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793)
프로그래머의 난 (1)
‘인생은 도박이다.’라고 한다. 하지만 그건 진짜 도박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매 순간 선택해야 하고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최강도의 공성전기>와 한방소프트는 아직은 잘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전 다르게 생각합니다. 인생은 도박이 아니라 총합이죠.”
무태식에게 말하면서 노형진은 미소를 지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모니터는 한방소프트의 빨간색 주가.
그럴 만하기는 하다.
얼마 전 한방소프트는 새로운 게임을 론칭했으니까.
사실 새로운 게임이라고 하기도 참 애매하다. 과거에 있던 게임 IP에 과금 시스템만 공성전기>처럼 만들어서 론칭했다.
한방소프트의 신게임 승리찬가>.
‘승리한 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라는 멋들어진 홍보 문구로 유명한 게임이지만, 승리를 한 유저보다는 회사가 더 많은 것을 가져가는 게임.
“거참, 이해가 안 가요. 한방소프트는 제작 시설이 얼마나 잘되어 있는데.”
내부에 다른 회사들은 꿈도 못 꿀 장비들이 즐비한 한방소프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방소프트는 신규 게임이 전혀 없다.
정확하게는 신규 게임이랍시고 나오는 게 호환성을 개선한 과거의 게임에 모바일을 뜻하는 M을 붙여서 출시하는 것뿐이다.
공성전기 M>, 공성전기 2M>, 승리찬가 M>, 그랜드홀 M> 등등.
“마지막으로 IP가 새로 나온 게 거의 15년 전이죠?”
“네, 맞아요.”
“그럴 겁니다, 기업들이 망하는 전형적인 과정을 밟았으니.”
개발자를 홀대하고, 눈에 보이는 실적을 가지고 오는 경영 측만 밀어주는 거다. 그러니 기존 개발자들이 개발 의지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물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가는 것 자체는 아니지만.
“아마 힘들지 싶은데요.”
노형진은 화면의 주가를 보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지요.”
인생은 총합이다. 그 말은, 언젠가는 인생의 모든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거다. 그리고 이제 그때가 되었다.
* * *
“새로운 아이디어요? 하, 그게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비웃음을 날리는 남자는 한방소프트의 개발3팀 팀장인 한창화였다.
그는 피곤한 얼굴로 이를 박박 갈았다.
“쪼인트나 안 까이면 다행이지요.”
노형진은 최대한 한방소프트의 주가를 떨어트릴 생각이었다. 그래야 수익이 증대되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내부에서도 터트릴 사람이 필요했다.
물론 내부 고발자라는 게 쉽게 생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돈이 걸리면 내부 고발을 하려고 할 수도 있다.
특히 야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쪼인트도 깝니까?”
쪼인트, 그러니까 정강이를 차는 행위는 사회에서는 어지간하면 하지 않는 행동이다.
“그것만 안 해도 다행이라니까요. 진짜 제가 게임 아이디어 하나 내밀었다가 한 10년쯤 먹을 욕을 세 시간 만에 다 들었다니까요.”
“어떤 게임이기에요? 뭐, 돈이 안 되는 겁니까?”
“모르죠. 게임이라는 게 성공할지 안 할지 어떻게 미리 압니까?”
그건 그렇다. 공성전기>는 나온 지 벌써 20년이나 된 게임이다. 그런 게임이 아직도 수익 1위를 찍을 거라고 누가 믿겠는가?
물론 특유의 도박 시스템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럼 뭐가 문제랍니까?”
“모바일 기반이 아니라는 거죠.”
“모바일 기반?”
“솔직히 말해서 지금 우리 회사에 있는 장비가 뭐 한두 푼짜리입니까?”
모션 캡처 기기부터 동작 인식 카메라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장비들이 수두룩하다. 한국의 수많은 게임사에서 가지고 싶어 하지만 가지지 못한 그런 물건들이다.
가격이 수백억에 달하는 그런 장비들.
“그래서 저는 그걸로 모바일 기반이 아닌 게임기 기반의 게임을 만들자고 했거든요.”
“게임기? 아, 하긴 한국은 그쪽으로는 거의 불모지죠.”
한때 게임 종주국이라 불리던 한국이지만 PC 게임은 거의 안 나오고 모두 돈이 되는 모바일 기반으로 넘어간 데다 현질성 게임만 나온 지 오래다.
PC 게임도 그 지경이니 게임기 기반의 게임들은 아예 버려지다시피 했다.
한국에서는 아예 안 나온다고 봐야 할 정도니까.
“솔직히 그런 장비 말입니다, 아깝잖아요.”
그런 장비가 없는 제작사는 빌리기 위해 수십억씩 써야 한다.
“그래서 그걸 기반으로 게임을 만들자 한 거죠. 어차피 개발자가 없는 것도 아니니까. 도박용 게임 개발자가 뭐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인원은 충분하거든요. 그리고 한국이나 중국에서나 모바일, 모바일 그러지 다른 나라는 게임기 기반이 대세고.”
그런데 그에게 이사라는 작자가 쪼인트를 까면서 개념 없는 새끼라고 세 시간이나 욕을 퍼부었다는 것.
“너 따위가 결정한 문제가 아니라고, 가서 공성전기> 서버 관리나 하라고 하더라고요. 하, 돌겠습니다.”
한창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면 그 장비는 어디에 쓰고 있습니까?”
“쓸 일이 없죠.”
비슷한 장비를 가진 다른 회사는 그걸 놀리느니 어떻게라도 써먹기 위해 다른 회사에 임대하거나 버추얼 개인 방송인이 촬영하는 등 방법을 강구하지만, 한방소프트는 점검 차원에서 전원이라도 넣을라치면 전기세는 누가 거저 주느냐고 따귀부터 날리며 난리도 아니라는 것.
“사용하려면 이사급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그걸 허락해 줄 새끼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를 박박 가는 한창화의 말에 무태식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해가 안 가는데요. 왜 그렇게 경계하죠? 잠깐 작동시킨다고 해서 전기세가 수억씩 나오는 것도 아닐 텐데.”
“음…… 제가 봤을 때는 아마 자리 보전이 목적이지 싶은데요.”
“자리 보전요?”
“지금 한방소프트의 중추는 공성전기>를 만든 사람들입니다. 아니다, 만들었다기보다는 그걸로 수익 모델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지요.”
공성전기>는 개발할 때 많은 사람이 달라붙은 게임이 아니다. 20년 전 게임이 프로그래머가 붙어 봤자 몇 명이나 붙었겠는가?
당연히 아무리 패치하고 새로운 버전을 내밀어도 결국 그 안에서 호환성만 적용하는 정도. 프로그래머들에게 실적이라는 게 나올 수가 없는 구조다.
결국 회사에서 생각하기에 회사를 성공시킨 사람들은 프로그래머가 아니라 게임을 팔아먹은 경영 쪽이라는 소리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위협할 만한 경쟁자가 생기는 걸 원하지 않는다.
즉, 그들은 자신의 자리와 돈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은 과거의 유령이니까요.”
지금 와서 새로운 게임을 론칭하고 거기서 수익을 내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새로운 게임을 론칭해서 성공하면 자기들이 모르는, 도박과 연관이 없는 새로운 수익 모델이 생겨나거든요. 그러면 자기들 자리가 위험해지니까요.”
“이해가 안 가는데요.”
한창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긴, 대부분의 개발자들은 정치적 감각이 떨어진다. 말 그대로 게임 개발에 관심이 쏠려 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무신과 문신 같은 거죠. 무신의난 아시죠?”
“알죠.”
“무신도 문신도, 둘 모두 결국은 나라의 근간이죠.”
사실 나라를 지키려면 무신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문신들은 무신들을 공격하고 따귀를 때리면서 조롱했다.
전쟁이 없으니 무신 따위는 필요 없다는 논리에서였다.
결국 무신들이 들고일어나서 문신들은 모두 모가지가 날아가 버렸다.
“그거랑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프로그래머들이 성공해서 자기 자리를 위협하는 걸 원하지 않는 겁니다.”
“헐, 그건 몰랐네.”
“인간이라면 당연한 거죠.”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조직을 말아먹는 놈들은 넘치고 넘친다.
“그러면 저한테 프로그래머의 난이라도 일으켜 달라 이 말씀이군요.”
“맞습니다.”
프로그래머들은 기본적으로 소프트웨어 회사의 핵심이다.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대체할 수 없는 사상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게임 회사들이 비슷한 과정을 거쳐서 몰락하지.’
게임 개발자들은 대부분 게임을 좋아하는 덕후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게임, 즉 게이머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만든다.
바로 그때가 게임사의 성장기다.
그러다 수익을 추구하는 입김이 강해지면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이상이 사라지고 돈이 되는 게임이라는 현실이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게임사의 성향이 변질된다.
이는 설사 프로그래머들이 승진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렇다 보니 소위 너드 감성이라는 게이머들 특유의 감성이 사라지면서 게임은 개판이 되고 회사는 온갖 정치질을 하는 집단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 안에서 반발하고 나오는 신흥 세력이 다시 회사를 창립하고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내지.’
물론 여기까지는 미국에서 가능한 사이클이다. 한국은 워낙 협소하다 보니까 그게 한계가 있다.
일단 누군가가 나와서 새로운 게임사를 창립한다고 하면 기존 업체에서 짓밟으려고 혈안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게 아니라고 해도, 한국의 투자자들은 돈이 되는 모바일에 투자하길 원한다. 당연히 돈을 뽑아내기 위해 뻔한 양산형 게임에 도박판을 만들어 내게 된다.
그 결과, 한국은 새로운 게임 회사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나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노형진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프로그래머의 난이라……. 적당한 제목이네요.”
“음, 글쎄요. 그건 좀…… 그렇지 않나요? 진짜 무신들처럼 이사들 모가지를 다 따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 진짜로 칼 들고 가서 다 썰어 버리라는 건 아닙니다만.”
“그러면 그냥 반기를 들라는 말씀이신가요? 하지만 그것도 좀…….”
시스템적으로 반기를 들면 해직당할 수밖에 없도록 치밀하게 구조를 짜 둔 그들이다. 당연하게도 반기를 든다고 해도 싸울 방법이 전무하다.
애초에 한방소프트에는 노조조차 없다.
“다른 방법으로 날려 버릴 수는 있지요.”
“다른 방법?”
“네.”
노형진은 은근히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솔직히 말씀해 주시죠. 확률, 조작하죠?”
“크흠, 그게…… 그건 공식적으로는…….”
“공식적으로는 물론 아니겠지요. 하지만 제가 듣기로는 실시간으로 조작하는 징후가 여러 곳에서 나온다던데요?”
“…….”
“저는 한창화 씨 편입니다. 제대로 된 게임 회사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고요.”
노형진의 회유에, 갈등하던 한창화는 이내 한숨을 크게 푹 내쉬었다.
“하아, 솔직히 말하면? 네, 조작합니다. 뭐,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하니까 별수 없죠.”
실제로 게임 프로그램 내에서 확률을 조작했다는 증거는 여기저기서 드러났다.
유명한 사건 중 하나가 가챠와 관련된 사건이다. 확률 5%짜리 아이템을 사백스물한 번이나 뽑았는데 하나도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게임사에서 공개한 확률 5%는 기본적으로는 독립시행이기 때문에 기존의 결과는 이후의 아이템이 나올 확률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즉, 새로운 뽑기를 할 때마다 매번 확률은 5%라는 거다.
하지만 확률 5%짜리 아이템이 사백스물한 번 뽑을 동안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는 건 말이 될 수가 없다.
그건 무려 46억분의 1의 확률로 발생하는 일인데, 한국 로또 1등 당첨 확률이 814만분의 1이고 그 힘들다는 미국의 메가밀리언 확률이 3억분의 1이며 심지어 소행성 충돌로 지구가 완전히 소멸할 확률이 28억분의 1인 것을 감안하면 터무니없는 상황인 것이다.
“뭐, 백 번 정도야 이해하죠. 그런데 사백스물한 번이나 실패해요?”
“크흠…….”
“그것만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공성전기>에서 영광의 단검 사건도 있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