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756)
숨겨 봐야 소용없어 (2)
그러자 옆에서 누군가가 스윽 일어났다.
바로 노형진이었다.
리처드는 단순히 옆자리에 앉은 손님이라 생각했겠지만.
“좋아. 이거란 말이지.”
다시 꺼진 컴퓨터를 보면서 노형진은 미소를 지었다.
그때 리처드 홍이 나간 것을 확인한 하이드 맥핀이 들어왔다.
“리처드 홍이 나가는데, 추적하지 않아도 됩니까?”
“안 해도 됩니다. 어차피 필요한 건 우리가 모두 확보했으니까요.”
“뭘요?”
“이 컴퓨터요.”
“네? 하지만 로그아웃 하고 갔을 텐데요?”
“아, 네. 뭐, 방법이 있습니다.”
노형진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주인을 불렀다.
“이 컴퓨터를 사고 싶은데요.”
“안 팔아요.”
“5천 달러. 아, 모니터 빼고.”
그 말에 주인은 움찔했다.
중고 컴퓨터 한 대에 5천 달러라니. 누가 그 가격을 준단 말인가?
“어, 음…… 그래도 좀…….”
“7천 달러.”
“…….”
“8천 달러.”
“차에다가 실어 드릴까요?”
새 컴퓨터의 무려 세 배 가격으로 중고 컴퓨터를 사들이는 노형진을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는 하이드 맥핀.
“그걸 뭐 하시려고요?”
“이제 싹 다 털어야지요.”
노형진은 자신 있게 말했다.
* * *
“아무것도 없는데요. 다 지워진 것 같습니다만.”
하이드 맥핀은 미심쩍은 얼굴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기껏 비싼 돈을 주고 사 온 컴퓨터는 말 그대로 텅 비어 있었다.
설치된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설치된 모든 새로운 프로그램과 흔적을 싹 지워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외부에서 볼 때는 그렇겠지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형진은 동행한 복구 회사 직원에게 대답을 넘겼다.
그는 시큰둥하게 화면을 보다가 말했다.
“복구 가능합니다. 뭐, 이런 거야 어려운 일 아니죠. 디지털 포렌식으로 털면 금방 나올 겁니다.”
“네? 하지만 전문 프로그램으로 싹 다 지워진 건데요?”
“물론 외견상으로는 그렇지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수준에서의 이야기입니다. 디지털 포렌식을 막는 방법은 하드를 바꾸거나 전문 프로그램으로 수십 번 지우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이건 그렇게 처리하지는 않았죠.”
하지만 하이드 맥핀은 이해가 안 가는 듯했다.
노형진은 그런 그에게 좀 더 쉽게 설명해 줬다.
“하드를 완전히 지우기 위해서는 쉽게 말해서 흑돌백돌 게임처럼 모든 걸 수십 수백 번을 뒤엎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쓰는 프로그램은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단 한 번 프로그램을 지우는 거죠. 마치 우리가 컴퓨터에서 프로그램 제거를 누르는 것처럼요.”
애초에 포렌식 프로그램을 막는 방법은 그 한 가지뿐이다.
그러나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했다고 해도 특정 프로그램을 보호하면서 디지털 포렌식 추적까지 막을 만큼 완벽하게 지우는 건 불가능하다.
“보다시피 게임과 그 런처, 그리고 패치 파일들은 모두 남아 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겠습니까?”
“아!”
그렇게 치밀한 방식으로 지운 게 아니라는 거다.
당연히 그런 경우는 디지털 포렌식 검사로 충분히 내부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제법 머리를 쓴 것 같지만 말입니다.”
아마 그는 자동으로 지워지는 프로그램을 쓰는 데다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 소유의 물건을 압류하거나 빼앗지는 못할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PC방 컴퓨터라는 건 여러 사람이 쓰는 물건이다. 당연히 하루에도 몇 번씩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한다.
그 말은 마치 전문 프로그램처럼 덮어 썼다 지워지기가 반복된다는 소리다.
그러니 안전할 거라 생각한 것이다.
“다만 다른 사람이 경계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겠죠.”
더군다나 한인 타운은 한국인이 넘쳐 나는 동네이니 노형진이 그의 집 근처에서 얼쩡거려도 이상함을 못 느꼈던 것이다.
“만일 수사관이었다면 이런 복장은 아닐 테니까요.”
대충 입은 티셔츠에 반바지, 그리고 양말을 신고 신은 슬리퍼까지.
마치 동네에 마실 나온 아저씨 같은 차림새였다.
“저는 노형진 씨가 양말을 신고 슬리퍼를 신기에 미치신 줄 알았습니다.”
“하하하하!”
노형진은 크게 웃었다.
“일단 중요한 건 이걸 확인하는 거죠. 얼마나 걸릴까요?”
“뭐, 지워진 지 오래되지 않았다면 사흘 이내에 나올 겁니다.”
노형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네요.”
* * *
사흘 후, 복구 회사에서는 확실하게 내용을 복구해 냈다.
“홍콩이라…….”
“홍콩이 중국으로 넘어가고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죠. 머리 잘 썼네요.”
미국의 재판부에서 중국에 대고 자료를 달라고 한들 주지 않을 테니까.
더군다나 홍콩은 중국에 반환되기 이전부터 자산을 감추는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였다.
“그러면…… 이게 문제군요. 이걸 어쩌실 생각입니까?”
하이드 맥핀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그 이유? 당연하다.
사실 그는 프로그램까지는 예상했다. 그래서 감춰 둔 은행정도는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포렌식 수색을 한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한 것까지 해냈다.
“뭐, 아이디와 패스워드만 가지고 뭘 할 수는 없으니까요. 다만 장난을 좀 쳐 볼까 생각 중입니다.”
“장난요?”
“네. 우리가 어떻게 거래 은행을 찾았는지가 문제이니까요. 엄밀하게 말하면 이건 불법에 가까운 거라…….”
“하긴, 그렇지요.”
당연히 소송할 때는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의외로 미국의 재판부는 불법적인 증거에 대해 상당히 빡빡하게 판단한다.
“그러니까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요.”
“다른 방법?”
“이 아이디와 패스워드로 접속을 시도할 겁니다.”
그 말에 하이드 맥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러면 리처드 홍이 우리가 이걸 알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정확하게는, 우리가 아니라 ‘누군가’가 안다는 걸 알게 되겠지요. 그리고 그게 누구인지 알아내려고 할 테고요. 그렇다면 그 방법은 뭘까요?”
“그건…… 아! 그렇군요! 지점을 찾아가는 거겠군요!”
“맞습니다.”
리처드 홍이 중국에 가서 계좌를 개설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는 홍콩은커녕 중국에도 가 본 적 없으니까.
즉, 그가 계정을 만든 건 미국의 지점이라는 소리다.
“그리고 아시겠지만, 미국과 중국의 시차는 생각보다 큽니다. 결정적으로 리처드 홍은 중국어를 못해요.”
그러니 본사에 전화해서 상황을 알아볼 수가 없다.
물론 국제 거래를 하는 은행인 만큼 영어를 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겠지만 근무시간이 안 맞을 거다.
“그러면 남은 건 전화 상담 서비스뿐인데, 과연 그런 은행에서 전화 상담 채널을 열어 둘까요?”
애초에 은행에 있는 모든 자료와 비밀은 극도의 보안이 필요한 부분이다. 당연히 전화 상담 같은 걸로 이야기하기에는 여러모로 위험한 게 사실이다.
“아마 당연히 미국 내에 있는 지점으로 달려가겠지요.”
그리고 그걸 따라가서 찍는 건 불법이 아니다.
“하지만 로그인을 시도하는 걸 어떻게 알지요? 우리가 알릴 수도 없고.”
“요즘 은행은 문자라는 걸 보냅니다, 후후후.”
* * *
자고 일어난 순간 리처드 홍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홍콩 시크릿뱅크. 접속 오류 1회입니다.
라고 되어 있는 문자.
다급하게 다른 문자들을 확인하자 숨이 턱 막혔다.
-홍콩 시크릿뱅크. 전송 코드 오류 5회입니다. 보안을 위하여 온라인 거래를 차단합니다. 해당 계정을 열고 싶으시면 지점을 방문하여 주십시오.
“뭐야? 아니, 이게 뭔 소리야?”
자신이 만든 시크릿뱅크의 거래 계좌가 막혔다. 그것도 자신이 잠든 사이에.
“전송 코드라고? 전송 코드? 아니,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러면 내 계정 비밀번호가 틀렸다는 거잖아?”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그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일반적으로 계좌를 사용이기 위해서는 계정과 비밀번호가 필요하지만 요즘은 다른 필요 사항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은행에서 제공하는 일회성 코드다.
계정에 로그인하거나 계좌 이체를 할 때마다 은행에서는 미리 등록된 기계로 랜덤하게 생성된 열여섯 자리의 비밀 코드를 발송한다.
은행에 따라서는 핸드폰을 등록시켜 주기도 하지만 홍콩 은행은 쌍둥이 폰, 그러니까 동일한 카피 아이디를 이용해서 복제된 폰 같은 것으로 인한 유출을 막기 위해 별도의 수신용 장비를 지급한다.
그리고 그 장비에 수신된 열여섯 자리 숫자를 계정에 넣어야 로그인이든 이체든 할 수 있다.
로그인을 시도한 건 당연히 노형진이었다.
하지만 그 장비가 없기에 열여섯 자리의 숫자는 틀릴 수밖에 없었고, 은행에서는 그걸 위험 신호로 간주해 계좌를 막아 버린 것이다.
“이런 씨팔.”
리처드 홍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물론 문자상으로는 안전을 대비해서 계정의 접속을 막았다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직접 확인하고 싶어지는 게 솔직한 사람 마음이다.
더군다나 한두 푼도 아니고 무려 3천억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 있는 계좌다.
당연히 리처드 홍은 튀어 나가서 손을 번쩍 들었다.
“택시!”
심장이 떨려서 운전이 힘들 것 같았던 리처드 홍은 택시를 타고 내달렸고, 잠시 후 홍콩 시크릿뱅크의 지점으로 헐레벌떡 뛰어들어 갔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뒤를 밟는 누군가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불행의 시작이었다.
그를 따라가면서 일거수일투족을 다 촬영한 하이드 맥핀은 영상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확실히 법원에서 은행을 특정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법원에서 리처드 홍의 계좌 존재 여부를 묻는다면 홍콩 시크릿뱅크는 그걸 안 줄 수가 없을 거다.
물론 예치되어 있는 돈을 꺼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일 테지만.
어찌 되었건 리처드 홍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될 게 뻔하다.
* * *
“이제 문제는 주지사군요.”
“뭔가 이야기가 있습니까?”
“재판부에서 이유도 없이 기일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습니다.”
“흠, 주지사에게서 뭔가가 떨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는 모양이군요.”
아마도 오드빌 쪽에서 주지사에게 로비를 하는 걸 기다리고 있을 게 뻔하다.
“그걸 우리가 하라고 할 수는 없고.”
“그쪽도 주지사가 도움을 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노형진은 고민에 빠졌다.
과연 주지사를 어떻게 할 것이냐?
‘아니, 답은 하나뿐인가?’
현재 상황을 보면 주지사는 이 사건을 덮으려고 할 게 뻔하다.
“뭐, 그래도 일단 돈을 잃어버리는 건 아니기는 하지만.”
“그건, 글쎄요.”
“네?”
일단 돈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냈으니 되찾으면 될 거라고 쉽게 생각하는 하이드 맥핀에게 노형진은 솔직하게 부정적인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물론 돈이 있는 곳은 찾았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돈을 은행에서 내준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일단 리처드 홍이 어떤 처벌을 받든 간에 그는 이 돈의 소유권을 주장할 거라는 거죠.”
사법 거래를 통해 3년을 받든 결국 져서 30년 형을 받든, 그는 이 돈을 포기하지 못할 것이다.
30년 형을 받으면 도리어 더더욱 집착할 것이다.
30년 후라고 해도 3천억의 가치는 절대 작지 않을 테니까.
더군다나 30년 후에 출소한다면? 재기도 할 수 없다.
3년 형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재기를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30년 후에도 과연 그게 가능할까?
“당연히 그 돈에 집착할 겁니다.”
“하지만 민사소송을 통해 그 돈을 달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게 문제죠. 민사소송을 해서 그 돈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문제를 따져서 이기는 데 5년쯤 걸린다고 치죠. 리처드 홍도 물고 늘어질 테니까. 그렇게 해서 이긴다고 해도, 중국의 법원은 뭐라고 할까요?”
“중국…… 법원……. 끄응, 그렇지요. 홍콩은 이제 중국 땅이었지요. 자꾸 잊어버리네요.”
“중국에서 미국 법원의 명령을 인정할까요?”
“가능성은 높지 않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