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Treasure Sword RAW novel - Chapter 115
115
해과월은 그런 점까지는 알지 못한다.
그는 순수한 마음에서, 만수의 유전을 전수한다는 마음에서 거의 보름간 망치질만 하고 있다.
그는 만수의 모습을 보여준다.
망치질 한 번에 만수의 정화가 담겨져 나온다.
봐라, 봐라, 또 봐라. 계속 봐라. 보고서 깨우쳐라. 한 명이 깨우치면 좋고, 두 명이 깨우치면 더 좋다. 열 명이 깨우치면 말할 나위 없이 좋다.
그는 가급적이면 많은 사람이 깨우칠 수 있도록 똑같은 모습을 재현하고 또 재현한다.
만수의 깨달음은 이런 식으로 밖에 전수할 수 없다.
녹영철을 찾아야 한다. 불의 온도는 몇 도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쇠는 어떻게 섞어야 하며…… 도공들이 배워야 할 실질적인 과정은 생략된다.
그런 부분은 굳이 자신이 아니라도 가르쳐줄 사람이 많다.
사실 그런 부분이 중요한 게 아니다.
수교빈이 그런 것을 얻어갔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도공의 영혼이 아닌 껍데기만 가져갔다. 비오신장의 정수는 영혼에 있지 비급에 있지 않았다.
해과월은 이들에게 영혼을 전수하고 있는 중이다.
그의 이런 행동은 마을 장정들의 욕구를 해소시켜 준다. 가르침에 목마른 갈증을 충족시켜 준다. 하지만…… 이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평화가 깨지고 있다.
“이제 저들은 뿔뿔이 흩어지겠지?”
노파가 첩첩이 쌓인 산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장인은 극을 이뤄냈을 때 행복합니다. 극을 이루지 못한 장인은…… 후후! 알듯 하면서 모르는 그 고통은 정말 말로 다 하지 못합니다.”
“알지. 알지. 너무 잘 알지.”
노파가 툴툴 웃으면서 일어섰다.
그녀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입술을 쫑긋거렸다. 하지만 끝내 말을 하지 않았다.
‘미안하다. 아가.’
해과월은 느티나무 아래에서 노숙을 한다.
그는 마을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무진 애를 쓴다. 가급적이면 깊은 인연을 맺지 않으려고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만수의 진전만 전수하면 떠난다.
그가 마을 사람들에게 심어주고 있는 인상이다.
그는 떠날 사람이다.
그는 마을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그렇게 안다. 그래서 그가 대장간에서 망치질 할 때는 한 명도 빠짐없이 모여든다. 어느 날 불쑥 떠나갈지 모를 사람이기에.
밤은 마을 사람들의 세계다.
그래서 일부러 낮에 망치질을 한다.
그들의 세계인 밤을 이용하지 않는다. 저들의 편의를 일절 봐주지 않는다. 전수 받을 사람을 보고, 잠 잘 사람은 자라. 나는 낮의 사람이니 내 것을 배우려면 낮에 깨어 있어라.
이토록 작은 것까지 고집을 피운다.
인정을 배제하기 위해서다.
“아버지나 자식이나 독하기는 똑같습니다.”
중년인이 말했다.
“클클! 언제 알았누?”
“얼굴이 쏙 빼닮았는데 어찌 모르겠습니까. 첫날 알았습니다.”
“또 누가 알고?”
“저밖에 모릅니다. 하지만…… 모를 리 없겠죠. 저렇게 빼다 박은 얼굴도 흔치 않으니까요.”
“입조심학라고 일러라.”
“말해주시지 않을 생각이십니까?”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다. 절대로 발설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라. 휴우!”
노파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자식들이 해과월의 정체를 알아냈다.
그녀는 활시위가 자신의 손을 떠나 멀리 날아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중년인이 말했다.
“그래도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알아야……”
“조용히 하래도!”
“……”
“저 아이를 어쩔 셈이냐?”
“저희가 뭘 어쩌겠습니까? 아무 짓도 못합니다. 저 아이는…… 무공이 상당하더군요. 소문을 취합해 봤는데…… 하하! 비성검문인가 하는 고수들도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런 아이를 저희가 뭘 어쩌겠습니까?”
“내버려둬라.”
“어머니!”
“내버려 둬!”
“배는 다르지만 그래도 동생입니다. 아버님의 유전도 얻었고…… 놔줄 수 없습니다.”
“크크크! 크크크크! 애비나 자식이나 독하기는 똑같다고 했느냐? 크크크! 애비나 자식이나 그 놈의 욕심도 똑같이 닮았구나.”
노파가 혀를 찼다.
“과월이가 떠날 때 저희도 떠나겠습니다.”
“저희? 그럼?”
“집사람에게 세간 정리를 하라고 일렀습니다. 정월(淨月)이와 단문(檀雯)이도 떠날 생각입니다.”
노파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이럴 줄 알았다. 이럴 줄 알았어. 이래서 해과월에게 은밀히 떠나라고 말했던 게다. 이제는 늦었다. 모두 뱃속에, 머릿속에 욕심이 가득 차 있다.
노파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떠나서 뭐하게?”
“중원에 가장 유명한 사람이 천수장입니다. 천수장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대장간을 열 생각이녀?”
“그럴 생각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명검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그건 저놈이 이미 만들었다. 천살검이라고.”
“그 검을 능가하는 검……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녹영철…… 녹영철만 구하면 됩니다.”
“너도 녹영철 타령이냐. 그놈의 녹영철. 휴우!”
“녹영철만 있으면……”
“됐다.”
노파는 고개를 휘휘 내둘렀다.
“가거라. 혼자 있고 싶구나.”
“알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중년인이 홀가분하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녹영철……’
노파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녹영철만 있으면 희대의 보검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많다. 비오신장도 그렇고, 천수장도 그럴 능력이 있다. 자신의 세 자식도 그럴 수 있다. 또…… 해과월도 만들 수 있다.
녹영철은 많은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눈이 뒤집히게 만든다.
만수 해달막도 그랬다.
그는 평생 녹영철을 찾아서 중원을 뒤졌다.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온 세상을 뒤졌다.
그런 그가 잠시 멈춰 섰다.
한 이 년 정도……
그의 소식이 뚝 끊어진 이 년 동안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가 비오신장에게 맡겨졌다는 것은 뒤늦게 알았다. 비오신장이 사형을 만나겠다고 마을을 찾아오지 않았다면 영원히 모를 뻔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만수 해달막이 변했다.
그는 더 이상 녹영철을 찾지 않았다. 대신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았다. 일가족을 이끌고, 자신의 따르는 대장간 장인들을 데리고 이 산골로 들어와 밤의 세계를 열었다.
그가 행방을 감췄던 이 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좌우지간 그 기간 동안 큰 변화가 있었고, 만수에게는 천하제일검을 만들 수 있는 길을 찾은 것처럼 보였다.
결국은 모두 헛지랄이다.
그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세월만 보냈다. 그리고 저 모옥 속에서 기괴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그 속에 무언가가 있었나?
피는 속이지 못한다고 그 아들놈이 만수의 진전을 이었다.
세 아들도 만수를 봤지만 아무 것도 얻지 못했는데, 그는 단번에 깨달았다.
세 아들…… 그들도 준비가 끝났다.
해과월이 만수의 진전을 베풀고 있지만, 세 아들의 눈에는 만수가 보이지 않는다. 만수의 유훈이 보이지 않는다. 해과월의 모습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봤을 뿐이다.
놀랐다고 했나?
깨달아서 놀란 게 아니다. 만수의 모습이 재현되는 것을 보고 놀란 것뿐이다.
저들은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도 얻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해과월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실만은 안다. 그러니 이용할 수밖에.
세 아들은 산골을 뛰쳐나갈 명분에만 눈이 뒤집혀 있다.
저들은 천수장보다 뛰어나다.
직접 망치질을 해본 적이 없는 그녀이지만 그 정도는 안다.
저들은 명예를 얻을 것이다. 부귀를 얻을 것이다. 그리고 극심한 실패도 맛볼 것이다.
그녀가 염려하는 것은 해과월이다.
그는 세 아들이 건드릴 수 없는 큰 그릇이다. 그를 건드리면, 그를 이용하려고 하면 탈이 난다.
그 점을 왜 모른단 말인가.
하지만 세 아들은 해과월을 이용하려고 할 게다.
‘쯧! 살아서 돌아오기는 틀렸지……’
노파는 어둠 속으로 걸어가는 큰 아들 해망(垓茫)을 보면서 눈물을 뚝 떨궜다.
제24장 열검(裂劍)
1
끈 떨어진 연(鳶)!
수교군을 두고 하는 말이다.
수교빈이 청천맹에서 사라진 후, 수교군의 입장이 매우 난처해졌다.
그는 명검을 만들지 못한다. 비오신장의 피를 물려받아서 상당히 제련에 능하지만, 그 정도의 솜씨를 지닌 장인은 바닷가 모래알처럼 많다.
그가 과연 단철도감에 적합한 인물인가?
사람들은 소리 없이 사라진 많은 사람들처럼 그 역시 조만간 자리를 내놓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헌데 파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덜컹!
단철장의 문이 열리며 맹주가 들어섰다.
맹주 마출성, 틀림없이 맹주다! 맹주가 방문했다!
맹주가 평생 발걸음을 옮기지 않을 것 같은 누추한 곳을 직접 방문했다.
“매, 맹주님!”
수교군은 일할 의욕을 잃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급하게 일어나 부복했다.
“수고가 많아.”
마출성이 수교빈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죄송합니다.”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수교군은 자신이 말하고도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자신도 몰랐다.
무조건 미안했다. 염체 없이 단철도감 자리를 꿰차고 있는 것도 미안했고, 누이가 사라져버린 것도 미안했다.
“죄송? 뭐가 죄송한가? 허허허! 뭐 죄라도 지었는가?”
“죄송합니다.”
수교군은 더욱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허허허! 어디 보자…… 흠! 좋군. 느낌이 좋아. 그런데…… 이런 거 말고…… 진짜 좋은 쇠, 들어온 거 있나?”
맹주가 수북하게 쌓인 쇠뭉치를 만져보며 말했다.
“마음에 드실만한 쇠는……”
수교빈이 머리를 조아렸다.
자신이 말하고도 민망하다.
좋은 쇠를 어디서 들어온단 말인가. 단철장 정도 되면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지 않나.
“좋은 거 들어오면 말하게. 만들고 싶은 게 있어.”
“무, 무엇을 만들고 싶으신지?”
“쇠 중에 가장 좋은 쇠가 녹영철이라고 했나?”
“네, 그렇습니다.”
“녹영철만은 못해도 그만은 해야겠지? 허허허! 좌우지간 좋은 쇠다 싶으면 말해주게. 부탁하네.”
맹주는 듣기 황공한 말을 하면서 다시 한 번 수교군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누가 봐도 격려의 두들김이었다.
“도대체 무슨 재주가 있는 거야? 사내를 홀리는 재주라도 있나? 맹주가 홀려도 단단히 홀렸어. 안 그래?”
“그러게 말이야. 이제는 끝났다 싶었는데.”
“쉿! 말조심해. 전에 잠형마단 사건이 있었잖아. 잠형마단에 취해서 사람까지 죽이고…… 그때도 도감을 살려주고 장인들만 모두 때려죽였대.”
“그 소리는 나도 들었어.”
“도대체 무슨 뒷배가 있는 거야? 누이도 떠난 마당에.”
“떠나도 곱게 떠났나. 검군 군장과 눈 맞아서 야반도주 했잖아.”
“쉿! 이 사람, 경치려고!”
단철도감 장인들이 수군거렸다.
헌데 방문은 맹주로 그치지 않았다. 날이 어둑해져서 단철장의 문을 닫을 무렵, 군사 사마소가 찾아왔다.
“흠! 여긴 항상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있어. 땀 냄새가 진동해서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니까.”
사마소가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말했다.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수교빈이 급히 말했다.
평소 한 명도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인데, 오늘은 웬일인가 싶었다.
맹주, 군사…… 두 사람을 맞이하려니 정신이 없다.
“맹주님께서 다녀가셨다고?”
“네, 오전에.”
“좋은 쇠를 구해보라고 하셨다던데,”
“네. 가급적 빨리 구해보겠습니다.”
수교빈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맹주가 말하고 갔다. 그리고 군사가 같은 내용으로 찾아왔다.
좋은 쇠를 구하라는 말에 실천적인 행동방침을 들고 온 것이 분명하다.
헌데 이런 방문이 썩 달갑지만은 않다.
능력이 뛰어나서 단철도감을 맡았다면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는다. 헌데 그가 단철도감 자리에 있는 것은 모두 누이 덕분이다. 그것은 자신이 더 잘 알고 잇다.
헌데 누이가 군장과 야반도주를 했다.
모두들 쉬쉬 하고 있지만 그 말들이 맞다. 더 살필 필요도 없다.
누이는 군장과 배가 맞아서 자신에게조차 편지 한 장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단철도감을 지탱해주는 끈이 끊겼다.
그래서 이제 자리를 내놓고 물러나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다.
이런 자리는 뒷배가 없으면 즉시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총관이나 외총관처럼 좋지 않은 꼴을 당한다.
그런 판에 맹주가 찾아오고 또 군사가 찾아왔다.
이게 반가운 일이겠나.
맹주가 찾아와 쇠를 말할 때는 황감했는데, 이제 군사까지 찾아와서 같은 말을 하니 극심한 압박으로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