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2870)
악마의 영혼을 가진 자 (1)
“불이야!”
불에는 사람을 붙잡는 마력이 있다고들 한다.
물론 그건 방화범들의 이야기다.
일반인들에게 불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 열기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사람이 죽는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불에 타 죽는 거라고 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 고통을 즐기는 미친놈들도 있기 마련이다.
“당장 불 꺼!”
“소방차 불러!”
“소방차는 언제 오는 거야!”
사람들의 고함과 비명, 그 모든 게 가득한 곳.
사람들이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사람 살려요!”
“살려 주세요!”
불타는 건물에서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그들은 창문을 열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불법 주차 때문에 못 들어온대.”
“씨발, 뭐든 어떻게 해 봐!”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오래된 집에서 시작된 화재는 어느 틈엔가 빌라 전체를 잡아먹고 있었다.
아닌 밤중에 날벼락으로 벌어진 화재.
늦은 퇴근을 위해 움직이던 노형진은 불이 난 집 안에 사람이 있는 걸 보고 다급하게 주변 식당으로 향했다.
“비켜 봐요!”
“아니, 당신 뭐 하는 거야!”
다들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발만 동동 구르는 그때 노형진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어딘가에서 기다란 쇠 파이프를 가지고 와서는 그대로 상가의 유리를 내리쳤다.
“도둑이야!”
“도둑 아니니까 좀 비켜 봐요! 내가 나중에 물어 줄게!”
자신을 잡으려고 하는 남자를 밀어내면서 안으로 들어간 노형진은 그곳에서 뭔가를 꺼내 왔다.
그걸 본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소화기?”
“두 개 있습니다. 사용할 줄 아는 분? 없어요?”
이 식당은 노형진의 단골 식당 중 하나였다.
셔터는 없고 벽은 유리로 된 식당이었는데, 노형진은 그곳에 소화기가 두 개 있는 걸 알고 있었다.
주인의 말에 의하면, 과거에 주방에서 불이 나서 가게뿐만 아니라 건물까지 홀라당 태워 먹을 뻔한 적이 있어 혹시 몰라 두 개를 비치했다고 했다.
하나가 작동되지 않으면 큰일이니까.
“내가 쓸 줄 알아요.”
“빨리빨리!”
노형진은 소화기 하나를 그에게 건넨 다음, 함께 다급하게 빌라로 달려가서 불을 끄기 시작했다.
“살려 주세요!”
빵빵!
“씨발! 불법 주정차한 새끼 누구야!”
저 멀리서 소방차들이 미친 듯이 빵빵거리면서 온 동네를 깨우고 있었지만 불법 주정차를 한 차량들 때문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개 같은!”
한국에서는 만일 소방차가 출동하다가 차량이나 물건을 부수면 그 배상을 소방관이 개인 돈으로 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소방관이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그랬다가는 버는 돈을 전부 배상금으로 내도 부족할 테니까.
“비켜요!”
결국 차량은 들어오지 못한 상황에서 몇몇 소방관들이 소화기를 들고 다급하게 달려왔다.
하지만 이미 소화기만으로 끌 수 있는 수준의 불이 아니었다.
“4층에 사람이 있어요!”
“사다리차 못 옵니까!”
“불법 주차가 되어 있어요!”
“전화번호는요?”
“전화번호도 없고요!”
“이런 미친 새끼.”
이를 박박 간 노형진은 결국 명함을 꺼냈다.
“그거 내가 물어 줄 테니까 밀어요!”
“네?”
“내가 물어 줄 테니까 밀고 들어오라고요!”
“하지만…….”
“내가 물어 줍니다. 여기 사람들 다 들었죠? 증인들 많으니까 밀고 들어와요!”
소방관은 고개를 돌려서 살려 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일가족을 바라보았다.
“밀고 들어와! 책임자 있어! 뭐? 주인이냐고? 그래, 일단 밀고 들어와!”
잠시 후 소방차는 후진했다가 그대로 돌진해 불법 주차된 차를 밀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빌라 앞에 도착하기 무섭게 소방관들이 내려 불을 끄기 시작했다.
“사다리차!”
“사람부터 구해!”
소방관들은 다급하게 설치한 사다리차를 타고 올라가 불에 갇힌 일가족을 구했다.
그리고 그 순간, 벽이 붕괴되는 소리와 함께 불이 빌라를 쓸어버렸다.
“망할…….”
그 광경을 보면서 노형진은 이를 악물었다.
총 여덟 가구가 연결된 오래된 빌라였다.
분명 다른 층에도 사람이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오는 사람은 맨 위층의 사람들뿐.
“망할…….”
노형진은 불타오르는 건물을 보면서 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씨발. 내 차 어쩔 거야? 어? 내 차 어쩔 거냐고!”
박살 난 두 대의 차. 그중 한 대의 주인이 뒤늦게 나타났다.
확실히 늦었다.
이미 빌라는 전소되었고 희생자는 발생했으니까.
하지만 그 차량의 주인에게는 남의 목숨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나 보다.
“너 이게 얼마짜리 차인 줄 알아? 어? 얼마짜리 차인지 아냐고! 소방관 주제에 남의 차를 박살을 내? 이 개 같은 새끼, 어디 한번 죽여 줄까! 어!”
소방관의 멱살을 잡고 소리를 지르는 남자.
소방관은 그런 그에게 어떻게 저항도 못 하고 쩔쩔매고 있었다.
그때 막 경찰에게 증인 진술을 하고 돌아서던 노형진이 그 모습을 보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입니까?”
“아…… 그게, 이분이 자기 차를 물어내라면서…….”
소방관도 사실 욱해서 밀라고는 했지만 노형진이 책임진다고 밀라고 한 것도 결국은 업무상 상당히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 당신이구만.”
“당신?”
“그래, 당신이 불법 주정차로 길막 한 놈이지?”
“넌 뭐야, 이 새끼야?”
“나? 지나가던 변호사.”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차량을 바라보았다.
옆이 찌그러져 있는 차량에는 전화번호가 없었다.
“그래, 전화번호도 없고 말이지.”
“내가 내 차에 전화번호를 놓든 말든 뭔 상관이야!”
“상관있지.”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사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상황에 너무 관대하다.
만일 그의 차가 없었다면 소방차는 충분히 더 빨리 들어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 차 때문에 20분 가까이 시간을 허비했고, 그사이에 불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번졌다.
“너 과실치사라고 알아?”
“뭐?”
“저거 보여?”
노형진은 손가락을 가리켰다.
도로 한쪽에 주차 라인이 그려져 있었다.
즉, 주민들을 위한 유료 주차장이라는 소리다.
그런데 반대쪽은 그 라인이 없다.
남자는 그 라인이 없는 곳에 주차했다.
“저건 즉 불법 주차라는 거지.”
“그래서 뭐?”
“그래서 뭐는 무슨. 당신이 저기에 차를 대지 않았다면 소방차가 충분히 제시간에 들어올 수 있었다는 뜻이지.”
하다못해 전화번호라도 남겼다면 이 지경은 안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불법 주차를 하고도 차를 빼 달라는 전화를 받기 귀찮았던 게 분명하다.
그래서 전화번호를 안 남겼고, 그러니 그렇게 빵빵거리고 소리를 질러도 몰랐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불에 타 죽어 가는 그때, 그는 자신의 집에서 아주 늘어지게 자고 있었다는 뜻이다.
“불이 났는데 네가 길을 막은 거잖아. 그걸 과실이라고 하거든? 그런데 그 불을 못 꺼서 사람이 죽었어.”
“그…… 그래서……?”
법이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움츠러드는 남자.
“그걸 보통 과실치사라고 한단다. 이…… 아니지, 아니야. 욕하면 안 되지. 하여간 2년 이하의 금고형이 나오는 처벌이야.”
“뭔 말도 안 되는 개소리야! 소방관 새끼가 내 차를 부쉈는데!”
“그건 긴급피난에 해당하고.”
“뭐?”
“개소리하지 말라고.”
노형진은 눈을 부라렸다.
지금까지는 이럴 때마다 소방관이 다 차값을 물어 줘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가만둘 생각이 없었다.
“이건 긴급피난이야. 배상 책임이 없지.”
“누구 마음대로!”
“자세한 건 네 변호사한테 물어봐.”
“뭐?”
노형진은 더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에 옆에 있던 경찰을 손짓해서 불렀다.
“이 사람, 과실치사로 체포하세요.”
“과실치사요?”
“네. 이 사람의 차가 길을 막는 바람에 소방차가 제시간에 진입하지 못했고, 그래서 제때 불을 끄지 못해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러니 과실치사가 맞아요.”
“으음…….”
경찰은 고민하는 눈치였다.
지금까지 그런 고발은 없었으니까.
“그게 말이나 돼? 어?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그래, 죽였지. 확실하게 죽였지.”
노형진의 말에 경찰은 일단 그에게 다가왔다.
“동행해 주셔야겠습니다.”
“씨발, 뭔 같잖은 소리야!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어? 내 말 한마디면 네 목 날리는 건 일도 아니야!”
“귓구멍이 막혔나? 나는 변호사라니까, 공무원이 아니라.”
안 봐도 뻔하다.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도리어 차를 부순 소방관에게 책임을 물으면서 상황에서 벗어나는 게 이런 놈들의 특기니까.
“그리고 끝장나는 건 내가 아니라 너지.”
“뭐?”
“아까도 말했잖아, 과실치사라고. 잘못이 있으면 배상을 해야 하는 법이지.”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돌려 온통 시커멓게 타 버린 집을 바라보았다.
“여덟 가구 전소. 그리고 사망자가 스물두 명에 부상자가 여섯 명이야. 그걸 전부 다 네가 물어 줘야 해.”
그제야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너희 집에 빠빠이 잘하고 가라. 너 금고에서 나왔을 때쯤이면 개털도 안 남았을 테니까.”
“아…… 안 돼!”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말이 있지.”
“헛소리하지 마! 야! 야, 이 새끼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경찰에게 끌려가는 남자.
노형진은 그런 그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