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Treasure Sword RAW novel - Chapter 204
204
헌데 그렇지 않은 사마가 있다. 분명히 사마이면서도, 그리고 고수이면서도 놈의 검을 잘 사용한다. 자신들의 특성에 맞춰서 죽은 검, 완전한 사검(死劍)을 탄생시켰다.
인검이 그들이다.
그들이 세상에 나와서 제일 첫 번째 할 일은 그동안 눈엣가시였던 홍화문을 치는 것이다. 헌데,
“홍화문이 건재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출성은 수하의 보고를 일갈로 다그쳤다.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믿을 게 아닌가.
“피해는 귀사령 한 명. 저희도 믿기지 않아서 두 번, 세 번 확인한 정보입니다. 확실합니다.”
수하는 ‘확실’이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정말…… 홍화문이 무사하더냐?”
“그렇습니다.”
“인검이 홍화문을 치지 않았어?”
“그렇습니다.”
“그럴 리 없다. 그럴 리 없어. 뭔가 잘못됐어. 말해봐라. 너흰 바로 곁에서 지켜보지 않았더냐!”
“……”
수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들은 인검 주변에 얼씬거리지 못한다.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다.
그들의 무공으로는 인검의 눈을 속이지 못한다.
그러니 항상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조금이라고 가까이 다가서면 틀림없이 발각될 것이다. 그리고 거침없는 살수가 터져 나올 것이다.
“좋지 않은 일이 있었군. 성깔 못된 망아지가 새색시처럼 양순해지기가 쉽나. 제 성질을 부리지 못할 때는 틀림없이 뭔가가 있다는 뜻이겠지.”
“알아보기가 어렵습니다.”
“……!”
그는 수하를 쳐다봤다.
인검을 추적하지 못하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어떤 사실을 알기 위해서 반드시 인검을 추적할 필요는 없다. 그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 홍화문을 염탐하면 된다. 그것도 못한다는 건가?
수하가 마출성의 마음을 읽은 듯 부언했다.
“네 명을 들여보냈습니다만……”
대답이 충분하다.
“허!”
그는 헛바람을 찼다.
“뚫지 못한 게 무엇이냐?”
귀사령? 귀사령은 뚫을 수 있다. 삼 장로? 그들도 뚫을 수 있다. 기무영? 너무 쉽다. 그녀들은 아직 미숙하다. 기무영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앞으로 십 년은 더 수련해야 한다.
누군가? 누가 이들의 발길을 막아내고 있나.
“철벽같다고 느꼈습니다. 사방이 텅 비어있는데, 들어가 보면 검이 겨눠집니다.”
“진(陣)인가?”
“속하의 판단으로는…… 초절정고수들이 운집해 있다고 느꼈습니다. 개개인의 무공이 저희를 제압하고도 남을 지경이었습니다.”
“개개인이라면 누구를 말하는 게냐? 삼 장로냐 해과월이냐. 분명히 말해라.”
“귀…… 사령입니다.”
“너 술 마신 게야?”
“제 정신입니다. 저희가 언제든 제거할 수 있다고 말했던 귀사령…… 그놈들에게 당했습니다. 일대 일의 승부였고, 깨끗한 한 판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그런 일이 있었군.”
마출성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가 어찌 귀사령의 무공을 모르겠나.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찌 싸우는지는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안다.
그들은 절대 이들을 이기지 못한다.
자신이 손수 양성했고, 음살문의 살수로 똘똘 뭉친 죽음의 도구들을 이겨내지 못한다.
이들에게 음살문의 비기를 빠짐없이 가르쳤다.
음살문에서 정통으로 수련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온 정성을 다해서 길러냈다.
그런데 막혀? 일대 일의 승부에서 져? 그것도 깨끗한 한 판이라고? 그럼 제대로 손도 써보지 못하고 당했다는 것인데…… 귀사령이 그토록 강했나?
마출성의 볼 근육이 실룩거렸다.
자신도 그렇고 전임 맹주였던 주한극도 그렇고…… 청천맹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일은 바르지 않다.
무림의 질서를 지키려는 게 아니다. 무림을 장악하고 패권을 구사하려는 것이다.
그런 일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중원 무림이 반발한다.
목숨을 바쳐서 충성을 맹세한 검군이 떠나갈 것이다. 혈랑도객도 떠날 게다. 진룡대 역시 해산할 가능성이 높다.
철옹성처럼 단단해 보이는 청천맹이 순식간에 와해될 수 있다.
그래서 자신도 주한극도 청천맹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청천맹을 장악하고 구파일방의 움직임을 견제하는 선에서 행동을 마쳐야만 했다.
청천맹의 역할은 그것으로 끝이다.
한 마디로 청천맹은 쓰레기다. 가지고 있을 필요가 전혀 없다.
주한극을 밀어내고 맹주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별로 없다.
명령이 떨어지면 수하들은 제일 먼저 정도 무림에 해가 되는 명인지 아닌지 부터 살핀다. 맹주의 명령을 절대적으로 수행하는 게 아니라 위해성부터 살핀다.
이런 식의 조직이 무슨 재미가 있겠나.
그런 사실을 몰랐던 건 아니다. 부맹주로 청천맹에 몸담은 게 몇 년인데 그 정도도 모르겠나.
그래도 주한극을 밀어내고 맹주가 될 필요는 있었다.
청천맹은 은연중 비성검문을 지원한다. 맹주가 비성검문 출신이니 당연한 일이지만…… 비성검문 쪽에는 눈을 감고, 음살문 쪽만 다그치는 정책이 수행된다.
이런 정책이 크게 위협적이지는 않다.
음살문은 이만한 일에 휘청거릴 만큼 연약한 문파가 아니다. 다만 귀찮다. 매우 귀찮다.
그래서 청천맹을 장악했다.
반란을 주도하면서 생각한 것이 앞으로는 굉장히 따분할 것이라는 점이다. 청천맹의 속성상 맹주는 성인처럼 움직여야 한다. 군자가 되어야 한다.
참으로 따분하지 않겠나.
그런데 정말 그렇다.
맹주가 되어서 패악을 부려보기도 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절대적인 패권은 용인된다. 맹주의 권위를 살인적으로 내세우는 것도 받아들인다.
이런 것들은 맹주의 권위다.
청천맹 맹도라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입에서 정도무림에 반하는 명령이 떨어진다면 그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당장 얼굴을 붉히게 된다.
그는 정말 할 일없는 노인네가 되어서 뒷방이나 차지하고 앉아있어야만 했다.
참으로 따분한 일…… 그래서 심심파적으로 이들을 양성했다.
음살문의 의도대로 혼천음양마공을 풀어놓는 한편, 다른 일방에서는 자신만의 수족을 키웠다.
청천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정무를 돌보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었고, 청천맹이 유명무실해졌다는 말도 떠돌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쓰레기에 불과한 조직인 것을.
그는 오직 이들을 양성하는 데만 전력을 쏟았다.
그런데 이들이 쓰레기 조직의 일부였던 귀사령에게 패했다. 그것도 깨끗하게 당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홍화문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인검이 홍화문을 치지 못한 데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그렇다. 치지 않은 게 아니다. 치지 못한 것이다. 인검이 살의를 품고 달려들었지만, 역부족을 느끼고 물러선 게다.
‘홍화문이 강해졌다. 옛날…… 음살문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시절처럼.’
즉각적인 판단이 선다.
“인검은 어디 있나?”
“양강(凉江)에서 배를 타는 것까지 확인했습니다.”
“양강?”
“네.”
“그렇군. 역시 그랬어.”
마출성은 옅은 눈웃음을 흘렸다.
호성산에서 양강으로.
이 두 점을 일직선으로 쭉 그으면 인검이 나아갈 방향이 나온다. 그 선 끝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살펴봐도 모르겠지만, 그는 단번에 짚이는 게 있다.
일주(一主), 일주를 찾아가고 있다.
음살문의 문주이자, 그의 주인이자, 중원 무림의 실질적인 지배자에게 달려가는 중이다.
인검이 홍화문에서 단단히 낭패를 당한 게 맞는 것 같다.
‘혼천음양마공이 실패를!’
어떤 무공이든 절대적이지는 않다. 무공 자체는 절대적일지 모르지만 그 무공을 수련하는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흔히 뛰어난 기재에게 선천적으로 완벽한 무골(武骨)을 타고 태어났다고 말하는데, 그런 무골은 없다.
완벽한 인간이란 없다. 그래서 완벽한 무공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검은 가장 완벽하지만, 인간이 펼치는 무공이기에 완벽하지 못하다는 이상한 무리(武理)가 나온다.
일주에게는 그럴 때를 대비한 방책이 있다.
인검이 홍화문 공략에 실패하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일주에게 달려가는 것도 그 때문이다.
“흠!”
그는 허공을 바라보면서 공기 내음을 맡았다.
진한 피비린내가 풍겨온다.
염사검이 활개를 치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명씩 죽이고 있다. 피를 흠뻑 빨아들인다.
사람들은 희대의 마두가 나타났다고 한다. 정도 무림은 무얼 하느냐, 청천맹은 뭘 하고 있는 거냐며 아우성이다. 하지만 이것은 염사검이 일으키는 진정한 혈풍이 아니다.
인검이 패배를 맛 봤다.
이것은…… 미안하지만 중원 무림에게는 매우 좋지 않은 징조다.
지금의 인검은 그나마 인정(人情)이라도 남아있다. 인간이 펼치는 무공이기 때문에 손속에 사정을 담을 수도 있다. 한 마디로 죽이기 싫으면 안 죽인다.
저들에게서 인성마저 떼어내 버린다면……
다시 무림에 나설 인검은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겉모양만 사람을 유지할 뿐, 정신은 마귀로 가득 차 있으리라. 세상 사람들을 오직 ‘죽일 자’로만 볼 것이다.
수교빈이 많은 사람을 죽였다고? 사내를 유인해서 복상사를 시켰다고? 양기를 갈취해서 목내이(木乃伊)를 만들어 죽였다고?
그 정도였던 게 다행인 줄 알아라.
인검이 만들어 낸 혈풍은 예정된 것이다. 허나 패배를 맛봤기 때문에 생각보다 훨씬 강한 혈풍이 형성될 게다.
염사검이 만든 혈풍은 예상하지 못했다. 느닷없이 불쑥 튀어나와서 피를 뿌린다.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인검이 뿌리는 혈풍에 염사검의 혈풍까지 더해지면 무림은 그야말로 피바다 속에 빠지고 만다. 고수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숱하게 나설 것이고, 죽을 게다.
세상은 인검과 염사검의 저주 속에 빠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염사검의 탄생은 축복할 만하다.
그런데 또 한 군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혈풍이 시작된다.
홍화문에서 시작된 혈풍은 인검과 염사검을 향한다. 비성검문과 음살문을 겨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고래 싸움에 끼어든 새우에게서 일어났다.
어떻게 이런 일이!
한낱 새우가 고래 두 마리를 물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마출성은 그런 예감을 받았다.
자신이 손수 키운 정예 중에 정예가 홍화문을 뚫지 못했다는 것은 간단하게 흘려버릴 일이 아니다.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해야만 한다. 홍화문이 강해졌다는 것을.
“애들을 더 이상 희생시키지 마라.”
“그럼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중단해라.”
“비성검문 쪽에 붙인 애들은 어찌 할까요?”
“모두 다 물려.”
“전부 다 물리시면 눈과 귀가 차단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수하가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마출성에게는 중원 제일의 정보망이 있다. 청천맹의 비망은 개방도 찾지 못한 것을 찾아낸다. 온 세상 구석구석을 한시도 쉬임없이 지켜본다.
비망에게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은 그 뿌리가, 근원이 하오문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오문의 정보수집방식으로 고스란히 차용했다. 뿐만 아니라 인선(人選)의 폭을 하오문에 국한시키지 않고 폭넓게 넓혔다. 청천맹이라는 정도 무림의 기관을 이용해서 깨끗한 돈으로, 정당한 방법으로 정보수집 능력을 넓혀갔다.
그렇게 수집한 정보는 고스란히 음살문에게 흘러들어갔다.
그러던 것이 주한극이 맹주가 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음살문 쪽으로 흘러들어가야 할 정보가 비성검문 쪽으로 흘러들어갔다.
주한극은 남이 기껏 일궈놓은 밭에 얌체처럼 쏙 끼어들어서 열매만 따먹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비망은 혼탁해졌다.
음살문파와 비성검문파로 갈려졌다. 무림이 암중으로 분열되어 있는 것처럼 비망도 분열되었다.
비망의 정보망은 광대무변하지만 마출성이 직접 이용하기에는 폭이 제한되어 있다.
그런 부족함을 수하들이 직접 몸으로 뛰면서 채워주었다.
이들이 빠진다면 당장 이목이 차단된다. 하지만 이들을 잃는 것보다는 낫다고 본다.
마출성이 웃으면서 말했다.
“허허허! 내가 마출성이다. 청천맹주 마출성. 잊었느냐?”
“죄송합니다. 속하는 걱정이 되어서.”
“너희는…… 그래, 쉬어서는 안 되겠지. 모두 마지막 관문에 도전해라. 너희들이 왜 빠지는지는 너희가 알 터…… 네 명의 죽음을 잊지 마라.”
“네.”
“나태한 마음이 들 때마다 그들을 생각해라. 너희도 그렇게 죽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정진해라. 내가 부를 때까지. 가라.”
“건강하십시오!”
수하가 두 손으로 검을 잡고 검례를 취했다.
5
꽈직!
그는 읽고 있던 서신을 와락 구겨버렸다.
“이런 일이!”
자신도 모르게 한탄이 불쑥 튀어나왔다.
이 순간, 그토록 영민했던 머리는 순식간에 재가 되어 하얗게 타버렸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멍하니 앉아있는 것도 힘들다.
“그랬군. 그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