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188
188화 당당한 강도 (1)
달튼 가문에 편지가 한 장 도착했다. 그리고, 그 편지 한 통은 종이 한 장이라는 가벼운 무게와는 달리 큰 파란을 가져왔다.
[달튼 가문의 가주 메디안 달튼에게 페더윙의 카이루스가.]라는 문장으로 시작된 편지였다. 귀족 간에 주고받는 편지의 형식을 지킨 예절 바른 편지였지만, 그 내용은 살벌했다.
[저희와의 우호관계를 잊지 않고, 가문의 소중한 비보 중 하나를 지금까지 지켜주셔서 실로 감사합니다.]지켜준 거 아니다. 그냥 기회가 닿아서 손에 넣은 거다. 실제로, 꼬리깃은 지금 달튼 가문의 후계자인 제미니 달튼이 의미 있게 활용하는 중이다.
[정명하신 제국의 태양께서 저희 가문의 누명을 살피시고, 죄 없다 하셨습니다. 이에 가문의 적자인 저는 흩어진 가문의 유산을 되찾기 위해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마침 달튼 가문에서 저희 가문의 비보를 6년이라는 세월 동안 보존해 주셨으니, 이에 상응하는 감사를 표하고 본래 제 것이어야 마땅한 물건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고자 합니다.]값을 치를 테니, 꼬리깃을 내놓으라는 소리다. 그래도 공짜로 가져갈 생각은 아니라는 뜻이다.
[좋은 날을 골라 기별을 보내주시면, 감사한 마음을 간직한 채 달튼 가문에 찾아가겠습니다.] [이를 통해 달튼 가문은 페더윙 가문에 대한 의리를 지킨 것이 되고, 저는 이에 감사한 마음을 확인하는 실로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꼬리깃을 찾으러 갈 테니, 너희가 원하는 날짜를 말해라. 그럼 내가 찾으러 가겠다. 카이루스의 의사는 명확히 전달되었다.
그리고, 이 편지를 전달받은 메디안 달튼은 사람들을 소집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메디안의 말을 듣고 있던 제미니 달튼이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제국의 태양께서는 분명 페더윙의 죄를 사하여주시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모든 권리를 되돌려준다는 뜻은 아니지 않습니까.”
카이루스 페더윙은 이제 평민이다. 황제는 페더윙의 권위까지 다시 회복시켜 준 것이 아니다.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농조연운이 있지 않습니까.”
가신들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페더윙의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으로서의 농조연운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 농조연운이라는 배틀기어가 가지고 있는 파괴력에 대해 말하는 거다.
“그래서 뭐. 냅다 꼬리깃을 가져다 바치자 그거냐? 다른 가문이 우리를 뭐라고 생각하겠어!”
이제는 귀족도 뭣도 아닌 녀석이 원래 자기 물건이었으니 내놓으라고 한다.
달튼 가문은 그 말을 듣고 넙죽 바쳤다.
그딴 이야기가 돌기 시작하면 달튼 가문은 삽시간에 병신 취급을 받게 될 거다. 제미니의 주장은 틀리지 않았다.
“문제는 편지의 마지막 문구인데 말이야.”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메디안이 혀를 찼다.
간단한 인사라고 하기에는, 강렬한 협박의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그 미친 새끼가, 달튼 공업이라도 노리겠다는 건가!”
쾅! 하고 제미니 달튼이 참지 못하겠다는 듯 테이블을 내려쳤다.
“그래봤자 한 놈입니다. 언제부터 우리 가문이 이딴 협박에 굴복했단 말입니까.”
메디안 달튼이 자신의 아들을 바라봤다. 달튼 가문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아 어릴 적부터 무수한 교육을 받고, 백로 기사단에 들어가 전공을 쌓았다.
지금은 기사단장의 보좌 중 한 명으로서, 다섯이 넘는 훈장을 수훈한 뛰어난 기사다.
“페더윙이고 지랄이고. 이제 쫄딱 망해서 남은 것도 없는 평민 나부랭이 새끼가.”
제미니를 바라보던 메디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들아, 너는 페더윙을 모른다.”
제미니는 페더윙을 모른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며 전공을 쌓고 기사로서 명성을 쌓아가던 시간 속에는 페더윙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인 메디안 달튼은 페더윙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네, 모릅니다. 그래서요? 망해서 집구석의 주춧돌 하나조차 남기지 못한 패배자들을 제가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용감무쌍. 제미니를 대변하는 표현 중 하나다. 불같은 성정과 그에 상응하는 행동력. 무엇보다 행동을 결과로 이끌 수 있는 실력까지 갖추고 있다.
백로 기사단에서는 다음 기사단장 후보로 꼽히고 있으며, 다른 기사단장들로부터도 어느 정도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다나 왓슨의 입에서 ‘쓸만한데?’라는 소리가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제미니가 바로 그 거의 없는 경우 중 하나에 해당한다.
호국경으로부터도 ‘충분히 미래를 기대할 만하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제미니의 신경을 최근 박박 긁고 있는 것이 바로 카이루스 페더윙에 대한 이야기였다. 심지어 백로 기사단에서는 관련 안건으로 회의까지 진행되었을 정도다.
여기서도 카이루스 페더윙. 저기서도 카이루스 페더윙.
그 망할 놈의 페더윙 가문의 직계들이 해낸 일들에 대해 떠드는 놈들이 너무 많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제미니는 백로기사단장 도로시 에버그린에게 다들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거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짧게 한마디를 할 뿐이었다.
‘몇 년이나 지난 옛 기억을 더듬다보니, 다소 가볍게 생각하는 감이 있네.’
어리숙한 견습기사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아니었다. 존경하는 동시에 연심까지 품고 있던 백로기사단장의 평가였다.
세간의 반응이 과한 게 아니라, 도리어 미적지근하다. 그게 백로기사단장의 평가였다.
“제가 막아서겠습니다. 저와 함께 할 훌륭한 전사들이 많습니다.”
페더윙이 날뛰던 시절을 모르는 젊은 피들이 많다.
‘그렇게 강하면 왜 망했는데?’
라고 하는 일견 타당한 생각을 하는 젊은 기사들은 많다. 그들은 제미니의 부름에 응할 것이다. 그동안 제미니가 쌓아올린 평판과 인맥이 있으니까.
“장담합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실력 있는 자들이 적어도 백 명은 모일 것입니다.”
물론 과장이 섞여 있긴 했다. 이 정도의 뻥을 치지 않는다면 메디안이 허락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함에 제미니가 던진 말이었다.
“…네 뜻이 그렇다면.”
장고의 시간을 거친 다음 메디안이 결론을 내렸다. 그는 자신의 아들을 믿었다. 메디안 본인은 기사가 아니라 사업가로서 성공을 거둔 사람이다.
페더윙에 대한 소문과 활약상은 많이 들었지만, 직접 볼 기회는 없었다.
그러니, 가주인 메디안은 순순히 카이루스에게 꼬리깃을 내주는 것보다는 자신의 든든한 아들을 믿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아버지의 허락을 받은 제미니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비를 마치면 초대장을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이 제국에 더 이상 페더윙이란 단어 석 자 가지고 얻어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2주 정도 뒤, 카이루스는 초대장을 받았다.
“일레나, 이거 봐라.”
편지를 확인한 카이루스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일레나를 불렀다. 왔다갔다 흔들리는 쇠구슬을 노려보며 훈련하고 있던 일레나가 땀을 닦고는 물을 마시며 카이루스로부터 편지를 받아들었다.
“하. 수상해라. 네가 보낸 편지의 내용은 나도 알고 있는데 말이야.”
대놓고 도발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정중한 초대장. 이걸 보고 ‘이야? 진짜 달라고 했더니 준다고 하네. 신난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럴 리가 없으니까.
“농조연운 챙겨가야겠네.”
카이루스의 말에 일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짐을 쌀게.”
카이루스는 일레나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너와 노라는 빠져있어.”
카이루스의 말에 일레나가 음? 하는 소리를 냈다.
“괜찮겠어?”
“괜찮아. 너는 훈련에 집중해.”
이번에 일레나가 시도하는 훈련은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충분하다. 그리고, 이렇게 정성스럽게 수상해보이는 초대장을 보내줬는데, 혼자 가지 않으면 예의가 아니다.
“네가 그렇다면 뭐. 그래도 조심해야 하니 노라는 동행하는 게 좋지 않을까?”
카이루스는 일레나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제국에 페더윙 이름 걸고 가면서 루나시커를 동행할 수는 없지.”
공화국에서 페더윙의 악명이 높은 것처럼, 제국에서는 루나시커의 악명이 높다.
게다가, 루나시커는 페더윙과 달리 현역이다. 노라가 동행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안 들킨다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들키기라도 하면 좋은 선택이 아닌 수준을 넘어 나쁜 선택이 될 거다.
“자신 있어. 계속 정보를 확인하고, 기사단장급이 움직인 정황이 있으면 안 갈 거야.”
제국에서 기사단장급 인물들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면 그를 막을 수 없다.
카이루스는 단언했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나도 오빠 말에 찬성. 오빠가 없으면 나라도 언니 훈련을 봐줘야 하지 않겠어?”
소파에 드러누워 있던 노라가 휙 손을 들며 대답했다. 그녀가 찬성하는 이유는 아무리 봐도 카이루스가 기차 타고 달튼의 초대에 응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봐, 저렇게 말하잖아.”
결국 일레나도 카이루스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 시간이 되었다. 달튼 가문의 저택에서 약 30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야숙하던 카이루스는 자신을 찾아온 사람에게 뭔가를 보고받은 다음 혀를 찼다.
“기사단장은 없고, 그냥 기사들만 한가득이네.”
약 70명 정도가 소속을 불문하고 모였다는 모양이다.
준비를 마친 카이루스로서는 헛웃음이 나올 정도의 숫자였다.
‘이렇게 대놓고 일을 저지르고 있는데도 반응이 없단 말이지.’
카이루스가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은 황제의 대처였다. 페더윙은 멸문했고, 카이루스는 석방되었지만 페더윙의 권한은 돌려준 게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놓고 카이루스가 페더윙의 이름을 들먹이는데도 불구하고, 황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기사단장 중에 한 명 정도는 움직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이 새끼 분명 뭔가가 있어.’
의도적으로 방치하는 거다. 카이루스가 어떤 행동을 해도, 그게 자신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황제는 그대로 방치할 계획이다.
거기에 대한 확신을 이번에 카이루스는 얻을 수 있었다.
“그럼 이제 슬슬.”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한 다음, 카이루스는 농조연운을 뽑아들었다.
베넷 시에서 바로 비행해서 달튼의 저택까지 이동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직은 조심해야지.’
그 정도의 장거리 비행을 한 다음에도 농조연운의 출력이 충분할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으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기사단 소속의 실력자가 대략 70명이 모여있는 장소다.
자신이 있더라도 혼자 가는 이상, 어느 정도는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날씨도 확인해야 했고.
오늘은 청명하다. 아직 비행이 서투른 카이루스에게 봄이라는 계절이 웃어주고 있었다.
농조연운을 뽑아들자, 둔중한 터빈음이 울려퍼지며 카이루스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온도가 낮아지고, 산소가 희박해진다.
터빈음은 점점 거칠어지고 빨라지다가, 이내 분사음으로 변한다.
소리의 몇 배나 되는 속력으로, 카이루스는 목적지를 향해 쏘아져나갔다.
저 아래에, 달튼의 저택이 보인다. 카이루스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 사람의 무리가 저택 앞에서 대기 중이다.
카이루스의 신형이 수 킬로미터를 자랑하는 높이에서, 유성처럼 내려꽂힌다.
“자고로, 첫인상이 중요한 법이니까!”
카이루스는 속력을 줄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