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정의로운 도련님 (3)
사무실로 돌아온 세턴의 표정을 보자마자 카이루스와 일레나는 자신들의 계획이 어느 정도 먹혀들어가고 있다는 걸 확신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먹혀들어가는 걸로는 부족하다. 카이루스와 일레나의 최종목적은 정해져 있다.
‘이 녀석을 에렌스로 데려가야 한다.’
세턴 볼로스와 에렌스까지 동행하는 데 성공하면 목표 달성이다.
에렌스 같은 시골벽촌에는 막강한 경찰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점심을 먹으며 카이루스와 일레네가 계획했던 작전을 에렌스에서 실행하면 무르단 시의 경찰들을 상대할 필요가 없다.
감당해야 하는 것은 오로지 세턴 볼로스를 몰래 지키고 있는 세 명의 호위뿐이다.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인터뷰를 잠시 멈추고, 단적으로 질문하겠습니다. 에렌스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으십니까?”
카이루스는 세턴이 간접적으로 의사를 표현할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세턴은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세턴 볼로스는 직설적으로 카이루스와 일레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에렌스….”
카이루스는 다소 놀라는 연기를 한 다음, 난처한 표정으로 일레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상대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온다면, 카이루스와 일레나는 한발 물러나는 제스쳐를 취해줘야 한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저희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미 제 수사관이 두 분에게 보내진 전보를 확인했습니다.”
“네? 아무리 검사님이라 해도 그렇게 멋대로 타인의 전보를 확인해도 되는 겁니까?”
남의 전보를 멋대로 확인하는 건 무례한 일이다.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다.
카이루스와 일레나는 일이 이렇게 되기를 기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짐짓 불쾌한 내색을 비췄다.
“정의집행을 위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카이루스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설마하니 제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자기 주둥아리로 정의집행이라는 부끄러운 단어를 입에 담는 인간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이후 이어진 말도 죄송합니다가 아니라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라는 굉장히 독특한 한마디였다.
난 네가 이해했을 거라 믿고 있다. 라는 말은 실제로 이해했건 어쨌건 자신의 알 바 아니라는 식으로 들릴 수도 있다.
꽤나 예의 없는 한마디라고 생각하며, 카이루스는 말했다.
“…물론 저희가 취재할 예정인 사안은 검사님도 관심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거기까지 듣고 나자, 세턴이 눈을 빛내며 주먹을 꽉 쥔 다음 말했다.
“끼워드리겠습니다.”
끼워준다고? 누구 맘대로 끼워준다는 거야 이 씹새야.
라는 말이 카이루스의 목젖 언저리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갔다.
‘그래, 오히려 좋은 일이지.’
이렇게 안하무인으로 돌격하는 철없는 도련님이 더 찜쪄먹기 쉬운 법이니까.
사실, 세턴이 마구잡이로 나온 덕분에 원래 생각하던 절차가 간략화된 건 다행이다.
“정의라고 하셨지만, 사실 저희를 그냥 미끼처럼 쓰시는 거 아닙니까.”
카이루스의 차가운 한마디에 세턴이 살짝 인상을 썼다.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저희는 위험에 빠질 각오를 하고 에렌스로 가는 겁니다. 검사님은 여기에 머무르면서 저희가 취재한 것만 받겠다는 뜻 아닙니까?”
카이루스의 말에 세턴이 하, 하는 소리를 냈다.
“이 기자 새끼들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저희를 쓰시는 건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저희도 뭔가 받아야겠습니다.”
삽시간에 분위기가 얼어붙는다. 세턴이 가만히 카이루스를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말해봐.”
세턴은 이제 더 이상 존대를 쓰지 않고 있다. 그의 입장에서는 감히 자신에게 대가리를 들이받는 카이루스의 태도가 마음에 들 리가 없다. 언제나 승리자였던 세턴은 카이루스의 태도를 이해할 생각이 없었다.
“동행하시지요.”
“동행?”
이야기를 듣고 있던 수사관이 카이루스의 말을 듣자마자 얼굴을 굳혔다.
“지금 자네가 누구에게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아나?”
“스스로 위험을 감수할 생각도 없이 정의를 운운하는 아이란 공화국의 검사이신 세턴 볼로스 님이지요.”
카이루스가 잠깐 말을 멈추자, 기다렸다는 듯이 일레나가 치고 나와 입을 열었다.
“이번 취재가 위험하다는 건 검사님도 알고 계시리라 믿어요.”
세턴이 그 말에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불법작물을 재배하는 마을이다. 기자들이 취재하다가 어떤 위험에 빠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세턴 볼로스 님은 아이란 공화국의 검사이시잖아요. 위험한 일이 생겨도 저희를 보호해 주실 수 있으시죠. 아닌가요? 제아무리 에렌스 마을 사람들이 폭력적으로 나와도.”
제아무리 마을 사람들이 막 나가도 공화국 검사에게 해코지를 할 수는 없다.
“나를 방패로 삼겠다는 건가?”
“경찰은 수사 과정에 제한이 있지요. 하지만 저희는 아닙니다.”
카이루스는 당당하게 말했다.
“기삿거리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제한이 있는 경찰들과는 다르죠.”
바로 그 점 때문에 세턴 볼로스가 카이루스와 일레나를 써먹으려고 한 거다. 카이루스는 정확하게 맥을 짚었다.
“저희가 조사하고, 검사님에게 전부 드릴게요.”
“검사님의 허락을 받고 난 다음에 잡지에 수록할 예정입니다.”
일레나와 카이루스는 마치 속을 꿰뚫기라도 한 것처럼 세턴 볼로스가 원하는 말을 쏙쏙 뽑아서 이어가는 중이었다.
“그저, 동행만 해주세요. 만약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저희의 신변만 보호해주시면 됩니다.”
세턴이 잠깐 고민에 빠졌다.
“정의집행을 위해서라고 하셨잖습니까. 아니면, 사실 검사님도 이 권역검찰청의 흔해 빠진 검사들과 마찬가지였던 겁니까?”
탕! 세턴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터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준비를 마친 다음, 에렌스까지 향하지.”
“…감사합니다. 저희는 먼저 출발해 에렌스에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어차피 더 이상 인터뷰를 이어갈 분위기는 아니었다. 카이루스와 일레나는 인사를 하고 검찰청을 떠났다.
그리고, 이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던 수사관은 결국 참지 못하고 말했다.
“저는 반대입니다.”
“나보고 이 기회를 그냥 놓치라는 건가?”
불법작물 대량재배는 어마어마한 건수다. 검사가 주도적으로 경찰을 지휘해 그 뿌리를 싹 뽑아내는 데 성공하면 그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커리어가 된다.
세턴 볼로스는 언제나 성공을 향해 달려나가는 남자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무수한 난관을 극복했고, 그 정신력과 의지는 강철처럼 단단하다.
최소한, 세턴 볼로스 자신은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더 이상 방해하지 말게. 조만간 출장을 나갈 예정이니 그렇게 알고 있고.”
말을 마친 다음, 세턴 볼로스는 시간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턴 볼로스가 해야 할 일은 이미 진작에 끝난 상황이다. 해는 저물어 가는 중이었고, 여전히 일하는 사람으로 가득한 검찰청 내부에는 하나씩 불빛이 켜지고 있었다.
“오늘 안에 해야 할 일을 왜 지금까지 질질 끄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사람이 부지런해야지.”
이 시간까지도 일과를 마치지 못한 다른 검사들을 향한 짤막한 평가를 남긴 다음, 세턴 볼로스는 검찰청에서 멀어졌다.
카이루스와 일레나 또한 호텔로 돌아왔다.
“한잔?”
“좋지.”
카이루스와 일레나의 계획은 굉장히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새로 딴 포도주가 카이루스와 일레나가 쥔 유리잔을 채웠다.
맑은소리와 함께 잔이 부딪치고, 붉은 액체가 찰랑인다.
“생각보다 더 쉬웠어.”
일레나의 말에 카이루스가 짧게 대답했다.
“아직 끝난 거 아니야.”
이러다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버릴 수도 있다. 가능성이 그렇게 높지는 않다 해도, 혹시나 그런 일이 생기면 많은 것들이 곤란해진다.
“그 검사, 행동력 하나는 일품이던데. 기세만 보면 내일 바로 출발한다고 말해도 놀랄 게 없겠어.”
일레나의 말에 카이루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세턴 볼로스라면 그러고 싶을 거다.
“필요한 물건은?”
“장미정원 지부에서 준비해 줄 거야.”
에렌스 마을에 주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우유배달은 장미정원이 제공하는 혜택이다.
내일 새벽 카이루스와 일레나는 우유를 배달하는 차를 타고 에렌스로 향할 예정이다.
“물건도?”
“그래.”
세턴 볼로스에게 셋업범죄를 저지르는 데 필요한 약물 역시 해당 우유배달차에 준비되어 있을 예정이다.
카이루스와 일레나는 배달차를 타고 에렌스에 도착해 세턴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면 된다.
“난 후딱 마시고 자야겠다.”
내일 새벽에 출발하려면 지금 잠을 충분히 자두어야 한다. 와인 한 병과 치즈를 삽시간에 작살낸 카이루스와 일레나는 각자의 객실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카이루스와 일레나는 커다란 자동차에 탑승한 채 에렌스로 향했다.
“만약 안 오면 어쩌지?”
카이루스는 일레나의 말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다시 도시로 돌아가 죽여야지.”
호위가 있다 해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세턴 볼로스의 멱을 따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야. 문제는 그다음이지.”
이후 시미드 캘로그가 소개해 준 에렌스의 애드온 장인과 접선하는 건 힘들어진다.
국회의원 손자를 죽인 범죄자들이 멀쩡하게 공화국의 땅을 밟는 건 굉장히 힘들 테니까.
“잘 풀리길 빌어야겠네.”
일이 거기까지 꼬이고 나면 일레나 또한 굉장히 골치 아파진다.
물론 카이루스와 일레나가 걱정하는 것과는 달리, 세턴 볼로스는 질주하는 야생마 같은 추진력으로 출장 준비를 진행시키고 있었다.
제아무리 검사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애송이라 해도, 세턴 볼로스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턴 볼로스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의 할아버지인 레밍턴 볼로스가 무서워서였지만, 그런 건 어차피 중요하지 않다.
“좋았어.”
중요한 건 세턴 볼로스가 일주일 뒤 에렌스에 올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검사라는 직책이 가지고 있는 무게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게 일처리를 빨리 끝낸 거다.
우유배달차를 타고 에렌스에 도착한 다음 전보를 받은 카이루스와 일레나는 혀를 내둘렀다.
“진짜 투우처럼 달려드네.”
“스스로의 성공을 믿는 거지.”
[여태 동안 성공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성공할 것이다.]살아온 경험에서 비롯된 확신이 세턴 볼로스가 가진 압도적인 추진력의 근원이다.
물론 이유 없는 확신은 없다.
‘그런 확신을 가지고 살 거면, 자신이 태어났던 세상에서 계속 살았어야지.’
검사가 된 다음, 갑자기 정의감에 불타며 장미정원을 건드린 것이 결정적인 잘못이었다.
자신이 전혀 모르는 세상에, 여태 동안 자신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요인이 통할 것이라 믿으며 덤벼든 잘못.
세턴 볼로스는 에렌스에서 자신이 저지른 잘못으로 인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다.
“대표님은 오히려 좋아하겠는데.”
“약점까지 잡으니까?”
세턴 볼로스는 비록 평검사이지만, 국회의원의 손자이기도 하다.
약점을 잡는 데 성공하면 자연스럽게 녀석을 쥐고 흔들 수 있으니, 장미정원에게 꽤나 도움이 될 거다.
물론, 장미정원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세턴 볼로스의 인생은 급격하게 망가진다.
기사단 소속인 일레나 입장에서는 어차피 적국의 공무원 하나가 망가지는 거니 오히려 좋은 일이다.
카이루스 같은 경우에는 이걸 미안해할 정도로 마음이 여린 사람이 아니다.
즉, 세턴 볼로스의 운명은 두 사람 알 바가 아니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