“으음.”
“그리고 베트남인들이라고 해서 예쁜 걸 모르겠어?”
응 휘엔의 외모는 누가 봐도 뛰어나다.
그러니 같은 공동체 안에서 생활하다 보면 누군가는 그녀에게 연심을 품을 수도 있다.
“그 연심이 과연 돈을 이길 수 있을는지는 알 수가 없지,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