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285)
얼마 후 노형진에게 연락이 왔다.
찾던 사람을 찾았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의외로 유민택이 동행했다.
“굳이 따라오셔야 하겠습니까?”
“아니, 자네가 꼭 찾아야 한다고 하니 너무 궁금해서 말이지.”
“그렇다면야 뭐…… 역사적 순간에 자리하고 싶다고 하시니, 따라오시죠.”
노형진은 유민택을 데리고 비행기에 탔다.
이윽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필리핀에 있는 으리으리한 저택이었다.
“여기에 자네가 찾는 여자가 있네. 다 늙은 중년 여자던데, 찾아서 뭐 하려고?”
노형진은 눈을 반짝이며 미소 지었다.
“두고 보시면 압니다.”
노형진은 현관문으로 다가가서 벨을 눌렀다.
“실례합니다. 마리엘 씨 계십니까?”
이미 상대방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기에 노형진은 자연스럽게 불렀다.
-제가 마리엘인데 무슨 일이시죠?
“주 필리핀 일본 대사관에서 나왔습니다.”
-잠시만요.
노형진의 대답에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유민택.
그리고 노형진의 거짓말에 진짜로 문이 열리자 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여기는 왜 온 건가?”
필리핀. 일본과는 전혀 상관없는 나라다.
애초에 일본의 일왕가가 이런 사람들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여기에 어찌 보면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있을 테니까요.”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리엘이라는 여자를 보고 빙긋 웃었다.
“안녕하십니까.”
“네, 그런데 어쩐 일이시죠?”
마리엘은 약간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난 수년간 연락 한번 없던 일본 대사관에서 갑자기 그녀를 찾아올 이유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노형진의 시선은 마리엘에게 가 있지 않았다.
“이분이 차기 천황이신가 보군요?”
“자…… 잠깐만! 그게 무슨……!”
마리엘의 눈이 격하게 떨리는 걸 보고 노형진은 속으로 ‘나이스!’를 외쳤다.
‘빙고! 소문이 사실이었군.’
“저스틴! 안으로 들어가 있어! 어서!”
저스틴이라고 불린 청년은 당황한 눈빛이었다.
자신보고 엠퍼러, 그러니까 차기 황제라고 했으니까.
필리핀의 평범한 청년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표정을 보아하니 아버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은 모양이군요.”
“엄마?”
“저스틴! 안으로 들어가래도!”
“이제 저스틴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차기 황제가 될 사람의 핏줄이라는 걸. 언제까지 감출 겁니까!”
“엄마? 이게 무슨 소리야? 황제라니?”
“들어가! 어서!”
마리엘은 어떻게 해서든 아들을 안으로 들여보내려고 했지만 저스틴은 들어가지 않고 버텼다.
노형진이 노린 건 애초에 마리엘이 아니었다.
“저스틴! 당신은 황가의 핏줄입니다! 어머니가 뭐라고 하던가요? 아버지는 죽었다고? 그래서 아버지의 유산으로 이렇게 호화롭게 산다고?”
“저스틴! 당장 들어가!”
버럭 화를 내는 마리엘.
그러나 저스틴은 자신을 밀어내는 마리엘의 손길을 힘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제 아버지라니? 제 아버지는 돌아가셨다고 했는데?”
“전혀요. 당신의 아버지는 일본을 다스리는 천황가의 사람이며 차기 천황, 그러니까 황제가 될 사람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마리엘과 그분의 사랑의 결실이고요.”
영혼이 반쯤 나가 버린 듯한 저스틴.
그리고 이제는 몸을 돌려서 노형진과 유민택을 밀어내는 마리엘.
“나가요! 당장 나가! 안 나가면 경찰을 부르겠어요!”
마리엘에게 떠밀려 집 밖으로 나오면서도 노형진은 뒤쪽을 향해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진실을 알고 싶으면 새론의 필리핀 지점으로 오십시오! 그곳에 진실이 있습니다!”
“새론…….”
“나가요! 나가!”
마리엘은 다급하게 그를 내몰았지만 필요한 소식을 다 전한 노형진은 히죽 웃었다.
“이제 제대로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유 회장님?”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돌리다가 유민택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십니까?”
유민택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자네…… 그게 무슨 말인가? 응? 숨겨진 자식이라니? 아니, 그런 아이가 왜 갑자기 튀어나와?”
노형진은 씩 웃었다.
“싸질렀으니까 튀어나오지요, 후후후.”
* * *
노형진은 회귀 전에 국제적으로 일하면서 여러 가지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당연히 그중에는 타이토에 관한 재미있는 추문을 비롯한 일본 황실에 대한 정보도 있었다.
“타이토는 황실의 수치 또는 황실의 골칫거리로 불립니다.”
단순히 성격이 나쁜 정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사고를 불러일으키는 존재, 그게 바로 타이토다.
“오죽하면 그의 아들이 다다음 천황이 될 상황인데도 그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율은 바닥을 치지요.”
물론 이제는 나름 이미지 관리를 하고 있다지만 그런다고 해서 갑자기 그가 멀쩡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거야 나도 이미 들었던 사항이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이해가 안 가는데. 저 여자가 누구인데? 그리고 아들은 누구고? 차기 황제라니?”
“타이토가 젊은 시절에 여자를 사귄 적이 있지요.”
“설마?”
유민택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서 집을 돌아보았다.
방금 전 그 여자.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미모가 상당했다.
“필리핀 사람으로는 안 보이던데?”
“제가 알기로는 중국 쪽 핏줄이라고 하더군요.”
필리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피부빛이 어두운 편이다.
하지만 필리핀 북쪽에는 상대적으로 피부빛이 밝은 화교(중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한중일 삼국 사람들과 아주 흡사했다.
“설마 그때……?”
“네, 그때 아주 시끄러웠지요.”
공식 행사로 필리핀에 왔던 타이토가 갑자기 사라져서 경호국이 발칵 뒤집어진 적이 있는데, 그때 그 여자를 만나러 갔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심지어 이미 아내가 있었는데도 말이지요.”
“허?”
유민택은 혀를 내둘렀다.
상식적으로 한 나라의 왕자로서 이해가 안 가는 행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이토에 대한 일반인들의 지지가 그렇게 약한 거군.”
“네.”
“그런데 아까 그 아이는……?”
“필리핀은 가톨릭이 아주 강한 나라입니다. 거의 국교 수준이지요.”
그래서 낙태를 아주 죄악시한다.
한국 사람들이 필리핀에 와서 라이따이한이 생기면 지우라고 하고 잠수 타지만, 대부분의 필리핀 여자들은 지우는 대신에 낳아서 직접 키운다.
자신의 인생을 걸고라도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건 저 여자분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지요.”
“하지만 일왕가의 아이가 아닐 수도 있지 않나?”
유민택이 봐도 여자의 외모는 범상치 않았다.
그런 상황이라면 다른 남자를 만났다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저도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집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죠.”
유민택은 다시금 집을 바라보았다.
아니, 집이라기보다는 대저택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무슨 소리인지 알겠네. 그러고 보니 자네가 아까 들어갈 때 일본 대사관이라고 신분을 속였지?”
만일 그날 이후로 어떠한 접촉도 없었다면 그녀가 그 말에 의심 없이 문을 열어 줄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녀는 별 의심 없이 문을 열어 줬지요. 보아하니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아닐 듯하고요.”
척 봐도 상당히 관리된 피부와 손톱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다 동남아의 강렬한 태양 아래에서 상당히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고 말이다.
“이미 여자의 부모님에 대해 조사해서 아시겠지만, 저 정도의 재산을 물려줄 사람들은 아니었고요.”
유민택은 허탈한 얼굴이 되었다.
“지금까지 일본은 이걸 이렇게 쉬쉬하고 있었던 건가?”
“그렇지요.”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실 그런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니까요. 지금까지는 확실히.”
노형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마도 저 여자 입장에서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차피 아들이 천황가에 뭘 요구하거나 물려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닌 데다가 자신이 평생 먹고살 만한 돈을, 그것도 아주 풍족하게 준다고 하니까.
“으음…….”
“일본인들이 그걸 소문 낼 리도 없고요.”
천황이라는 존재를 대하는 일본인들의 성향을 생각하면 그런 소문이 대대적으로 퍼질 가능성은 낮다.
“그리고 대부분의 황실의 추문은 언론에서 다루지 않죠.”
그래 봤자 추문으로 끝날 뿐이니까.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지요.”
“난 이해가 안 가는군. 뭐가 바뀌었다는 건가?”
유민택은 자신들에게 다가온 차량에 올라타면서 말했다.
“서자 논란이 터졌지요.”
“응?”
“지금 타이토는 서자라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사실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그래서?”
“만일 적자라면 유전자 검사를 하는 게 사실 두렵지 않을 겁니다.”
그로 인해 세간에서 신이 아닌 인간이라는 말이 나오고 국민들의 자존심에 금이 가긴 하겠지만.
“하지만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을 경우 영원히 따라다닐 정통성 문제에서는 자유로워집니다. 그런데 지금 일본은 신격 모독을 이유로 유전자 검사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즉, 이대로는 서자라도 적통을 이을 수 있다는 일종의 새로운 전통 파괴가 일어나는 거죠.”
“서자라도 적통을 이을 수 있다라…….”
유민택은 소름이 돋았다.
서자라도 적통을 이을 수 있게 된다면?
“아까 저스틴이라고 했나?”
“네, 맞습니다. 저스틴에게도 기회가 생기는 거죠.”
물론 저스틴이 황실을 이어 갈 가능성은 제로라고 봐도 무방하다.
아니, 무방한 정도가 아니라 100% 이어 가지 못한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죠.”
어찌 되었건 미래에는 타이토가 천황이 된다.
그런 상황이라면 저스틴의 존재는 상당히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로서는 손해 보는 게 없지요.”
물론 이 모든 게 음모설 취급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타이토의 추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마리엘은 어떻게 해서든 저스틴을 설득하려고 할 겁니다. 그러나 저스틴은 우리를 찾아올 수밖에 없지요.”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의 비밀.
그리고 그 자신이 일본 천황가의 핏줄이라는 충격적 사실.
“어찌 되었건 찾아와서 뭐든 알아보려고 할 겁니다.”
그리고 그가 진실에 다가갈수록 곤혹스러운 것은 타이토가 될 것이다.
“그런데 굳이 이름을 알려 줘야 했나?”
새론이라는 존재를 드러낸 것은 위험한 생각이 아닌가 싶어 유민택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다른 존재도 아닌 일본 정부다.
“어차피 소송을 하면 알려질 일입니다.”
“소송? 아니, 무슨 소리야?”
“당연히 진실은 알려져야지요.”
노형진은 친자 확인 소송을 걸 생각이었다.
그 대상은 당연히 아버지인 타이토가 될 테고 말이다.
“그리고 소송 당사자로서 할아버지의 유전자와 조모의 유전자도 요구할 수 있지요.”
“헛!”
이쪽에서 친자 확인 소송을 걸면 저쪽은 유전자를 제출하든가 아니면 그걸 막아야 한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천황가의 유전자 정보를 제출할 수 없다.
“그러면 그가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지요.”
즉, 일본 정부에서 아무리 부정한다고 한들 그는 전 세계에 일본 천황가의 핏줄로 기억될 거라는 소리였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미친 듯이 머리가 아플 테고요, 후후후.”
“으음…….”
“그리고 이번 일로 아마 궁내청에서는 어마어마하게 피바람이 불 겁니다.”
“궁내청?”
“설마 이런 비밀을 감추기 위해 외교 부서가 나서겠습니까?”
이런 비밀을 감추는 조직. 그게 바로 궁내청이다.
“안 그래도 요히토 황태자는 궁내청을 공격할 거리를 찾고 있습니다. 지금 막 아주 훌륭한 거리가 생겼네요,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