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104
104화 온고지신 (2)
카이루스가 필요로 하는 애드온은 양산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물을 진동시켜 안개로 만드는 애드온이라니.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세상 쓸모없는 애드온이잖아.”
따라서, 특주품의 형태로 제작을 맡겨야 한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사람은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다른 데에 있다.
‘특주품을 생산할 수 있는 정도의 기술자라면, 돈으로 부탁했다가는 내년 이맘때에나 올 텐데.’
실력 있는 애드온 제작자는 예약이 밀려있기 마련이다.
필요한 건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법이지만, 구매한 물건이 빨리 오게 만들 수는 없다.
고민을 이어가는 카이루스의 등짝을 일레나가 팍 하고 쳤다.
“일단, 큰일 하나 끝낸 셈이잖아.”
카이루스가 뒤를 돌아보자, 일레나가 술잔을 기울이는 시늉을 한다.
“한잔하면서 마저 생각해보자고. 계속 사무실에 처박혀 있다가는 엉덩이에 곰팡이가 슬 거야.”
카이루스는 죽다가 살아난 셈이니, 일레나의 제안이 반갑지 않을 리가 없다.
“너 돈 없잖아.”
“당연히 스승이 한턱내야지. 제자 지갑을 탐내다니.”
카이루스는 일레나의 말에 혀를 찬 다음 근처의 술집으로 향했다.
나무탁자 위에 놓인 두 개의 샷 잔에 호박색 독주가 채워졌다.
“고생했다.”
“당연히 고생했지. 아직도 몸에서 시궁창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카이루스가 잔을 들며 말하자, 일레나가 잔을 부딪치며 대답했다.
삽시간에 샷잔 안의 독주를 싹 비운 일레나가 입가를 훔친 다음 땅콩 한 개를 입 안에 던져넣고는 말했다.
“애드온 기술자 말이야. 돈으로 부탁하면 오래 걸릴걸? 그런 기술자들은 몇 년 치 제작일정이 꽉 차 있는 경우도 많잖아.”
일레나 또한 카이루스가 고민하고 있던 점을 걱정하고 있었다.
특주품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기술자는 대부분 바쁜 일정을 소화하기 마련이니까.
“돈은 있으니까, 만들어 달라고 하면 언젠가 만들어지기는 할 거야.”
“그 긴 시간을 기다릴 생각이야?”
일레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술집을 슥 훑었다.
“전부 허리춤에 뭐 하나씩 차고 있는 놈들뿐이잖아. 배틀기어가 이렇게 흔한 도시는 처음 봐.”
“불량품이 대부분이고, 제대로 된 사용법도 모르는 놈들이 한가득이지만.”
카이루스의 말에 일레나가 히죽 웃는다.
“나처럼 말이지?”
“그래.”
일레나 또한 잘못된 방법으로 배틀기어를 사용했었다. 이 도시의 양아치나 불한당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의 몸을 박살 낼 수도 있는 불량 배틀기어를 잘못된 방법으로 사용하며 돌아다닌다.
“이 도시는 위험해. 빠르게 강해져야 할 필요가 있어.”
그러니 다들 불량 배틀기어라도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거다. 일레나는 잔에 다시금 술을 채운 다음, 후추를 한 꼬집 잔에 털어넣은 다음 내용물을 쭉 들이켰다.
“몇 년이나 기다릴 수는 없어. 그리고 나도 지금 어디까지나 휴가 중이잖아. 성과를 내야 해.”
일레나는 장기휴가를 낸 상태고, 휴가에서 복귀하면 스스로의 성장을 증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미 증명할 수 있을 텐데. 너 정도면 이제 충분히 수훈기사 급이야.”
“증명이야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난 부족해.”
일레나는 욕심이 많다. 남들처럼 휴가를 쓰고, 남들 정도로 강해지는 걸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기술자부터 찾아봐야 할 텐데. 좋은 방법 있어?”
일레나의 말에 카이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좋은 상황은 도시 안에서 기술자를 찾는 거지만….”
“있겠냐.”
일레나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카이루스의 소망을 단번에 부정했다.
“그렇겠지?”
뛰어난 애드온을 제작할 실력이 있는 기술자가 이 도시 안에서 생활한다면 어떤 삶을 영위하고 있을지 뻔하다.
거대한 조직에 소속되었겠지.
뛰어난 실력자가 조직에 소속되어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카이루스 같은 경우와는 달리, 기술자는 자신의 몸을 보호할 수단조차 마땅치 않다.
“도시 안에서 찾는 건 포기하는 게 좋을 거야.”
그 이후, 잠깐 동안 침묵이 이어진다. 카이루스는 나름대로 뭔가 뾰족한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이어간다.
카이루스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일레나가 입을 열었다.
“내가 한번 힘을 좀 쓸까?”
카이루스는 일레나의 제안에 흠, 하는 소리를 냈다.
캘로그 가문의 도움을 받는다면 뛰어난 실력의 기술자를 찾고, 거기에 더해 기다릴 필요도 없이 최단시간 안에 요청한 애드온을 받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재무청장의 지위와 캘로그의 위세는 가볍지 않으니까.
“가능하다면, 힘 좀 빌리자.”
님부스를 사용하기 위한 애드온을 제작하는 건 카이루스 입장에서도 최대한 서두르고 싶다.
원래라면 캘로그 가문의 힘을 빌리지 않았겠지만, 이번에는 일레나가 먼저 말을 꺼낸 만큼 도움을 좀 받고 싶었다.
“사무실에 돌아가면 전화로 연락해볼게. 그 전에 한 잔 더 먹고.”
일레나는 그렇게 말하더니, 약간 더 큰 잔을 가져와서 독주를 3/4 정도 채운다.
그리고는 핫소스를 채워넣는다. 저 핫소스는 소금과 식초, 고추만을 이용해 만드는 물건이다.
“이제 보니 너 술 한번 괴팍하게 먹네.”
“그래?”
카이루스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레나는 핫소스와 독주를 섞어놓은 용액을 쭉 들이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먼저 간다.”
일레나는 카이루스에게 인사를 하고 술집을 나와 사무실로 향했다.
― 죄송하지만 캘로그 저택은 지금 시간에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교환원을 통해 캘로그 저택으로 전화를 연결하자마자, 곧바로 전화통화를 거부하는 목소리가 일레나의 귀를 간지럽혔다.
“나야.”
일레나가 입을 열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잠깐 침묵했다.
― 아가씨, 무슨 일로 연락을 다 하셨습니까?
“아버지와 이야기하고 싶은데.”
하지만 상대 입장에서는 지금 전화를 건 당사자가 진짜 일레나가 맞는지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 제 이름을 말해주세요.
“잠시만… 루시아.”
일레나가 대답하는 데 시간이 걸린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전화를 받은 사람의 이름은 루시아가 아니기 때문이다.
날짜에 따라 주기적으로 변경되는 일종의 암호다. 목소리 이외에는 상대를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보안을 위해 정해놓은 거다.
― 확인되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한 10분 정도 기다렸을까, 마침내 수화기 너머에서 익숙한 기침 소리가 들렸다.
― 네가 무슨 일로 전화를 다 했냐.
시미드 캘로그의 목소리를 확인한 일레나가 부드러운 어조로 인사했다.
“건강하신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일레나의 말에 시미드가 혀를 찼다.
― 이 시간에 안부인사를 하려고 전화를 쓸 리는 없겠지.
안부가 궁금하다면 편지를 쓰거나 전보를 칠 일이지, 비싼 전화를 쓰지는 않는다.
“뛰어난 애드온 제작자를 소개받고 싶어요. 특주하고 싶은 물건이 있어서.”
일레나의 말에 시미드가 허허, 하는 소리를 내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 제국의 기술자는 소개시켜 줄 수 없다.
일레나 입장에서 시미드의 대답은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캘로그는 제국의 귀족 가문이다, 애드온을 만들 수 있는 뛰어난 기술자를 소개해준다면 제국 사람인 게 당연하다.
“네? 그럼 어디를….”
― 공화국의 기술자라면 소개시켜 줄 수 있다.
하지만, 시미드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딸의 부탁이라 해도, 제국의 기술자를 함부로 소개시켜주는 건 지금으로서는 조심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황권교체를 위해 힘을 비축하고 있는 지금 허튼 움직임을 할 수는 없으니.’
저택에서의 사건이 없었다면 모를까,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자 시미드 캘로그도 곧장 필요한 조치들을 행했고, 지금도 행하는 중이다.
그 중 일환이, 수상해 보일 만한 행동은 최대한 자제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시미드는 일레나에게 아이란 공화국의 기술자를 소개시켜 줄 생각이었다.
“아버지의 뜻이 그렇다면, 알았어요.”
일레나 입장에서는 다소 이상하더라도, 시미드 캘로그의 제안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시미드 캘로그는 순순히 자신이 알고 있는 기술자에 대한 정보를 말해주었다.
― 그래서, 요즘 생활은 어떠냐.
기왕 전화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게 된 부녀다. 서로 하면 안 되는 이야기들은 있었지만, 시시콜콜한 이야기 정도는 나눌 수 있었다.
한동안 통화를 이어가던 일레나는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연락을 끝냈다.
“왜, 더 이야기 나누지.”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눈치챈 카이루스가 일레나에게 말했다.
“됐어. 이미 이야기는 나눌 만큼 나눴으니까.”
일레나는 그렇게 말한 다음 카이루스에게 종이에 적어놓은 정보를 보여주었다.
“이건.”
종이를 건네받은 카이루스의 표정이 애매해졌다.
“뭐야, 필요하다고 해서 부탁을 들어줬는데 표정이 왜 썩었어.”
일레나의 말에 카이루스가 대답했다.
“네 아버지에게 전화를 통해서 들은 거냐?”
“그렇지.”
일레나의 말에 카이루스가 입맛을 약간 다셨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반역에 대한 이야기는 시미드도 일레나에게 비밀로 하는 중이니까, 전화 중에 그와 관련된 정보를 흘렸을 리 없다는 사실이다.
“일레나, 이 사무실의 전화는 장미정원에서 깔아준 거잖아.”
“아. 이런 병신 같은.”
그제서야 일레나도 아차 싶었는지 눈가를 문질렀다.
방금 전 일레나와 시미드가 전화를 통해 나눈 대화는 장미정원이 도청했을 것이다.
“그래도, 문제가 될 만한 이야기는 전혀 안 했는데….”
일레나의 말에 카이루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길 바란다. 보자… 에렌스로 가라고?”
종이에 적힌 내용을 살펴보던 카이루스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국의 기술자가 아니잖아.”
“뭔가 사정이 있으신 모양이었어.”
일레나의 말을 들은 카이루스는 대충 시미드 캘로그의 현 상황을 짐작한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뭐, 제국이면 어떻고 공화국이면 어때.”
시미드 캘로그가 알려줄 정도로 뛰어난 기술자라면, 카이루스가 원하는 애드온도 제작할 만한 능력이 있을 거다.
“그나저나 에렌스는 또 어디에 붙어있는 도시야?”
“에렌스는 도시가 아니야. 행정구역상 무르단 시의 권역 내에 위치한 자그마한 마을이라나봐.”
기차역도 없어서 무르단 시에서 내린 다음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무르단 시.”
베넷 시에서 기차를 타고 약 3―4시간 정도의 여행을 하면 도착하는 아이란 공화국의 도시다.
“도로 상태도 좋지 않을걸. 베넷 시에서 무르단 시로 이동하는 것보다, 무르단 시에서 차를 타고 에렌스까지 가는 게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어.”
일레나의 말에 카이루스가 으으, 하는 소리를 냈다.
“끔찍하네. 애드온을 잘 만드는 기술자 양반이 왜 그런 시골벽촌에 있는 거야.”
“이유까지는 듣지 못했어.”
어쨌든, 찾아가야 할 곳은 정해졌다. 아이란 공화국의 에렌스.
“내일 중으로 공화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위조신분증을 구한 다음, 바로 기차 타고 출발하자고.”
카이루스의 말에 일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손님이라.”
카이루스는 애매한 표정을 지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다가가 외시경에 눈을 가져갔다.
“이런 망할.”
카이루스는 그렇게 중얼거린 다음 헛기침과 함께 목을 가다듬고 문을 열었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자주보네요.”
자주 본다고 하기에는 너무 자주다.
카이루스가 뒤로 물러나며 인사하자, 세실리아가 간단한 인사말을 건넨 다음 사무실 안으로 걸어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