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044)
주인이니까 (1)
“사기꾼!”
원정미가 주민들을 찾아오자 주민들은 처음에는 당장 죽일 듯 언성을 높였다.
노형진이 상황에 대해 이미 설명해 준 덕분에 자신들이 사기당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들은 그녀를 보자마자 멱살부터 잡아 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원정미를 잡으려고 하던 그들은 멈칫했다.
휠체어에 타고 오는 그녀의 두 다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 진정하세요.”
“아니,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지금 저년이 우리한테 사기를 쳤는데.”
노형진은 그 말에 눈을 찡그렸다.
“그걸 해결하기 위해 온 거 아닙니까? 그리고 지금 원정미 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여러분은 땡전 한 푼 못 받고 돌아갑니다만? 괜찮습니까?”
“그건…….”
“물론 원정미 씨가 잘못한 건 사실입니다. 그걸 부정할 수는 없죠. 하지만 현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원정미 씨의 도움이 필수입니다. 그걸 거절하실 겁니까?”
그 말에 입주민들은 결국 눈치를 살피다가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다들 진정하시고 이야기부터 들어 보죠.”
조원호는 입주민을 대표해서 그들을 진정시켰다.
그가 소송을 시작했고 변호사를 데리고 왔고 심지어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들까지 모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연스럽게 일종의 리더처럼 사람들에게 대우받고 있기 때문인지,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고분고분하게 노형진의 말에 집중했다.
“일단 조원호 씨에게 이야기를 들어서 상황을 아시겠지만 이건 최근에 생긴 새로운 방식의 사기입니다.”
법원에서도 경찰에서도 아직 사기라고 인식하지 못한 새로운 방식인지라 고소한다고 해도 사기로 인정받지 못한다.
“조원호 씨가 말씀드렸겠지만 다른 소송 중인 분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안 그런가요?”
“그건…… 그래요. 하, 씨팔. 변호사한테 갔더니 이건 사기가 아니랍디다.”
일단 집을 빌린 건 사실이고 서비스도 제공되었으니까.
물론 그 집이 날림으로 지은 부실 건축물이라 사람이 살 만한 곳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지만 계약 과정에 속인 것도 없고, 심지어 직접 보고 직접 계약한 거다.
“문제는, 여러분들은 원정미 씨에 대해 보증금 반환 청구 소송을 할 수는 있지만 처음부터 터무니없는 보증금을 준 상황이고 채권 순위도 낮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돈을 받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거죠.”
그 말에 고개를 푹 숙이는 사람들.
그것 역시 이미 알아본 상황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돈을 받을 수가 없는 거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여러분들 기준입니다. 여기 원정미 씨는 당사자로서 그 돈을 돌려받을 수 있으니까요.”
“어째서요?”
“그는 집주인입니다. 그 범인들과 한 다리 걸친 게 아니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거죠.”
“이해가 되지 않는데, 조금 쉽게 설명해 주세요.”
남애주의 부탁에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단 그러기 위해서는 원정미 씨가 어떻게 사기당했는지를 아셔야 합니다. 원정미 씨,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네…… 사실은…….”
원정미의 말에 따르면 원래 그녀는 쪽방에서 사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자식이 있기 때문에 정부 지원도 받지 못하고 버려진 채로 죽음만 기다리던 사람.
그때 건축 업자라는 사람들이 와서 2천만 원을 대가로 원정미의 명의를 빌리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어차피 죽음만이 남은 그녀에게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당장 그 쪽방의 월세조차도 넉 달째 못 내고 있었으니까.
원정미를 내던진 자식들은 처음에는 월세와 먹을 걸 가져다줬지만 그때쯤부터는 그마저도 해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런…….”
“미친 새끼들.”
자식들의 터무니없는 행태에 다들 기가 막혀 했다.
“자 자, 중요한 건 다음입니다.”
결국 살아남기 위해 원정미는 어쩔 수 없이 명의를 빌려줬다. 그리고 그 후에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인감과 위임장을 써 준 후 어찌 되었는지 알아보고 싶어도 그녀에게는 방도가 없었으니까.
그녀의 세계는 그 작은 쪽방이 전부였다.
나중에 소장이 날아오고 나서야 자신의 명의로 집을 짓고 사기를 쳤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런 짓까지 할 줄은 몰랐어요.”
기껏해야 대포통장이나 대포폰 같은 걸 만들 줄 알았지 이 정도로 큰 사기를 칠 줄은 몰랐던 것.
“여러분들 모두 다 정작 주인은 못 보셨죠?”
“그건 그렇지요.”
다들 부동산을 통해 계약했다.
주인이 사정이 있어서 멀리 해외에 있다고 했던가?
“그러면 설마?”
“네, 맞습니다. 이런 사기는 부동산 업자가 보통 같이 엮여 있지요.”
“그런…….”
그 말에 다들 얼굴에 곤혹스러움이 가득해졌다.
설마 자신들에게 집을 구해 준 부동산 업자까지 한패일 거라고는 생각을 못 한 거다.
“집을 지어 준 사람은 선의의 제3자로서 여러분들과는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그들에 대한 소송권은 없죠. 명의를 빌려준 사람의 경우는 어차피 돈이 없고 인생 막장인 사람이기에 그냥 배 째라고 나오는 거고요.”
실제로 이런 사기가 발생하면 서로 치고받고 싸우지만 그런다고 해결하지는 못한다.
명의를 빌려준 집주인은 돈이 없다며 배 째라고 하니까.
“그래서 제가 원정미 씨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 겁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뭐가 바뀐다는 겁니까?”
누군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그 말에 노형진은 기다리고 있던 서세영에게 신호를 보냈다.
“세영아, 가지고 와 봐.”
“응, 오빠.”
서세영은 가지고 온 서류를 건넸고, 노형진은 그걸 펼쳐서 벽에 붙였다.
“이게 뭔지 아십니까?”
“뭡니까, 그게?”
“여러분들이 사는 건물의 설계도입니다.”
지금 그들이 살고 있는 그 건물의 설계도라는 말에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핵심을 놓치기는 하지.’
이 사건의 핵심은 사기는 물론이거니와 그 집이 애초에 사기를 목적으로 날림으로 지어졌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 값어치 역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현행 건축법은 아주 꼼꼼하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건축할 때는 법과 원칙에 따라 지어야 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법대로만 지으면 건물은 아주 튼튼하고 안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은 내진 설계에서부터 단열에 방음까지 모두 규정되어 있어서 모든 건축물의 설계도에 반영된다.
“하지만 우리 집은…….”
옆집에서 재채기하는 소리까지 다 들릴 정도로 건물이 개판이다.
“맞습니다. 그 건물은 제대로 지은 게 아니죠. 사실 애초에 날림으로 지은 거죠, 사기가 목적이니까.”
사기를 치기 위해 짓는 건물을 돈 퍼부어 가며 안전하고 튼튼하게 지을 놈은 없을 거다.
애초에 정상 거래를 통해 짓는 건물조차도 빼돌릴 건 빼돌리고 빼먹을 건 다 빼먹으면서 날림으로 짓는 게 건축사들인데 사기를 목적으로 지은 건물이 멀쩡할 리가 없다.
“그리고 그 집을 짓는 걸 부탁한 사람은 말입니다, 여기 원정미 씨입니다. 일단 계약서상으로는 말이지요.”
노형진은 휠체어에 앉아 있는 원정미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원정미 씨는 신체적 한계로 인해 공사 현장에 접근할 수 없죠. 그래서 위임장을 써 주면서 집을 잘 지어 달라고 했고요. 문제는 그쪽에서 신의성실의원칙을 위반해서 집을 날림으로 지었다는 거고요. 그렇다면 과연 원정미 씨에게 소송의 권한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그 말에 모두의 눈이 커졌다. 그런 식으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까.
“원정미 씨에게는 소송의 권한이 있겠군요.”
“맞습니다. 집주인이니까요.”
그런데 그 집이 도무지 사람이 살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러면 손해는 모두 원정미가 뒤집어쓰게 된다.
“당연히 원정미 씨는 그들을 고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돈을 토해 내게 된다면 세입자들은 당당하게 원정미에게서 그 돈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은 앙금을 가라앉히고 서로 도와야 합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여러분들이나 원정미 씨나 모두 피해자인 셈이니까요.”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말에 사람들은 일단 분노를 가라앉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소송이 진행되면 아마 법원에서 온갖 검사를 할 겁니다. 그 검사에 협조해 주시면 됩니다.”
“그건 어려운 건 아닌데.”
“그거면 됩니다.”
노형진은 확답을 받은 후에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원정미를 바라보며 말했다.
“원정미 씨는 이제 그 쪽방으로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네? 어째서요?”
“사기꾼들이 착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소송이 시작되면 위협과 협박을 통해 소를 취하하려고 할 겁니다. 이런 사건의 경우는 단순히 피해금을 돌려주는 선에서 끝나는 게 아니거든요.”
경비로 들어가는 돈도, 배상금도 적지 않다. 법원의 판결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최악의 경우 사기꾼들이 토해 내야 하는 돈이 두 배 이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당연히 그놈들은 무슨 짓이든 할 겁니다.”
“하지만 자식 놈들은…….”
“압니다. 이런 상황에 도와줄 리가 없죠. 그러니까 당분간은 모텔이든 호텔이든 구해서 쉬셔야 합니다.”
“하지만 돈이…….”
그 말에 노형진은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돈은 금방 법니다. 그러니까 제가 빌려드릴게요.”
노형진은 그녀를 설득해서 적당한 비즈니스호텔에 투숙하게 했다. 엘리베이터에 숙식용 시설까지 다 있는 곳이라 그녀가 장기간 생활하기에는 좋은 곳이었다.
그녀를 데려다주고 나오는 길, 서세영은 노형진에게 물었다.
“오빠는 이런 건 어떻게 아는 거야?”
“응? 뭘?”
“아니, 이런 계획 말이야. 아까도 들었잖아, 다른 변호사들은 방법이 없다고 손절 쳤다고.”
“아, 그랬지.”
“그런데 오빠는 어떻게 해결 방법을 찾는 건지 궁금해서.”
“인과관계를 읽으면 간단해.”
“인과관계?”
“그래. 하지만 요즘은 대부분의 변호사기 인과관계를 모르지. 정확하게는, 거기까지 신경 쓰기 싫어하는 거지만.”
그냥 자기 일만 딱 하고 추가로 뭔가를 해 줄 생각은 없는 거다.
“변호사가 인과관계를 읽을 줄 모르면 무능한 거고, 읽을 줄 알면서 하지 않는 건 이기적인 거야. 너도 새론의 모토 알지?”
“알지. 모든 의뢰인에게 공정하게.”
“그게 기본이지만, 법률계에서는 절대 지켜지지 않는 거지.”
돈이 있는 의뢰인에게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 주면서 뇌물을 뿌려서라도 해결하려고 하지만, 돈이 없는 의뢰인에게는 그냥 기본 수임료 받고 출석만 해 주면 땡이라는 식으로 사건 조사조차 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변호사들을 보면 바쁘니까 어쩔 수 없다던데?”
노형진은 서세영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그거 개소리야.”
“엥? 너무 심한 말 아니야?”
“아니지. 사실 변호사들이 직접 증거를 찾거나 하지는 않잖아. 안 그래?”
“그건 그렇지.”
물론 증거가 어떤 것이 있는지 또 어디에 있는지 찾고, 의뢰인에게 알려 주는 것은 모두 변호사가 해야 한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증거를 가지고 오는 건 변호사가 아닌 의뢰인의 책임이다.
변호사는 뭐가 필요한지 알지만 그걸 대리인이라고 가서 다 가지고 오려고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래서 대부분의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직접 자기 증거를 챙기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뭐가 필요한지 말해 주는 정도의 업무가 바빠 봤자 얼마나 바쁘겠는가?
어차피 소송을 하다 보면 대부분 필요한 건 비슷하기에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따로 공부해야 하는 경우도 드물다.
“바빠서 어쩔 수 없다고 하잖아? 그렇지?”
“그렇지.”
“그러면 그 바쁘다는 변호사들의 평균 수임 사건 숫자가 얼마나 될 것 같아?”
“어, 글쎄?”
“보통 네 건이지. 한 건에 한 500만 원쯤 하고. 즉, 일주일에 한 건이라는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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