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177
177화 후보제거계획 (1)
세실리아와의 대화를 마치고, 수화기를 내려놓은 카이루스는 이마를 문지르다가 말했다.
“유니아 사장과 연락하고 싶은데.”
“응? 사장이랑? 안 될 건 없는데… 무슨 일이야?”
카이루스는 노라에게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상자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아, 우리가 사용하는 오르골이랑 비슷한 거네.”
루나시커의 오르골은 요원만 열 수 있게 만든 물건이다. 두 개의 구멍이 파여있는데. 검지와 중지를 넣어 두 버튼을 한 번에 눌러야 열린다.
검지를 넣어 누르는 버튼은 검지를 손바닥 쪽으로 굽히면 누를 수 있다.
중지를 넣어 누르는 버튼도 비슷하다. 다만, 중지를 손등 쪽으로 굽혀야 한다. 두 개를 동시에 누르는 건 루나시커 요원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어쨌든 장미정원 쪽에서 확보해준다는 상자 때문에라도 유니아 사장과 다시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아.”
“알았어. 잠시만 기다려.”
노라는 전화기를 들고 몇 가지 이야기를 한 다음, 카이루스에게 수화기를 건네주었다.
― 안녕하세요.
“장미정원과 협상하지 말고, 저랑 하시죠.”
일이 그렇게 되어버렸다.
― 어머나? 당신이랑? 상황이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거지.
“사업장. 딱 두 개만 지워버리세요.”
카이루스의 말에 유니아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 저기요. 이미 그 건에 대해서는 노라를 통해 충분히 의사를 전달한 것 같은데.
“결국 선거 때문이지 않습니까. 현 대통령의 재임이 목적이라면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고, 카이루스는 필요를 위해서라면 불법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를 수 있는 새끼다.
수화기 너머가 잠시 침묵했다.
“경쟁 후보를 조져놓겠습니다.”
― 죽이는 건 곤란한데.
“그럼 다른 방법으로 조져놓으면 되겠군요.”
루나시커도 적을 상대할 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자국 내에서 이루어지는 선거에 관여하는 행위다.
정의롭고 투명한 선거 같은 건 세상에 없다지만, 그래도 공화국의 첩보기관이기에 루나시커가 선택할 수 있는 수단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카이루스에게는 그런 거 없다.
― 일이 잘못되면….
“별걸 다 걱정하시네요. 내가 일을 조지면 루나시커 쪽에서 자신들의 혐의를 인정할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어차피 루나시커는 꼬리를 자르면 될 일이다.
― 우리도 후보에 대해서는 충분히 털어봤는데, 선거에 영향을 미칠 만한 오점은 없어요.
“그럼 없는 걸 만들어내면 되겠군요.”
털어서 먼지가 안 나오면, 먼저 먼지를 온몸에 뿌려준 다음 털면 된다. 그럼 먼지가 나오니까.
당하는 사람은 억울하겠지만, 원래 세상에는 억울한 일 천지다.
“약쟁이로 만들 수도 있고, 뇌물을 받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강간범으로 만들 수도 있죠.”
방법은 많지만, 그걸 시도하면 잃을 것들이 있기 때문에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 약쟁이 쪽으로 방향성을 잡는 게 좋겠네요. 그거랑 엮으면 사업장은 두 개만 털어도 될 거예요.
대통령 후보가 약쟁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마약 입수 경로를 추적하는 척하며 사업장 두 개를 정리할 생각인 모양이다.
― 미리 말해두지만, 진짜 약물을 몸에 주사해서 약쟁이로 만드는 건 금지에요.
어디까지나 의혹 정도에서 멈춰야 한다. 현 대통령과 선거에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는 후보라는 뜻은, 야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그런 거물이 진짜 약쟁이가 되어버리면 아이란 공화국에 심각한 혼란이 초래된다.
“참 귀찮은 국가군요.”
― 권한과 의무가 적절히 분배되어 있다는 표현이 좋을 것 같네요.
이어지는 대화의 요점은 간단했다. 장미정원이 받아간 사업장과 재배지 중 딱 두 개만 처리해라.
대신 선거에서 이길 수 있도록 야당 후보에게 약쟁이 의혹을 덮어씌우겠다. 일이 잘못되어도 루나시커에 불똥이 튀지는 않을 거다.
― 일단, 해당 계획에 대한 결정권이 저에게 있지는 않아요.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이야기니, 대통령의 허락이 떨어져야 한다.
“답이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네요.”
―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대화가 마무리되고, 확실히 유니아가 약속한 것처럼 대통령의 대답은 금방 돌아왔다.
[어쨌든 재선에 성공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할 수 있다면 상관없다.]간단하고 확실한 지침이었다. 과정은 상관없으니 내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와라.
권력자들이 흔히 내리는 지시다.
‘황제나 대통령이나 그건 큰 차이 없구만.’
이 정도라면 장미정원도 만족할 거다.
사업장 5개를 날려먹게 생겼는데, 그 피해를 절반 이하로 줄인 셈이니까.
대신 카이루스가 고생하게 생겼지만, 장미정원이 지금 구하고 있는 물건이라면 그 정도 고생은 충분히 할 수 있다.
“바로 준비해야겠군. 그 야당 쪽 후보라는 양반이 누구야?”
“제리코 후안.”
나이는 63세지만 세 번째 재혼한 아내는 나이가 20살인 대단한 할아버지다.
뭐, 심지어 아이란 공화국식 사고방식으로는 데려가서 혼인서류에 도장 찍을 때까지 감금해 두거나 한 게 아니라면 문제가 없는 모양이다.
그것 또한 개인의 선택이고, 자유니까. 자유의지를 가지고 두 사람이 스스로 결정했다면 상관없다는 거다.
“사는 곳은 아발란체 남쪽 근교.”
아이란 공화국의 수도다. 야당의 대통령 후보니 당연한 일이다.
1,700평 규모의 거대한 저택에 살고 있는데, 욕실만 15개라고 한다. 보유한 자동차도 25대나 되는 아주 부유한 사람이다.
대통령 후보로 꼽히는 정치인인 만큼, 저택의 경비도 굉장히 살벌할 것이다.
선거가 얼마 남지도 않았으니 그 경계 수준은 더더욱 심각하겠지.
“약쟁이행이라.”
실제로 약쟁이로 만드는 게 아니라, 약쟁이 의혹을 심어둬야 하는 거다.
“이전에 젊은 검사 조진 방법을 쓰는 건 어때?”
일레나의 말에 카이루스가 고개를 저었다.
“글쎄, 그게 그렇게 쉽게 될까.”
그때 상대했던 녀석은 철없는 검사고, 이번에 상대하는 제리코는 그 아이란 공화국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인이다.
결과가 과정을 증명하는 사회에서, 정치인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픽업 사기 같은 거에 쉽사리 당해줄 것 같지 않다.
“일단 공식 일정을 확인하는 게 우선인데….”
어차피, 신문이나 라디오 방송사에 제보하는 형식을 취하게 될 거다.
진짜 약쟁이로 만들어버린다면 검찰청도 움직이겠지만 어디까지나 의혹을 제기하는 정도에서 끝낼 일이니까.
“근데, 굳이 마약이어야 하는 거야? 아이란 공화국에서 정치인 생활을 하면 이런저런 구린 일을 많이 했을 텐데.”
일레나의 말에 노라가 응? 하는 소리를 냈다.
“뇌물? 아… 로비 말하는구나.”
아이란 공화국에서는 정치인에게 돈을 주며 뭔가를 부탁하는 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정치인들은 뇌물을 받아먹으며 일을 한다는 뜻이다.
“그럼 돈 없는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어서 로비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가야지.”
노라가 당연하다는 듯 일레나에게 대답했다. 멍하니 노라를 바라보던 일레나가 이마를 짚었다.
“아이란 공화국은 어떻게 나라가 유지되는 거야?”
“우리는 술집에서 황제 욕한다고 노동교화소로 끌려가지도 않고. 강간 피해자가 잔여물을 황제 사진이 찍힌 신문 페이지로 닦았다고 잡혀가지도 않거든.”
카이루스는 두 명의 대화를 듣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둘 다 훌륭하고 배울 점이 많은 국가지. 이제 자랑은 그만하고 일에 집중하자고.”
어차피 루나시커에서 털었는데 이렇다 할 먼지가 나오지 않았다. 카이루스가 조사한다고 결과가 바뀌지는 않는다.
“약은 준비 할 수 있긴 한데.”
“단순 소비자 정도로는 힘들어. 공급자 정도는 되어야겠지.”
성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이번에도 도시 돌아다니면서 조직들을 협박하려고?”
“아니. 아는 사람이 적은 편이 좋아.”
대통령 후보에게 누명 씌우는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다. 최소한의 인원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즉, 여기에 있는 세 명만 이번 일에 착수한다.
“농조연운이 문제인데. 사용하면 무조건 들켜.”
특유의 암녹색 칼날은 도료를 발라서 감출 수 있다. 하지만 사용할 때 울려퍼지는 터빈음과 분사음은 감춘다고 감춰지는 게 아니다.
[왜 숨어? 내가 이기는데.]라는 철학이 느껴지는 배틀기어가 바로 농조연운이다. 몰래 활동하는 걸 애초에 전제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참 곤란하다.
‘진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사용한다 쳐도.’
농조연운으로 뭔가를 하면, 카이루스가 저지른 일이라는 걸 아이란 공화국에 광고하는 행위다.
이번 일을 해결하는 동안에는 명멸만 사용해야 한다. 애초에 명멸도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다.
‘어지간해서는 싸울 일을 최대한 만들지 말자.’
슥 들어가서 상대 목 따는 건 카이루스의 기준에서 싸움이 아니다.
“그나저나, 노라는 루나시커 아니야? 이번 일에 함께해도 되는 건가 싶네.”
일레나의 말에 노라가 헹, 하는 소리를 냈다.
“이 정도는 문제없어. 대통령 후보에게 누명 씌우는 정도는 아이란 공화국에 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거든.”
대통령 후보를 조지는 게 아니라, 대통령을 조지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
“좋아. 대충 이야기는 끝났으니, 이제 시작하자.”
카이루스가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은 써먹을 만한 유통경로를 가진 마약의 확보였다.
‘아이란 공화국의 사업장 중 하나에서 생산한 마약.’
수도 근처에 마약 재배지나 생산 공장이 있을 리는 없다. 찾아봐야 하는 건 제리코의 고향이나, 지역구 인근에 위치한 타파스의 사업장이다.
지도를 살펴보다가 수화기를 든 카이루스는 세실리아에게 연락했다.
“세실리아 대표. 페더윙의 상자를 넘겨받는 대가로 아이란의 사업장은 두 곳만 버리면 됩니다.”
― 기쁘네요.
세실리아도 다소의 출혈을 각오했었는데, 카이루스의 제안 정도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피해다.
“다만,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포기하는 사업장 중에 하나는 엘몬트 인근에 있는 사업장입니다.”
제리코의 지역구다. 무려 63%의 득표율을 자랑한다. 지난 다섯 번의 국회의원 선거 동안 득표율이 50% 아래로 내려가 본 적이 없을 정도다. 나가면 무조건 당선된다.
― 어머, 그건 규모가 제법 커서 버리기에는 아까운 물건인데.
작게 혀를 찬 카이루스가 곧바로 대답했다.
“세실리아 대표, 그렇게 다 욕심부리면 살찝니다.”
― 아무리 우리가 급수가 비슷해졌다지만, 말을 막 하시네. 뒈질래요?
죽고 싶어서 한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예전이었으면 이것도 죽을죄였겠지만, 지금 와서 이런 말 했다고 카이루스가 죽을죄를 지은 건 아니다. 세실리아도 그냥 지나가듯 ‘뒈질래?’ 라고 말한 것뿐이지 실행의도는 없었다.
“그거랑, 버려도 괜찮은 거 하나 찍어서 대비해두세요.”
― 좋아요. 딱 거기까지만이에요. 나한테 뭐 더 시키려고 하면 미워요.
그걸로 통화는 끝났다. 어차피 세실리아에게 뭔가를 더 시킬 생각은 없었다.
카이루스는 엘몬트 지역 인근의 사업장을 제리코 소유로 둔갑시킬 생각이다.
그리고, 관련 서류를 꾸며 제리코의 저택에 밀어넣어야 한다.
“그럴듯한 계기가 필요한데.”
중얼거리는 카이루스를 보던 노라가 휙 하고 손을 들며 말했다.
“기차사고를 내는 건 어때?”
“넌 네 조국에 기차사고를 낸다는 말을 참 쉽게 한다?”
누가 보면 제국 사람인 줄 알 정도다.
“화물열차에 사고를 내면 인명피해는 크지 않을 거야. 마약을 잔뜩 적재하게 한 다음, 전복시키자.”
기차 전복 사고가 발생하면 기자들이 출동할 거다. 취재하다보면 화물들 사이에 끼어있던 대량의 마약이 발견될 것이다.
정부에 의해 철저하게 검열받는 제국의 신문이나 라디오와는 달리, 아이란 공화국의 신문사들은 특종에 환장한다.
[화물열차 전복 사고 발생. 그런데 화물의 상태가?]같은 식의 제목을 지을 수 있는 사건을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무조건 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