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175
175화 꼬리깃과 상자 (1)
잠깐 카이루스를 바라보던 남자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저는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주의입니다.”
“개인의 의견일 뿐이지.”
그리고 개인의 의견은 틀리는 경우도 많은 법이다. 카이루스의 건조한 대답을 들은 남자가 아하하, 하고 웃은 다음 말했다.
“저는 다니엘이라고 합니다.”
“뭘 이름까지 말하고 그래.”
“죽으면 묘비에 이름 정도는 있었으면 해서요.”
카이루스는 거기까지 듣고 팔을 꼰 채 녀석을 바라봤다.
“지금 나랑 농담 따먹기 하고 싶냐?”
“살려주세요.”
다니엘이 마침내 카이루스에게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살려달라는 건 단지 당사자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저랑 제 휘하에 있는 녀석들 모두 살고 싶습니다. 다른 잔당들이야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으니 우리는 좀 살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다니엘의 말에 카이루스가 간단하게 대답했다.
“맨입으로는 힘들지. 그리고 나도 운영위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중이라서 말이야.”
“도시로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적대하지 않겠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카이루스가 헛웃음을 지었다.
“다니엘이라고 했나? 이 친구야. 내가 어떻게 운영위원이 되었는지 한번 생각해봐.”
세실리아로부터 도시로 돌아오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돌아와서는 신나게 날뛴 다음, 운영위원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 카이루스 앞에서 다시는 베넷 시로 돌아오지 않고 얌전히 살겠다는 말은 그렇게까지 매력적인 부탁이 아니었다.
그 자신이 바로 그런 약속을 하고 운영위원들의 뒤통수를 후려깐 장본인이었으니까.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도 맨입으로 부탁하러 온 건 아닙니다.”
“기대되는데.”
여기에서 협상에 실패하면 다니엘은 카이루스에게 죽는다. 그걸 모르고 편지까지 보내며 찾아온 건 아닐 거다.
이 시점에서 상대가 개소리를 떠들면 곧바로 처리하기 위해, 카이루스의 손이 천천히 허리춤으로 향했다.
“꼬리깃의 행방을 압니다.”
허리춤으로 향하던 카이루스의 손길이 멈췄다.
멜빵 형태의 애드온이다. 배틀기어의 출력을 이용해 팔다리에 반투명한 판을 생성하는 기능이 있다.
‘방어에도 사용할 수 있고.’
생성되는 판의 내구도는 제법 좋은 편이고, 출력에 여유가 있다면 계속 복구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용도는 그게 아니다.
‘답공과 제풍.’
그 판들이 정확히 어떤 식으로 답공에 도움이 되는지 카이루스는 모른다. 그저, 방향전환과 비행의 효율에 관여한다는 것만 들어 본 적 있다.
하지만 제풍에는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되는지 확실히 이해하고 있다. 반투명한 판은 카이루스의 의지에 따라 각도와 형태를 바꿀 수 있다.
현재 카이루스는 검을 이리저리 움직여 주변의 바람을 통제해 제풍을 사용한다. 만약, 꼬리깃을 손에 넣는다면 몇 배는 효율적으로 더 강력한 제풍을 사용하는 게 가능해진다.
“네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제가 처분했던 장물이니까요. 초롱불에서 일할 때 제가 책임지고 팔아넘겼던 기억이 있습니다.”
페더윙이 아니어도, 출력을 이용해 원하는 형태의 튼튼한 판을 만들 수 있는 꼬리깃은 충분히 활용도가 높은 애드온이다.
훔치거나 강도질로 얻은 물건인데다가, 유용하고 유명하니 팔아넘기기 위해 많은 작업이 필요했을 거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녀석이 꼬리깃을 팔아넘기는 과정을 총괄했다.
“말해.”
“저희의 안전은 보장되는 겁니까?”
“네가 제공한 정보를 통해 내가 꼬리깃을 얻는 데 성공하면, 현재 너와 함께하고 있는 초롱불 잔당에게는 해를 입히지 않겠다. 초롱불이 남긴 유산들에 손을 대지 않고, 나와 내 지인들에게 직간접적인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꼬리깃은 이런 약속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애드온이다.
“저희로서는 지금 해주신 말로도 굉장히 감사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보장이라는 게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카이루스가 차갑게 대답했다.
“이거 웃긴 새끼네. 내가 장미정원의 보증을 받는다 해도 달라지는 게 있냐?”
다니엘은 침묵했다. 지금 와서 카이루스와의 계약을 장미정원으로부터 보증받는 건 의미가 없다. 카이루스가 약속을 어겼다 해서, 장미정원이 다 망한 초롱불의 보증을 지키기 위해 움직일 리가 없으니까.
“확신이 필요하다면 먼저 눈높이부터 맞춰. 너희들은 나에게 그걸 요구할 자격이 없으니까.”
길게 말했지만, 짧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실, 카이루스가 약속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절대적인 구속력을 가지고 있지만.
“달리 방법이 없군요. 믿겠습니다.”
“그래.”
카이루스는 다니엘에게 짧게 대답했다.
“이제 말해.”
다니엘이 깊게 호흡을 했다. 카이루스는 가만히 다니엘을 바라볼 뿐이다.
다니엘이 제공한 정보를 통해 꼬리깃을 얻어야 한다는 뜻은, 녀석이 개소리를 하지 못하게 만든다.
[황제가 가지고 있습니다.]같은 소리를 하면 정보를 통해 꼬리깃을 얻지 못하게 된다. 즉, 카이루스도 약속을 지킬 이유가 없어진다.
“발로른 제국의 달튼 가문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달튼 가문. 카이루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달튼 가문이라는 이름보다, 달튼 공업이라는 이름이 더 유명하다.
카이루스가 가장 처음 사용했었던 보급형 배틀기어가 바로 달튼 공업의 물건이었다.
배틀기어의 품질은 몰라도, 대량 생산이라면 제국 최고를 자랑하는 회사다.
“증거는?”
카이루스의 말에 그가 미리 챙겨왔던 서류를 품속에서 꺼내 카이루스에게 내밀었다.
“이 정도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거래내역과 이송 과정이 적혀있다. 거기에 더해 장미정원의 보증서류까지 있었다.
물론 초롱불은 장미정원의 보증이 필요 없다. 하지만, 꼬리깃 처분에 참가한 하청업체 간에는 장미정원의 보증이 필요했었으니까.
30분 정도 들여 자세히 서류를 살핀 카이루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해 보이네.”
어차피, 찾아가서 확인했는데 다른 곳으로 옮겨졌거나 거기에 없으면 방금 전 카이루스의 약속은 자연스럽게 파기된다.
“그럼 저기… 일단 저는 보내주시는 겁니까?”
다니엘의 조심스러운 말에 카이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다니엘은 업사이드의 폐허를 벗어났다.
멀어지는 다니엘을 보고 있던 카이루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달튼 공업 제1 배틀기어 공단이라.”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일레나가 저런, 하는 소리를 냈다.
“제국기반시설로 지정된 공단이잖아. 1급이야.”
군에 보급하는 배틀기어를 찍어내는 곳이다. 제국의 국가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설이니 당연하다.
“관리 주체는 기사단이야?”
카이루스의 질문에 일레나가 어… 하는 소리를 내더니 고개를 저었다.
“황도 치안대 소속 특수기동팀. 물론, 상황에 따라 인근에 주둔하는 군부대나 기사단도 움직일 거야.”
카이루스는 혀를 찼다. 특수기동팀은 기사단과 달리 배틀기어 위주로 편성된 게 아니다. 문신과 시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이다.
그야, 배틀기어에 환장하는 기사단이 좋은 배틀기어를 양보해 줄 리가 없으니까.
“쉬운 일은 아니겠는데.”
“지금 할 일도 아니잖아?”
고민하는 카이루스를 향해 노라가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지금 고민할 문제는 아니다. 일단, 저 녀석들을 제외한 나머지 초롱불의 잔당을 처리하는 게 우선이다.
“루나시커에 연락해서 관련 자료가 있으면 좀 넘겨달라고 해.”
적국의 배틀기어 공장을 쑤시겠다는 거다. 루나시커에서도 충분히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 만한 이야기다.
“우리야 좋지. 연락해볼게. 물론, 최종 결재는 사장님이 하는 거라 확답은 못 줘.”
노라가 선선히 승낙했다. 다음은 일레나다.
“너도, 아버지에게 연락해서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좀 수집해 달라고 해.”
“그럴게. 아마 도우실 거야.”
루나시커와 마찬가지로 반란을 준비하는 재무청장이 협조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카이루스는 일단 루나시커와 재무청장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하기로 결정했다.
“돌아가자.”
이 황폐한 폐허에 더 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다.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노라는 루나시커와 연락하기 위해 잠깐 자리를 비웠다. 카이루스는 벽에 붙어있는 지도의 표시를 확인하고는 혀를 찼다.
“멀리도 있네.”
현재까지 파악된 초롱불 잔당의 위치는 총 다섯 곳이다.
“멀리 있는 것들은 날아가면 되잖아.”
다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카이루스에게 있어 물리적인 거리는 이제 큰 제한이 아니다.
“어제 다칠 뻔했어.”
비행 중 날아가던 속력 그대로 땅에 처박힐 뻔했다. 속도가 무시무시한 만큼, 날아가다가 아차 해서 땅에 처박히면 그것만으로도 큰 상처를 입는다.
최대한 신중하게, 컨디션이 멀쩡하고 날씨가 좋은 상황에서만 비행해야 한다. 지금 카이루스의 상태로는 봄비 정도만 내려도 비행의 안정성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제풍과 섭운을 활용해 불안정한 대기를 안정시키는 건 가능하지만.
‘효율이 지독하게 구리지.’
날씨를 통째로 조작하며 비행을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짓거리다. 차라리 카이루스가 날씨에 맞춰 비행하는 법을 익히는 게 좋다.
카이루스의 말에 일레나가 저런, 하는 소리를 냈다.
“답공이 필요한 이유가 있네.”
일레나의 말대로, 그래서 답공이 필요하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음속을 뚫고 비행하기 위해서는 답공이 필요하다.
“섭운도 다 못 익혔는데 답공은 무슨.”
섭운과 답공. 둘 중에는 당연히 섭운이 훨씬 중요하다.
비행은 어찌저찌 지금 상태로도 조건만 맞춰지면 충분히 활용할 구석이 있다. 순수하게 농조연운에 의존하는 방식이지만, 그래도 지금 당장 답공에 목마를 이유는 없다.
하지만 섭운은 아직 적란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고, 당장 카이루스가 더 강해지기 위해서 필요하다.
“망할 놈의 해례본 하나 찾고는 뭔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니.”
“생각해보면 농조연운이 운이 좋았던 거 아니야? 장담하는데 페더윙 검술 서적 대부분은 필립 4세가 가지고 있을걸.”
일레나의 추측이 맞을 거다.
루나시커와 황도 치안대, 청와기사단이 서로 치고받는 와중에 바셀라 가문이 농조연운을 빼돌린 거다.
세상에 기적 같은 일들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봉에 속하지 않을까. 그 순간만큼은 에단 바셀라가 타냐 정도로 운이 좋았던 거라 할 수 있다.
“진짜 마음 같아서는 황도에 찾아가서 제국 국고라도 털어보고 싶을 지경이다.”
“그러면 큰일 나는 거 알잖아.”
발로른 제국의 황도.
주둔 중인 기사단장과 황도 치안대의 무수한 정예를 뚫어야 한다.
그리고 나면 마주하게 되는 건 호국경이자 제국 제일검으로 알려진 덴버 허드슨이다.
“불사라고 하던데. 사실일까?”
일레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덴버 허드슨은 죽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목이 잘려도 죽지 않고 회복한다는 소문이 있다. 새로 자라나는 게 아니라. 시간이 되감긴 것처럼 바닥에 쏟아진 피가 절단면으로 빨려들어가고, 머리통이 착 하고 목 위에 붙는다는 거다.
“진짜 불사라면 황제가 가만히 있었겠냐?”
배틀기어를 이용한 불사거나, 시술이나 문신을 통한 불사라면 황제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그냥 뜬소문이거나, 불사라고 하기에는 다소 결함이 있는 거겠지.”
황제가 탐내지 않을 정도의 결함이 있을 거다. 시간을 확인한 카이루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커다란 가방을 가리켰다.
“들어가. 일할 시간이다.”
“으으.”
일레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가방으로 들어갔다. 이번 목표는 베넷 시에서 약 450km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초롱불 잔당의 처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