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Treasure Sword RAW novel - Chapter 82
82
그는 그 검을 오랫동안 쳐다봤다.
검에 이름도 붙이지 않았다. 그냥 쳐다보기만 했다.
도공은 검을 가슴으로 만든다. 그러니 검을 만들다 보면 검의 성질이 감지된다.
혈황검, 천살검……
도공의 가슴에 깃든 느낌이다.
그런 느낌이 고스란히 검명(劍名)이 되었다.
이 검은…… 느낌이 없다. 가슴으로 만든 검이 아니다. 자연에 내맡긴 검이다. 그래서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 지 모르겠다. 아무 이름도 붙이지 못하겠다.
그는 갓 태어난 자식을 보듯이, 처음 접하는 자식을 뜯어보듯이 검을 쳐다봤다.
신기하게 생겼다.
이것이 육양삼성 중에 마지막 육양, 무양(無養)인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만든 검인가?
사부는 이 검을 만들지 못했다. 이런 식의 제련을 하지 못했다. 아마도 무양까지는 이르지 못한 듯하다.
그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떤가.
검이 있다. 그러면 된 것이다.
2
스읏!
한 사내가 대장간 문을 밀치고 안을 살폈다.
조용하다. 얼핏 봐서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 그리 크지 않은 대장간이기 때문에 안의 정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데, 사람은 커명 비슷한 인형도 없다.
‘없어?’
그는 텅 빈 대장간으로 들어섰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망치소리가 울리던 곳이다. 그런데 이제는 쓸쓸함만 가득 번진다.
혹시나 하는 심정에서 벽에 등을 바짝 붙이고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재빠른 눈썰미로 사람을 찾았다. 눈에 보이는 곳은 물론이고, 어두컴컴한 구석까지 샅샅이 살폈다.
해과월이 없다!
‘이럴 리가!’
갑자기 등에서 한기가 소록소록 돋았다.
분명이 있었는데 없다니 이 무슨 귀신 곡할 노릇인가!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있었다. 그가 오가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도 보이지 않는다. 측간이 밖에 있는데, 측간도 가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나?
며칠 동안 죽어라 망치질을 하더니 혹시 과로로 쓰러진 것은 아닐까? 결국 탈진해서 쓰러진 건가. 하기는 밥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 일만 해댔으니.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그가 하는 일은 지켜보는 일이다. 더 이상 앞서 나갈 필요가 없다. 해과월이 잘못되었어도 그가 우려할 일이 아니다. 설혹 그가 강도의 칼에 맞아 죽었다고 해도 그대로 보고만 하면 끝난다.
그래서 뚫어지게 지켜보기만 했다.
미친놈처럼 망치로 땅을 푹푹 찍어댈 때도 지켜보기만 했다. 별 미친 놈 다 보겠다. 저놈 진짜 미친 거 아닌가. 갖은 생각이 들었지만 선을 넘지 않았다.
선은 넘지 않는다. 하지만 눈길도 떼지 않는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해서 들어와 봤다. 대장간 안에 있을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보이지 않으니까 무슨 탈이라도 난 게 아닌가 싶어서 확인해봐야겠다.
대장간은 텅 비었다.
아무도 없다. 오래 전에 자리를 비운 듯 썰렁함만 그득하다.
‘떠나는 걸 보지 못했는데……’
그는 본능적으로 사람이 없는 텅 빈 집임을 직감했다.
그는 떠났다.
모습을 보이지 않던 요 며칠 사이에, 이곳을 벗어났다.
‘놓…… 쳤단 말인가.’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눈 뜬 사람 코 베어간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 꼭 그런 일을 당한 기분이다. 두 눈 빤히 뜨고 지켜봤는데, 떠나는 걸 보지 못했다. 사라지는 걸 보지 못했다.
정녕코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대장간에서 한시도 눈을 돌리지 않았다.
눈을 뗀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기 때문에 한시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비망은 완벽해야 한다.
완벽하지 않는 자는 생존할 가치가 업다. 누군가를 감시하라고 하면 죽는 순간까지도, 목숨이 붙어있는 한은 항시 뒤를 쫓고 있어야 한다.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사람을 놓쳤으니 이 뒷감당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빨리 돌아가서 상의를……’
문득, 몸을 돌려 대장간을 벗어나려던 그의 눈길에 어떤 물체가 보였다.
탁자 위에 헝겊으로 둘둘 말린 게 놓여있다.
얼핏 봐서도 검인 것 같다.
해과월이 대장간에서 망치질을 했다. 그리고 그가 사라졌다. 헝겊에 쌓인 검만 남겨두고.
그는 주위를 다시 한 번 살폈다.
아무도 없다. 몇 번이고 확인을 해봤으니 안심해도 좋다.
그는 탁자 앞으로 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헝겊을 펼쳤다.
“아!”
그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검!
검집 없는 검 한 자루가 놓여있다.
그 검이 너무 밝다. 너무 신비롭다. 너무 깨끗하다. 너무 투명해서 매미날개를 보는 듯하다.
수많은 검을 보아왔다. 하지만 이처럼 깨끗하고 맑고 순수한 검은 보지 못했다.
이 검으로는 사람도 벨 수 없을 것 같다.
사람을 찌르면 피가 묻는다. 사람 기름도 묻는다. 그런 더러움ㅇ,ᅳᆯ 묻힐 수 없다. 이 검의 영혼을 더럽히는 것 같다. 순수한 기운을 빼앗는 것 같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검을 잡아갔다. 순가,
쒜엑!
느닷없이 뒤통수에서 찬바람이 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싸늘하게 얼려버리는 검기다.
“흣!”
그는 급히 뒤돌아섰다.
검을 집을 틈이 없다. 억지로 집으려고 하면 집을 수는 있지만 그리되면 검에 맞는다. 상당히 빠른 속도로 쏘아져 오기 때문에 잠시도 머뭇거릴 틈이 없다.
그는 재빨리 신형을 퉁겨냈다.
일단 선공을 피한 다음에 검을 뽑아서 반격을 취한다.
그는 자신이 충분히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걱!
등 뒤에서 불에 지지는 듯한 통증이 치밀었다. 갑자기 끓는 기름을 덮어씌운 것 같다.
“아악!”
그는 비명을 내질렀다.
이 자…… 자신이 상대할 자가 아니다. 너무 빠르다. 사람을 베면서도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 사람을 숱하게 죽여 본 솜씨다. 진짜 살인귀다.
슈각!
일검이 또 터졌다.
등 뒤에서 찌른 검이 앞가슴까지 삐져나왔다.
“커억!”
그가 비명을 내지를 때, 기습자가 그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그리고 대장간 밖으로 냅다 집어던졌다.
쿵!
그는 땅바닥에 거칠게 나가떨어졌다.
그의 귓가에 한 사내의 음성이 들려왔다.
“너 따위의 피로 이 대장간을 물들일 수 없어.”
그는 죽어있는 사내를 봤다.
“청천맹 비망입니다.”
“치워라. 볼썽사납게 이런데 늘어놓고 있으면 어떻게 해! 우리가 주한극이냐!”
“알겠습니다. 곧 치우겠습니다.”
묵검은 든 자, 귀사령이 허리를 숙였다.
죽은 자는 행동하기 편한 경장을 입고 있다. 보통 경장이 아니라 얇은 짐승 가죽으로 만든 경장이다.
매끄럽고 간편해 보인다.
밤에는 이슬도 막을 수 있어서 따로 담요를 지참하지 않고도 노숙을 취할 수 있다.
여러 가지 기능이 포함되어 있는 옷이다.
그들이 이런 옷을 어찌 모르겠는가. 그들도 한 때는 청천맹의 식솔이었다.
“비망이 왔다면…… 해과월에 대한 동향도 보고되었겠군.”
“지금까지는 그렇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귀사령주가 무슨 말이냐는 듯 되물었다.
“해과월이…… 저희도 속이고 빠져나갔습니다. 해과월이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뭐라고!”
귀사령주는 믿을 수 없어서 눈을 부릅떴다.
해과월이 귀사령의 이목을 속이고 빠져나가? 이걸 말이라고 하나? 이런 말을 믿어야 하나?
귀사령은 해과월 같은 자를 미행하거나 감시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무인들을 죽이기 위해서 존재한다. 고양이를 감시하는 자들이 아니라 호랑이를 죽이는 자들이다.
해과월은 뛰어난 장인이지만…… 무림에서만큼은 톡 건드리기만 해도 나가떨어질 약자다.
귀사령이 술에 취해서 잠든 것도 아니고……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을 믿으라고?
“으음!”
귀사령주는 기어이 신음을 흘렸다.
보고를 하는 자의 눈은 진솔하다. 거짓을 고하고 있지 않다. 이런 말은 창피해서라도 입에 담기 힘든데 비교적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하고 있다.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에 간단한 보고를 받았다.
해과월을 놓쳤다는 사실과, 대장간에 검 한 자루를 만들어 놓았다는 보고를 받았다.
두 가지 다 무슨 영문인지 어안이 벙벙했다.
첫 번째 보고는 해과월이 귀사령 무인들의 이목을 어떻게 따돌렸을 까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그런 일은 벌어질 수 없다.
오면서 두 번, 세 번 고쳐서 생각해 봤지만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일이다. 그래서 어떤 사연이 있겠지 싶었다. 서신으로는 자세히 이야기하지 못할 모종이 사연이 있지 않을까.
수하는 자신들만 놓친 게 아니라는 점을 확인시키기 위해 비망 무인의 시신을 치우지 않았다.
정말로 해과월을 놓쳤다.
추적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비망도 놈을 놓쳤으니…… 수하의 말을 믿어야 할 듯 싶다.
두 번째, 검을 만들어 놓았다는 보고도 믿기 어렵다.
해과월은 철을 원했다.
보검을 만즐지 못하는 이유로 녹영철을 거론했다. 녹영철이 없으면 절대로 만들지 못한다고 단언했다.
자신들에게 묵검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면서 한 말이 있다. 묵검도 명검이지만 녹영철로 만든 검은 상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천살검이나 혈황검과 부딪치면 어김없이 잘린다고 딱 부러지게 말했다.
그만큼 녹영철은 보검을 만드는 절대 조건이다.
그런데 녹영철 없이 보검을 만들었다? 검을 놓고 사라졌다?
모든 게 믿을 수 없는 말들 투성이다.
어쨌든 그가 없어졌다니 빨리 찾아야 한다. 이제 이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게 되었다. 만약 놈이 주한극이나 청천맹에 잡혀갔다면 그들의 전력은 지금보다 배 이상 상승한다.
해과월은 압박에 못 이겨 검을 만들 것이다. 또 그놈 성격상 엉터리 검은 만들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 자신들이 가진 묵검 정도는 만들어 준다고 봐야 한다.
모두가 보검으로 무장한 청천맹 무인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귀사령주는 반신반의하면서 대장간으로 들어섰다.
“저거냐?”
탁자 위에 헝겊으로 둘둘 말린 검이 보인다.
“네. 있던 그대로 놔뒀습니다. 솔직히…… 만져보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습니다.”
귀사령 무인의 눈에 격동이 흘렀다.
“그 정도냐?”
“직접 보십시오.”
귀사령주가 탁자로 다가서며 말했다.
“해과월이 녹영철을 구했더냐?”
“아닙니다. 청강장검을 만들 때 쓰는 평범한 쇠입니다. 이곳을 인수할 때부터 이곳에 있던 쇠를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그래?”
귀사령주는 별다른 기대를 갖지 않고 헝겊을 들췄다. 순간,
“헉!”
그는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을 내질렀다.
밝다. 맑다. 검신에 얼굴을 비추면 턱 밑에 난 수염까지 뚜렷하게 보인다. 너무 맑다. 마치 수정을 보는 것 같다. 분명히 쇠로 만든 검인데, 유리검(琉璃劍)을 대하는 느낌이다.
“아!”
탄성이 연신 쏟아져 나온다.
그는 검을 만지지 못하고 눈으로만 봤다.
강도는 어떨까? 자고로 검은 강해야 한다. 이토록 영롱한 검이니 어떤 검이든 모두 베어내겠지?
그는 자신의 묵검을 만지작거렸다.
검을 꺼내서 서로 맞대보고 싶다. 어느 쪽이 잘리는지 알아보고 싶다. 이 검이 보기만 좋은 검인지, 아니면 날카로움까지 겸비한 보검인지 알고 싶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겠다.
보검이 아니면 어떤가. 이대로…… 이대로 좋지 않은가.
유리검이 보검이 아니라 평범한 검이라고 해도 좋다. 설혹 정말로 유리로 만든 검이라고 해도 소장하고 싶다.
관상용, 장식용……
누가 소지해도 단번에 품격을 높여줄 천하제일검이다.
이 검에 살기가 감돌면 어떨까? 누가 이 검의 날카로움을 감당할까? 최소한 묵검 정도의 날카로움만 지녔다고 해도…… 혈황검과 이 검을 나란히 놓고 선택하라면, 어떤 검을 택할까.
“기가 막힌 검이군.”
“겉보기에는 천하제일검입니다.”
“그런가.”
귀사령주가 중얼거렸다.
수하가 ‘겉보기’ 운운한 것은 유리검에서 살기를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검의 날카로움, 강한, 베이면 잘린다는 예기(銳氣)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묵검은 칠흑같이 검다. 컴컴하다. 고요하다. 그러면서 죽음을 잉태한다.
이 검은 순수하다. 너무 깨끗해서 힘을 쓸 수 없을 것 같다. 부딪치면 여지없이 깨질 것 같다. 검 자체가 쇠로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