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529
528화 진의록, 대길(大吉)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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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들! 하다하다 안 되니 이제는 자네를 배신자로 몰아 도모하려하는구먼?”
율반은 동소의 편을 들어주며 그를 위로했다. 그러자 동소는 다시 화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크흐! 원 공을 도와 천하를 평정하는데 전력을 기울여도 뜻을 이룰까 말까인데 다들 딴 데 정신이 팔려 있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네.”
“일신의 영달만을 좇는 소인배들은 신경 쓰지 말게. 원 공께서도 필시 자네의 충정을 믿어 의심치 않으실 걸세.”
율반과 동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진의록. 그는 결심을 굳혔는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진의록이 두 손을 모아 들고 말했다.
“율 대인, 정말 원 공께서 공인 선생을 의심하지 않으실까요?”
“그 무슨 말이오? 원 공께선 현명하신 분이오. 주위의 참소 따위에 흔들릴 분이 아니란 말이오.”
율반이 발끈하자 진의록은 손바닥을 펴보였다.
“진정하시고 소생의 말을 마저 들어보십시오.”
“원 공을 모독하는 말이라면 더 이상 손님으로 대접하지 않을 터이니 그리 아시오.”
“물론입니다. 소생 역시 이 공자를 따르는 사람이거늘 어찌 원 공을 욕되게 하겠습니까? 다만 지금의 상황이 원 공을 몰아세울 수도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 뿐입니다.”
진의록의 말에 동소가 흥미를 보였다. 하기야 자신에 관한 일이니 관심이 안 갈 수는 없었으리라.
“선생, 자세히 한 번 말해보오.”
“지금은 전시입니다. 원 공과 연주의 군웅들이 싸우고 있지요. 당연히 사소한 것 하나도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소생 역시 소문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공인 선생의 아우분이 장 태수 휘하에 있다지요?”
동소는 정말 결백했지만 동생 동방이 장막의 휘하에 있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선생의 말은 지금 내가 동생의 꾀임에 빠져 원 공을 배신하기라도 했다는 거요, 뭐요?”
“화를 내실 일이 아닙니다. 흥분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더욱이 지금은 원 공께서 공인 선생을 떠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나를 떠본다?”
“공인 선생께선 원 공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오신 분입니다. 게다가 그간 적지 않은 공을 세우셨다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참언이 계속되는데 원 공께선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계십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율반이 나섰다.
“그야 참소하는 자들 역시 원 공의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니오? 대놓고 어느 한쪽을 편들 수 없으니 당연한 처결이오.”
“아닙니다. 전시에 이런 분란을 빨리 잠재우는 것 역시 군주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원 공 같은 분이 그런 간단한 이치를 모를 리 없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가 뭐요?”
“공인 선생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것이지요. 만약 참소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공인 선생은 도망을 칠 것이고, 거짓이라면 목숨을 걸고 끝까지 항변하려 하실 겁니다.”
진의록은 일어서서 그들에게 등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
“물론 그것 말고도 다른 선택지도 있습니다. 일 공자나 삼 공자를 지지하는 자들에게 달려가 무릎 꿇고 구명을 청하는 것이지요.”
진의록의 말에 동소는 발끈해 시구를 뽑아냈다.
“빈궁해도 재물에 뜻을 바꿀 수 없고, 빈천해도 권세에 뜻을 꺾지 않는다.”
그러자 진의록 역시 약속이나 한 듯 동소의 시문에 답문을 읊었다.
“칼로 내 목은 칠 수는 있을지언정 내 뜻을 꺾지는 못하리라!”
* * *
동소는 돌연 빙그레 미소지으며 진의록의 빈 잔을 채워주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잔도 채워 진의록을 향해 들어 보였다.
“선생의 답문에 장부의 기개가 느껴지는구려. 삼 잔을 비워 경의를 표하는 바이오. 건(乾)!”
동소는 연거푸 석잔 술을 비워 진의록을 예우했다. 하지만 진의록은 안타깝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공인 선생의 학문과 기개가 이토록 남다르니 어찌 남들이 시샘하지 않겠습니까? 아아! 하늘은 어찌 이런 기재를 데려가려 하시는지······.”
진의록에게 율반의 날카로운 시선이 날아들었다.
“지금 공인의 목숨이 위태롭다 이 말이오?”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소생이 생각하건데 공인 선생은 지금 외통수에 빠졌습니다.”
“외통수?”
“뻔하잖습니까? 공인 선생은 결백하니 도망치거나 하지 않을 것이고, 시샘하는 자들의 공격은 더욱 심해질 겁니다. 결국은 원 공께서 묻겠지요.”
그러자 동소가 진의록에게 두 손을 모아 들었다.
“원 공께서 소생에게 뭐라 물으신단 말이오?”
“장 태수를 쳐야 하는지, 아니면 조 맹덕을 쳐야 하는지······.”
진의록의 말에 율반은 술잔을 놓쳤고, 동소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진의록은 본의 아니게 조조의 계략을 간파하고 말았다. 귀계라면 유세와 비슷한 부분이 있으니 우연이라고 만은 할 수 없으리라.
“정말 외통수로군. 이, 동 모가 외통수에 단단히 빠져버렸구려.”
“앞뒤로 적을 맞이한 것과 다름이 없지요.”
“선생의 말이 참으로 옳소. 소생은 원 공 휘하에서 참군 노릇을 하고 있으니 필시 그것을 물으실 터. 하지만 소생이 어떤 답을 내놓든 내 적들은 그걸 물고 늘어져 날 공격할 거요.”
동소도 나름 지모가 있는 자이니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난국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조조를 치라 하면 동생이 장막 휘하에 있어 그런 거라 할 것이고, 장막을 치라 하면 내심 조조를 치고 싶은 원소에게 미움을 살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영달을 위해 동생마저 져버리는 불의한 자이니 언제든 원소도 배신할 수 있다는 낙인이 찍힐 터.
그야말로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진 선생, 선생에게 답을 구하고 싶소. 어찌하면 소생이 화를 피할 수 있겠소?”
동소는 진의록에게 지모를 구하려 했다. 하지만 진의록은 임시방편의 재치는 있으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지모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를 어쩐다? 가 선생에게 서신을 보내 답을 얻어야겠다.’
진의록은 용맹에 있어서는 여포를, 지모에 있어서는 가후를 믿었다. 자신의 지모로는 당장 답을 내줄 수 없으니 가후에게 조력을 얻으려는 것이었다.
동소마저 회유할 수 있다면 연주 사인들의 마음이 여포에게로 향하게 만드는 일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당장에 채옹만 해도 연주 학파를 이룬 근간이 되는 명사가 아닌가. 거기에 연주에서 이름 높은 선비들이 말 몇 마디만 거들어도 연주의 여론이 여포에게 호의를 보이게 될 터.
* * *
율반의 집 밖에서도 뜻밖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율반의 집 주위에 몸을 숨기고 있는 자들만으로 부족한 것인지 일련의 무리가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동소의 뒤를 밟아온 유협들이었다.
유협들이 으레 그렇듯 언제 어디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자들이다.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자들이나 서로를 알 뿐 명성이 높은 자들이 아니면 알아볼 수도 없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진의록을 미행하던 자들이나 지금 동소를 쫓아온 자들은 모두 허유가 고용한 자들이나 서로를 알지 못했다. 집 주위에 은신하고 있는 자들은 동소의 수레를 쫓아온 자들을 오해했고, 반대쪽 역시 마찬가지였다.
‘진의록이 우리가 뒤를 밟는 것을 알고 무예자들을 준비했단 말인가? 당했다!’
‘우리가 올 줄 알고 자객들을 숨겨 놓은 곳으로 데려왔단 말인가? 동소, 이놈!’
두 무리의 우두머리는 제멋대로 오해하고는 서로에게 적의를 품었다. 하지만 어느 쪽도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묘한 균형이랄까?
진의록을 미행하던 자들은 말 그대로 추종술이나 탐청술이 장기였다. 반대로 동소를 쫓아온 자들은 납치나 살인이 특기였다.
다들 유협이니 싸움에는 재주가 있겠으나 개개인의 실력을 보자면 동소를 쫓아온 쪽이 우위. 하지만 숫자로 보자면 진의록을 미행해온 자들이 우위에 있었다.
어느 쪽이든 먼저 물러나주면 싸움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양쪽 다 자존심을 중히 여기는 유협들이 아닌가.
결국 팽팽하게 당겨진 실은 끊어지고 말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무리의 유협들이 일제히 달려나와 격돌한 것이다. 그리고 보기 좋게 양패구상하고 말았다.
갑작스레 집 밖에 소란이 일자 무언은 빗자루를 거꾸로 들고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물론 그에게는 일신을 지킬 무예도 없으니 남을 지키는 것은 더욱 무리. 하지만 진의록에 대한 의리와 충정으로 도망치고 싶은 본능을 억누르며 억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집 안에 있던 진의록, 율반, 동소가 나왔을 때 무언은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고 있었다.
“무언, 무슨 일이냐?”
진의록이 묻자 무언은 양패구상해버린 유협들의 시체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그리고는 그만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어째서 이런 일이 내 집에서 일어난단 말인가? 이 마을은 도적의 무리들조차 거들떠도 보지 않는 빈궁한 마을인데······.”
율반은 시체들을 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진의록도, 동소도 놀라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진의록은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답을 내놓지 못해 가 선생의 도움을 받으려 했는데······. 안 그래도 되겠구나.’
진의록은 율반과 동소의 얼굴을 빠르게 살폈다.
‘암만 봐도 모르는 눈치다. 하기야 자객들을 살 정도로 재물도 없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 셋 중 누군가를 노리는 자들과 목적 미상의 무리들이 충돌했다는 얘긴데······.’
진의록은 지금의 상황을 십분 이용하기로 했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진의록은 자신이 뭔가 알고 있다는 어조로 말했다. 그러자 율반이 물었다.
“대체 이들은 누구란 말이오?”
“율 대인을 노리던 자객들과 이를 막으려던 자들입니다.”
“누가 나를 위해······?”
“소생이 이 공자께 고수들을 청했습니다.”
진의록은 묘한 말을 남기고는 대뜸 율반과 동소에게 깊이 읍했다.
“소생 진의록이 두 분 대인께 죄를 청합니다. 이, 진 모는 평소 두 분을 깊이 존경해왔습니다. 그런 이유로 두 분이 처한 위험을 그냥 두고만 볼 수 없어 부득불 소생이 멋대로 나섰습니다.”
“그럼 진 선생이 의도적으로 내게 접근했다는 것이오?”
율반은 짧은 순간이나마 배신감이라는 걸 느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자면 진의록을 탓할 수 없었다.
“소생이 이 공자와 인연을 맺게 된 얘기부터 하지 않을 수 없군요. 실은······.”
진의록은 원담이 원희를 죽이기 위해 자객들을 보냈던 얘기를 이들에게 들려주었다. 물론 과장을 조금 섞었다.
“그렇다면 일 공자가 나를······?”
“한 배에서 나지는 않았으나 한 아비를 둔 형제마저 죽이려 하신 분입니다. 하물며 남이야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이 공자께선 어찌 나를 구하셨소? 선생이 청했다는 그런 말 말고 진실을 들려주시오.”
“원 공을 위해 진심으로 충성하는 충신들을 아깝게 잃을 수는 없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소생이 이 공자의 수하 중 몇 명을 추렸습니다. 세 분 공자들 중에서 이 공자의 세력이 가장 보잘 것 없다는 건 잘 알고 계시겠지요?”
진의록은 율반에게 잔뜩 부담을 지웠다.
원희의 세력이라고 해봐야 그를 따르는 일이백 정도의 사람이 전부였다. 그들 중에서 무예자라 할 수 있을 정도의 고수는 열 명 남짓. 몇 안 되는 고수들을 율반을 위해 희생시켰다고 믿게 만들었다.
“아아! 이 공자야 말로 세 분 공자 중 으뜸이오. 일 공자, 사람 그리 안 봤는데 음흉한 구석이 있었구려. 그런 사람이 원 공의 가업을 잇는다면 필시 좋은 결과는 없을 터.”
율반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동소가 물었다.
“나 역시 위험에 처했다 했는데 저들은 중연을 도모하러 온 자들이지 않소? 내게는 어떤 위험이 따르는 거요?”
“증거는 없으나 정황을 보면 추측하기 쉽지요. 공인 선생께선 참군이십니다. 선생께서 실각하거나 목숨을 잃는다면 가장 득을 보는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그러자 동소는 무릎을 쳤다.
“맹대?”
진의록은 거기까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동소가 제 입으로 답을 알려주니 유세를 이어나갔다.
“맹 대인의 고향은 어디 입니까? 소생이 한 번 맞춰 볼까요? 예주 아닙니까?”
“그렇소. 그걸 어찌······?”
“일 공자를 지지하는 세력은 예주 출신들이니까요. 그럼 군부에서 선생과 교분이 두터운 분은 뉘십니까?”
“원도 선생이오.”
원도는 봉기의 자(字)다.
“원도 선생은 예주 출신이 아닐 겁니다. 틀렸습니까?”
“그렇소. 원도 선생은 형주 출신이외다.”
“엉킨 실타래도 결국은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진의록은 기지를 부려 지금의 상황을 자신의 입맛대로 포장해버렸다. 그리고 율반과 동소는 이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한 구석 논리적으로 허술한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동소가 진의록을 향해 두 손을 모아 들었다.
“중연에게 자객을 보냈다면 나 역시 곧 화를 면할 수 없을 듯 하오. 다시 한 번 청하겠소. 내가 어찌하면 화를 피할 수 있겠소? 명예를 버리고 의양성을 떠나는 것도 싫고, 목이 떨어져도 간신들 앞에 무릎을 꿇지도 못하겠소.”
동소가 재차 청하자 진의록은 못 이기는 척 한 숨을 쉬고는 그를 향해 두 손을 모아 들었다.
“소생의 뜻대로만 해주신다면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