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Treasure Sword RAW novel - Chapter 140
140
검을 제련할 때와는 전혀 다른 공정이다.
이제 그 막바지에 도착했다.
선장은 겉에서 보면 단단하기 그지없다. 물론 쇠로 만든 철장이니 단단해 보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철장 중에서도 단연 최고로 단단해 보인다.
그러면서도 무척 가볍다. 그가 처음에 내밀었던 나무 지팡이에 비해서도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아주 마음에 든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해과월이 망치를 놔버렸다.
조금만 더 하면 완성될 것 같은데…… 아니, 지금 이대로 써도 무방할 것 같은데……
“오늘은 쉬고 내일 만들겠습니다.”
해과월은 정말로 작업을 중단했다.
“저 그러면…… 그동안 이거 내가 써도 되겠나?”
일여화상이 미완성의 선장을 가리켰다.
선장은 아직도 빨간 기운을 담고 있다. 불길에 달아오른 모습이 꼭 독기 품은 선인장 같다. 망치로 하도 맞아서 부기가 오른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가지시겠습니까?”
“음! 이런 말을 하면 무식이 드러나는 거지만…… 나는 이것도 괜찮아보여서 말이지. 자네가 원치 않으니 버리긴 하겠네만, 심심파적으로 오늘은 이놈과 함께 취해볼 생각이네만.”
일여화상이 취한다는 것은 무공이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철장을 시험해 보고 싶어 한다. 마치 어린아이가 새로운 장난감을 봤을 때처럼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절정고수가 절정병기를 만났다.
“그러십시오. 물로 식혀드리겠습니다.”
해과월은 철장을 들어 물통 속에 담갔다.
치이이익!
뜨겁던 철장이 수증기를 뿜어내면서 식어갔다.
일여화상은 철장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분명히 쇠로 만든 철장인데, 신기하게도 나무 지팡이처럼 가볍다.
“쯧! 이대로도 좋은데. 도대체 뭐가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인지. 후후! 장인의 고집인가.”
붕! 붕!
철장이 기분 좋게 허공을 갈랐다.
그는 수중에 쥔 철장이 진실로 마음에 들었다.
속세를 벗어난 승려가 한낱 물품에 탐욕을 부리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이번만은 조금 욕심을 부려야 할 것 같다.
천하제일검, 이것이 문제다.
그도 다른 장로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해과월 곁에 머물렀다.
앞으로 해과월이 만든 명검을 지니지 않은 문파는 도태된다.
이것만은 명확하다. 자칫 해과월이 만든 검을 차지하기 위해서 엄청난 살육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때, 해과월의 보검은 천하에서 한두 명만 손에 넣을 수 있는 진정한 명검이 아니다. 명검이기는 하지만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쥘 수 있는 평범한 물건이 된다.
그런 상황은 매우 위험하다.
그렇다고 해과월에게 검을 만들지 말라는 말도 하지 못한다. 사실, 그가 만든 검을 가장 먼저 소유하고 싶은 욕심에서 그의 곁에 머물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다가 문득 다른 생각을 했다.
해과월은 정말로 천하제일검, 혈황검에도 잘리지 않는 검을 만들었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로 만들어냈다. 우선 검 네 자루가 성질을 죽이기 위해서 숯덩이 속에 처박혔다.
그대까지만 해도 검을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원래 그는 검을 쓰지 않는다. 검법을 수련한 적은 있지만 주병으로 쓴 적은 없다. 그러니 검에 대한 욕심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하지만 해과월이 만든 검을 소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해과월은 검가를 백만 냥이라고 했지만, 기실 그 이상의 값어치가 있다. 저 검이 보통 무인의 손에 들리면 그저 그런 검으로 전락하지만, 절정고수의 손에 들리면 천하제일권좌를 향할 수 있는 든든한 반석이 된다.
주한극이 그랬고, 마출성이 그랬다.
소림사에도 저 검을 쓸 사람이 많다.
저 검을 소림사에 가져가면 주한극이나 마출성처럼 천하에 이름을 빛낼 무승이 탄생할 게다.
그래서 검을 차지하고자 했다.
그런데 한 사람, 두 사람 검을 차지하는 모습을 보자 생각이 달라졌다.
설산일섬은 적절한 병기를 가졌다.
그에게 검은 아주 잘 어울린다. 원래 검사가 아니었던가. 그런 사람에게 명검은 날개가 된다.
하지만 백운진인이나 적화자에게는 검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들이 검을 들자 왠지 부조화가 보인다. 그들에게 검법이 있고, 뛰어나게 구사할 수 있다는 점은 알지만, 거북한 느낌이 드는 것은 지울 수 없다.
확실히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과감하게 검을 포기했다.
승은 승려다워야 한다. 거지는 거지다워야 하고, 도인은 불진을 들어야 한다.
승려에게 검이 어울리지 않는다면 선장은 어떤가?
아주 잘 어울린다. 자신에게만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소림사 전체를 견주어봐도 썩 잘 어울린다. 소림사에 있는 사형, 사제, 제자들의 얼굴을 떠올려도 선장이라면 무난하다.
그래서 선장을 택했다.
또 한 가지, 남다른 탐욕이 있다.
소림사에는 장공(杖功)이 네 개나 있다.
항마복호장(降魔伏虎掌), 대윤회겁륜장(大輪廻劫輪杖), 금강장(金剛杖), 십팔로항마장법(十八路降魔杖法).
아주 뛰어난 장공들이다. 또 이런 장공을 펼치지 위해서 특정한 병기를 가질 필요도 없다. 수중에 들고 다니는 선장으로 충분히 펼칠 수 있다.
명검, 부러지지 않는 검!
그는 여기서 잊혀진 절기를 생각해 냈다.
장화연삼세(杖火連三勢)!
가히 장법의 극이라고 할 수 있는 절공이다. 하지만 장화연삼세는 이미 실전되었다. 아직도 몇몇 사람의 머릿속에 남아있기는 하지만 사용하는 사람은 없다.
왜 그럴까?
장화연삼세를 펼치기 위해서는 극강한 내력이 소모된다.
평생 내공수련만 해온 고수라고 해도 두 번 연속해서 펼칠 수 없을 만큼 진기소모가 크다. 위력은 생각할 것도 없다. 진기를 쏟아붓는 만큼 극강하다. 필생의 진기가 단 세 초식에 담겨서 쏟아지는 만큼 천지를 평지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진기를 담아서 쳐낼 만한 그릇이 없다. 선장이 없다.
장화(杖火)라는 말은 장에 불을 담는다는 뜻이다. 불붙은 선장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진기가 응축되다 못해서 활활 불타오르는 듯한 형상을 보인다.
초식 구성은 삼초로 되어 있다.
일초에서 삼초까지 연달아 펼쳐지며, 중간에서 멈추지 못한다. 만약 억지로 멈추다가는 진기 역류를 당해서 무공을 사용한 사람이 오히려 치명상을 입는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연삼세가 아니라 연일세, 단 한 초식이다.
그럼 왜 연삼세라는 말을 사용했을까?
이는 선장이 부러지는 시기와 무관하지 않다.
나무로 된 선장은 일초에서 부셔진다. 정확하게 말하면 일초라고 명명한 즈음에서 산산이 부서져 나간다. 무거운 철장을 사용하면 이초에서 부셔진다.
선장이 진기의 응축력을 이기지 못했다.
나무, 쇠, 동, 바위…… 온갖 것으로 선장을 만들어봤지만 모두 실패했다. 마지막 삼 초까지 버텨주는 선장이 없었다.
해과월이 만든 선장은 장화삼련세를 버텨줄까?
그는 정말로 장난감을 받아든 어린아이처럼 흥분했다. 마음이 마구 뛰었다. 헌데,
‘응!’
그는 막 철장을 휘두르려다 말고 귀를 쫑긋 세웠다.
무슨 소리가 들린다. 희미하지만 뚜렷하게 어떤 소리, 다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고 보니 적화자가 보이지 않는다. 백운진인도 없다. 대장간을 나서는 모습까지는 봤는데…… 그렇다면 이 근처 어딘가에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다.
그는 바짝 엎드려서 땅에 귀를 댔다.
파파파팟!
땅을 울린다.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보법!’
천시지청술(天視地聽術)에 난잡한 보법이 잡힌다.
상당히 어지럽게 얽혀있다. 어느 한쪽이…… 어떤 무리가 일방적으로 쫓기는 듯 발걸음에 질서가 잡혀있지 않다. 땅을 딛는 발걸음 소리가 가볍지 않다.
‘거리는 백 장!’
까앙! 깡! 깡! 깡!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도 들린다.
‘싸움이다!’
일여화상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밖에는 설산일섬이 있었다. 백운진인이 있고, 적화자도 있다. 그들 세 사람이 있는데 싸움이 벌어졌다? 그들 앞에서 태연히 싸운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있다면 그들 자신이 싸우는 것뿐이다. 그들이 모두 싸움에 엉켜들었다.
쒜에에엑!
일여화상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신형을 쏘아냈다.
부처님 그림자가 아늑하게 피어난다는 불영선하보(佛影仙霞步)가 쾌속하게 펼쳐졌다.
까앙! 깡! 깡깡깡!
검음이 들린다.
십 장 밖에서 개미 기어가는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귀가 백 장 밖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듣지 못할 리 없다.
이 대 일의 싸움이다.
‘가셨군……’
그는 죽은 사람을 생각했다.
설산일섬이 죽었다. 나타난 사람은 맹주가 틀림없다. 백운진인과 적화자를 저렇게 몰아붙일 사람은 맹주나 주한극밖에 없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천살검과 혈황검이 아니면 저들 네 사람을 밀어내지 못한다.
‘두 사람이 합공을 하는데도 밀린다……’
이건 예상 밖이다. 확실히 판단착오다.
맹주와 주한극의 무공이 놀라울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저들 네 사람을 한꺼번에 상대할 수 있는 정도라고는 보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렇다.
그는 주한극의 무공을 보지 못했다. 마출성의 무공도 보지 못했다.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어림짐작으로 생각은 하지만, 실제와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그 점을 더욱 확실하게 알았다.
설산일섬은 자신이 죽였다.
그가 혼자 순시하도록 방치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런 말을 한다고 해도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들이니 들었을 리 없지만…… 그래도 만류는 했어야 한다.
설산일섬이 혼자 가도록 내버려 둔 것은…… 자신의 검을 믿는 바가 컸다.
천살검에 뒤지지 않는 명검을 만들었다.
만수 해달막의 유훈, 그리고 사부의 육양삼성, 이 둘의 조합은 완벽한 제련법을 창안해냈다.
검을 만들고 갈고…… 그러다보니 알겠다. 검이 어느 정도의 무게로 세상을 빛낼지 짐작이 된다.
거기에 살기까지 죽였다.
인의(仁義)의 검이 되리라.
살기가 짙은 사람은 마음에 들지 않는 검, 마음이 평온한 사람, 차분하게 정돈된 사람만이 손에 잡을 수 있는 검, 욕심이 없는 사람만이 잡게 될 검.
한마디로 주한극이나 마출성 같이 혈기(血氣)를 뒤집어 쓴 사람들에게는 못마땅한 검이다.
일부러 그런 검을 만들었다.
다행스럽게도 백운진인은 만족해한다.
정기(正氣)가 가득하다. 도인의 길을 괜히 걸어온 것이 아니다. 남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진심으로 영적 수련을 한 사람이다.
적화자도, 설산일섬도 만족해한다. 일여화상은 한술 더 뜬다. 그는 검을 버리고, 아예 날이 없는 선장을 만들어 달란다.
이 사람들은 좋다.
기꺼이 검을 줘도 아깝지 않다.
네 명의 고수, 네 자루의 절정검.
이들이라면 마출성을 막아줄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아직은 부족하다.
정작 중요한 것은 자ㅓ신의 판단착오가 설산일섬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역시 암계라거나 계략이라거나 음모 같은 것은 아무나 꾸미는 게 아닌가 보다.
마출성…… 대단한 자!
하지만 그도 더 이상의 살생을 저지르지 못한다.
백운진인과 적화자까지는 밀어붙인다고 해도 일여화상까지 가세해서는 승산이 없다. 아니, 승산은 있겠지만 그런 모험을 할 사람이 아니다.
저들은 저런 상태로 고착된다.
‘이제 올 때가 됐는데……’
해과월은 어둠이 가득한 하늘을 쳐다봤다.
제29장 독이(毒餌)
1
“만수는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았다는데, 그것도 배운 모양이구나.”
둥 뒤에서 묵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웃!’
해과월은 깜짝 놀랐다.
누가 등 뒤로 근접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 백 장 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귀인데, 정작 자신의 등 뒤에서 다가서는 발걸음 소리는 듣지 못했다.
아니다. 등 뒤에는 길이 없다. 대장간으로 들어서는 통로가 없다. 텅 빈 봉창을 통해서 스며들었다. 그 좁은 봉창을 통해서 스며들 동안 어떠한 기척도 감지하지 못했다. 귀로 듣지 못했고, 느낌으로 감지하지 못했다.
‘완벽하게 당했군.’
해과월은 씁쓸하게 웃었다.
놀라지는 않았다.
네 사람 앞에 마출성이 나타났다면, 자신을 향해서 다가설 사람은 남은 한 사람, 주한극이다. 전임 맹주 주한극이 나타날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이것이다. 이것 때문에 이문 우시장에서 이런 짓을 벌였다.
이런 방식이 아니면 두 사람을 끄집어 낼 수 없다. 다른 방법으로는 큰 싸움만 벌어질 뿐, 이들 두 사람 같은 절대자들을 직접 대면할 수 없다.
네 명의 고수가 곁에 있지 않았다면 대리인들이 다가선다. 청천맹 무인이나 유림 무인들이 대신 일을 치른다.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강력한 무인들을 곁에 두어서 어설픈 싸움을 걸어오지 못하도록 차단시킨다.
검이 욕심나면 직접 오라.
그의 말은 통했다.
물론 저들도 자신의 마음을 안다. 저들이 이번 일을 모른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자신이 파놓은 함정을 환히 들여다보고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말도 전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