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정의로운 도련님 (2)
세턴 볼로스는 말쑥한 도련님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청년이었다.
나이는 이미 20대 중반을 넘어가고 있었지만, 얼굴만 놓고 보면 아직 소년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생각보다 많이 젊으시네요.”
“그렇습니까? 다들 그렇게 말하더군요.”
20대 중반의 평검사는 아이란 공화국은 물론이고 제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 나이에 검사가 되려고 꽤나 노력했습니다.”
세턴 볼로스가 이렇게 젊은 나이에 검사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물론 본인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사실 20대에 검사가 되는 건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내기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할아버지의 권세만 가지고 밀어버릴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다.
혼자서 한 일은 아니지만, 또 그렇다고 할아버지가 다 해줘서 거머쥔 것은 아닌 애매한 위치.
그게 바로 지금 세턴 볼로스가 누리고 있는 권역검찰청 평검사라는 지위였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참 애매하다는 거다.
‘애매한 노력으로 손에 넣은 애매한 지위라.’
카이루스는 세턴 볼로스의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시에,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척을 파악했다.
세턴 볼로스를 호위하고 있는 녀석은 총 세 명 존재한다.
“아이란 공화국의 최연소 검사님이라고 들었습니다. 굉장하시네요.”
일레나의 말에 세턴 볼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혹시, 검사를 지망하는 다른 분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을까요?”
일레나와 카이루스는 흔히 일반적인 잡지에서 진행할 법한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스스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환경을 탓하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세턴 볼로스는 자신이 하루에 최소 15시간을 공부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매일 아침이면 그날 먹을 샌드위치와 커피를 바구니에 챙겨 책상 옆에 둔 다음, 공부를 하며 배가 고플 때마다 한 입씩 먹어가며 공부했다는 거다.
“대단하시네요.”
일단,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어지간한 사람은 3년 동안 하루 최소 15시간 동안 공부만 하며 살 수는 없다.
하지만 동시에.
세턴 볼로스가 아무것도 안 하고 몇 년 동안 공부만 해도 괜찮은 집에서 태어났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열정과 노력에 대해 논하려면, 열정과 노력을 온전히 자신이 원하는 것에 쏟아넣을 수 있는 환경인지도 확인해봐야 하지 않을까. 조금 더 인터뷰를 이어가던 카이루스는 나름대로 세턴 볼로스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자기 자신을 너무나도 사랑하는구만.’
세턴 볼로스는 정의로운 검사로서 활동하는 자신. 열정과 노력을 통해 최연소 검사가 된 자신을 사랑한다.
점심식사 시간이 되자 인터뷰를 잠깐 멈춘 다음, 카이루스와 일레나는 검찰청을 나와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연인은 아마, 없을 거야.”
“있다고 해도 의미 없을 확률이 높아.”
일레나 또한 세턴 볼로스에 대해 카이루스와 비슷한 판단을 내린 모양이다.
“저런 성격이면 애인은 트로피일 확률이 높아.”
일레나는 단호하게, 간략한 결론을 내렸다. 설사 세턴 볼로스에게 애인이 있다 해도 그 애인으로는 협박하지 못한다.
새턴 볼로스는 젊고 예쁜 여성과 연애하는 자신을 사랑하고 있을 확률이 너무나도 높다.
“자상한 애인으로서의 나. 효자인 나.”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어차피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세턴 볼로스는 그 경향이 약간 더 쎌 뿐이다.
나쁘고 좋고를 따지는 게 아니라.
“거참, 그럴듯한 건덕지 찾기 힘드네.”
세턴 볼로스가 저런 성격인 이상 그의 주변에 있는 뭔가로 그를 협박하기가 힘들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카이루스와 일레나를 고민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방법은 하나뿐인 것 같은데.”
일레나는 그렇게 말한 다음, 얼굴에 붓질하는 시늉을 했다.
“우리 검사 양반은 완벽하고 멋진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 멋진 나를 부수는 방식으로 협박해야 한다.
“계획은 짤 수 있어. 다음 문제는 호위지.”
세턴 볼로스를 지키고 있는 호위 세 명은 검찰청 안에서도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세턴 볼로스를 지키고 있다.
“확실한 건, 호위가 붙었다는 사실을 세턴 볼로스는 전혀 모른다는 거야.”
카이루스의 말에 일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그런 식으로 호위하는 건 비효율적이잖아.”
호위가 호위 대상으로부터 스스로의 모습을 감출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습을 숨기고 있는 이유가 뭘까?
당연히, 세턴 볼로스를 몰래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카이루스와 일레나가 굉장히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사실이다.
“세턴 볼로스는 불법작물 재배 혐의로 에렌스 마을을 조사 중이지.”
“…우리는 지금 밍글턴 부부이자, 잡지 기자로서 그를 취재 중이야.”
일레나와 카이루스가 빠르게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고, 카이루스가 입을 열었다.
“던지기, 또는 셋업이라고 불리는 범죄가 있어.”
칼슨 노동교화소에는 마약사범이 하나 있었는데, 경쟁업체에게 던지기를 당해서 치안대에게 잡힌 사례다. 뭐, 칼슨 노동교화소로 옮겨진 이유는 다른 곳에서 무지막지한 사고를 쳤기 떄문이다.
“자세히 좀 말해줘.”
카이루스는 일레나에게 간단하게 던지기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불법 약물을 세턴 볼로스의 소지품에 몰래 넣은 다음.”
“취재 과정에서 발견한 것처럼 하는 거지.”
그리고 이를 통해 협박하는 거다. 카이루스의 설명을 들은 일레나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그 계획이 성공하면, 호위와 싸우는 건 필연이야.”
“나도 알아.”
국회의원 손자가 마약소지 혐의를 뒤집어쓰게 생긴 상황이다.
세턴 볼로스를 지키는 호위들은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있지만, 그런 상황이 되면 당연히 모습을 드러내고 카이루스와 일레나를 죽이려 들 거다.
약점을 잡혔을 때,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약점을 잡은 녀석을 죽이는 거니까.
“지금은 못 해.”
카이루스의 말에 일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셋업 범죄를 저지르면, 주변에 있던 호위들이 달려드는 건 확정이다.
근데 검찰청은 배틀기어를 지니고 들어갈 수 있는 건물이 아니다.
억지로 들어가는 순간, 무르단 시 전체와 싸우는 것이 확정되고, 당연히 카이루스는 살아서 도망칠 자신이 없다.
“우리가 챙겨서 들어갈 수 없다면, 권역검찰청에서 끌어내야겠지.”
셋업 범죄도 밖에서 진행하고, 호위의 상대도 검찰청 밖에서 처리해야 한다.
“근데 이 도시에서 하자고?”
일레나의 말에 카이루스가 머리를 박박 긁었다.
“와 씨바, 이거 골까긴 하는 상황이네.”
검찰청 밖으로 끌어내면 배틀기어는 쓸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호위 세 명을 상대해야 한다.
그렇다고 그 호위라는 것들이 후다닥 처리할 수 있을 정도의 찌끄레기도 아니다.
“검찰청 밖으로 끌어낸 이유가 없잖아.”
어차피 협박을 시도하는 즉시 호위와 싸우게 된다.
호위를 빨리 처리하는 데 실패하면 무르단 시의 경찰 전체와 싸워야 한다.
“배틀기어 들고 무르단 시 경찰 전체와 싸우냐, 아니면 배틀기어 없이 싸우냐.”
어차피 두 가지 경우 모두 뒈지는 건 마찬가지다.
“차이점이라고는 시체가 배틀기어를 쥐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정도겠지.”
이 계획대로 진행하면 그 순간 지옥 떨어지는 급행열차 티켓을 끊는 거다.
“….”
깊은 침묵이 자리 잡았다. 카이루스와 일레나는 점심밥을 앞에 두고 있었지만, 식사를 시작할 수는 없었다.
“에렌스.”
그 순간, 카이루스가 뭔가를 떠올리고 입을 열었다.
“에렌스?”
카이루스의 말을 들은 일레나가 고민 중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 에렌스!”
그리고 잠시 뒤 거의 자리에서 일어나기 직전의 자세를 하며 외쳤다.
생각의 흐름이라는 건 물을 막고 있는 큰 둑과도 같아서, 한 번 둑이 트이면 폭발적으로 생각의 흐름이 이어진다.
카이루스와 일레나의 시선이 서로 마주쳤다. 말을 이어가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 시선 속에서 카이루스와 일레나는 두 사람이 거의 비슷한 계획에 도달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살짝만 더 다듬으면 될 거야.”
카이루스의 말에 일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도 지금 두 사람은 검찰청 밖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중이다.
지금의 번뜩임을 제대로 된 계획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뜻이다.
식사는 거의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눈 두 사람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이거, 가능하면 같이 하고 싶었는데 검찰청 구내식당은 외부인 이용 불가라서.”
“아유 천만에요. 검사님은 식사하셨습니까?”
카이루스의 말에 세턴은 책상 옆의 핫도그 상자를 가리켰다.
“그렇군요.”
“인터뷰를 계속하시겠습니까?”
잠깐 서류를 살피던 세턴의 말에 카이루스가 수첩을 꺼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카이루스와 일레나는 다시 취재하는 연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 연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세턴 볼로스 검사님. 실례합니다.”
수사관이 노크 후 문을 연 다음 세턴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지?”
“기자분들에게 전보가 왔는데, 지금 꼭 전달해야 한다고 해서….”
거기까지만 말하고 끝이 아니었다. 수사관은 세턴을 향해 슬쩍 수신호를 보냈다.
“그런가? 전달해드리고… 아, 그러고 보니 자네 마침 잘 왔군 그래.”
세턴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카이루스와 일레나를 바라봤다.
“마침 전보가 왔다고 하니 확인하고 계시겠습니까? 저는 잠시 수사관과 나눌 이야기가 있어서.”
세턴의 말을 듣자마자 일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물론이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수사관이 테이블 위에 전보를 내려두었다. 그걸 확인한 세턴은 카이루스와 일레나를 두고 문을 나섰다.
“무슨 일이야?”
밖으로 나오자마자 세턴은 멜슨 수사관에게 질문했다.
“에렌스 건 있지 않습니까.”
멜슨이 그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세턴이 반색을 하며 눈을 빛냈다.
“그래, 에렌스 마을. 자세히 말해보게.”
“지금 온 밍글턴 부부도 뭔가 냄새를 맡은 모양입니다. 검사님 인터뷰를 마치고 나면 에렌스 마을에 취재를 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멜슨의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 세턴이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뭔가 다른 건수일 가능성은?”
멜슨이 고개를 저었다.
“전보 내용을 확인해봤습니다.”
편집장이 허가했으니 인터뷰를 마치고 내일 중으로 에렌스로 향하면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취재 중에는 위험이 있을 수 있으니 신변의 안전에 각별히 유의하라는 말도 있었다.
“에렌스 마을에서 위험해질 수 있는 취재라고 하면 정해져 있잖아.”
불법작물재배 관련 이슈다. 이 순간, 세턴은 성공의 빛을 잡았다는 확신을 느꼈다.
‘무르단 시에 소속된 경찰이 누군지는 에렌스에 불법작물재배를 종용한 조직도 파악하고 있으니까.’
경찰 또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지만, 솔직히 그 진전이 세턴 입장에서는 불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기자라면 어떨까.
‘기자들은 특종을 잡을 수 있고, 나는 목표를 이룰 수 있고.’
세턴이 상황의 심각성을 기자들에게 설명해주고, 시한부 보도유보를 요청하면 분명히 협조해 줄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세턴은 수사관을 향해 말했다.
“하지만 검사님, 저들은 훈련받지 않은 민간인입니다. 무슨 일을 당하게 되면… 검찰청에서는 감당할 수 있습니까?”
“올바른 일을 하기 위해서야. 그리고. 취잿거리를 찾다가 봉변을 당하는 기자들이 어디 한둘인가? 더 듣기 싫으니 그렇게 알고 있도록.”
세턴은 수사관의 말을 일축하고 다시금 카이루스와 일레나가 머무르는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