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690)
일단 사건이 터지면 들어가는 탄원서들.
대부분 그럴 애가 아니다, 한 번만 용서해 달라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주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탄원서는 들어가 봐야 도움이 안 된다.
“만일 이걸 제대로 한다면 상당한 이슈가 되겠군요.”
“그래서 자네한테 부탁하는 거야.”
“이거, 조리돌림 끝난 것 같은데.”
“한창 조리돌림 중일세.”
노형진은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조리돌림이란 집단이 개인을 괴롭히는 행위다. 어떤 사회에나 그런 것이 있지만 문제는 그게 다 불법이라는 것. 특히 권력이 있는 집단이 조리돌림에 나서면 그때부터는 일이 곤란해진다. 그리고 지금 오성식은 분명히 여성 단체의 주도하에 언론과 인터넷으로 조리돌림당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일단은 한번 가 봐야겠네요.”
첫 번째 팀 사건. 노형진은 그 사건을 일단 시작해 보기로 했다.
* * *
“생각보다 좋네?”
“이게 생각보다 좋은 거야?”
노형진은 허름한 빌라를 보면서 어이가 없다는 듯 손채림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아주 훌륭하지, 뭘.”
“너희 집 부자잖아?”
“그거랑 살 만한 집에서 사는 거랑 무슨 관계가 있어?”
“아니다…….”
도대체 독일에서 어떤 집에서 살았는지 묻고 싶었지만 노형진은 차마 물어보지 못하고 숙소로 올라갔다.
무태식 변호사는 그런 둘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친해 보이십니다, 으하하하.”
“아, 동창이라서요. 같이 일하게 될 거라 생각은 못 했지만.”
“세상이라는 게 그런 거 아닙니까?”
“하긴. 무태식 변호사님이 민시아 변호사님이랑 결혼할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도 못 했습니다. 완전 미녀와 야수잖아요.”
“그러니까 결혼한 겁니다. 용기 있는 자만이 미녀를 차지한다는 말, 모르십니까?”
“그건 인정하는데 도대체 언제 사귀신 건지 참…….”
누구도 모르는 상황에서 갑자기 터진 민시아 변호사와 무태식 변호사의 결혼. 다들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사건.
“작전을 잘 짜야지요, 으하하! 노 변호사님도 잘해 보세요.”
마지막 말은 슬쩍 노형진의 귀에 대고 작게 말하는 무태식. 노형진은 그의 말에 약간 어색하게 웃으면서 숙소로 들어갔다.
“반갑습니다. 노형진입니다.”
“팔라딘의 매니저 황보수입니다.”
노형진은 매니저와 일하다가 그 옆에 있는 사람을 보고 한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이구만. 쯧쯧.’
일단 의뢰받아서 사진을 찾아보기는 했는데 딱 봐도 그가 강간범일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이건 기억을 읽을 가치조차도 없어 보였다. 얼굴이 콧물과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이가 없네, 이거.’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깡이라는 게 있어야 한다. 하물며 단순 절도도 그런데 강간의 경우는 사회적으로 무척이나 문제가 되는 범죄다. 말 그대로 인생이 박살 날 각오를 해야 할 수 있는 범죄인 것이다.
‘그런데 저 얼굴이 강간범의 얼굴은 아닌데?’
이건 외모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다.
만일 진짜 강간범이라면 얼굴에 짜증이나 후회의 감정이 드러나야 한다. 뻔뻔한 놈이라면 짜증이, 멋모르고 한 거라면 후회의 표정이 정상이다. 그런데 오성식의 얼굴에 가득한 감정은 공포였다.
‘저런 심성으로 강간을 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물론 자신을 철저하게 속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이유가 없다. 자신은 변호사고, 어찌 되었건 그의 편을 들어 줘야 하니까.
“이쪽은 오성식입니다. 하아.”
매니저는 질질 짜고 있는 오성식을 한번 보더니 한숨을 쉬면서 소개해 줬다.
“이쪽은 무태식 변호사님입니다. 저와 함께 일하실 겁니다. 이쪽은 손채림 씨입니다. 이번 사건에서 주요 업무를 중재해 주실 뿐입니다.”
“그런가요?”
“아무래도 우리 회사는 시스템이 좀 독특합니다.”
사람이 생각보다 많자 약간 곤란해하던 황보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단 사건은 우리가 사전에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교제한다고 만난 것까지는 좋은데 이 녀석이 사고를 친 것 같습니다.”
“형! 사고를 치다니요! 전 억울하다니까요! 전 진짜로 손 끝 하나 안 건드렸다고요!”
“야, 인마. 지금 그 말이 나와? 정액까지 나온 판국에?”
황보수는 짜증스럽게 말했다.
“너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조심은 해야 할 거 아냐! 사장님이 뭐라고 했어! 너 아직 누구 만날 때 아니라고 했지?”
“아, 진짜…… 억울한데.”
“억울? 넌 억울하겠지만 난 환장하겠다. 우리가 너희한테 투자한 돈이 얼만데 효선인지 뭔지 하는 여자 때문에 그 돈 다 날리게 된 우리는 환장 안 하겠냐고.”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노형진은 일단 진정시켰다.
“자, 자. 진정하시고 일단은 사건에 집중하죠. 그러니까 피해자라는 소성애 씨는 자신이 강간당했다고 주장하는 거죠?”
“네.”
“전 강간 안 했다니까요!”
“그게 지금 먹히느냐고! 증거가 다 나왔는데!”
“아나…….”
“자, 자, 진정하시고.”
노형진은 매니저인 황보수가 길길이 날뛰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소성애에게서 오성식의 정액이 나온 데다가 여기저기 강간의 흔적인 듯한 몸싸움의 흔적까지 보였기 때문이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 거냐고!”
“나랑 헤어질 때는 멀쩡했어요!”
“지금 그게 말이라고……. 아니, 데이트하던 증거라도 있으면 내가 말을 안 해.”
“…….”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사귀는 사이라면서요? 그런데 증거가 없어요?”
“네…….”
“허…….”
사귀는 사이는 보통 자기들끼리의 톡이나 사진 등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게 없다는 소리는 여기서 처음 들었다.
“아무래도 신분이 신분이다 보니…….”
“스캔들을 피하려고 한 겁니까?”
“네.”
오성식은 한창 잘나가는 그룹의 멤버이자 리더이다. 당연히 스캔들이 터지면 여러모로 곤란해진다. 그래서 철저하게 사람 눈을 조심하면서 데이트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귀었다고 증명할 만한 게 하나도 없다고요? 아무리 연예인이라지만…….”
“스캔들이…….”
“그래도 개인적인 사진이나 톡이나, 하다못해 문자라도 있을 거 아닙니까?”
“그게…… 핸드폰이 고장 나서 수리하면서 초기화돼서…….”
“허…….”
하필이면 그런 것도 다 날아가 버렸단다.
“혹시 다른 곳에 업로드한다거나…….”
“그랬다가 새어 나가면 곤란해서…….”
노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주 제대로 걸리셨네.’
이쪽은 아무런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저쪽은 정액에, 상해를 입은 진단서까지 제출했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소성애가 강간당했다고 한 그 시간에 관계하기는 했습니까?”
“…….”
하지만 확답하지 않고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오성식.
노형진은 그런 그에게 따끔하게 말했다.
“변호사들을 안 믿으면 누굴 믿으실 건데요? 해결하기 싫어요? 해결하시려면 사실을 말해 주셔야 합니다.”
“그게…… 하기는 했습니다.”
‘최악이군.’
그러면 시간까지 저쪽 편이다. 시간이 안 맞으면 그거라도 추적해 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어디서 했는데요?”
“그게, 그 여자 집에서…….”
“하아.”
혹시나 모텔이나 호텔이라면 투숙 기록으로 싸워 볼 수라도 있다. 기본적으로 투숙객의 정보를 저장하는 데다가 카메라로 현장을 찍으니까.
그런데 상대방 집이란다.
“완전 제대로 걸렸는데요?”
무태식마저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완벽하게 걸려든 상황.
“도대체 어쩌다가…….”
황보수는 한숨만 푹 쉬었다.
“도대체 얼마나 만난 사이십니까?”
“한두 달 정도…….”
“이상한 점은?”
“못 느꼈어요.”
“쩝…….”
사실 느꼈다고 하면 그게 이상한 거다.
흘러가는 상황을 봐서는 아무래도 저쪽이 꽃뱀일 가능성이 높다. 일반인의 경우도 이상한 점을 느끼기 힘든 게 그들의 행동인데 그걸 느꼈을 리 없다.
“그래서요?”
“그냥……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실 사귀는 사이의 남녀가 관계를 가지는 것이 비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지금이 조선 시대도 아니고, 소위 말하는 성적 자기 결정권이 인정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걸 가지고 함정을 파는 거지.’
강간하는 놈들도 나쁜 놈들이지만 그걸 이용해서 남자들을 뜯어먹는 여자들도 나쁜 놈들이다.
“알겠습니다. 우리가 좀 알아보지요.”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시작된 변론.
노형진은 그저 한숨을 쉬며 앞날을 걱정할 뿐이었다.
* * *
“어…… 이 번호는 완전 엉뚱한데?”
“뭐?”
노형진은 손채림의 말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것은 전화번호다. 통화했다면 당연히 그 기록이 남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기록을 받아 가지고 온 손채림의 말에 노형진은 말 그대로 숨이 턱 막혔다.
“이거 핸드폰 번호 주인이 여든 먹은 할아버지인데? 제주도 살아.”
“진짜야?”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손채림의 말에 잽싸게 그걸 받아서 읽어 보는 노형진.
그러나 손채림의 말대로 상대방은 전혀 엉뚱한 사람이었다.
“젠장…… 핸드폰마저도 대포폰인 거야?”
이러면 상대방을 특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상대방은 오성식을 강간범으로 특정할 수 있는데 정작 오성식은 소성애를 여자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증거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 집은?”
“그 집은 소성애 집이 맞아.”
“젠장…… 상대방, 완전 프로인데?”
소성애가 준비한 함정은 치밀했다.
아무리 봐도 일반적인 공략법으로는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치밀한 함정.
“도대체 어디부터 공략해야 할지 막막하네.”
교제를 증명할 자료는 아무것도 없는데 집은 그 여자의 집이 맞다.
더군다나 오성식이 그 집에 갈 이유가 없다. 소성애는 자신들이 그냥 서로 알고 지내는 지인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태식 변호사님은 뭐래?”
“글쎄…… 무태식 변호사님도 여러모로 고민 중이기는 한데 이쪽에서 내밀 증거가 워낙 없으니까.”
“만일 꽃뱀이라면 미리 준비한 거라는 거지?”
“그렇지. 그리고 내가 봐서는 이건 치밀하게 준비한 사람이 한 거야.”
“흠.”
손채림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면 이상한데?”
“뭐가?”
“네 말이 맞는다면 한 가지 안 맞는 부분이 생기잖아?”
“어떤 부분?”
“일단 꽃뱀 노릇을 하려고 한다면 만나야 정상 아냐?”
“그렇지?”
“그런데 그건 어디서 만난 거야?”
“응?”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그렇잖아. 내가 뭐, 이런 사건을 많이 본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남자와 여자가 만나야 하는 게 정상 아냐? 그런데 내가 공부할 때 보면 술집에서 만나는 게 보통이거든.”
노형진은 멍했다.
그러고 보니 자신들이 추적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바로 만남.
“그 둘이 만났다면 그쪽에 흔적이 있지 않을까?”
“흠…….”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단 내가 그쪽으로 알아봐야겠네.”
“난 다른 쪽으로 좀 알아볼게. 걸리는 게 있거든.”
“걸리는 거?”
“숙소 말이야.”
“응?”
“그거 내가 무심결에 인터넷에서 쳐 봤거든.”
“그런데?”
“광고가 뜨던데?”
“광고?”
노형진은 그 말이 무슨 뜻인가 해서 그곳을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사건이 벌어진 현장은 오피스텔. 그러니 광고가 뜨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채림이 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그녀가 보기에는 뭔가 이상하다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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