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176
176화 꼬리깃과 상자 (2)
고요한 밤. 초롱불의 잔당은 야영 중이었다.
“봄이라 다행이지, 씨발.”
겨울이었다면 이렇게 편안한 야숙을 할 수 없었을 거다. 녹은 땅에서 새싹이 튀어나오고, 혹한을 버틴 나무에 순이 자라나기 시작하는 계절이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성냥을 그어 궐련에 불을 붙인 남자가 후우, 하고 연기를 피워올린다.
야심한 밤에, 자신들이 살던 베넷 시를 떠나 야숙을 하고 있는 신세다.
“좆 같은 인생.”
찾아온 봄의 밤하늘을 보며 담배 한 대 정도 태우며 자기 인생 조졌다고 한탄하는 건 그렇게까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그 행동이야말로 좆 같은 인생조차도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하게 만드는 시발점이었으니까.
“찾았다.”
카이루스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제아무리 조감이 있어도 오늘은 달조차 뜨지 않는 밤이었다. 이런 날, 하늘에서 땅에 머무르는 녀석들을 찾아내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담뱃불이 문제였다. 밤이 되어야 별이 보이는 것처럼, 자그마한 담뱃불도 어둠이 내려앉은 밤과 시술로 강화된 감각이라면 카이루스에게는 등대처럼 밝아보인다.
“진짜?”
가방에 들어가 시간을 보내던 일레나가 꽤나 놀란 어투로 말했다.
“그래. 찾았으니 이제 너도 준비해라.”
카이루스가 말을 마치자마자, 일레나는 양손으로 가방을 꽉 붙잡았다.
급강하가 시작된다. 사람이라기보다는 먹잇감을 확인한 매와 같은 움직임이었다.
“크학. 씨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카이루스가 일레나와 함께 땅에 처박혔다.
슬프게도, 그 착륙까지 매처럼 우아할 수는 없었다. 땅에 처박힌 다음 다시 일어난 카이루스가 축축한 흙을 털고는 가방 안의 일레나를 바라봤다.
“괜찮냐?”
“입에 흙 들어갔어.”
가방에서 기어나온 일레나가 색유리를 뽑아들며 말했다.
“그 정도면 양호하네.”
애들이 장난치다가도 흙을 먹고, 군에서 훈련하다가도 흙은 먹는다. 별거 아닌 일이다.
퉤, 하고 침을 뱉은 다음 수통을 꺼낸 일레나가 입을 헹군다.
그사이, 급작스러운 착륙에 당황한 초롱불의 잔당들이 텐트에서 기어나오며 웅성거린다.
“내가 처리하는 거지?”
“그래. 문제 생기면 내가 협조하마.”
카이루스는 순순히 뒤로 물러나주었고, 일레나는 색유리의 출력을 끌어올리며 녀석들을 향해 돌진했다.
‘결국 다 실전이야.’
이론과 훈련으로는 일레나의 제풍이 더 나아지지 않을 거다. 안 그래도 카이루스와 노라 사이에 껴서 자신의 부족함을 실감하고 있던 일레나도 틈날 때마다 훈련을 반복했으니까.
부족한 게 있다면, 실전뿐이다.
‘배틀기어나 시술, 문신을 쓰는 녀석들로만 82명.’
그것도 모두가 초롱불 출신이기에 실력도 확실한 편이다.
일레나 혼자 처리하려면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날뛰어야 할 거다. 아차 하면 죽는다.
카이루스가 해야 할 일은 그 아차 하는 순간 나서서 죽음만 피하게 해주는 거다.
“잘하네.”
쉬고 있던 잔당들은 일레나의 습격에 잠깐 당황했지만, 이내 대항을 시작했다. 일레나의 팔다리가 움직이며 바람을 만들어낸다.
‘…꼬리깃은 일레나에게 주는 게 맞나?’
카이루스는 그런 일레나의 모습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카이루스는 검을 움직여 제풍을 사용하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일레나는 자신의 팔다리를 이용해 제풍을 통제한다. 거기에 꼬리깃이 더해진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싸울 수 있을 거다. 원래부터 사용하던 방식에 날개를 달아주는 셈이니까.
“노라라면 몰라도.”
꼬리깃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노라였다면 카이루스도 고민하지 않았을 거다. 어차피 루나시커 소속이니까. 하지만 일레나는 다르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아군. 일레나의 전력강화는 카이루스의 전력강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서 배우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물건을 다 차지하는 것도 좀 그렇고.’
원래부터 페더윙의 것이고, 꼬리깃은 그 특성상 원래 가주의 소유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충분히 사용한 다음, 카이루스가 돌려달라고 하면 일레나가 거절할 것 같지는 않다.
“조심해.”
카이루스는 등 뒤에서 일레나를 노리는 녀석을 확인하고는 조약돌을 쏘아냈다.
빡,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를 얻어맞은 녀석이 순간적인 충격으로 비틀거리고.
“고마워!”
일레나가 녀석의 목을 잘라냈다.
“알 수 있었는데 못 알아차린 거야. 정신 차려.”
카이루스의 말에 일레나가 고개를 끄덕이고 다리에 한층 더 힘을 가해 앞으로 쏘아져나간다.
“조져버려! 여기에서 살아나가는 방법은 저년을 인질로 삼는 거 말고는 없다!”
상대도 지금 상황에서 최선의 수를 두는 중이다. 어차피 도망친다고 카이루스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동료인 일레나를 사로잡아 협상을 시도하는 편이 좋다. 다들 그런 생각으로 일레나를 상대하는 중이다.
“…씨발 새끼들이. 나는 짐이 아니란, 말이야!”
정확히는, 짐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어쨌든 일레나는 잔당들의 외침에 발끈하며 검을 마구 휘두른다.
네 개의 회오리가 녀석들을 휩쓴다. 이전보다 만들어내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고, 통제도 정교하다.
“… 크학, 헥!”
밤에 시작된 싸움은 새벽녘이 되어서야 끝났고, 일레나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카이루스는 허리가 잘려나가 하반신만 남은 시체를 뒤져 성냥을 찾아낸 다음, 텐트를 뒤져 커피가루를 꺼내 물을 끓였다.
“한잔해라.”
카이루스가 일레나에게 커피가 담긴 잔을 건네주었다.
“고마워.”
“꼬리깃, 네가 한번 써보는 건 어때.”
그리고, 카이루스는 고민하고 있던 말을 일레나에게 꺼냈다. 커피를 홀짝거리던 일레나가 눈을 크게 뜨고 카이루스를 본다.
“….”
“바로 승낙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강해지고 싶은 열망은 일레나도 엄청나다. 설마하니 이렇게 오랫동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을 줄은 카이루스도 몰랐다.
“난 괜찮아.”
“정말이냐? 나중에 후회할 것 같은데.”
카이루스의 말에 일레나가 남아있는 커피를 입 안에 털어넣고 일어났다.
“네가 소유해야 하는, 네 가문의 물건이야. 그 꼬리깃은 답공에도 도움이 된다며. 페더윙 가문에서 답공을 쓰는 사람은 한 명뿐이잖아.”
가주. 그럼 꼬리깃도 가주의 물건이라는 뜻이다.
“이제 남은 페더윙은 너뿐이고, 그 말은 네가 가주라는 뜻이야. 남에게 가주의 물건을 함부로 넘기다니.”
“함부로 넘기는 건 아닌데. 꽤 오래 고민했다.”
일레나가 싸움을 시작한 때는 밤이었고, 지금은 새벽이다. 밤이 새벽으로 변하는 동안 카이루스는 고민을 이어갔고, 그 결과 내린 결론이다.
“그래? 미안하네. 오랫동안 고민한 걸 이렇게 짧게 생각하고 거절해서. 난 안 써. 네가 써야 하는 물건이니까.”
일레나가 휙 하고 머그잔을 바닥에 던져버리고는 자기 입을 엄지로 슥 긋는 척했다.
“꼬리깃은 네가 쓰는 거야. 난 필요 없어. 이걸로 끝. 괜찮지?”
그녀는 꼬리깃의 사용을 거절했다. 쓰고 싶지 않다는 걸 억지로 쓰게 할 이유는 카이루스에게도 없었다.
“그래, 끝.”
“난 산을 오르는 중이야.”
카이루스가 하늘에 오르는 중이라면, 일레나는 등산 중이다.
어차피 태어날 때부터의 차이로 인해 일레나는 하늘에 오를 수 없다.
그러니, 하늘과 가장 가까운 땅인 산꼭대기로 올라가려는 거다.
“그래서?”
카이루스가 살짝 흥미를 보이며 일레나에게 되물었다.
“너한테 뭘 빌려서 산꼭대기에 도착할 생각은 없어. 길만 알려줘. 넌 이미 높은 곳에 있어서 보이잖아.”
“그래, 보이지.”
하고 싶은 말이 뭐였는지 카이루스도 충분히 알아들었다.
“아 배고프다. 이 녀석들 짐을 뒤져서 뭐 먹을 거 있나 볼까?”
일레나가 그렇게 말하며 피와 살점으로 장식된 텐트를 뒤적거린다.
“밥은 집에 가서 먹자. 밥맛 다 떨어지겠다.”
“그런가? 하긴, 너 비행하는 꼬라지 보니 지금 밥 먹으면 공중에서 다 게워낼 것 같아.”
“빨리 가방에 들어가라. 위액이람 담즙까지 싸그리 다 토하게 만들어주마.”
“그래봤자 가방이랑 네 옷만 더러워질걸?”
일레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순순히 가방 안에 들어갔다.
“근데, 진짜 가방 안에 벨트라도 하나 만들어줘.”
“바라는 게 많다니까.”
카이루스는 그렇게 말한 다음 일레나가 들어간 가방을 챙겨들고 날아올랐다.
“아침은 뭐 먹지? 네가 자주 가는 그 식당에서 핫케이크나 먹을까.”
그렇게 대단한 이야기를 나누는 건 아니었다.
“밥 먹을 생각보다 쉴 생각부터 하지 그래.”
일레나는 고생했다. 잔당이라고 하지만 초롱불의 조직원 수십 명을 혼자 썰어내야 했으니까.
“이 가방도 제법 적응된 상태야. 이대로 잘 수 있어.”
“내리면 곧바로 뼈 맞추는 소리부터 내면서 무슨.”
하지만 그녀가 한 말은 거짓이 아니어서, 잠시 뒤에 가방 안에서 코 고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다시금 비행을 마쳤을 때는 이미 아침과 점심의 경계선에 있는 시간이었다.
“오, 돌아왔다!”
사무실 소파에 앉아 아몬드 튀일을 씹어먹고 있던 노라가 문을 열고 들어온 카이루스와 일레나를 향해 휙휙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사장님이랑 이야기했어.”
“반응은 어때?”
카이루스의 질문에 노라가 음흠, 하고 헛기침을 한 다음 대답했다.
“긍정적으로 고려해보겠다고 하던데.”
“거 대답하고는.”
긍정적 검토. 상당히 애매한 말이다.
그냥 검토보다는 나은데, 카이루스는 검토가 아니라 조금 더 확실한 대답을 원했다.
“장미정원과의 협상 관련해서는, 루나시커는 응할 의사가 충분해.”
“좋아. 세실리아 대표에게 할 말이 생겼군.”
이제 그쪽에서 뭘 준비해오는지에 따라 카이루스의 행동도 달라지게 될 거다.
카이루스는 세실리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 그렇군요. 저는 지금 상자를 하나 찾고 있어요. 금속으로 만들어졌고, 검은색에 페더윙의 문장이 은색으로 새겨져 있는 물건이라네요.
이런, 카이루스는 세실리아의 대답을 듣고 나자 생각에 빠졌다. 장미정원에서 준비하는 물건이 생각보다 더 가치 있다.
“절대 열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그대로 둬야 합니다.”
그 상자 안에 보관되는 건 책이나 서류다. 강제로 열거나, 부수면 상자에 들어있는 용매액이 흘러나와 서책의 내용을 모두 녹여버린다.
― 그런가요? 여는 방법이 따로 있는 모양이죠.
직계만이 열어 볼 수 있도록 조치한 상자다.
페더윙 직계가 피를 흘려 새가 물고 있는 컵 모양의 홈을 채우면 열린다.
“찾고 있는 중이라고 했죠?”
― 네, 이전까지는 정보만 드리곤 했었는데 아무래도 이번에는 성의를 좀 보일까 해서.
이러면 장미정원과 루나시커 사이의 협상 테이블을 마련해 주는 걸로는 부족하다.
자신들은 실물을 준비했는데, 카이루스가 제공하는 게 고작 기회의 마련이라니.
장미정원이 납득하지 못하는 거래가 된다. 그러면 지금 장미정원이 확보 중인 페더윙의 상자도 없던 일이 될 거다.
“이거, 루나시커랑 다시 한번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네요.”
안에 뭐가 들어있건, 굉장히 높은 확률로 섭운이나 답공에 대한 내용일 거다. 그 검은 상자는 일기장이나 연애편지 따위를 보관하라고 만든 물건이 아니니까.
― 우리가 준비한 물건이 생각보다 가치가 있나 봐요. 그럼, 저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