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2
2화 사면 (2)
* * *
잠깐 고민하던 기사가 이내 말했다.
“네놈의 약속 따위에 하루를 지체할 수는 없다. 그 동장이라는 놈을 불러서 지금 편지를 써라.”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허락을 받은 다음, 카이루스와 방장은 단둘이 죄수실에 남게 되었다. 카이루스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방장이 말을 하면, 카이루스가 똥색의 재활용 종이에 타고 남은 재를 물에 개서 만든 잉크 비슷한 걸로 받아적는다.
“다 말씀하셨습니까?”
카이루스의 질문에 방장이 고개를 끄덕이고 담배 4개피를 내밀었다.
당장 출소가 코 앞이긴 하지만, 카이루스는 자신이 한 노동의 대가를 거절하지 않고 챙겼다.
편지를 쓰는 일을 마치고 나자, 약간 시간이 남았다.
“나가면, 갈 곳은 있냐?”
“그럼요. 칼슨 노동교화소 밖이죠.”
갈 곳이 있을 리가 없다. 가족도 다 죽었고 가문의 재산은 이미 다 걸신들린 다른 가문 놈들이 갈라먹었을 테니까.
황제가 자신의 교서로 말한 것처럼, 카이루스에게 약속된 것은 자유뿐이다.
그것도 오해로 인해 앗아갔던 것을 단지 돌려주는 거다. 약간의 여비는 제공되겠지만, 말 그대로 여비일 뿐이다.
카이루스의 말에 방장이 담배를 물고 성냥을 그으며 말했다.
“베넷 시로 가보는 건 어떠냐.”
카이루스가 방장을 바라보며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다 마침내 대답했다.
“세상에, 제 얼굴이 벌써 그리우신 겁니까? 아직 감방을 나가지도 않았는데 다시 돌아오라고 하십니까.”
“지랄한다. 니 면상 다시 봐서 어디에 쓰겠다고. 똥 닦는 휴지로도 못 써.”
베넷 시. 발로른 제국 서부 국경지대에 위치한 유명한 곳이다. 카이루스가 그곳으로 대필해준 편지만 수십 통이 넘는다.
길거리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식당도 안전을 위해 경비를 고용하는 무법도시라고 들었다.
심지어 이 노동교화소에서 출신을 따질 때도 베넷 시에서 왔다고 말하면 그놈을 건드리는 녀석들은 거의 없을 정도로 악명 높다.
“돈 되는 일은 다 하고, 돈이 안 되는 일은 돈이 되게 만드는 곳이라고 하던데.”
“예전에 친하던 놈 하나가 식당을 열었다고 하더라. 그게 3년 전이었나? 네 덕분에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알게 되었지.”
방장이 툭, 하고 손에 든 담배를 털어 재를 바닥에 떨군 다음 카이루스를 바라봤다.
“내 이름 대면 종업원 자리 하나는 내줄 거다. 그 자식, 요리 하나는 잘했으니 가게가 망하지는 않았을 거야.”
“이 구질구질한 곳에서 일자리 소개를 받게 될 줄은 몰랐네요. 일단, 생각은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카이루스의 말에 방장이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며 말했다.
“시끄러 임마. 나도 한 10년 살면 빵에서 나갈 거야. 그때 가서 나보고 쌩까지나 마라.”
“베넷 시에서 10년이라. 저같이 순한 사람이 거기서 10년이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지랄. 마호가니 공원 47번지에 위치한 롱웨이브 비스트로다. 생각 있으면 가서 토미가 보냈다고 말해. 주인놈이 뭐라고 염병하면 구름등대, 라고 말하면 알아들을 거다.”
방장은 볼일이 끝났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저었다.
“이제 꺼져. 자유의 몸이 된 걸 축하한다, 역적새끼. 아, 이제 아니구나. 역적인 줄 알았던 새끼.”
축하라. 카이루스는 방장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죄수실을 나갔다.
죄수실을 나가자마자 카이루스의 표정은 얼음처럼 변했다.
몰살당한 가문과 날려먹은 6년,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가문의 모든 재산과 권리.
그 모든 것에 대한 보상으로 받은 건?
고작 일신의 자유.
“황제가 생각보다 멍청한 건가.”
카이루스가 황제의 입장이었다면, 자신을 절대로 풀어주지 않았을 거다. 아니면 고작 한 명 풀어준다고 해서 무슨 일이 생기겠어? 라는 안일한 판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거나.’
상관없다. 중요한 건 이제부터 그가 자유라는 점이다. 카이루스는 얼어붙은 공기가 가득한 죄수실 복도를 걸어 밖으로 나갔다.
“여비다.”
새로운 신분증이 주어졌다. 가문의 이름이나 인장, 장식 따위는 모두 사라지고, 오로지 카이루스라는 이름만 남아있는 초라한 신분증이다.
신분증과 함께 지폐 몇 장이 카이루스에게 쥐여졌다. 다 합쳐서 150파인트다.
50파인트로 밀 한 포대를 살 수 있다. 이 교환비율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발로른 제국의 화폐인 파인트는 밀과 그 가치가 연동되어 있으니까.
즉, 6년 동안 칼슨 노동교화소에서 감방살이를 한 대가는 밀 세 포대라는 뜻이다.
그 사실이 카이루스의 가슴에 가시처럼 박혀들었다.
“차량 짐칸에 타라. 너는 칼슨 노동 교화소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까지 이송된다.”
가장 가까운 마을이라. 카이루스가 입을 열었다.
“근처에 마을이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차를 타고 3일 정도 걸리는 거리다.”
“혹시 마을에 기차역도 있습니까?”
“없다.”
기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휙 하고 가버렸다. 카이루스는 기사의 말을 곱씹고는 혀를 찼다.
“이러니 탈옥을 시도해도 의미가 없지.”
차를 타고 3일을 가야 가장 가까운 마을에 도착 할 수 있다면, 도보로 이동했을 때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도망치다 지쳐 죽을 거리고, 심지어 방향을 약간만 틀어도 마을에는 도착할 수 없다.
카이루스는 얌전히 짐칸에 탔다. 탑승자를 위한 배려 같은 건 쥐뿔도 없는 공간이었다.
엔진이 덜덜거리는 소리가 잠시 울리더니, 이내 차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덜컹거리는 짐칸 안에서 카이루스는 아무 말 없이 시간을 보냈다.
“나으리, 아뢰옵기 조심스럽습니다만… 식사를 조절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참을 이동하다 저녁이 되자, 자동차를 몰던 운전사가 조심스럽게 기사에게 말했다.
“너는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기사가 상당히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한마디 한다.
“이 시기에는 늑대 녀석들이 먹을 것이 부족해 난폭해집니다. 놈들이 음식 냄새를 맡으면….”
마부는 그렇게 말하며 기사를 위해 준비 중인 식사를 바라본다. 고기를 구울 생각인 모양이다.
“이런 망할 놈이. 내가 고작 늑대 따위가 두려워 식사도 제대로 못 해야 한다, 뭐 그런 말이냐?”
고작 늑대라. 그렇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기사의 실력이 뛰어난지 카이루스는 조금 걱정되기 시작했다.
실력이 뛰어난 기사가 고작 죄수 후송 따위를 위해 폐 속까지 얼어붙을 정도의 추위를 자랑하는 산간벽지에 올 리가 없으니까.
게다가 그 ‘고작’ 늑대라는 것들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는 카이루스도 알고 있다. 이 계절 즈음에는 칼슨 노동교화소 근처에도 기웃거리곤 한다.
이 지역의 늑대들은 다른 지역의 늑대들보다 훨씬 크고 사납다. 다른 지역의 늑대들이 이 지역의 늑대들을 마주치면 순식간에 개껌처럼 씹힐 거다.
“제 짧은 생각으로는 운전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짧은 생각 따위로 내 귀를 더럽히지 마라.”
기사는 카이루스의 제안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보통 저러면 단명하던데 말이야. 카이루스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괜히 성질 긁어봤자 두들겨 맞거나 욕만 들을 게 뻔하다.
“나으리께서는 이 일대의 늑대들에 대해 잘 모르셔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사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하지만 먼저 말을 꺼냈던 운전사는 제법 고집이 쎈 모양이다. 당연히, 우리의 자존심 강한 기사께서는 운전사에게 그 고집에 대응하는 포상을 내렸다.
사랑의 매, 계도의 손길이라고도 불리는 포상이었다. 혹자는 죽빵이라고도 한다.
그의 얼굴에는 용감한 조언에 대한 훈장으로 멍이 하나 생겼다. 운전사는 자신이 받은 포상이 아주 마음에 들었는지, 그제서야 비로소 입을 다물었다.
“냄새는 진짜 기깔나네.”
카이루스는 자기 몫으로 놓인 귀리죽과 기사가 뜯고 있는 스테이크를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식탁까지 써가면서 쇠고기를 뜯고 있는 기사와, 눈이 쌓인 땅바닥을 피해 대충 쪼그려 앉아 귀리죽과 감자를 먹는 카이루스.
참으로 명확한 신분의 차이를 알려준다. 6년 전이라면 입장이 전혀 반대였겠지.
그런 생각을 한 건 카이루스뿐이 아니었다. 구워진 스테이크를 보며 입맛을 다시는 기사는 카이루스를 슥 보며 굉장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식사가 준비되는 사이, 카이루스에 대한 서류를 살펴보던 기사는 카이루스가 원래 어느 가문 사람이었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네가 페더윙이라고?”
카이루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예전이었다면 이 기사는 카이루스의 얼굴을 감히 올려다볼 수도 없었을 거다.
페더윙 가문. 약 300년간 황실 기사단장 2명에 제국군 사령관 7명, 제국검 8명과 제국 아카데미 군사학부장 3명을 배출한 가문.
제국 최강자 10명이 누릴 수 있는 칭호인 제국검이라는 호칭을 페더윙 가문의 가주가 놓친 적은 한 번도 없다.
“참 세상일은 모른다니까.”
그 귀하신 가문 도련님께서 지금은 동물 사료를 끓인 죽 같은 걸 좋다고 퍼먹고 있다니.
페더윙 가문의 직계이자 마지막 생존자가 자신에게 존대를 하며 아랫것들처럼 굴고 있다는 사실이 이 기사 입장에서는 그렇게 만족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아예 가문의 상징조차 잃어버렸다지?”
기사의 말에 카이루스가 그를 가만히 응시했다.
“무슨 소리인지 혹시 자세히 들어 볼 수 있겠습니까.”
카이루스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차분했다. 하지만, 그 차분한 시선 아래에는 뭔가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들끓고 있다.
순간 그 시선에 움찔한 기사가 이내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누가 훔쳐갔겠지.”
카이루스는 그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카이루스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식사를 하며 방금 전 저 기사가 한 말을 곱씹었다.
‘없어졌다고? 가문의 상징이?’
사실 카이루스는 방장이 소개해줬다고 해도 굳이 베넷 시로 갈 생각은 없었다. 감방에서 나오자마자, 감방 가기 딱 좋은 도시로 향하는 바보는 아니니까.
하지만, 가문의 상징이 사라졌다면 생각이 달라진다.
‘저 자식의 말대로 누군가 훔친 거라면, 정상적인 경로로는 못 팔아.’
밀수밀매를 하는 장물아비들을 통해 처리해야 한다. 게다가 어지간한 규모로 장사를 하는 범죄자들은 페더윙 가문의 상징을 소화할 능력이 없다.
하지만 베넷 시라면. 페더윙 가문의 상징조차 취급할 수 있는 거물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하다못해 유용한 정보라도 확보할 수 있을 거다.
카이루스가 베넷 시로 가기로 결정을 내린 순간이었다.
“보소. 좀 비켜주게.”
그때, 멍이 생긴 운전사는 대충 주변의 눈을 한 움큼 쥐어 자신의 뺨을 문지르며 카이루스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말했다.
옆에 앉아서 먹어도 되겠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다. 카이루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칼슨 노동교화소가 아무나 들어가는 곳은 아니니까.
흉악범 옆자리에서 밥을 먹고 싶지는 않은 거다. 카이루스는 순순히 자리를 비켜준 다음, 구석진 곳에서 식사를 대충 이어갔다.
갑작스럽게 늑대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진다. 거리가 꽤나 가깝다.
“겸상을 하고 싶은 모양인데.”
하기사, 고기 굽는 냄새를 그렇게 사방팔방에 질질 뿌렸는데, 밥상머리에 대가리를 들이밀고 싶어지는 게 당연하다.
카이루스는 재빨리 귀리죽과 감자를 삼킨 다음, 물 한 모금으로 입을 가글했다.
“젠장, 뭐야!”
기사가 재빠르게 검을 뽑아들고 주변을 살핀다. 사실 어둠 속이어서 제대로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냥 개짓거리다.
카이루스는 오히려 기사가 검을 쥐고 있는 자세를 보고 경탄을 멈출 수 없었다.
‘세상에, 저게 기사? 그럼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은 도대체 뭐였지.’
검을 쥔 손은 물론이고 무게중심이나 다리의 위치, 호흡과 시선… 하나하나 다 지적하면 끝이 없을 정도로 엉망이다.
정육점에서 고기 각 뜨는 사람들이 저 기사보다 검을 더 능숙하게 다룰 거다.
저런 실력으로 늑대들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두루미 앞에서 깝치는 조개와 다를 게 없다.
“이런 망할, 무슨 놈의 숫자가!”
기사가 등유램프에 불을 붙이자, 마침내 굶주림에 번뜩이는 맹수의 모습이 드러난다.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늑대들의 크기는 엄청났다. 기사가 양손으로 꽉 거머쥐고 있는 검이 마치 이쑤시개로 보일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