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66
66화 고고학자의 불행 (3)
카이루스는 당당하게 주둔지 입구를 통과했다.
이미 주둔지 내의 병사와 간부들은 모두 대대장의 지시를 숙지해두었기에, 병사들 중 그 누구도 주둔지를 활보하는 카이루스를 제지하지 못했다.
‘카드놀이랑 비슷하지.’
카드놀이에서 표준 규칙과 동네 규칙이 다를 경우, 언제나 동네 규칙이 이기는 법이다. 군대도 마찬가지다.
표준 절차와 대대장의 지시.
더 높은 계급의 누군가가 지시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표준절차보다는 대대장의 지시를 우선하는 법이다.
그렇게 카이루스는 아무런 의심이나 제지를 받지 않고 목표로 삼았던 막사 건물에 도착했다.
‘여기군.’
주둔지의 순찰로 중 가장 껄끄러운 순찰로를 담당하고 있는 중대가 사용하는 막사다.
3층 건물이고, 각 층은 하나의 중대를 위해 할당되어 있다. 카이루스가 볼일이 있는 중대는 이 건물을 쓰는 3개 중대 중 3층을 사용하는 중대다.
그 중대가 담당하고 있는 순찰로를 잠깐이나마 무력화시킬 수 있으면, 카이루스는 캐비닛에 처넣은 시체를 대대장 공관으로 옮겨 놓을 수 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중대 막사 내부는 굉장히 조용한 편이었다.
하긴. 줄창 경계를 서는 게 주 임무인 부대니 당연한 일이다.
이 대대의 최대 존재 목적은 레잔틴 박물관의 경계다. 하늘에 해가 떠 있건 달이 떠 있건 상관없이 간부와 병사들 대부분은 경계 근무에 투입된다.
당연히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지금, 막사 안에 사람이 많을 이유가 없다.
‘들키지 않고 최대한 움직이면.’
3층에 도착할 수 있다. 단순히 3층에 도착하는 정도가 아니라, 필요한 조치를 끝내 둘 수 있을지도 모른다.
카이루스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최대한 소리를 죽인 채 움직였다.
‘참나, 이건 페더윙이 아니라 루나시커잖아. 가문 어르신들이 날 봤으면 두들겨 팼겠군.’
들키지 않고 움직이며 찰나의 순간 목표의 숨통을 끊고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는 건 페더윙의 방식이 아니라, 공화국 루나시커 에이전시의 방식이다.
루나시커와 페더윙은 오랜 기간 서로를 찢어죽여야 하는 원수처럼 여기며 살아왔지만, 결국 루나시커의 판정승으로 끝나버렸다.
페더윙은 망했지만 루나시커 에이전시는 아직 영업 중이니까.
“쯔.”
카이루스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인기척을 살폈다.
행정실에서 느껴지는 두 명의 인기척 말고는 없다. 그 이외에 특기할 만한 요소라고는 석유난로 위에 올려진 주전자 속에서 물이 끓는 소리 정도다.
‘다음 근무자들이 입고 나갈 방한복은 행정실에 비치되어 있겠지?’
카이루스는 기억의 구석에 파묻혀 있던 군부대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병사들이 근무 교대를 한다면, 복장을 갖춰입고 행정실에 가서 대기 중인 간부에게 근무 교대를 할 것이라고 보고해야 한다.
겨울 순찰 시 사용하는 공용 방한복은 순찰을 하기 전에 반드시 들러야 하는 행정실에 비치해두는 게 효율적이다.
‘결국 저 안으로 들어가긴 해야 하는데.’
하지만 들어가기 전에 끝내 둘 수 있는 일은 모두 끝내두는 편이 좋다.
“우선….”
카이루스는 조심스럽게 행정실을 피해, 소대 단위로 구분된 숙소인 생활실 중 하나를 문에 달린 창문을 통해 살폈다.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5―6명 정도의 병사들이 모포를 뒤집어쓴 채 자고 있다.
‘여긴 안 되겠군.’
야간 근무를 마친 병사들을 생활실 중 한곳에 몰아넣고 재우는 모양이다. 그래야 관리가 쉬우니까.
그럼 다른 생활실들은 텅 비어있다는 뜻이다. 카이루스는 근처에 있는 다른 생활실을 확인하고, 텅 빈 생활실로 들어갔다.
병사들의 짐이 들어있는 캐비닛을 조사하자, 성냥갑을 찾을 수 있었다.
‘역시 사람 관심을 모으는 데에는 불장난 같은 게 또 없지.’
딱 봐도 나머지 병사와 간부들은 다 일과를 하러 나갔고, 행정실에 2명만 만약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상황인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불이 나면 100% 행정실에 있던 사람들 잘못이 된다. 타는 냄새가 나는 순간 정신줄을 놓고 불이 난 장소로 달려가겠지.
카이루스는 그 틈을 타 행정실에 들어가서 방한복을 빼내면 된다.
‘진짜 큰불을 낼 생각은 없고.’
냄새와 연기가 충분히 나면 그걸로 족하다. 진짜 큰불이 나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골치가 아프다.
‘큰불이 나면 화재 원인이나 범행자를 찾기 전까지는 주둔지 출입을 통제할 수도 있지.’
거기까지 일이 커지면 카이루스도 빠져나갈 자신이 없다. 딱, 불이 났지만 재빠른 대처로 진화했다! 같은 식의 시나리오가 좋다.
“슬슬 다음 순찰조의 출발 시간이군.”
회중시계를 확인한 카이루스는 성냥 서너 개를 그어 불을 피운 다음, 모포를 향해 휙 성냥과 성냥갑을 던졌다.
이후, 곧장 생활실을 나와 3층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근처에 몸을 숨겼다.
매캐한 냄새와 연기가 퍼져나간다.
이후,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중년 부사관 하나와 젊은 병사 하나가 생활실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
카이루스는 두 사람이 생활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자마자 곧바로 행정실로 달렸다.
“…진정하자. 차분히.”
빠르게 행정실 내부를 살폈다. 마음이 급하면 찾아낼 수 있는 것도 못 찾게 된다. 일이 잘못되면 여기에서 죽는 거다.
단지 그뿐이다. 카이루스는 그렇게 속으로 되뇌며 행정실을 살피다가, 마침내 벽에 걸려있는 방한복을 발견했다.
“또 뭐야.”
누군가 행정실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카이루스는 그제서야 행정실 안에 있는 병 모양의 소화기에 시선이 향했다.
사염화탄소가 들어있는 병이다. 불 위에 던져서 병을 깨면, 사염화탄소가 반응하며 불이 꺼진다.
“아 망할.”
이게 여기에 있었네. 불이 난 걸 확인한 부사관이 병사로 하여금 소화기를 가져오라고 지시한 게 분명하다.
지금이야말로 냉철해야 한다.
‘어차피 지금 오는 놈도 제정신은 아닐 거야.’
갑작스럽게 불이 난 상황이다.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기는 힘들다.
카이루스는 행정실의 책상 아래에 몸을 숨겼다. 그가 몸을 숨기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팍! 하고 열렸다.
“….”
책상 아래에 숨음 채, 호흡을 멈춘 카이루스가 바쁘게 오가는 병사의 다리를 응시한다.
병사는 곧장 병을 몇 개 챙기더니, 더 이상 행정실에 볼일이 없다는 듯 떠난다. 불을 끄려는 거다.
책상 아래에서 기어나온 카이루스는 즉시 방한복을 챙겨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빨리, 더 빨리.’
착지한 카이루스는 곧바로 바닥에 낮게 엎드린 채 네 발로 이동을 시작했다. 등에 방한복을 짊어지고 네 발로 바닥을 기는 그 모습은 흡사 바퀴벌레와도 같았다.
움직이는 모습의 미추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들키지 않는 거다.
카이루스는 멀리 갈 생각이 없었고, 꼭꼭 숨겨놓을 의도도 없었다.
‘잠깐이면 된다.’
원래라면 지금 즈음 다음 순찰조가 출발했어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화재로 인해 이미 출발이 늦어졌다. 거기에 더해 방한복까지 사라졌으니 순찰조의 출발은 더 늦어진다.
막사 근처의 공용 창고 한쪽 구석에 방한복을 대충 던져둔 다음, 카이루스는 즉시 막사 인근을 벗어나 주둔지를 감싼 철조망을 향해 달렸다.
‘다시 주둔지 출입구를 통해 나가면 큰일 나지.’
들어오자마자 다시 나간다니, 누가 봐도 이상하다. 심지어 주둔지 막사 중 하나가 불이 날 뻔했는데 그 타이밍에 딱 맞게 주둔지를 나간다고?
자신이 범인이라고 대놓고 말해주는 꼴이다. 그럴 수는 없다.
카이루스는 색유리의 출력을 끌어올려 주둔지를 감싸고 있는 외벽을 훌쩍 뛰어넘었다.
높이뛰기를 하는 것처럼 훌쩍 외벽을 뛰어넘은 카이루스는 땅에 착지한 다음 곧장 캐비닛을 방치해둔 장소로 달렸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흐릿하게 보일 정도의 고속이동이었다.
“하, 씨발. 다행이네.”
캐비닛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카이루스에게 허락된 시간은 짧다. 캐비닛에 뭔가 추가적이 조치를 할 여유는 없다.
마음 같아서는 시체를 꺼내서 마대자루 같은 거에라도 집어넣고 달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안 된다.
“으….”
카이루스는 색유리의 출력을 이용해 캐비닛을 짊어지고 다시금 주둔지로 질주해 외벽을 뛰어넘었다.
“크흐.”
착지하는 순간 큰 소리가 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며 벽을 뛰어넘은 카이루스는 순찰에 생긴 구멍을 이용해 대대장 공관 근처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더 할 필요는 없어.’
카이루스는 대대장 공관 안쪽의 작은 마당 잘 보이는 곳에 캐비닛을 두고, 문짝을 열어두었다.
‘군용 플레셰트는 박아두었으니.’
이제 여기에 더 이상 볼 일은 없다. 공관을 빠져나간 카이루스는 연무장에 있을 일레나를 찾아갔다.
‘레잔틴 박물관이 진짜니까.’
가기 전에 일레나의 협조를 받아낼 준비를 해야 한다.
어차피 대대장이 자기 공관에 죽어있는 신문사 편집장의 시체를 발견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테니까.
카이루스가 협조를 받는 방법은 간단하다.
연무장에 도착한 카이루스는 아직도 티슈를 노려보며 씨름하고 있는 일레나에게 말했다.
“아직도 멀었구만?”
“시끄러. 조금만 더 하면 될 거야.”
일레나가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대충 훔친 다음, 옆에 놓인 배틀기어를 들어올렸다.
원래 일레나가 사용하는 보랏빛 칼날의 배틀기어가 아니다. 대량보급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군용 배틀기어다.
“일회용품처럼 쓰고 있네.”
“원래 그런 목적으로 만든 배틀기어잖아?”
쓰다가 배틀기어의 마력을 전부 소모하면 버려두고 다른 배틀기어를 또 쓰는 식으로 수련을 계속할 수 있다.
“그래서, 넌 갑자기 무슨 일이야?”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몇 시간 정도 자리를 비울 것 같다.”
카이루스의 말에 일레나가 응? 하는 소리를 내고 카이루스를 바라본다.
그녀로서는 갑자기 카이루스가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럼 그냥 가서 일하면 되잖아.”
“난 베넷 시 출신이야. 그리고 지금 해야 하는 일은 그 도시와 관련된 일이고.”
카이루스의 대답에 일레나가 그제서야 아… 하는 소리를 내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베넷 시와 연관되어 있는 일이라면 십중팔구 범죄다. 그리고 그걸 카이루스가 일레나에게 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만약 누군가 찾아와 내 행방을 물어본다면, 네가 적당한 핑계를 둘러대주면 좋겠는데.”
“참 환장하겠네.”
일레나는 손에 쥔 배틀기어를 이리저리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일단은 제국의 기사야. 알지?”
“그래. 잘 알고 있어.”
카이루스의 말에 일레나가 끄응, 하는 소리를 냈다.
“나도 황제 폐하의 안녕을 위해 제국을 수호하겠다고 맹세했다는 말이지. 기사한테 범죄에 협조하라고 말하다니, 믿을 수가 없네.”
카이루스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사실, 일레나가 정말로 카이루스에게 협조하지 않을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카이루스 앞에서 떠들 이유가 없다.
“그럼 지금 즉시 주둔지 지휘부로 찾아가서 내가 범죄를 저지를 예정이라고 말해.”
카이루스의 말에 일레나가 팔을 꼰 채 대답했다.
“관둬. 애초에 네가 베넷 시 출신이라는 걸 들었을 때부터 언젠가 이런 일도 있겠거니 생각했으니까.”
일레나는 다시금 검을 쥐고 티슈를 한 장 뽑으며 말했다.
“간접적으로는 도움을 줄 수 있어. 하지만 내가 너의 일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일은 없을 거야.”
직접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겠다는 말이다. 카이루스는 일레나의 말에 쓰게 웃었다.
“위선이잖아.”
“맞아. 난 착한 사람이 될 자신은 없어. 그러니 위선적인 사람이라도 되려고 노력 중이지. 최소한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수치심은 있다는 뜻이잖아?”
착하게 살 자신은 없지만, 최소한 자기가 저지른 일이 추하고 역겨운 일이라는 건 알고 감추려고 드는 행위. 일레나에게 위선이란 그런 의미였다.
“협조해준다니 고맙네.”
“새삼스럽게? 어차피 내가 설사 협조하지 않는다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꼰지를 수는 없잖아.”
일레나는 배틀기어를 사용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맹세한 것이 있으니, 의도치 않은 실수가 아니라면 카이루스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
“그건 협박이고, 이건 협조잖아. 어쨌든 고맙다.”
카이루스는 인사를 한 다음 연무장을 나오며 쓰게 웃었다.
‘황제를 지키겠다고 맹세한 기사라.’
하지만 정작 캘로그 가문의 가주인 시미드 캘로그는 반역을 저지를 생각이다. 참 아이러니할 수가 없다.
일레나 캘로그의 팔자도 참 단단히 꼬여있다고 생각하며 카이루스는 레잔틴 황립박물관으로 향하는 걸음을 서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