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Treasure Sword RAW novel - Chapter 74
74
그들도 빠른 면에서는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도저히 어떻게 막아야 좋을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수적 열세다.
비성검문 검사들은 자만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승리가 확실해 보이는데도 오대 일의 승부를 늦추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이 대 일의 구도를 짜놓고, 한 명이 이리저리 번갈아 가면서 급공을 취한다.
두 명만 해도 막기 힘든 판인데, 또 한 명이 언제 어디서 쳐올지 모른다는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
숨이 막힌다.
“후웁! 새끼…… 기왕 터트릴 바에는 목숨 한 번 걸어보지.”
귀사령 무인이 분한 듯 중얼거렸다.
벽력섬을 두고 하는 말이다.
원래 벽력섬은 목숨을 걸었을 때, 비로소 제 위력이 나온다.
자신을 폭발 한 가운데 두어야 한다. 상대를 폭발 속으로 끌어당기기 위해서, 폭발 같은 건 없다는 점을 알려주기 위해서…… 자신이 삶을 포기한다.
살기를 포기하고 동귀어진의 마음으로, 죽음을 달관한 심정으로 벽력섬을 일으킬 때, 죽음이 피어난다.
귀사령 무인들은 방심했다.
그들은 비성검문 검사들이 벽력섬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은 호로병을 던지면 검으로 쳐내거나 상반신만 살짝 움직여서 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거의 대부분은 그런 반응을 보인다.
벽력당에서 실험을 해봤는데, 알지 못할 물건을 던질 경우…… 던져진 물건이 별로 위협적이지 않다고 생각될 경우, 신법을 전력으로 전개해서 피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니, 사백여 명을 실험했는데, 단 한 명도 그런 경우가 없었다.
벽렴섬을 자체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 점만 해결된다면 청천맹 무인들의 주요 암기 중에 하나로 자리매김할 게다.
이 자들…… 비성검문 검사들이 바로 그 사백 명 중에 한 명도 없었던 경우에 해당한다.
이들은 별로 위협적이지 않은 물건이 던져졌는데도 전력을 다해서 피했다. 귀사령 무인들보다도 더 빨리, 더 멀리 도주한 후에 몸까지 숨겼다.
다섯 명 모두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너무 큰 욕심이다. 하지만 한두 명 정도는 죽음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조차도 아주 큰 오판이었다.
저들 다섯 명이 모두 목숨을 부지했을 때,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들이 얼마나 상대를 모르고 있었는지. 상대가 얼마나 강한 자들인지.
이들은 자신들이 상대했던 그 누구보다도 강하다.
만약…… 이제는 지나가 버린 이야기지만, 벽력섬을 그렇게 흘리지 않고 거기에 목숨을 걸었다면…… 한참 접전을 벌이는 도중에 몸안에서 터트렸다면……
이들 중 두 명 내지 세 명은 단박에 끌고 갔다.
그렇게 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칼에 맞아 죽을 일도 없겠거니와 죽음이 억울하지도 않을 게다.
그 후의 싸움은 사실상 이미 잔 상태에서 벌인 발버둥에 지나지 않는다. 버티는 데까지 버텨보자는 심정에서 검을 썼지만, 금방 승부가 났다.
그래도 아직 남은 수가 있다.
파라라락!
진기를 일으킨다.
이렇게 되면 이판사판 아닌가. 어디 해볼까? 이왕 죽는 거라면 좀 멋있게 죽어볼까?
순간, 그의 혈색이 은은히 붉어지기 시작했다.
눈이 시뻘겋게 충혈 되고, 핏줄이 투둑 투둑 튀어나왔다.
“그럴 줄 알았다. 제길!”
다른 무인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도 곧 같은 방식으로 운기를 시작했다.
투둑! 투둑! 투두둑!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졌다. 전신 혈맥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후후후! 기껏 한다는 것이 폭멸자광(爆滅自炚)인가?”
비성검문 무인들은 두 무인의 비공마저도 알아봤다.
순간, 두 무인은 당황했다.
폭멸자광까지 알아봤나? 그럼?
폭멸자광을 펼치나 마나다. 괜히 자신들만 개죽음을 당한다.
폭멸자광은 가장 강력한 동귀어진 수법이다. 자신의 죽음을 기반으로 상대를 죽인다.
상대와 접전을 벌이는 순간, 몸속의 모든 잠력(潛力)을 일시에 터트린다. 허면 순간적으로 회광반조(廻光反照)와 흡사한 현상이 일어나면서 공력이 네 배로 급증한다.
순간적으로 증폭하는, 그래서 단 일 초밖에 쓸 수 없는 내공이다.
헌데 상대가 폭멸자광을 알아본다? 그러면 당연히 말이 달라진다. 동귀어진이 되지 않는다. 상대가 달려들지 않는데, 어떻게 동귀어진이 되겠나.
상대는 멀리서 지켜볼 것이고…… 폭멸자광을 풀거나 아니면 고집을 부려서 죽는 수밖에 없다.
“미치겠네.”
두 무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쩔쩔 맸다.
그때, 멀리서 차분한 음성이 들려왔다.
“후후후! 우리 애들 가지고 장난이 심하군.”
순간 비성검문 무인들이 검미를 찡긋거렸다.
그들은 돌아보지 않고도 나타난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냈다. 그들의 신법과 발자국 소리로 몇 명이 왔는지, 무공은 어느 정도인지 한 눈에 읽어냈다.
귀사령 무인들이 총 출동했다.
자신들 다섯 명을 잡기 위해서 귀사령 스물한 명이 모두 모였다.
‘당했군.’
그들의 표정에 실소가 흘렀다.
떠나올 때 맹주가 조심하라고 했는데…… 충분히 살펴본 다음에 들이쳤어햐 하는데…… 꼬리를 밟힌 놈들 뒤에는 반드시 무엇인가 있다고 했는데……
때늦은 후회가 밀려든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승기가 넘어갔다. 이제 유리한 쪽은 귀사령이다.
무공의 절대적인 면에서는 자신들이 유리하다. 정당하게 승부를 벌인다면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 물론 그럴 리는 절대 없지만.
저들은 네 배가 넘는 인원이다. 더군다나 자신들처럼 합격술의 달인들이다. 승냥이가 호랑이를 잡아먹을 때처럼…… 기가 막히게 싸운다. 아무리 강한 적도 저들의 포위망에 걸려들면 꼼짝없이 당한다.
자신들이 그렇게 걸려들었다.
또 한 가지, 저들은 한결같이 보검을 지니고 있다.
뽑아든 검들이 모두 똑같은 묵검이다.
귀사령주가 말했다.
“이놈들아, 머리는 생각하라고 있는 것이야. 괜히 장식용으로 달고 다니는 게 아냐! 저놈들은 맹주와 함께 움직이는데, 우리들에 대해서 들은 게 없겠냐! 우리들 무공은 물론이고 개개인의 성격까지 환히 꿰뚫고 있을 텐데, 그런 놈들 앞에서 폭멸자광을 쓰면 어쩌겠다는 거야. 쯧!! 한심한…… 저런 것들을 수하라고 데리고 있으니.”
이 말은 비성검문 검수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너의가 우리들에 대해서 알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싸울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내 수하들을 몰아쳤지만, 이제는 너희가 그 대가를 치를 차례다.
비성검문 검수들은 차분하게 일(一) 자로 늘어섰다.
스읏!
또한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거의 동시에 검을 어깨높이로 들어올렸다.
“연풍사전(延風射電)…… 이놈들의 끝은 어디인가.”
귀사령주가 중얼거렸다.
연풍사전!
다섯 사람이, 혹은 여섯 명이…… 진을 형성하는 사람이 각기 다른 초식을 펼친다. 그 초식은 그 자체로 완벽한 하나의 초식이 된다. 하지만 다섯 명이 펼친 초식들이 합쳐져서 또 다른 큰 초식 하나를 만들어 낸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완벽한 연수합격진(聯手合擊陣)이라고 한다.
“그 검들…… 해과월이 만들어 준 것인가?”
비성검문 검수가 말했다.
“왜? 좋아 보여?”
귀사령주가 들고 있는 검을 흔들어 보였다.
귀사령은 하나같이 절정보검이라고 할 수 있는 명검을 지녔다.
검과 검이 부딪치는 싸움에서 하등 밀릴 게 없다. 내공을 겨루는 싸움일지라도 사양하지 않는다. 아니, 이런 싸움들이라면 오히려 기대된다.
맹주가 혈황검으로 무림을 지배할 때, 혈황검의 위세를 짐작하면서도 실제로는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
절정고수들의 겨룸에서 간발의 차이는 큰 결과를 불러온다. 그래서 수혼검사가 일검견혼에게 대항하지 못했다. 주한극의 손에 혈황검이 들린 이상, 그를 꺾을 수 없다고 공언했다.
헌데 이제는 알겠다. 명검이라는 걸 손에 쥐고 보니 무공이 진일보한 느낌이다. 자신보다 무공이 나은 상대라도 충분히 겨뤄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든다.
그만한 확신이 생긴다.
검 한 자루의 효과가 이 정도일 줄은…… 사실 그들도 미처 알지 못했다.
“그 검이 아니었다면…… 긴 승부가 됐을 거다.”
“인정하지.”
귀사령주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뒤로 물러섰다.
“빨리 끝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고. 연풍사전을 우습게보았다가는 바로 골로 간다.”
“넷!”
수하들이 앞으로 나섰다.
쒜에엑!
거대한 해일이 밀려든다.
다섯 명이 일시에 휘두르는 검은 꼭 바다를 뒤덮은 해일 같다. 빠르고 정확하게 강력한 경기(勁氣)를 동반한다.
쒜엑! 쒜에엑!
다섯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일자로 쭈욱 늘어서서 거칠게 검을 쏟아낸다.
귀사령 무인들은 좀처럼 파고들지 못했다.
그들이 맞이하는 것은 검 하나가 아니다. 하나를 상대하면서 들어가 보면 어느 세 두 개, 세 개가 한꺼번에 몰려들고 있다. 앞뒤좌우에 어느새 저들 검만 보인다.
비성검문 검수들은 흩어지지 않는다. 어깨를 나란히 붙인 채…… 떨어지지 않는다.
한 명이 한 초식, 다섯 명이 모여서 한 초식.
“미치겠군!”
귀사령 무인들은 좀처럼 승기를 잡지 못했다. 어떤 자는 주춤주춤 물러서기까지 했다.
그들은 다수의 힘을 유효적절하게 쓰지 못하고 있다.
여러 명이 있기는 한데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면서 쩔쩔 맨다.
한 사람이 검 하나만 상대해야 하는데, 커다란 바위를 상대하는 것 같다. 한꺼번에 밀려드는 검 수백 자루를 동시에 받아치는 느낌을 받고 있다.
그러니 검을 맞대보기도 전에 물러선다.
한심한 줄 알면서도 물러서지 않을 수 없다. 상대가 뻗어내는 검경이 너무 위협적이다.
“쯧!”
귀사령주가 혀를 찼다.
상대가 어떤 진형을 구축하고 있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상대하지 못하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생각만 든다. 하지만 그것이 또 연풍사전의 특징이기도 하다.
“바보 같은 놈들…… 저놈들이 자기들 입으로 싸울 수 있는 방법까지 일러줬건만!”
스릉!
뒤로 물러서 있던 귀사령주가 직접 검을 뽑았다.
그가 검을 뽑지 않아도 이 싸움은 귀사령이 이긴다. 저들이 뻗어내는 연풍사전은 진기소모가 극심하다. 다섯 명이 한 호흡으로 검을 펼쳐내야 하기 때문에 심력소모도 많다.
저들은 얼마 못 가서 무너진다.
하지만 지금은 완벽하다. 언제까지라도 지금처럼 완벽한 연풍사전을 펼쳐낼 것만 같다. 천하의 귀사령이라고 해도 저들을 어찌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정말 그런가?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인가? 저들이 기진맥진해서 나가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그 전에 이쪽에서 먼저 끝낼 방도가 없나?
있다! 검! 검을 믿어야 한다.
헌데 귀사령은 검을 믿지 못한다. 보검을 들고 있으면서도 보검의 진가를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저들의 연풍사전에 질질 끌려가고 있는 것이다.
무인은 병기에 의존하지 말라고 배워왔다.
병기에 의존하는 순간, 무인의 가치는 절반 이하로 하락한다고 배웠다.
그런 수련들이 검에 대한 믿음을 희석시키고 있다. 자신의 무공은 믿고 있으나, 검의 강력함은 믿지 않는다. 검의 강함보다는 초식의 월등함에 더 많은 점수를 부여한다.
저들이 자기들 입으로 말했다. 이 검이 아니었다면 긴 승부가 됐을 거라고.
일찍 끝낼 수 있다.
검을 믿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반신반의(半信半疑)했을 지라도, 지금 이 순간부터는 확실하게 믿어야 한다.
쒜에에엑!
귀사령주는 진기를 검에 모아 지천붕(志天崩)을 펼쳤다.
마음을 모은다. 검에 모든 것을 담는다. 그리하여 일검을 떨치니 하늘도 무너트린다.
쒜에에엑!
비성검문 검사들은 즉시 검초를 떨쳐냈다.
다섯 명이 각기 다른 초식을 펼친다. 다섯 초식이 합쳐져서 거대한 한의 초식이 된다.
꽝! 꽝! 꽝!
검과 검이 맞부딪치는데 마치 바위덩어리가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울린다.
“커억!”
“크윽!”
비성검문 검수 두 명이 신음을 흘리면서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들의 가슴과 배에는 긴 검흔이 새겨졌다. 그들의 검은 반토막으로 잘려나갔다.
스륵!
귀사령주는 검을 거두고 물러섰다.
자, 이제 보여주었다. 너희도 검을 믿고 싸워라. 이만하면 믿어도 되지 않나.
“그렇군.”
“후후후!”
귀사령 무린들이 검을 꽉 움켜잡았다.
그들의 눈가에는 지금까지 보여주지 못했던 자신감이 떠오르고 있었다.
5
녹영철과 연철은 분명히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