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317)
변호사의 업무는 주로 소송이다.
하지만 법률적 자문을 하기도 하고 가끔은 증인 노릇을 하기도 한다.
그걸 공증이라고 하는데, 공증 자격이 있는 변호사가 공증을 한 서류는 판결문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그런 공증 업무를 해야 하는 경우는 여러 가지 따져야 하는 게 많다.
하지만 아무리 공증이라고 해도 위법한 것은 공증할 수도 없고, 공증을 한다고 해도 효력도 없다.
그런데 때로는 살다 보면 위법한 걸 요구하는 사람도 있다.
“네?”
공증 업무를 하던 고연미 변호사는 되물었다.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으니까.
“우리 유미한테 전 재산을 남기고 싶어.”
황당한 요구를 하는 사람은 다음 아닌 오숙자.
한국 연예계에서 오래 활동한 가수다.
무려 40년 이상 활동한 사람이기에 당연히 고연미의 대선배라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현역이라고 해도 전처럼 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녀가 한번 콘서트를 한다고 하면 그 표는 30분 안에 매진될 정도로 장년층에게는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고 있는 사람이었다.
“유미요?”
고연미는 어찌 되었건 대선배였고 왕래가 있었기 때문에 그 유미라는 존재에 대해 안다.
오숙자가 아끼는 고양이다.
“그래. 내가 죽고 나면 얼마나 외롭겠어? 그러니까 전 재산을 유미한테 주고 싶어.”
“저기, 선배님.”
고연미 변호사는 진땀을 흘렸다.
그럴 수밖에 없다.
“유미는 고양이잖아요?”
사람도 아니고 고양이, 그것도 길거리 출신의 고양이다.
물론 선배인 오숙자가 키우는 고양이인 것은 안다. 성격이 좋아서 까탈스럽지 않고 낯선 사람에게도 잘 다가와서 골골거리는 소위 개냥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믿을 만한 게 너뿐이네.”
오숙자는 고연미가 아직 방송에서 활동을 할 당시에 모 프로그램을 통해 만났다.
이후에도 친하게 지냈고, 그녀가 방송을 그만두고 변호사가 된 후에도 계속 연락을 하고 지냈다.
그래서 고연미가 오숙자의 사정을 잘 알기는 하지만, 이렇게 황당한 부탁을 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고양이잖아?’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다.
더군다나 오숙자의 추정 재산은 대략 220억 정도 될 거라 예상하고 있다. 그런데 그걸 고양이한테 준다고?
“자녀분이 세 명이나 있으시잖아요? 그런데 고양이한테 재산을 주시겠다고요?”
“자식이 있으면 뭐 해? 이건 자식이 아니라 원수야. 내가 멀쩡하게 살아 있는데 벌써부터 내 유산 가지고 서로 멱살 잡고 싸워. 말만 자식이지. 연미 너는 알잖아, 그 애들이 평생 사고를 치면서 내 속을 얼마나 태웠는지. 오죽하면 내가 네가 내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겠어. 내가 말년에 정을 느낀 건 우리 유미뿐이야.”
“하지만 선배님.”
고연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되는 게 있고 안되는 게 있는 법이다.
“그건 불가능해요.”
“어째서?”
“법적으로 말이죠, 애완동물은 물건이에요.”
아무리 애지중지 키우고 가족으로 생각한다 해도 법적으로는 결국 물건일 뿐이다.
그래서 애완동물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면, 피해자는 가족을 잃은 느낌이겠지만 법적으로 가해자는 단순히 재물 손괴에 지나지 않고, 애완동물의 경우 그 가격이 그다지 높지 않기 때문에 처벌도 약한 것이 현실이다.
“물건에는 재산을 못 남겨요.”
“그러니까 내가 연미한테 온 거 아냐. 어떻게 안 될까? 저 멍청한 애들한테 재산을 남기면 일이 어떻게 될지 너무 뻔해서.”
“휴우…….”
고연미도 오숙자의 세 자식에 대한 이야기는 안다.
호부 아래 견자 없다지만, 오숙자의 세 남매는 그 말이 틀렸음을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그녀는 재능이 넘치고 바른 사람인데, 그 세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개차반인지 답이 안 보였으니까.
물론 그런 자식을 보는 오숙자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건데요.”
아무리 고연미라고 해도 법적으로 권한이 없는 존재를 권한이 있는 존재로 만들 수는 없다.
“나도 알아. 다른 변호사들도 그러더라고.”
그녀 정도 되면 평소 왕래하던 변호사가 있거나 아니면 고문 변호사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도 불가능하다고 하니까 여기까지 온 것이다.
“선배님이 아시는 분들은 쟁쟁한 분들이잖아요? 저보다 훨씬 경험 많고 오래 하신 분들도 방법이 없다고 하는데 제가 뭔 수로요?”
“새론이잖아. 내가 듣기로 새론은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아낸다고 하던데.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까 방법을 좀 찾아 줬으면 좋겠어.”
“끄응…….”
고연미는 한숨만 나왔다.
물론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오죽 답답하면 그녀가 자식에게 돈을 안 주겠다는 소리를 하겠는가?
“유미가 걱정되시는 거라면, 차라리 자식들한테 맡기는 건 어때요?”
“유미를? 지금도 못 죽여서 안달인데?”
유미는 소위 말하는 순종 고양이가 아니다.
거기에다 세 남매가 워낙 숙자의 앞에서 싸우다 보니 유미도 그들만 보면 하악질을 하면서 경계를 한다.
지난번에도 그녀가 보고 있는데도 유미를 발로 뻥 차기까지 했다.
그녀가 유미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면서도 말이다.
“내 장례를 치르기 무섭게 안락사시킬 거야.”
농담이 아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그들이 유미를 어딘가에 가져다 버리는 게 제일 좋은 상황이 될 게 뻔하다.
“오죽하면 내가 고양이한테 재산을 남기겠다고 하겠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고연미는 한숨이 나왔다.
“선배님이 유언장 작성을 해 달라고 부탁하셔서 제가 변호사로서 하기는 하는데, 이건 방법이 없어요.”
“그러니까 부탁해. 우리 유미 혼자 남으면 어찌 될지 너무 걱정돼서 그래.”
“그 마음은 저도 이해하지만…….”
“어떻게 안 될까?”
“글쎄요.”
고연미는 머리를 부여잡았지만 그녀의 입장에서는 방법이 안 보였다.
“이럴 때 도와주실 분이 한 분 계시기는 하죠.”
“노형진?”
“아세요?”
“유명하잖아.”
“아시니까 길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제가 한번 이야기해 볼게요.”
고연미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사실 자신을 찾아왔다고 해도 결국 노형진에 대해 알고 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선배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 정도가 다였다.
* * *
“고양이한테 유산상속을요?”
“네.”
“그게 될 리가 없죠.”
노형진은 고연미의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무슨 짐승에게 재산을 줍니까?”
“가족이라고 생각하시니까요.”
“감정하고 법은 다르죠.”
“노 변호사님은 애완동물하고 거리를 두는 타입이신가 봐요?”
노형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전혀요. 저도 애완동물 키워 봤습니다.”
“지금은요?”
“지금은 키우면 안 되죠. 제가 얼마나 바쁜지 아시잖아요? 그것도 못 할 짓입니다.”
노형진이 일을 나가면 애완동물은 하루 종일 혼자서 지내야 할 것이다.
재수 없으면 열흘씩 출장을 가는데 그때마다 혼자 둘 수는 없으니 애견 호텔 같은 곳에 맡겨야 하는데, 아무리 애견 호텔이라고 해도 결국은 우리 같은 곳에 가두어 두는 셈이니 감옥 생활이나 다름없다.
“제가 감정적으로 평안을 얻으려고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지는 않네요.”
“그건 그렇겠네요.”
“그리고 애완동물한테 재산을 주면요? 그 이후에는요?”
애완동물은 아무래도 그 수명이 길지 않다.
더군다나 오숙자의 애완동물인 유미의 경우 병원 진료 기록에 따르면 열 살 정도 된 고양이다.
“고양이 수명이, 아무리 케어를 잘해 줘도 15년입니다.”
결국 진짜 잘 케어해 준다고 해 봐야 5년쯤 지나면 수명이 다한다는 소리인데, 그때 220억대 재산을 가지고 개싸움이 벌어질 건 뻔한 일이다.
“하지만 선배님은 완전히 마음을 굳히셨어요.”
“아니, 진짜 사람들 참…….”
노형진은 질렸다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일을 판단한다.
하지만 감정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감정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그래서 굳이 고양이한테 주시겠다?”
“네.”
“자식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을 텐데요?”
“그렇기는 하지만요.”
“흠…….”
노형진은 심각한 얼굴로 고민했다.
“전부는 안 될 겁니다. 아시죠?”
“그건 저도 알죠. 저쪽에서 지랄할 거 아니까. 하지만 선배님은 고양이만 지킬 수 있다면 상관없다고 하셨어요.”
“고양이만이라…….”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220억대에 이르는 그녀의 자산을 기증하면 세 남매가 소송을 하고 지랄할 게 뻔하다.
하지만 그건 노형진이 막으면 된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한 가지뿐이다. 고양이 유미에게 재산을 맡기는 것.
“뭐, 방법이 없는 건 아니죠.”
“방법이 있어요?”
“네, 편법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겁니다. 첫 번째는, 재산이 220억이나 되시니 미국에 투자 이민을 가시면 됩니다.”
“미국요?”
“네.”
미국은 주마다 법이 다른 나라다.
그래서 변호사 자격증도 국가가 아니라 주에서 발행한다.
“몇몇 주에서는 애완동물의 재산상속을 인정합니다. 일부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들의 나라에 투자 이민을 하면 분명 재산은 넘겨줄 수가 있지요. 일단 이민을 가서 시민권을 받는 순간 그 나라 법의 적용 대상이 되니까요.”
투자 이민이란 어떤 나라에 이민을 갈 때 그 나라에 어느 정도 이상의 투자를 하면 영주권을 주는 제도를 말한다.
투자를 활성화시키고 부자들의 이주를 촉진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제도다.
그래서 일반적인 이민에 비해 훨씬 빠르고 간편하게 이민이 가능하다.
“그건 힘들 것 같아요. 절대로 한국을 떠나려고 하지 않으실 테니까요. 평생을 한국에서만 살아오신 분이에요. 가끔 해외 공연이라도 다녀오시면 음식이 입에 안 맞았다고 한 달은 투덜거리는 분인데 해외에 가서 사실 수 있을 리가 없죠.”
“그렇다면 안 되겠네요.”
결국 투자 이민은 보류다.
“두 번째 방법은 뭐예요?”
“두 번째 방법이 가장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재산을 물려준다는 개념이 어떤 건지 알아야 합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진짜로 고양이에게 재산을 물려주려는 거라면 이건 쓸 수 없는 방법이에요. 그 고양이, 유미라고 했던가요? 하여간 그 고양이의 안락한 노후를 준비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가능합니다.”
“그게 같은 거 아니에요?”
노형진은 고연미의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전혀 다르죠. 인간으로 치면 고급 요양 시설에서 최후를 마감하느냐 아니면 자신의 집 안방에서 최후를 맞이하느냐만큼이나 다르죠.”
“일단 방법이 없는 건 아니라고 하니 제가 한번 이야기해 볼게요.”
“아니요. 제가 한번 만나 봐야 합니다.”
“네? 어째서요?”
노형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진심을 말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노 변호사님이 자주 말씀하시는, 모든 의뢰인은 거짓말을 한다는 그건가요?”
“뭐, 비슷한 겁니다.”
“하지만 이건 사건 같은 것도 아닌데요?”
“압니다. 하지만 의뢰인인 것은 변함없지요. 그리고 의뢰인은 많은 거짓말을 합니다. 심지어 변호사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말이지요.”
고연미는 그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 눈치였지만 노형진은 그저 담담하게 말을 이어 갈 뿐이었다.
“변호사의 책임에는 그 진실을 알려 드려야 하는 것도 포함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