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266)
같은 시각, 고성균은 조용한 사무실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대한민국 언론사 사주 가문의 사람인 그가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은 지극히 보기 힘든 일일 테지만 그 대상은 그러고도 남을 수 있는 존재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의 아버지니까.
“성균아.”
고성균의 아버지는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고성균은 그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두려웠다.
“큰 실수를 했더구나.”
“아…… 아버님, 그게 아니라, 이건 제가 한 게 아닙니다. 진짜입니다.”
“국정원에서 왔다 갔다.”
“국정원…….”
“인터넷에서 낙태설을 가장 먼저 터트린 게 우리 쪽이라고 하더구나.”
“그…… 그건 그런데…….”
그건 사실이다.
그는 클로버를 말려 죽이려고 했으니까.
“그냥 클로버가 말을 안 들어서, 한번 교훈을 주려고…….”
“교훈을 주려고 청와대와 대통령의 얼굴에 먹칠을 해?”
“…….”
아버지는 길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외부의 눈이 있기에 이번 일은 경고로 넘어갔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고성균을 처리했을 때의 이야기다.
아무리 자신이 회사의 사주라고 하지만 고성균을 그냥 두면 홍안수가 가만 두고 볼 사람이 아니다.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 당분간은 쉬거라.”
“아버지!”
“하와이로 내일 아침에 떠나는 비행기 편을 마련해 놨다. 머리 좀 식히고 오거라.”
“아버지!”
만일 여기서 물러나면 후계 전쟁에서 밀려나기에 그는 어떻게 해서든 나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의 자리에 다른 형제가 올라갈 텐데, 그러면 형제는 그의 라인을 모조리 잘라 낼 테니까.
쉽게 말해서 지금 그의 아버지는 그를 후계자 자리에서 추방하려는 것이었다.
“아버지!”
하지만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문이 열리면서 캐리어 한 대가 방 안으로 들어올 뿐이었다.
고성균이 들어가도 남을 정도로 커다란 캐리어.
그 캐리어는 이미 짐이 들어 있는 듯 무척이나 무거워 보였다.
“큭…….”
그걸 본 고성균은 입술을 깨물었다.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걸 이제야 안 것이다.
* * *
“고성균이 미국으로 쫓겨났다고 합니다.”
심한규는 속이 시원한 표정이었다.
자신을 그렇게 괴롭히던 작자가 사라졌으니까.
“다행히도 모든 게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만.”
노형진은 그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경영에서는 물러나시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물론 인재 발굴을 멈추라는 건 아닙니다. 그건 잘하시니까요.”
심한규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 제가 제대로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테지요. 그리고 이번에 엔터테인먼트조합에 들어갈 생각입니다.”
사실 그가 운영하는 소속사는 작은 곳이 아니기에 그곳에서 주는 지원이 필요 없다.
수익을 나누면서까지 그걸 누릴 필요가 없으니 지금까지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보니 아니더군요.”
한 무리가 된다는 것. 그건 수익이 아니라 힘이다.
“돈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힘이 필요한 거였어요.”
노형진은 그런 심한규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힘을 가지고 있으면 누구도 섣불리 건드리지 못하지요. 그러면 더 많은 꿈을 이뤄 줄 수 있지요.”
심한규는 미소를 지었다.
“그게 가장 마음에 드네요.”
진실을 추적하는 자
기레기.
현대의 기자들을 표현하는 단어다.
기자란 과거에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였으나 지금은 그런 것보다는 조회 수와 자극이나 찾아다니는 인간들이 대부분이었기에 기자들에 대한 평이 과거 같지 못했다.
하지만 일부 기자들은 여전히 그러한 진실을 찾아다닌다.
“그래서 명예훼손에 대한 방어를 의뢰하신다고요?”
“그렇습니다. 아시겠지만…….”
“네, 설명해 주시지 않아도 다 알고 있습니다, 성진호 씨.”
성진호. 코리아 타임라인의 기자로 요즘 흔하지 않은 추적형의 탐문 기자다.
다른 기자들이 자극적인 단어 선택으로 대중을 속이거나 남의 기사를 계속 복제하는 우라까이로 자기 기사의 뷰를 늘릴 때, 그는 오로지 진실만을 위해 움직였다.
“그런데 왜 저희한테 오셨습니까? 이해가 안 가는데요.”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코리아 타임라인을 만든 건 그다.
물론 공식적으로 이름만 올리고 있을 뿐 딱히 어떤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만든 시스템이 붕괴되거나 하지도 않았다.
“코리아 타임라인은 이런 경우에 대부분 기자들을 보호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노형진은 타임라인을 만들고 전면에 나선 적이 없기에 대부분의 기자들은 그가 사주라는 것도 모른다.
이번에도 노형진은 변호사로서 성진호를 대할 뿐, 자신이 사주라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그렇지요. 일단 지금도 그렇고요.”
“그러면 그쪽에 의뢰를 하면 되지 않습니까? 저희를 따로 고용하시려면 돈이 따로 들어갈 겁니다. 더군다나 이번 사건 같은 경우는, 아무리 저희가 싸게 해 드린다고 해도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갈 텐데요.”
이번 사건, 그러니까 성진호가 소송을 당하게 된 건 연예계의 사건이다.
어떤 잘나가는 연예인이 과거에 일진이었다.
물론 일진 출신이라는 것도 아주 심각한 문제이기는 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 연예인이 일진으로서 활동할 당시에 자살한 사람이 세 명 있는데, 그 자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의심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에 대해 보도했는데…….
“그런데 그쪽에서 소송을 걸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요.”
“그쪽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지요. 고영진 그 사람 지금 한창 비싼 몸값을 자랑하지 않습니까?”
요즘 같은 시대에는 학교 다닐 당시에 일진 노릇을 했다고 하면 무조건적으로 퇴출된다.
하물며 당시에 자살한 사람이 있는데 그 자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사람, 그러니까 그들을 괴롭히던 주범이었다고 하면 그는 끝장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저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아무래도 회사에서는 저를 보호해 주지 못하겠답니다.”
“아니, 어째서요? 이해가 안 가는데요.”
“그게, 일단 이기기 힘든 게 문제입니다. 증언도 부실하고 증거도 부실합니다.”
증언을 해 줄 만한 그 당시의 학생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그와 접촉한 모든 사람들이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당했다.
그러자 인터뷰를 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
“허어?”
노형진은 눈을 찌푸렸다.
“증언이 없으니 제가 했던 걸 증명할 수도 없고요. 더군다나 제가 가지고 있던 증거도 도둑맞았습니다.”
“네? 증거를 도둑맞아요?”
노형진은 깜짝 놀랐다.
증거를 도둑맞았다는 것은 이만저만 심각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설마 그 자료를 회사에 뒀나요?”
“네, 그게 문제입니다.”
도둑맞은 그날, 어째서인지 그의 사무실 카메라가 꺼져 있었다.
그런데 그의 사무실에 있는 카메라가 한두 대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
무려 네 대나 되는데 전부 고장 나다니.
“그러니까, 내부에서 누군가 사건을 덮으려고 하고 있다?”
“네. 그리고 그게 생각보다 높은 곳 같습니다.”
“그래요?”
노형진은 눈이 저절로 찡그러졌다.
‘벌써 시작인가?’
어떤 조직이든 영원히 깨끗할 수는 없다.
당연하게도 노형진이 만든 코리아 타임라인 역시 그럴 것이다.
과거에 모 신문사가 언론을 통제하려고 하자, 그 당시 바른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따로 나가서 언론사를 만들었다.
국민들은 그들을 믿고 후원을 해 줬지만, 정작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신들을 도와줬던 국민들을 배신하고 자기 입맛대로 뉴스를 곡해해서 내기 시작했다.
‘뭐, 상대적인 문제이기는 하지.’
똥통에 쓰레기가 들어 있다면 상대적으로 깨끗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걸 꺼내서 아무리 깨끗하게 씻어서 쓰레기통에 따로 담는다고 해도 결국 쓰레기는 쓰레기일 뿐이다.
기자들도 마찬가지.
기자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깨끗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다.
어떤 기자가 어떤 언론사 내에서 상대적으로 깨끗해 보인다고 해서 그가 올바른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도리어 그럴 가능성보다는, 그가 반대 파벌에 속해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더 높다.
당연히 그 기자가 그 언론사를 나온다고 해도 그가 100% 깨끗한 기사를 쓰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상대 파벌에 대해서 깔 뿐이며, 필사적으로 자기 파벌을 보호하려고 할 뿐이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기자는 깨끗한 게 아니라 주변이 너무 심하게 더러운 것뿐이다.
하지만 정상적인 사람 입장에서는 쓰레기통이나 똥통이나 더러운 건 매한가지고.
더군다나 기자라는 직업은 한국에서 견제받지 않는 직업이다.
절대적으로 부패할 수밖에 없다.
‘결국은 이권 싸움이지.’
양쪽의 균형이 맞으면 조직이 깨끗하지만, 한쪽이 승리하면 그 조직은 부패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정도 시간이면 코리아 타임라인에서 한 조직이 승리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쪽에서는 방어를 못 해 준다고 한단 말이지요?”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기자는 기자가 아니라고, 못 해 준답니다.”
“흠…….”
노형진은 턱을 문질렀다. 확실히 이건 심각한 문제다.
“그런데 그 고영진이라는 사람이 일진인 건 확실합니까?”
“네, 아주 유명한 일진이었습니다. 소문으로는 여자를 건드려서 낙태시킨 경험도 있다고 하더군요. 둘 다 미성년일 때고, 합의에 의한 관계였겠지만…… 그 잘생긴 얼굴로 여자 몇몇 꼬시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겠지요.”
노형진은 눈을 와락 찡그렸다.
얼마 전에 엉뚱한 걸 그룹이 그런 터무니없는 소리를 들었으니까.
“그런 문제는 소문만 믿고 함부로 말하면 안 됩니다. 아시겠지만, 이런 건 새어 나가면 연예인 인생이 완전히 끝장납니다. 이런 건 확실한 정보가 없으면 공개하면 안 됩니다.”
“압니다. 그래서 그 당시 간호사와 인터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낙태라는 게 불법적인 일이다 보니까요.”
“하지만 그 간호사가 굳이 그녀를 기억할 이유가 있을까요? 불법적인 낙태 시술을 하는 곳이라면 다른 환자도 많을 텐데요. 더군다나 그 당시 미성년자였다면 거기에 같이 가지는 않았을 거구요. 그런데 어떻게 고영진인 줄 안 겁니까?”
“고영진의 부모가 네 번이나 여자 쪽 가족들과 같이 왔다고 하더군요. 돈도 그쪽에서 지불했고요. 얼마 전 방송에 고영진의 가족들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확실하다고 하더군요.”
“쿨럭.”
노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헛기침이 나왔다.
“네 번요?”
“네.”
“아니, 미친 거 아닙니까?”
낙태는 절대로 안전한 시술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낙태는 불법이다.
물론 몇몇 특수한 경우, 예를 들어 임신한 아이의 장애가 확실하거나 강간 등의 범죄로 인해서 임신한 경우 등 부모, 정확하게는 어머니가 되는 여성에게 극도로 불리한 상황이 주어지는 경우에는 법적으로도 허가되지만, 일반적으로는 불법이다.
정부에서 그걸 막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여성의 건강이다.
낙태를 하는 경우 여성은 불임 가능성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실제로 낙태를 할 때 의사들은 그나마 후유증을 막기 위해 특수한 영양제를 맞는 걸 권하는데 그게 100만 원 가까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몸에 부담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낙태의 진짜 큰 문제는 그 부담이 몇 년 후 진짜 아이를 가지고자 할 때 불임이라는 형태로 드러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끄응…… 돌겠네.”
실제로 그런 이유로 이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이가 안 생겨서 병원에서 검사했는데 낙태 후유증으로 인한 불임이라는 진단이 나와 버리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엄청난 쇼크를 받는다.
더군다나 그런 경우 그러한 사실을 숨기고 결혼한 여자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혼소송을 할 때는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뿐만 아니라 생명에 대한 윤리적 문제도 있다.
윤리적으로 봤을 때 아이를 임신했을 때 벌어지는 수많은 법률적 문제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수많은 법률학자들의 머리를 아프게 한다.
아직도 법률계에서는 생명으로 인정되는 시점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생명으로 인정되는 시점이 임신하는 순간부터인지, 아니면 어느 정도 형태가 잡혔을 때부터인지, 아니면 출산한 순간부터인지.
얼핏 간단한 문제 같기도 하지만 절대 간단한 게 아니다.
생명의 윤리란 그런 거다.
만일 생명의 탄생의 순간을 임신한 순간으로 보면 낙태란 살인죄가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출생한 순간을 기준으로 보면 임신 기간 중 태아는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한다.
가령 아들을 원했는데 딸을 임신했다는 이유로 강제로 낙태 약을 먹이는 경우 그건 아이에 대한 상해인가, 아니면 어머니에 대한 상해인가의 문제가 생긴다.
아이라면 치명적인 상해지만 낙태 약의 특성상 어머니에게는 큰 영향이 없기에 처벌이 약해진다.
지금이야 덜하지만 실제로 과거에는 극단적 남아 선호 사상 때문에 그런 황당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영양제라고 속이고 임산부에게 낙태 약을 먹인 사건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생명의 탄생 시기를 출생으로 보면 그 이전에는 어머니에게 종속된 시기로 해석되어 태아를 기생체로 취급하게 되는데, 그런 경우 아이의 출생에 대해 생물학적인 아버지의 권한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다.
생명이 아닌 신체의 기생체라서, 자신의 신체에 대한 여성의 독점적 권한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법적으로 임신 기간은 대략 10개월.
그 기간 중 아버지가 사망하는 경우 그 재산의 상속에 대한 문제 역시 복잡해진다.
법적으로 아이가 임신 중 아버지가 사망하면 아이는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을 자격이 생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데, 만약 사망한 경우에 아이가 없다면 그 재산은 부모와 아내가 나누지만 아이가 있다면 아내와 아이가 나눈다. 즉, 부모의 상속권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그런 경우 부모가 며느리에게 낙태를 종용한 사건도 적지 않았고, 반대로 상속이 종료된 시점에 아내가 아이를 낙태하고 재산 전액을 들고 도주한 사건도 존재했다.
어느 쪽이든 어른의 욕심 때문에 아이는 생명을 박탈당하는 것이다.
이렇듯 단순히 정치적 또는 이념적 문제만으로 낙태의 허용 여부를 결정하기에는 사회 전반의 문제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어 까다롭다고 할 수 있다.
어찌 되었건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는 일이니까.
“불법인 데에는 이유가 있는데 말이지요.”
노형진은 눈을 찌푸렸다.
이렇듯이 복잡하고 위험한 문제이기 때문에 여성을 임신시키는 행동에 대해서는 극도로 조심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한 번도 아니고 네 번이나 그런 일을 저질렀다면, 몰라서 저지른 게 아니라는 뜻이 된다.
뭔 일이 터져도 나는 상관없다는 범죄자적 심리 상태로 접근했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런 뉴스는 안 나왔는데…….”
“저도 기자이기 이전에 인간입니다.”
일진 사건은 고영진이 타인에게 저지른 범죄이기에 사회적으로 알려야 하는 사항이지만, 낙태의 경우는 여성의 인격권에 관한 부분이기에 아무리 기자라고 해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성진호가 그 뉴스를 터트리는 순간 질 나쁜 기자들이 그 여자들의 신상을 털어 내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테니까.
“그래서 저도 적당히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저를 죽이려고 덤비네요.”
“그럴 겁니다. 고영진쯤 되는 배우라면 말이지요.”
드라마 한 개, 영화 두 개가 연달아 대박이 났다.
그중 영화 하나는 천만을 달성하며 어마어마한 수익을 내고 있다.
“거기에다 광고만 해도, 어휴…….”
현재 그가 하는 광고만 해도 마흔 개가 넘는다.
거기에다 무려 네 곳의 홍보 대사다.
“지금으로써는 최고의 유망주이니까요.”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못하는 게 없는 팔방미인이다.
그런 남자가 과거에 그런 행동을 했다고 하면 인생 끝장나는 건 일도 아니다.
“그래서 저도 어지간하면 넘어가려고 한 겁니다.”
성진호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기자라고 하지만 반성을 하는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취미는 없습니다. 다른 기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언론이란 사회정의를 이룩하는 도구라고 보거든요.”
“그래서요?”
“처음에는 그냥 단순한 일진설인 줄 알고 그냥 묻을 생각도 있었는데…….”
하지만 조사를 시작하자 이건 도무지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낙태 문제야 개인적인 일이고 서로 합의하에 한 거지 강간이 아니었으니 성교육 자체를 터부시하는 멍청한 기성세대의 잘못이라고 넘어간다고 해도, 세 명이나 자살을 시킨 상황이다.
“그래서 찾아갔습니다.”
“찾아갔다고요? 왜요?”
“사죄하라고요.”
그로 인해 자살을 한 사람의 유가족들, 그들에게 사죄하고 적절한 배상을 한다면 조용히 넘어가겠노라고 말이다.
“그런데 도리어 적반하장이더군요.”
‘어디서 그딴 소리를 주워들었느냐?’라는 소리부터 ‘개소리하면 고소하겠다.’,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협박질이냐.’라는 소리까지, 말도 안 되는 그 태도에 성진호는 질려 버렸다.
“그래서 공개하기로 한 겁니다.”
처음에 공개했을 때는 제법 이슈가 되었다.
그러나 갑자기 후속 보도를 위에서 막으면서 파워는 줄어들었고, 도리어 그들의 변명이 더 빨리 퍼지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기자들에 대한 명예훼손은 성립되지 않는데요.”
법적으로 명예훼손은 기자들에게 성립되지 않는다.
공익을 위한다는 확실한 목적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쪽은 허위 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었다 이거군요.”
노형진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진짜 다급한 경우에 기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고 쓰는 방식이 허위 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몰고 가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때 취재 자료가 털렸고요.”
동시에 증언을 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허위 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고소가 들어갔다.
“이건 너무나 뻔하군요.”
누군가 소속사의 부탁을 받고 자료를 훔친 것이다.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상대방을 특정하고 그들을 고소해서 입을 다물게 할 목적인 게 뻔했다.
“이 상황에서는 제가 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고영진과 MKS라면 정치권으로 선이 좀 닿아 있거든요.”
MKS는 고영진이 속한 소속사로 한국의 3대 메이저 기획사 중 한 곳이다.
요 근래 급속도로 성장한, 많은 연예인 지망생들이 꿈꾸는 곳 중 하나다.
“정치권에요?”
“네. 아무래도 규모가 있다 보니 연습생을 성 접대로 돌리거나 하지는 않지만요.”
하지만 다른 곳에서, 가령 룸살롱 같은 곳에서의 성 접대는 기본이고, 돈 역시 적지 않게 뿌리고 있다고 한다.
“괜히 한국의 3대 메이저 중 하나가 아닙니다.”
노형진이 만든 엔터테인먼트조합에 속하지 않은 3대 메이저. 그들의 힘은 어마어마하다.
단순히 소속된 연예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주변에 미치는 영향력 역시 강력하기에 쉽게 공격할 수가 없다.
“MKS라…….”
노형진은 긴 한숨을 쉬었다.
확실히 호락호락한 상대방은 아니다.
더군다나 지금 상황에서 본다면 불리한 것은 성진호다.
“의뢰를 받아 주시겠습니까?”
“받아들여야지요.”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신문사 쪽도 손을 좀 봐야겠고 말이야.’
노형진은 그 말은 속으로 꿀꺽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